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단이 만든 '한일 비즈니스 살롱'…온천마을에서 '공진화 엔터테크 허브'를 묻다
ASTEEDA Executive Salon 2026 Global Track | 6월 11일(목)–13일(토), 일본 나가노현 노자와온천
상장 스포츠클럽 류큐 아스티다의 Trust Protocol 실험
롯데홀딩스 玉塚元 사장·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 '한일 엔터테크 허브' 토론
지난 6월 11일 오후 1시, 일본 나가노현 노자와온천마을. 공민관 체육관. 농구 골대가 접혀 올라간 철골 지붕 아래, 접이식 의자에 앉은 한일 경영인 수백 명이 무대를 향해 있었다.
무대 배경에는 오키나와의 산호초와 히비스커스가 그려져 있다. 'ASTEEDA Executive Salon in 노자와온천촌'. 스키 시즌이 끝난 온천마을의 체육관을, 오키나와에서 온 프로탁구단이 한일 비즈니스의 무대로 바꿔놓은 것이다. 1층 입구에는 간이 포장마차가 서고, 참가자들의 목에는 빨간 명찰끈이 걸렸다. 컨벤션센터의 풍경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주최는 일본 프로탁구 T리그 구단이자 일본 프로스포츠 구단 최초의 상장사인 류큐 아스티다(RYUKYU ASTEEDA Sports Club)다. 일본 프로탁구 T리그 구단이자 일본 프로스포츠 구단 최초의 상장사인 류큐 아스티다(RYUKYU ASTEEDA Sports Club)가 스포츠를 넘어 한일 비즈니스 네트워크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구단이 운영하는 초청형 경영인 커뮤니티 'ASTEEDA Executive Salon'이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나가노현 노자와온천마을에서 글로벌 트랙(Global Track)을 열고, 처음으로 한국 기업인을 공식 초청했다.
컨벤션센터가 아닌 온천마을에서 2박 3일을 함께 보내며 신뢰를 먼저 쌓고 거래를 뒤에 두는 방식이다. 행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Trust Protocol(신뢰 프로토콜)'이며, 전체 테마는 '한일 민간 오픈이노베이션 기반의 AI 협력과 공동사업 창출(From AI Technology to AI Business)'이다.
이런 행사가 한일 사이에서 등장한 배경에는 구조적 변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 블록화가 깊어지면서 한일 기업 간 협력은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영역으로 옮겨왔다. 그러나 일본 시장의 첫 번째 진입 장벽은 제품 경쟁력이 아니라 신뢰다. 일본 비즈니스는 콜드콜이나 전시회 부스가 아니라 '소개(紹介)의 경제' 위에서 움직인다. 누가 소개했는지,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지가 거래의 전제 조건이 된다. 노자와온천의 사흘은 이 문화적 장벽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실험이다.
이 프로그램의 중심에도 엔터테크가 있다. 행사 둘째 날인 12일 열리는 세션 2 'AI 시대의 플랫폼·미디어·산업정책 — 한일 공진화(共進化)와 엔터테크 허브'에는 롯데홀딩스 타마츠카 겐이치(玉塚元一) 대표이사 사장,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대통령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 분과위원),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패널로 오른다.
한일 그룹 경영자, 미디어·콘텐츠 정책 설계자, AI 플랫폼 사업자가 한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토론하는 구성이다.
전야제의 사케, 포장마차의 점심 — 신뢰는 식탁에서 시작된다
행사는 공식 개막 전날인 10일 저녁, 마을의 작은 바에서 열린 전야제부터 시작됐다. 부스 참가 기업은 모두 무료입장. 한국에서 온 대표들과 일본 경영인들이 좁은 가게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첫인사를 나눴고, 늦게까지 행사장 무대를 세팅하던 참가사 직원들이 일을 마치고 뛰어왔다.
11일 낮에는 참가자 골프 대회와 탁구 대회가 세션과 병행됐다. 주최가 탁구단이니 탁구 대회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저녁에는 네 개의 사이드 이벤트가 마을 곳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이 참가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분명한 운영 철학이었다. 낮의 세션이 인사이트라면, 저녁은 그 인사이트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운영의 디테일도 '신뢰의 인프라'에 맞춰져 있다. 참가자들에게는 세션 등단 경영인 93명의 정보를 담은 프로필북이 배포됐다. 상대 인물과 회사를 알고 토론을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은 다르며, 특정 인물과의 후속 비즈니스를 원한다면 그가 세션에서 어떤 발언을 하는지 메모해 두라는 안내가 따라붙었다.
일본어가 어려운 한국 참가자들을 위해 모바일 동시통번역 솔루션이 제공됐고, 세션 안내문은 한국어로 번역돼 공유됐다. 행사 둘째 날 아침은 9시 30분 조식 네트워킹으로 시작했다. 식사 자리 자체가 프로그램이다.
상장 구단의 신뢰 자산을 네트워크 사업으로
류큐 아스티다는 2018년 오키나와에서 창단한 T리그 구단으로, 2021년 3월 도쿄증권거래소 프로마켓(Tokyo Pro Market)에 직상장(종목코드 7364)하며 일본 프로스포츠 구단 최초의 상장사가 됐다.
하리모토 도모카즈 등 정상급 선수를 보유하고 T리그 우승을 경험한 구단이지만, 사업 구조는 일반 구단과 다르다. 스폰서·티켓·머천다이즈 수입 외에 탁구교실, 탁구용품 판매, 오키나와 일대의 외식사업까지 묶은 지역 스포츠 비즈니스 플랫폼에 가깝다.
Executive Salon은 이 모델의 다음 단계다. 구단이 상장 과정에서 축적한 운영 체계와 신뢰 자산을 기업 간 네트워킹 인프라로 전환한 것이다. 주최 측은 “상장사가 운영하는 초청형 커뮤니티에 공식 초대받아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일정 수준의 신뢰 검증과 보증(Endorsement)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스포츠 구단의 브랜드와 상장사의 공신력을 '신용의 전이(Transfer of Trust)' 장치로 쓰는 셈이다. 행사는 류큐 아스티다가 주최·운영하고 KIMETE가 공동주최하며, 한국 기업 모집과 공식 파트너 역할은 조이풀랩스(JOYFUL Labs)가 맡았다.
엑스포가 아닌 살롱, 컨벤션센터가 아닌 온천마을
행사 설계는 기존 박람회형 네트워킹의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대규모 전시회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명함 교환 이후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살롱은 반대 방향을 택했다. 초청과 승인 중심의 멤버십으로 참가자 풀을 좁히고, 사전 수요조사와 프리매칭,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미팅이 성사되는 더블 옵트인(Double Opt-in) 방식으로 미팅 밀도를 높였다. 만남의 양이 아니라 거래 전환율을 설계 목표로 둔 구조다.
장소 선택도 같은 논리다. 노자와온천마을은 도심과 분리된 환경에서 공동 숙박과 식사, 온천이라는 일본 고유의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게 만든다. 주최 측은 이를 접촉(Contact)에서 유대(Bonding)를 거쳐 거래(Business)로 이어지는 3단계 신뢰 전환 프로세스로 정리한다. 의사결정권자 간 직접 대면을 통해 PoC, MOU 논의를 앞당기고, CVC와 자산가 네트워크를 통한 투자 유치 접점까지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15분 단위로 도는 후지쯔 에반젤리스트 — 더블 옵트인의 현장
행사장 1·2층에는 한국 AI·소프트웨어 기업 7곳의 부스가 자리 잡았다. AI 검색의 라이너(Liner), 생성AI 에이전트의 뤼튼(Wrtn), AI 미디어 현지화의 XL8, AI 휴먼 플랫폼의 이스트소프트(ESTsoft), 산업 AI의 인이지(INEEJI), 폴라리스오피스(Polaris Office), 블루문소프트(bluemoonsoft)다. 참가사 면면이 곧 이 살롱의 의제가 AI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스 상담은 엑스포식 '오픈 부스'가 아니다.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미팅이 성사되는 더블 옵트인(Double Opt-in) 방식으로, 일본 경영인별 방문 부스와 시각, 길이까지 사전에 확정된다.
12일 점심 무렵 후지쯔의 시니어 에반젤리스트 마츠모토 쿠니카즈의 동선이 이 시스템을 압축해 보여줬다. 11시 45분 폴라리스오피스 60분, 이어 라이너·블루문소프트·이스트소프트·뤼튼을 15분 단위로 도는 릴레이 상담. 자신의 세션 등단 사이의 빈 시간이 분 단위로 한국 기업들에게 배정된 것이다.
사흘간 이런 방식으로 일본IBM, NTT서일본, 세키스이화학, 히카리츠신 등 일본 대기업·상장사 경영진의 부스 방문이 이어졌다. 일정이 어긋난 미팅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줌 미팅으로 전환돼 살아남았다. 만남의 양이 아니라 거래 전환율을 설계 목표로 둔 운영이다.
타마츠카 겐이치(玉塚元一) 롯데홀딩스 사장도 세션 등단과 별도로 한국 AI 기업들과의 미팅 일정을 잡았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와 한국 파트너사 조이풀랩스의 김상이(Nina Kim) 대표는 한국 참가 기업들의 멘토로 나서, 일본 시장 진출 전략과 일본 경영진 매칭에 대한 자문을 행사 기간 내내 제공했다. 행사 전날 라이너에 관심을 보인 일본 광고기업 옵트(OPT) 사장에게 미리 회사를 소개해 두고, 당일 미팅으로 연결하는 식의 '사전 소개'가 곳곳에서 작동했다.
세션 2 — '공진화'를 한일로 확장하다
세션 2의 상위 프레임은 고삼석 교수가 제시해 온 '공진화(共進化)'다. 고 교수는 지난 4월 서울 코엑스에 열린 2026 'K-EnterTech Summit' 기조연설에서, K-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출하는 시대는 한계에 이르렀으며 파트너 국가와 함께 기획·제작하고 성과를 나누는 '문화적 동반자' 관계로 가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 프레임은 이미 한·미, 한·말레이시아, 한·싱가포르 협력에 적용돼 왔고, 이번 세션은 이를 한일로 확장하는 첫 무대다. '누가 더 앞섰는가'를 비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함께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는 설계다.
세션은 공진화를 3개 레이어의 밸류체인으로 무대화한다. 생태계를 설계하는 정책 레이어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고삼석 교수가, 언어·AI 인프라 레이어는 AI 휴먼·AI 더빙 플랫폼 PERSO.ai(누적 가입자 46만 명, 해외 비중 90%, 75개 이상 언어 지원)를 운영하는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맡는다. IP·호텔·스포츠·고객경험을 잇는 오프라인 '무대' 레이어는 타마츠카 사장이 대표로 나선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IP(애니메이션·게임·캐릭터)를, 한국은 그 IP를 글로벌 경험으로 바꾸는 AI·플랫폼·팬덤 역량을 가졌다는 상호보완 구도가 토론의 출발점이다. 모더레이터는 K-엔터테크 허브 한정훈 대표가 맡아 50분의 토론을 한일 공진화 PoC 도출로 이끈다.
타마츠카 사장은 유니클로(패스트리테일링)·로손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21년 롯데홀딩스 CEO에 취임했고, 2022년부터 'ONE LOTTE'를 내걸고 한일 롯데 그룹의 연계 성장 전략을 주도해 왔다.
한일 협력의 토대는 이미 가동 중이다. 한국 롯데홈쇼핑이 키운 캐릭터 IP 벨리곰(BELLYGOM)은 일본 롯데홀딩스를 마스터 라이선시로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고, 2025년 한국 호텔롯데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LOTTE HOTELS JAPAN은 2034년까지 일본 내 20개 호텔·4,500객실 운영을 목표로 한다. 롯데이노베이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CALIVERSE), 그리고 타마츠카 사장이 이사 오너대행을 맡고 있는 치바 롯데 마린즈와 롯데자이언츠의 접점까지, IP·호텔·메타버스·스포츠에 걸친 자산이 한일 양쪽에 깔려 있다.
토론의 착지점은 추상적 협력 선언이 아니라 '6~12개월 안에 한일이 실제로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공진화 PoC'다. 일본 IP에 K-팬덤과 AI 다국어 기술을 결합하고 롯데의 오프라인 자산을 무대로 쓰는 조합처럼, 세 레이어를 가로지르는 구체적 협력 모델을 도출하는 것이 세션의 목표다.
고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고, 한쪽이 다른 쪽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답을 만드는 공진화의 관계”라며 “일본의 IP와 한국의 AI·플랫폼·팬덤 역량이 경쟁이 아니라 공진화할 때, 두 나라는 함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작별하는 법
행사 마지막 날인 13일, 참가자들은 함께 곤돌라를 타고 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오후 3시 클로징 파티에서 사흘을 마무리한다. 주최 측은 이를 접촉(Contact)에서 유대(Bonding)를 거쳐 거래(Business)로 이어지는 3단계 신뢰 전환 프로세스로 설명한다. 명함 교환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부스가 아니라 식탁과 온천이 영업의 인프라가 되는 구조다.
노자와온천의 사흘이 시사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스포츠 구단 IP의 확장 방향이다. 2021년 도쿄증권거래소 프로마켓에 상장(종목코드 7364)한 류큐 아스티다는 경기력과 팬덤이 아니라 구단의 '커뮤니티 운영 능력'과 '상장사 신뢰도'를 수익화하고 있다. 미디어 중계권과 스폰서십 중심의 전통적 구단 비즈니스가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구단을 지역 경제와 기업 네트워크의 허브로 재정의하는 시도다. 한국의 프로구단과 스포츠테크 기업에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둘째, 정부 간 관계와 분리된 민간 채널의 제도화다. 김상이 조이풀랩스 대표는 “이 살롱은 정부의 초청이 아닌 민간 기반의 행사로, 형식적인 명함 교환을 넘어 신뢰를 토대로 협력·상생·공존의 대화를 설계하는 자리”라며 “한일 국교 수교 60주년을 넘어 다음 60년의 산업 협력 기점을 민간 차원에서 찾을 것”고 말했다.
세션 2가 보여주듯, 그 출발점에 놓인 의제가 엔터테크다. K-콘텐츠 기업의 일본 진출 역시 같은 장벽, 즉 소개와 신뢰의 구조를 통과해야 하며, 공진화는 그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협력의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