"200달러짜리 박수 — Cosm이 증명한 '함께 봄(경험)'의 경제학"
플라네타리움에서 스포츠를 보는 시대
Cosm이 여는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의 미래와 K-콘텐츠의 새로운 기회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 시대, 몰입형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다
"팬들이 원하는 건 뭘까요? 그들을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상호작용하고 경험하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What do fans want? What was it going to take to get them off the couch to go out and interact and experience things?)"
스트리밍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새로운 성장 축을 모색하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가입자 성장세가 둔화되고, 콘텐츠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은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로 향하고 있다.
무한한 콘텐츠가 손끝에서 제공되는 시대에, 사람들을 집 밖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플라네타리움 돔 기술을 스포츠와 영화에 접목한 스타트업 Cosm은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이라는 새로운 경험 형태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무한 소비 콘텐츠의 시대에 K콘텐츠
이런 흐름은 K-콘텐츠 산업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스트리밍 중심의 글로벌 확장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AI와 XR 등 몰입 테크놀로지의 융합이 한류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1월 7일, CES 2026 기간 중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개최되는 ‘Next K-Wave Entertainment & Tech Forum’은 이런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을 직접 경험하고 논의할 기회다.
기술: 우주에서 사이드라인으로 — 플라네타리움 기술의 대전환
플라네타리움 기술이 우주를 벗어나 지상 스포츠의 사이드라인으로 내려오고 있다. 원래 천체 관측을 위해 개발된 돔 프로젝션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차세대 몰입형 미디어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SoFi 스타디움 인근에 위치한 스타트업 Cosm의 LED 돔 시설이 대표적이다. 지름 27미터, 12K 해상도의 180도 시야각(Field of View)을 지원하는 이 공간은 단순한 경기 중계가 아닌, ‘현장 감각을 재현하는 물리적 미디어’로 평가받는다. 관객들은 돔 내부로 입장하는 순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듯한 감각적 전이를 경험한다.
이 기술의 핵심은 5대의 8K 카메라로 구성된 리얼타임 캡처 시스템이다. 경기장을 360도로 스캔하며 인간의 시각 한계를 넘어서는 레벨의 해상도와 프레임을 구현한다. 그 결과, 실제 필드에서는 보기 어려운 선수의 표정 변화나 공의 미세한 회전까지 구현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적 정밀도는 스포츠뿐 아니라 공연, 영화, 교육 등 ‘공유 현실(Shared Reality)’ 시장의 모듈형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가격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티켓은 140달러에서 200달러 수준으로, 전통적인 스트리밍 구독료나 일반 상영관 대비 매우 높은 수준임에도 소비자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관객들은 "비행기표 없이도 현장을 느낄 수 있다"는 심리적 보상감, 즉 ‘가상 이동(Virtual Attendance)’의 가치를 체험하고 있다. 이는 몰입형 기술이 단순한 기술 시연 단계를 넘어, 프리미엄 경험 상품으로 수익화가 가능한 수준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산업적으로 보면 이는 ‘플라네타리움 기술의 소비자화(consumerization)’라는 전환점이다. 돔 영상 기술은 오랫동안 박물관이나 교육기관의 전유물이었으나, 현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 고부가가치 공간형 미디어 아키텍처로 진화 중이다. Cosm을 비롯한 관련 기업들은 기술 내재화와 콘텐츠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공간 기반 스트리밍(Episodic Venue Streaming)’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스포츠·라이브 엔터테인먼트·K-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플라네타리움에서 스포츠로: 기술적 도전과 혁신
Cosm의 여정은 ‘우주’에서 시작됐다. 2020년, 이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라네타리움 기업을 인수하며 그들의 기술 유산을 이어받았다. 수십 년간 별과 은하, 우주의 탄생을 거대한 돔 스크린 위에 투사해온 그 기술이, 이제는 전혀 다른 영역—스포츠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돔 디스플레이를 만들어왔습니다. 그게 기반이 됐죠.” Cosm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주를 함께 여행하던 그 기술로, 농구 코트의 베이스라인이나 미식축구 사이드라인을 재현할 수 있을까?’”
답은 “예스”였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바로 렌즈였다. 일반 어안렌즈(Fisheye Lens)를 이용해 거대한 돔 스크린에 스포츠 영상을 투사하면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가 발생한다. 빛의 파장별 굴절률 차이로 인해 초점이 틀어지고, 그 결과 선수의 유니폼 색이 번지거나 공의 궤적이 뭉개져 보이는 문제가 생겼다. 플라네타리움에서는 별빛의 미세한 오차로 끝나지만, 스포츠 중계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osm 엔지니어링 팀은 2년에 걸쳐 맞춤형 곡률(Custom Curvature) 렌즈를 새로 설계했다. 파장을 정밀하게 정렬하는 고투명 유리 구조로, 180도 화각에서도 선명함을 유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이 놀라운 유리 조각을 완성하기까지요.” Cosm 기술진의 설명이다.
또 하나의 혁신은 카메라 배치 방식이다. Cosm은 NFL 경기 촬영 시 4~5대의 초소형 8K 카메라를 경기장 곳곳에 숨긴다. 필드골 폼 파일런 속, 이동식 채프먼 카트(Chapman Cart) 위, 50야드 라인 상공 등 일반 방송 장비로는 불가능한 위치들이다. “일반 방송 카메라는 너무 큽니다. 그런 장비로는 팬들에게 이런 접근성을 제공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작은 카메라 킷 덕분에 관객은 마치 VIP 스위트석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듯한 시야를 얻는다. 경기 당일, 셋업에는 몇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 세심한 준비가 끝나면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의 마법이 시작된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초고해상도 영상이 27미터 돔 전체를 뒤덮고, 5분의 지연도 허용되지 않는다. “LED 모듈이 보이는 순간 몰입감은 깨집니다. 완벽한 동기화가 전부예요.” Cosm 엔지니어의 말처럼, 기술적 완성도는 곧 현장의 감동 그 자체가 된다.
Cosm의 사례는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몰입형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플라네타리움 기술이 스포츠로 확장되며, ‘공간 기반 스트리밍(Spatial Broadcasting)’이라는 신흥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향후 K-콘텐츠와 글로벌 라이브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적용 가능한 차세대 경험 기술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비즈니스: 스타디움 모델의 재해석 — 연 1,200회 이벤트의 경제학
Cosm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통적인 스타디움 운영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티켓 정책은 일반 입장권 11달러부터 프리미엄 좌석 수백 달러까지 폭넓게 구성되어 있으며, 수요에 따라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을 적용한다. “가격은 접근 가능해야 합니다. 그게 핵심이죠. 하지만 시장의 흐름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섬세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Cosm 경영진의 설명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좌석의 질과 관람 경험의 본질에 있다. Cosm은 블리처 시트(Bleacher Seat)가 아닌, 스위트룸 수준의 프리미엄 환경을 제공한다. 좌석은 폭이 넓고 푹신하며, 관객은 음식과 음료를 직접 가지러 갈 필요가 없다. 직원이 자리까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기장의 생동감과 라운지의 편안함을 결합한 형태다. ‘경험의 고급화(upscaling of experience)’를 통해 기존의 경기장 모델을 전환하고 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콘텐츠 회전율’이다. Cosm은 단일 공간에서 스포츠 중계, 콘서트, 영화 상영, 다큐멘터리 등 연간 최대 1,200회 이벤트를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나의 공간이 다수의 이벤트를 반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스타디움보다 훨씬 높은 좌석 회전율(seat turnover)과 수익 효율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5분 지연도 용납되지 않는다: 실시간의 기술적 도전
라이브 스포츠에서 지연(Delay)은 치명적이다. 옆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지는데 내 화면에서는 아직 공이 날아가고 있다면? 몰입은 순식간에 깨진다.
"5분 지연이 생기면 몰입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We can't have a 5-minute delay that takes you out of it)."
Cosm의 기술팀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였다. 5대의 8K 카메라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영상을 지연 없이 돔에 합성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기술적 디테일이 있다.
"LED 모듈이 보이면 끝장입니다(If you see the LED modules in display, you're toast)."
돔 스크린은 자석으로 연결된 LED 패널들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실제로 자석 패널입니다. 플라네타리움 회사로서의 우리 역사를 보여주는 거죠." 수십 년간 플라네타리움 돔을 만들며 축적한 노하우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관객이 LED 모듈의 경계선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경기장'이 아니라 '거대한 스크린'이 된다. 몰입의 마법이 깨지는 것이다. Cosm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널 간 경계를 최소화하고, 해상도와 밝기를 정밀하게 조정했다.
"경기장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포지셔닝 전략
Cosm의 포지셔닝은 명확하다. 실제 경기장 경험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기장에 있을 때의 팬 경험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그건 정말 특별한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경기장에 갈 수 없는 팬들을 위한 차선책이 되고 싶습니다(We want to be the next best option for the fans that might not be able to get to that venue)."
이 겸손한 포지셔닝이 역설적으로 Cosm의 강점이다. 경기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 갈 수 없는 수백만 팬들을 위한 새로운 선택지를 만드는 것. 필라델피아까지 갈 예산이 없는 팬,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 물리적으로 이동이 어려운 팬. 이들에게 Cosm은 '그다음으로 좋은 선택(the next best thing)'을 제공한다.
콘텐츠 편성 밀도: 핵심 경쟁력
Cosm의 진정한 경쟁력은 콘텐츠 편성 밀도(content programming density)에 있다. 일반적인 프로 스포츠 경기장은 연간 40~80회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데 그친다. 반면 Cosm은 연간 1,200회 이상의 이벤트를 소화한다. “우리는 1년에 40번, 80번의 이벤트를 하는 게 아닙니다. 1,200번 이상을 진행합니다.” Cosm 관계자의 자신감 있는 설명이다.
이 압도적인 수치는 곧 공간 활용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통적 스타디움이 특정 팀과 시즌 일정에 묶여 있는 반면, Cosm의 공간은 특정 리그나 종목에 종속되지 않는다. NFL, NBA, 대학 풋볼 플레이오프(College Football Playoff)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다큐멘터리·영화·공연·음악·예술 체험 등 복합 장르 콘텐츠로 편성을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Cosm이 상영한 프로그램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공연 O, 서핑 다큐멘터리 《Big Wave: No Room for Error》, 몰입형 아트 체험 《Orbital & Liquidverse》 등 다양하다. 콘텐츠 포트폴리오의 확장이 단순한 프로그램 다변화가 아니라, 체류 시간·재방문율·공간 회전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편성 모델로 작동하는 셈이다.
“스포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라이브 경험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공연, 음악, 예술 등 모든 형태의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을 담을 수 있죠.” Cosm의 기획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핵심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팬들이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올 이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결국 Cosm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운영 효율성, 즉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본질에 닿아 있다. 소비자가 스트리밍으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체험의 빈도와 다양성으로 몰입을 경제화하는 것—이것이 Cosm이 기존 스포츠 산업의 공식을 재정의하는 방식이다.
영화: 워너브라더스 파트너십과 레거시 IP의 재탄생
Cosm의 야망은 스포츠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 산업으로의 확장은 이미 본격화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와의 ‘공유 현실(Shared Reality)’ 파트너십을 통해 《매트릭스(The Matrix)》와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 같은 상징적인 타이틀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고 있다.
지름 27미터(87피트), 12K 이상의 해상도를 갖춘 LED 돔 스크린에서, 관객은 단순히 스크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세계에 들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Cosm은 Little Cinema, MakeMake Entertainment와 협력해 영상은 물론 사운드, 조명, 공간 그래픽을 전체 돔에 투사해 360도 몰입형 시네마 환경을 구현했다.
2026년에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25주년 기념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시점 역시 절묘하다. HBO Max의 ‘해리 포터’ 리부트 시리즈가 2027년 론칭 예정으로, 워너브라더스가 2025년 말부터 글로벌 기념 재개봉 캠페인을 전개하며 IP 가치 제고에 나서는 시기와 맞물린다.
Cosm CEO 제브 테리(Jeb Terry)는 “Cosm은 영화 관람 경험을 새롭게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팬들을 그들이 사랑하는 영화 속 세계로 직접 데려가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워너브라더스 픽처스 글로벌 배급 총괄 제프 골드스타인(Jeff Goldstein) 역시 “Cosm과의 협업은 영화 경험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당사의 레거시 라이브러리 타이틀을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념할 수 있게 합니다.”라고 평가했다.
“영화가 주인공이다”: 크리에이티브 철학
Cosm의 크리에이티브 철학은 명확하다. “영화가 주인공이며, 우리는 영화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이 린스키(Jay Rinsky)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유 현실 프로덕션의 본질을 “전통 영화관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고 테마파크 라이드 사이 어딘가”라고 정의한다. 이 하이브리드 형태의 힘은 레거시 IP를 리메이크 없이 현대적으로 재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Cosm은 《윌리 웡카》를 단순한 회고전이 아닌 ‘이벤트형 경험 상품’으로 재해석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시에 웡카 테마 칵테일과 디저트 메뉴를 즐기고, 영화 속 요소를 확장한 팝콘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 경험의 전후 맥락—즉 ‘관객 체류 시간’이 영화 자체만큼 중요해지는 셈이다. 이는 전통적 영화 산업의 관람 구조를 참여형 경험 모델로 전환시키는 시도다.
하지만 Cosm의 목표는 단순한 자극의 극대화가 아니다. COSM의 창작 실험은 철저히 절제와 균형 속에 이루어진다. COSM 프로덕션 책임자 신타니(Shintani)는 “선을 넘지 않으면 충분히 밀어붙인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화면의 모션 강도나 관객의 감각적 몰입 수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팀 내부 논의가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몰입과 안정 사이의 긴장 조절이 핵심 과제다.
Cosm의 영화 실험은 결과적으로 레거시 IP의 ‘프리미엄 라이브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반복 소비되던 고전 타이틀들이, 몰입형 기술과 결합해 다시금 티켓 파워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워너브라더스뿐 아니라 다른 스튜디오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모델—즉, 영화의 2차 생명 주기를 ‘극장 밖에서’ 연장하는 비즈니스 구조로 평가된다.
Sphere의 성공이 던지는 신호
비슷한 콘셉트를 실험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Sphere다. 워너브라더스가 역시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상영된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리마스터 버전은 개봉 직후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2024년 8월 28일 개봉 후 4개월 만에 100만 장 이상의 티켓 판매, 1억 3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극장 산업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수치는 몰입형 상영(immersive screening)의 시장 잠재력을 명확히 입증한 결과로 평가된다. 스튜디오, IP 홀더, 극장 체인 모두 Sphere와 Cosm의 모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를 보러 나갈 의향이 있다. 단,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라면 말이다.
철학: 스트리밍이 할 수 없는 것, ‘함께 있음’의 가치
Cosm이 지향하는 미래는 스트리밍과의 정면 경쟁이 아니다. 스트리밍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가치—‘함께 있음’의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체 공유 현실의 핵심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함께 무언가를 즐길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Cosm의 프로덕션 책임자 신타니(Shintani)는 언론 인터뷰에서 스트리밍 시대의 고립된 시청 문화를 지적한다. 거실 소파에서 혼자, 혹은 가족 몇 명과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청은 편리하지만, 공동체적 감정의 공유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Cosm이 추구하는 목표는 ‘편의성’이 아닌 ‘공존의 감정’이다. 알렉시스 칼리시세(Alexis Scalise) Cosm 콘텐츠 전략 담당자는 “공유 현실은 경쟁이 아니라 보완이다”며 “스튜디오는 신작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클래식을 다시 불러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는 장기적 팬 참여(Fan Engagement)를 강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철학은 단순한 차별화 전략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 구조의 재정의로 이어진다. 스트리밍이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지금 당장의 선택’을 제공한다면, 공유 현실은 세대를 넘어 함께 기억하고 체험하는 이야기의 복원력을 추구한다. Scalise는 이를 “경험적 사회(Experiential Society)에서 관객들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집단적으로, 세대를 넘어 다시 경험하길 원한다”고 설명한다.
‘공유 현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복귀
Cosm의 실험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Empathy)을 수익화하는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성공의 가장 확실한 지표는 기술도, 티켓 판매도 아닙니다. 반응이죠.” Scalise는 상영이 끝난 후 쏟아지는 관객의 박수를 최고의 성과 지표로 꼽는다. “상영 후 박수가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해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잃어버렸던 원초적 감정의 회복이 담겨 있다. 스트리밍은 편리하지만, 감정의 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누구도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나서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러나 수백 명의 관객이 돔 안에서 《매트릭스》의 총알 피하기 장면을 함께 보고 나면, 박수는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바로 이것이 Cosm과 Sphere가 상징하는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의 힘이다. 기술이 아닌 감정의 복귀, 콘텐츠가 아닌 연결의 재발견.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숙한 스트리밍 시대 이후를 향해 움직이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공유현실은 경험을 공유한다.
확장 전략과 투자 유치
현재 Cosm은 로스앤젤레스(할리우드 파크, 잉글우드)와 댈러스(그랜드스케이프, 더 콜로니)에서 운영 중이며, 2025년에는 애틀랜타와 디트로이트, 2027년에는 클리블랜드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것들은 저절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 경험을 글로벌로 확장할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야망입니다.” Cosm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야망을 뒷받침하는 자금력은 이미 검증됐다. 2024년 Cosm은 2억 5,000만 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 투자자 명단에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핵심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구단주 댄 길버트(Dan Gilbert), 밀워키 벅스 공동 구단주 마크 래스리(Marc Lasry), 그리고 필라델피아 76ers와 뉴저지 데블스 투자자 데이비드 블리처(David Blitzer) 등이 대표적이다.
스포츠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Cosm에 베팅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경기장의 디지털화’가 다음 세대 스포츠 비즈니스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다. Cosm은 이제 플라네타리움 기술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체험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사점: K-콘텐츠와 경험 경제의 교차점
Cosm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K-드라마, K-팝, K-무비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동안, '함께 경험하는' 형태의 K-콘텐츠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채널을 통한 K-콘텐츠 글로벌 확장이 활발히 논의되는 가운데, 몰입형 기술(Immersive Technology)과 K-콘텐츠의 결합은 아직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다.
K-콘텐츠 IP와 몰입형 기술의 잠재력
K-콘텐츠의 풍부한 IP 라이브러리가 Cosm이나 Sphere 같은 기술과 만나면 상상력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오징어 게임(Squid Game)》의 긴장감 넘치는 게임 장면이 360도로 관객을 감싼다고 상상해보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거대한 인형이 돔 전체를 지배하고, 유리 다리 위의 아찔한 선택이 발밑으로 펼쳐진다면. 관객들은 참가자가 된 듯한 공포와 긴장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BTS 콘서트가 전 세계 돔에서 동시에 생중계된다면 어떨까. 서울 잠실의 무대가 LA, 댈러스, 애틀랜타, 클리블랜드의 Cosm 돔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각 도시의 아미(ARMY)들이 같은 순간, 같은 무대를, 마치 최전방 좌석에서 보는 것처럼 경험한다. 시차도, 거리도 의미가 없어진다.
《기생충(Parasite)》의 반지하와 대저택이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면. 좁고 눅눅한 반지하의 창문으로 보이는 골목이 머리 위로 펼쳐지고, 박 사장 저택의 넓은 정원이 발끝까지 이어진다. 계급의 격차가 시각적으로, 공간적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 담은 공간의 은유가 물리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와 K-콘텐츠의 미래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는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잘 판매하는 것을 넘어, 기억에 남는 경험 자체를 독립적인 가치로 설계·판매하는 경제 패러다임이다. 1998년 B. Joseph Pine II와 James H. Gilmore가 HBR에서 처음 제시한 뒤, 디지털 전환과 함께 2020년대에 더욱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스트리밍이 콘텐츠 ‘접근성’의 문제를 풀었다면, 경험 경제는 이제 ‘그 콘텐츠를 어떤 맥락과 형식으로 경험하게 만들 것인가’를 경쟁의 중심 질문으로 끌어올린다.”
K-콘텐츠는 이미 글로벌 슈퍼팬덤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미(ARMY), 블링크(BLINK), 캐럿(CARAT) 등 K-팝 팬덤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경험'을 갈망한다.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팬미팅과 굿즈 구매, 성지순례 여행까. 이미 K-콘텐츠 팬들은 경험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문제는 그 경험을 제공할 인프라와 플랫폼의 부재다.
200달러짜리 박수, 그리고 한류의 다음 물결
Cosm이 증명하는 것은 단순한 테크놀로지의 성장 가능성이 아니다. 200달러를 내고 돔에서 스포츠를 보는 팬들. 상영이 끝날 때 터져 나오는 박수. 필라델피아까지 갈 예산은 없지만, 그 '다음으로 좋은 선택'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말해주는 건 하나다. 사람들은 여전히—아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함께 경험하는 순간을 갈망한다.
스트리밍이 편의성으로 승부한다면, 물리적 공간은 '함께 있음'의 가치로 승부해야 한다. Cosm은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가 부상하는 시대, 콘텐츠의 가치는 더 이상 '무엇을 보느냐'에만 있지 않다. '어떻게, 누구와 함께 보느냐'가 새로운 가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K-콘텐츠는 이미 전 세계의 심장을 두드렸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시리즈가 됐고, BTS는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며 음악의 언어를 재정의했으며,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스트리밍 시장의 성숙과 함께, 다음 성장 동력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FAST 채널을 통한 글로벌 확장, AI 더빙·번역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제 몰입형 기술과의 결합. K-콘텐츠의 다음 챕터가 쓰여지고 있다.
스트리밍 시대, 콘텐츠는 넘쳐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함께 경험하는 순간'의 희소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기술이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 테크(Entertainment Tech)의 진정한 가치일 수 있다.
Cosm 모델은 K-콘텐츠 산업이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EnterTech)’ 중심 산업으로 전환해야 함을 보여준다.
K-콘텐츠의 다음 성장축은 이야기와 기술, 예술과 시스템이 결합된 융합 산업으로서의 엔터테크다. Cosm이 보여준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의 실험은 곧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험 기술 산업’으로 진화해야 하는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K-콘텐츠가 이 기술과 만날 때, 한류의 다음 물결은 스크린을 넘어 공간 전체를 감싸게 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360도로 펼쳐지고, BTS가 전 세계 돔을 동시에 흔들며, 《기생충》의 계급적 공간이 관객의 몸을 감싸는 그날. 우리는 플라네타리움에서 별 대신 K-콘텐츠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박수가 터져 나올 것이다. 서울에서, LA에서, 도쿄에서, 파리에서. 같은 순간, 같은 감동을 나누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 그것이 '공유 현실'이 약속하는 미래이고, K-콘텐츠가 써 내려갈 다음 챕터다.
주요 개념 정리
한글 | 영어 | 설명 |
|---|---|---|
공유 현실 | Shared Reality | 물리적 공간에서 다수의 관객이 동시에 콘텐츠를 체험하는 몰입형 경험 형태 |
경험 경제 | Experience Economy | '경험' 자체가 가치의 핵심이 되는 경제 패러다임 |
몰입형 기술 | Immersive Technology | VR, AR, XR, 돔 디스플레이 등 사용자를 콘텐츠 속으로 끌어들이는 기술 |
색수차 | Chromatic Aberration | 렌즈 통과 시 빛의 파장별 굴절률 차이로 인한 색 번짐 현상 |
다이나믹 프라이싱 | Dynamic Pricing |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전략 |
레거시 IP | Legacy IP | 오랜 기간 축적된 지적재산권. 클래식 영화, 프랜차이즈 등 |
팬 참여 | Fan Engagement | 팬들의 능동적 참여와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전략 |
FAST | 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서비스 |
버추얼 프로덕션 | Virtual Production | LED 월, 실시간 렌더링 등을 활용한 차세대 영상 제작 방식 |
Next K-Wave Entertainment & Tech Forum/ 1월 7일 2026년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을 직접 논의할 자리가 마련된다. 2026년 1월 7일, CES 2026 기간 중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밀란 룸에서 K-EnterTech Hub가 주최하는 'Next K-Wave Entertainment & Tech Forum'이 개최된다.
'K-콘텐츠가 첨단 기술을 만나는 곳(Where K-Content Meets Frontier Tech)'이라는 주제 아래 오후 2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4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 포럼은 AI·XR 시대 K-콘텐츠의 진화 방향과 글로벌 전략을 집중 조명한다.
주요 프로그램
기조연설: 대한민국 대통령직속 AI전략위원회 위원이자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인 고삼석 교수가 'Next Hallyu Initiative'를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기술이 이끄는 한류 3.0의 미래, AI·XR 시대 K-콘텐츠의 진화 방향과 글로벌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특별연설: 미국 최대 방송 그룹 중 하나인 ‘싱클레어 브로드캐스팅 그룹(Sinclair Broadcast Group)의 델 파크스(Del Parks) 기술 사장이 'Cloud, AI, K-Content, and the Future of Broadcast'를 주제로 클라우드 기반 방송 인프라의 진화와 AI 기술·K-콘텐츠 융합을 전망한다.
패널토론: 'AI가 변화시키는 콘텐츠 제작, XR과 몰입형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이 특히 주목할 세션이다. UNLV Dreamscape Learn의 온드리아 팜(Aundrea Frahm) 디렉터, 전 KOKOWA CEO 박근희 미디어 플랫폼 컨설턴트, 디지털미래연구소 권오상 대표, 네바다대학교 리노캠퍼스(UNR) 레이놀즈 저널리즘스쿨 윤기웅 학장이 패널로 참여한다. 스트리밍 서비스, AI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 AI 더빙·번역부터 Meta Quest, Apple Vision Pro, Sphere 플랫폼 전략까지 K-콘텐츠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할 기술들이 논의된다.
K-엔터테크 전략 세션: 한국 1위 FAST 플랫폼에서 글로벌 1위 K-Culture 플랫폼을 목표로 하는 NEW ID의 박준 대표가 K-콘텐츠 기업의 엔터테크 전략을 공유한다.
K-Nevada Gateway 스타트업 피칭: K-Nevada Gateway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피칭 세션도 마련된다. Hudson AI의 'AI를 통한 K-콘텐츠 글로벌화', Maze의 '오프라인 공간 데이터 AI 분석' 등 K-엔터테크 혁신 기업들을 만날 수 있다.
네바다 비즈니스 환경 소개: 네바다 주정부 경제개발청(GOED)과 네바다 필름 오피스가 기술 친화적 비즈니스 환경, 글로벌 기업을 위한 투자 인센티브, K-콘텐츠를 위한 영화·TV 제작 인센티브와 버추얼 프로덕션 시설 협력 기회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