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석 교수“한·중, 거래 넘어 ‘공진화의 동반자’로”

고삼석 석좌교수 "칭다오 다국적기업 서밋서 AI·콘텐츠 공동발전 제안"

제7회 다국적기업 지도자 칭다오 서밋(Qingdao Multinationals Summit, QMS) 한국 라운드테이블 연설

AI·콘텐츠 두 축으로 공동 개발·해외 동반 진출 제안… 중국 정부·기업 호응

한·중 경제협력의 새로운 문법으로 ‘공진화(Coevolution)’가 제시됐다. 고삼석(高三錫) 동국대 AI학부 석좌교수는 지난 6월 17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제7회 다국적기업 지도자 칭다오 서밋(Qingdao Multinationals Summit, QMS)에서 한국과 중국이 통상적인 거래 파트너를 넘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만드는 ‘공진화의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고, 중국 정부와 기업 경영진은 이 구상에 공감을 표했다.

한쪽이 기술과 제품을 대고 다른 한쪽이 시장을 내어주던 분업 구조는 인공지능(AI)의 부상과 함께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데이터와 제조 AI, 인프라 규모에서 앞선 중국과 반도체·AI 응용 서비스에 강점을 둔 한국이 각자의 자원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혁신 영역이 넓어지면서, 공동 개발과 위험 분담을 전제로 한 협력 모델의 필요가 커졌다.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선언한 것도 이런 흐름에 길을 텄다.

고삼석(高三錫) 동국대 AI학부 석좌교수가 제7회 다국적기업 지도자 칭다오 서밋의 한국 다국적기업 경영자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다

고삼석(高三錫) 동국대 AI학부 석좌교수(왼쪽)와 송웨이동(宋衛東)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中國跨國公司促進會) 비서장(秘書長). 칭다오 다국적기업 서밋(QMS)은 촉진회가 중국 상무부·산둥성·칭다오시정부와 함께 매년 공동 주최하는 외자 유치·국제 협력 행사로, 올해는 ‘다국적기업과 중국 — 15차 5개년 계획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를 주제로 열렸다.

“양국 정상이 만든 길, 기업이 따라가자”

고 석좌교수는 한국 다국적기업 창업가 라운드테이블에 초청 연사로 나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술과 제품을 제공하고 다른 쪽이 시장을 내어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양국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함께 시장을 만들고, 함께 위험을 분담하는 진정한 공진화의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진화 개념을 생태계에 빗댔다. 서로 다른 종이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진화시키듯, 한·중 기업도 서로의 성장을 촉진하는 공동 발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가까운 칭다오에 대해서는 “양국 기업이 함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온 공진화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고 석좌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분과위원이자 옛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미디어·AI 정책 전문가다. 2021년 베이징에서 출간한 저서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온다’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대학 교재로 쓰이는 등 중국 학계·산업계와의 인연이 깊다.

AI와 콘텐츠, 공진화의 두 축

고 석좌교수는 협력의 우선순위로 AI와 콘텐츠 두 분야를 꼽았다.

AI에 대해 그는 중국이 방대한 데이터와 제조 AI, 인프라 스케일에서 앞서 있고 한국은 반도체와 AI 응용 서비스, 창의적 활용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진단했다. 두 강점이 만나면 한 나라가 단독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양국 기업인에게 상품 거래에 그치지 않는 공동 연구와 사업 협력을 권했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한류의 출발점이 중국이었다는 점을 짚으며, 30년간 K-팝과 드라마·영화가 쌓아온 한국의 스토리텔링과 웹소설·웹툰·마이크로 드라마·생성형 AI 콘텐츠로 독자적 생태계를 키워 온 중국의 스케일이 결합할 시점이라고 봤다. AI 시대를 맞아 양국 콘텐츠 기업이 새로운 IP를 함께 개발하고 서로의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협력을 제안했다.

“공진화는 선언 아닌 실천”… 중국 측 호응

고 석좌교수는 칭다오 현장에서 중국 정부 관계자와 IT 기업 경영진을 상대로 공진화 비전을 공유했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 기획하고 공동 연구하며, 양국 시장은 물론 동남아 등 제3국 시장에 함께 진출하자는 제안에 하이센스(Hisense) 부회장 등이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中國跨國公司促進會)의 송웨이동(宋衛東) 비서장 등 중국 측 인사들과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연설을 “공진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말로 맺었다. 오늘 나누는 대화 한 마디, 교환하는 명함 한 장이 실천의 시작이며, 남은 과제는 국가별·기업별로 구체적인 공진화 아이템을 발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밋에서 발표하는 자샤오첸(Jia Shaoqian) 하이센스(Hisense) 회장

700여 명 참석한 칭다오 서밋

제7회 다국적기업 지도자 칭다오 서밋은 6월 15~17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다국적기업과 중국 — 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를 주제로 열렸다. 중국 상무부와 산둥성 인민정부, 칭다오시정부, 그리고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中國跨國公司促進會)가 공동 주최했으며, 정부 부처와 국제기구, 다국적기업, 국내외 상업협회 대표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16일 개막식에는 한정(韓正) 중국 국가 부주석이 참석해 중국 시장 공유와 산업·혁신·개방 협력을 골자로 한 네 가지 제안을 내놨다.

제7회 칭다오 다국적기업 서밋 부대행사로 열린 ‘한국 다국적기업 경영자 라운드테이블’ 전경.

이번 서밋에는 36개 국가·지역의 다국적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옌둥(鄢東)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행사 기간 ‘중국의 다국적기업’ 연구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며, 15차 5개년 계획 기간 중국의 개방 정책과 시장 기회, 혁신 전망이 보고서에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원놘(溫暖) 산둥성 부성장은 투자 촉진과 무역 매칭, 산업 교류, 지역 협력 등 4개 분야에 걸쳐 23개의 병행 행사가 열린다고 전했다.

공동 주최 기관인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가진 국가급 민간 외교·경제 단체로, 다국적기업의 중국 진출과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중경영자회의’를 매년 공동 주최하는 등 한국 기업들과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중후장대(重厚長大)와 경박단소(輕薄短小)를 함께 갖춰 가는 중국의 변화는 이번 서밋에서도 드러났다. 거대한 규모에 정교함이 더해진 중국 경제 생태계 안에서,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떼어 놓기 어려운 두 나라가 함께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 공진화 구상의 출발점이라는 게 고 석좌교수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