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황금으로 물들이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즈’ OST ‘Golden’, K-팝 최초 그래미 수상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영상 매체 작곡상’ 수상… 올해의 노래 수상 가능성도 열려
K-팝, 그래미의 벽을 넘다
2026년 2월 1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사전 시상식(Pre-telecast)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즈(KPop Demon Hunters)’의 OST ‘Golden’이 ‘최우수 영상 매체 작곡상(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을 수상했다. 이로써 K-팝은 그래미 어워드 역사상 최초의 수상곡을 배출하게 되었다.
‘Golden’은 영화 속 걸그룹 헌트릭스(Huntr/x)의 멤버로 분한 EJAE(이재), 오드리 누나(Audrey Nuna), 레이 아미(Rei Ami) 세 명의 한국계 아티스트가 부른 자기 역량강화(self-empowerment) 앤덤으로, EJAE가 케릭터로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작곡에는 EJAE를 비롯해 박홍준, 곽중규, 이유한, 남희동, 서정훈, 마크 소넌블릭(Mark Sonnenblick) 등 한미 작곡진이 공동 참여했다.
이 곡은 영상 매체 작곡상 부문에서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의 ‘As Alive As You Need Me To Be’, 엘턴 존·브랜디 칼라일(Elton John & Brandi Carlile)의 ‘Never Too Late’, 트래비스(Travis)의 ‘Sinners’ 등 월드클래스 경쟁작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4개 부문 노미네이트, 추가 수상 가능성 열려
‘Golden’은 이번 그래미에서 총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K-팝 역사상 최다 부문 후보 기록을 세웠다.
영상 매체 작곡상 외에도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그리고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가 리믹스한 버전으로 최우수 리믹스 레코딩(Best Remixed Recording)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또한 원곡이 수록된 LP는 최우수 영상 매체 컴파일레이션 사운드트랙 부문에도 후보로 올랐다.
사전 시상식에서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와 최우수 리믹스 레코딩 부문에서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올해의 노래’ 부문 수상 발표는 본 시상식(나이트타임 텔레캐스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만약 수상에 성공한다면, K-팝 트랙이 그래미 최상위 부문을 수상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EJAE, 한국계 여성 최초 ‘올해의 노래’ 후보의 의미
이번 수상에서 특히 주목할 인물은 EJAE이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 작곡가 최초로 그래미 ‘올해의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인물로, K-팝의 창작 영역에서 한국계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드리 누나는 이전 인터뷰에서 그래미 노미네이션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발했다. “무대 위에 세 명의 한국인 얼굴이 올라갑니다. 이를 보게 될 아이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K-팝의 그래미 도전사: BTS부터 블랙핑크 로제까지
K-팝의 그래미 역사는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BTS는 통산 5회 노미네이트(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3회 포함)되었으나 단 한 차례도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콜드플레이(Coldplay)의 ‘Music of the Spheres’ 앨범의 일부로 올해의 앨범 부문에 후보로 올라간 것이 유일한 최상위 부문 진출 사례였다.
올해에는 블랙핑크 멤버 로제(Rosé)가 브루노 마스(Bruno Mars)와의 협업곡 ‘APT.’로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와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K-팝 아티스트 최초로 그래미 최상위 전(全) 장르 부문에 메인 퍼포머로 후보에 오른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또한 하이브(Hybe)와 협업으로 탄생한 걸그룹 케이트세이(Katseye)가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Best New Artist)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그룹 특성상 순수 K-팝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K-팝 포용 확대
이번 수상의 배경에는 그래미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의 변화도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2025년 8월, K-팝에 핵심적 기여를 한 아티스트, 프로듀서, 작곡가 그룹이 투표권을 가진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발표했다. 싈프림 보이(Supreme Boi), 원더키드(Wonderkid), 범즈(Bumzu), 슬로우 래빗(Slow Rabbit), 허윤진, 정원, 연준, 지코(Zico), 우지(Woozi), 버논(Vernon) 등이 포함됐다.
이는 K-팝이 그래미 투표 체계 내에서 발언권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향후 K-팝 아티스트들의 노미네이션 및 수상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2025년 최다 스트리밍 영화, 압도적 흥행 성과
‘케이팝 데몬 헌터즈’의 산업적 성과는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한 이 작품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영화로 기록되었다. 2025년 6월 공개 이후 닐슨(Nielsen) 연간 데이터 기준 미국 내 총 시청 시간 205억 분을 기록하며 2025년 최다 스트리밍 영화에 등극했다. 99분 러닝타임 기준 약 2억 700만 회 풀 시청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반기 공개작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인 성과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제한적 극장 개봉도 진행했으며, OST 3곡(‘Golden’, ‘Your Idol’, ‘Soda Pop’)은 빌보드 핸 100 차트에 장기간 이름을 올렸다. 특히 ‘Golden’은 핸 100 차트 8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2025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프론트러너, 어워드 시즌 화룡점
‘Golden’의 행보는 그래미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곡은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어 있으며, 현재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이미 같은 부문을 수상한 바 있어, 그래미→골든글로브→오스카로 이어지는 어워드 시즌 그랜드슬램의 화룡점이 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Huntr/x가 단 두 팀만 허용되는 공연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어서, 수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사점: K-콘텐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밸류체인의 새 패러다임
‘Golden’의 그래미 수상은 단순한 음악상 수상을 넘어, K-콘텐츠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밸류체인 전반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첫째, 크로스 플랫폼 성공 모델의 확립이다. 넷플릭스(글로벌 스트리밍) +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할리우드 제작사) + K-팝 아티스트(한국계 음악인)의 결합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협업 모델을 제시한다.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핵심 IP를 이끄며, 음악·영상·스트리밍을 아우르는 크로스 플랫폼 성공을 구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둘째, K-팝 창작 생태계의 글로벌화다. 한미 작곡진의 공동 창작,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의 활약, 레코딩 아카데미 투표권 회원 확대 등은 K-팝이 한국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음악 산업의 핵심 창작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IP 확장의 새로운 경로다. 애니메이션 영화 OST를 통해 빌보드 차트·그래미·골든글로브·오스카로 이어지는 다층적 IP 확장은, K-콘텐츠가 단순 수출을 넘어 글로벌 프로젝트의 핵심 창작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