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시장(市長)선거를 흔들다 — 6·3 지방선거, 한국 콘텐츠 산업의 시험대
LA 시장 예비선거가 ‘제작 지키기’를 핵심 쟁점으로 끌어올린 하루 뒤, 한국은 민선 9기를 뽑는다. 엔터테크 관점에서 본 지역 미디어·콘텐츠 의제의 전망
6월 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시장 예비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산업 의제는 집값도 노숙도 아닌 ‘할리우드 제작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였다. 영상 제작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하자 비로소 시청사가 움직였고, 현직 캐런 배스(Karen Bass)를 비롯한 후보들이 저마다 처방을 들고나왔다.
하루 뒤인 6월 3일, 한국은 민선 9기 광역·기초단체장을 뽑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른다. 두 선거가 같은 주에 겹친 건 우연이지만, 던지는 질문은 같다. 콘텐츠·미디어 산업을 ‘지방 경제의 부활 의제’로 끌어올릴 준비가 돼 있는가.
통상 LA 시장선거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10여 명이 겨루는 비당파 예비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두 명이 11월 3일 본선(결선)에서 다시 맞붙는다. 중간 여론조사에서 배스가 선두였지만 과반에는 못 미쳐, 시의원 니티아 라먼(Nithya Raman), 리얼리티 스타 출신 스펜서 프랫(Spencer Pratt)과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한 상태다. 다시 말해 6월은 ‘끝’이 아니라 의제를 정리하는 ‘전반전’이고, 그 전반전의 산업 의제로 할리우드 제작이 올라섰다는 점이 핵심이다.
LA영상 산업은 비상이다. 스트리밍과 AI시대 영상 제작이 줄자 스튜디오·장비·인력과 호텔·운송·요식 같은 후방산업이 빠져나가고 있다. 제작 현장은 인센티브와 행정 편의를 앞세운 경쟁지로 옮겨간 뒤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LA가 조지아(Georgia)·뉴멕시코, 차로 세 시간 거리의 네바다주 클라크 카운티에 촬영을 내준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K콘텐츠 제작은 서울에서 수도권과 지역으로, 다시 더 싸고 빠른 해외 로케이션으로 흐르고 있다. 지자체 정부가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넷플릭스의 후광효과로 만들어졌던 지역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및 투어 생태계는 탄생과 동시에 소리 없이 비어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엔터테인먼트 생태계를 복원해야한다는 의미에서 한국과 LA모두에 중요하다
Ⅰ. 떠난 제작은 돌아오지 않는다 — LA가 보여준 장면
미국 노동통계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준 가장 최근인 2025년 2분기, LA의 영화·TV 제작 일자리는 2022년 정점보다 44% 줄어 5만9천 개 이상이 사라졌다. 상당수가 애초에 단기 일자리였다 해도, 이 숫자는 LA 엔터테인먼트를 떠받쳐 온 중산층 노동자의 일자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LA 광역권 영화·TV 제작 일자리(2020년 1분기~2025년 2분기).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루미네이트 인텔리전스.
2020년 코로나로 5만 7,000명대까지 추락했던 고용은 ‘피크 TV’ 호황을 타고 2022년 13만4,000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파업기를 거치며 7만1,000 명대 저점으로 곤두박질쳤고 2025년 2분기 약 7만5,000 명에서 횡보 중이다.
일감이 귀해지자 제작 노동자가 재정난에 몰리거나 다른 업종으로 떠나는 사례가 잇따른다. 반등 전망도 흐리다. 스튜디오 차원에서 ‘피크 TV’ 물량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고, 인디 프로젝트는 고용 기간이 짧고 보수도 낮다. 정책으로 손쓸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LA 제작 인력은 길게 이어질 고통의 국면에 들어섰다.
물론 희망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영상 제작 세액공제 한도를 7억5,000만 달러로 끌어올리면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촬영허가 비영리기관 필름LA(FilmLA) 집계에서 1분기 LA 시내 로케이션 촬영 일수는 직전 분기 대비 10% 늘었고, ‘베이워치’ 리부트처럼 인센티브를 받은 작품들이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속도다. 미디어 분석기관 루미네이트(Luminate Intelligence)는 미국 38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제작 인센티브를 운영하는 가운데, 지원 상한이 없는 뉴저지(New Jersey)에 넷플릭스(Netflix)가 스튜디오를 짓는 반면 30% 공제를 내건 조지아조차 제작이 영국으로 빠져나가는 자체 ‘엑소더스’를 겪었다고 짚었다. 돈을 푸는 규모만큼이나 행정 속도와 예측가능성이 거점의 운명을 가른다는 뜻이다.
산불 이후 결성된 풀뿌리 단체 ‘스테이 인 LA(Stay in LA)’는 이 반등을 정치적 지렛대로 삼았다. 이 조직의 입법 담당 케이트 홀긴(Kate Holguin)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역·주·연방 어느 직책에 출마하든 후보 공약에 할리우드가 들어가 있다”며 “한번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선출직들이 안다”고 말했다. 표심을 가른 1순위 의제는 여전히 집값과 노숙이었지만(TheWrap 독자 180명 조사에서 제작 일자리를 1순위로 꼽은 응답은 32명으로 집값 51명·노숙 41명에 이은 3위), 산업의 전면 붕괴를 막는 일은 어느 후보도 외면하지 못했다.
Ⅱ. 세 후보의 처방, 그리고 ‘권한 없는 시장’ 딜레마
할리우드를 살리겠다는 세 후보의접근법은 다르다. 배스는 랩(TheWrap)과의 인터뷰에서, 일괄 공약 대신 영화 담당관(film liaison) 스티브 강(Steve Kang)을 통한 사안별 해결에 무게를 뒀다고 밝혔다. 강 담당관은 다른 부서를 건너뛰어 현장 문제를 즉시 푸는 권한을부여받았다. 한 예로 그리피스 천문대 촬영료는 10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낮아졌다. 강 담당관은 랩에 “LA에는 문제를 즉시 푸는 방법이 없었다. 며칠, 길게는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며 “목표는 몇 분 안에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의원 니티아 라먼도 랩에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강 보좌관의 사무실을 시 정식 영화국으로 확대하고, 필름LA(FilmLA)의 ‘저영향’ 신속 허가 대상을 출연·스태프 30명에서 50명까지 넓히며, 정당화되지 않는 촬영 제한은 정기 재검토를 거쳐 만료시키겠다는 것이다.
반면 우파 후보 스펜서 프랫은 랩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4월 자신의 서브스택(Substack) 글에서 ‘필름LA 7일 내 허가’, ‘예산 200만 달러 미만 제작 수수료 면제’, ‘즉시 사전승인’ 같은 강경책제시했다. 그러나 노숙인을 촬영 예정지에서 비우겠다는 ‘무관용’ 대목은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후보 | 핵심 처방 | 한계 / 쟁점 |
|---|---|---|
캐런 배스 (현직) | 영화 담당관 임명, 부서 건너뛰는 즉시 해결, 촬영료·수수료 사안별 인하 | ‘임무 완수’식 자축 비판, 미래 청사진 빈약(디 앵클러) |
니티아 라먼 (시의원) | 영화국 정식화, 저영향 허가 30→50명 확대, 촬영 제한 정기 재검토·만료 | 진단·해법이 가장 구체적이라는 평가, 실행 권한·재원 확보가 관건 |
스펜서 프랫 (도전자) | 필름LA 7일 허가, 200만$ 미만 수수료 면제, 즉시 사전승인 | 해법 빈약·집중력 의문, ‘무관용’ 노숙인 배제는 인권 논란 |
※ 후보 발언·공약은 랩(TheWrap) 인터뷰 및 프랫 서브스택 종합. 평가 코멘트는 디 앵클러(The Ankler) 리처드 러시필드(Richard Rushfield)의 5월 28일자 칼럼.
한편 미디어 전문 매체 ‘디 앵클러(The Ankler)’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러시필드(Richard Rushfield)는 5월 28일자 칼럼에서 이 경쟁 구도를 한 발 물러나 짚었다. 러시필드는 “LA 시장은 헌법상 권한이 약해, 역대 시장들 역시 업계의 ‘설득’과 ‘여론 환기’ 역할에 머물렀다”며, 세액공제나 산업 재편 같은 핵심 의제는 대부분 주지사와 연방 정부의 권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세 후보가 내세운 할리우드 영상산업 전담 조직 구상(배스의 ‘영화 차르’, 프랫의 ‘컨시어지 팀’, 라먼의 ‘시장실 영화국’)에 대해서도, 이미 촬영 허가를 총괄하는 필름LA(FilmLA) 위에 관료 조직을 하나 더 얹는 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필요한 것은 새 간판이 아니라, 필름LA가 스스로 내건 ‘촬영 절차 간소화’라는 미션을 실제로 이행하게 만들 정치적 의지라는 것이다.
러시필드는 LA에서 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네바다 주 클라크 카운티(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지역)를 예로 들며, 이 지역이 규제가 덜하고 촬영·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촬영 친화’ 지역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고 짚는다. 그런 곳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LA는 이웃 주민 민원과 각 시 부서의 추가 비용을 앞세워 제작사를 ‘지갑’으로만 대하며 산업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어 왔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Ⅲ. 한국으로 가져오면 — 로컬 엔터테크 허브의 시선
LA의 핵심 딜레마는 ‘권한이 제한된 시장’이었다. 한국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한국 광역·기초단체장은 로케이션 인센티브 예산 편성, 영상위원회 설치·위탁, 촬영 인허가, 스튜디오·콘텐츠 클러스터 조성, 지역 방송·제작 지원 등에서 비교적 넓은 재량과 집행 권한을 갖고 있다. 여기에 XR 스튜디오, 버추얼 프로덕션, 실감형 관광 콘텐츠 같은 엔터테크(Entertainment+Tech) 인프라까지 묶이면, 지방정부가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레버는 더욱 많아진다. 의지만 있다면 움직일 수 있는 장치가 적지 않다는 뜻이고, 그래서 6·3 선거로 뽑히는 민선 9기 4년의 선택이 LA보다도 더 무겁게 작용할 수 있다.
첫째, 지역 제작 기반의 약화다. 제작 역량과 광고 매출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역 방송사와 지역 제작 생태계는 재정·인력 양면에서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지역방송과 보편적 시청권 보장은 이미 중앙 차원의 방송 정책 의제로 다뤄지고 있지만, 실제 촬영 물량과 스태프 일자리는 각 지자체가 어떤 인센티브를 설계하고, 촬영 인허가를 얼마나 빠르고 일관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중앙이 제도를 설계해도 현장에서 “촬영이 가능하냐”를 최종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기초단체의 행정 속도와 태도다. 동시에, 지역에 남는 엔터테크 일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방송사·제작사가 AI 편집·버추얼 세트·라이브커머스 스튜디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장비·공간·인력 재교육을 지역 차원에서 설계하느냐에 따라, ‘공동화’가 될지 ‘전환’이 될지가 결정된다. 이 점에서 한국은 LA보다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에 가깝다.
둘째, 영상위원회·로케이션 유치와 엔터테크 허브 경쟁이다. 1999년 출범한 부산영상위원회는 한국 최초의 전문 영화·영상위원회로, 지자체 단위 촬영 지원 모델을 연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 각 광역·기초단체가 자체 영상위원회와 로케이션 오피스를 세우면서,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전당, 대전 스튜디오큐브, 파주·일산 일대 제작 인프라 같은 지역 단위 클러스터가 차곡차곡 쌓였다.
중앙의 KOFIC 로케이션 인센티브는 외국 영상물에 대해 최대 20~30% 수준의 캐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서울·부산·인천 등 주요 도시 영상위원회는 여기에 별도의 현금·현물 지원과 로케이션 서비스를 얹는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이제 쟁점은 단순 촬영 지원을 넘어, 로컬 엔터테크 허브를 누가 먼저 만들 것이냐로 옮겨간다. 메타버스·게임 엔진 기반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 지역 관광·MICE와 연결된 실감 콘텐츠 센터, 지역 대학·스타트업이 함께 쓰는 미디어랩을 어느 도시가 먼저 구축하느냐에 따라, 단순 로케이션을 넘어 후반·기술·IP 비즈니스까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LA가 던진 질문과 같다. 지자체가 제작과 엔터테크를 ‘민원 비용’이 아니라 ‘유치해야 할 투자 대상’으로 대하는지, 허가와 행정 절차가 빠르고 예측 가능한지, 인센티브와 규제 완화를 제작자와 개발자가 신뢰하고 여러 해에 걸쳐 베팅할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는지다.
상한이 없는 수준의 강력한 인센티브로 넷플릭스 스튜디오 투자를 끌어온 미국 뉴저지 사례와, 높은 리베이트에도 일부 대형 프로젝트가 영국 등 해외로 재유출되고 있는 조지아발 ‘2차 러너웨이’ 논쟁은, 재원 규모뿐 아니라 행정의 신뢰성과 장기 설계가 필수라는 점을 한국 지방정부에도 시사한다.
셋째, 콘텐츠와 엔터테크가 만드는 관광·고용·브랜드의 선순환이다. 이른바 K-콘텐츠 투어리즘과 K-컬처 기반 스마트 관광의 결합이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와 K-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촬영지가 도시 브랜드와 관광 수요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K-콘텐츠 팬이 드라마·예능 촬영지를 찾아 숙박·식음료·체험 소비를 동반하는 ‘스크린 투어리즘’은, 특정 도시·지역의 관광 포트폴리오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고, 정부 역시 2024~2025년 관광 전략에서 K-컬처·지역 관광 허브·스마트 관광 인프라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엔터테크가 결합하면, 촬영지는 “한 번 다녀가는 배경”을 넘어 지속적인 디지털 경험 거점이 된다. AR·VR로 재구성한 촬영 세트, 인터랙티브 투어 앱, 팬덤 데이터에 기반한 개인화 관광 코스, 현장 라이브커머스를 엮으면,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든 관심을 지역 체류 시간·지출 증가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제작 유치와 엔터테크 허브 육성은 단순한 ‘문화사업’이 아니라 지역 경제·고용·브랜드 전략의 핵심 수단이다. LA에서 시장 후보들이 제작 유치를 주거·노숙과 함께 경제 의제로 전면에 올린 것처럼, 한국 지자체 역시 콘텐츠·엔터테크 정책을 공약집의 ‘문화’ 항목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산업·관광·일자리·디지털 전환 전략의 한가운데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Ⅳ. 6·3 지방선거 전망 — 콘텐츠 공약의 함정
이번 한국 지방선거에서 콘텐츠 공약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변수다. 특히 몰입형 콘서트홀 등 지역 기반 엔터테인먼트(LBE) 생태계는 더 이상 보조적 영역이 아니라, 일자리와 소비, 도시 브랜드를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후보들이 이 본질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상위원회 신설’, ‘대형 스튜디오 유치’, ‘○○ 콘텐츠밸리 조성’ 같은 공약은 반복되지만, 이는 LA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낸 접근이다. 조직과 시설은 빠르게 만들어지지만, 제작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않는다. ‘또 하나의 관료층’만 쌓일 뿐, 지역 기반 제작 생태계는 강화되지 않는다.
지역 엔터테인먼트의 경쟁력은 훨씬 구체적인 실행 조건에서 결정된다. 인허가와 로케이션 행정의 속도와 예측 가능성,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인센티브, 그리고 중앙 정책(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KOCCA, KOBACO)과의 정합성이다. 여기에 지역에서 인력을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 즉 교육감 선거를 통해 결정되는 콘텐츠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가 결합될 때 비로소 ‘지역에서 만들고, 지역에서 소비하고, 다시 지역에 투자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결국 핵심은 명확하다. 지역이 제작자에게 선택받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다. 몇 분 안에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촬영 직전까지 불확실성과 비용을 떠넘기는 구조를 반복할 것인가. 이 차이가 지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존립을 가른다.
선거 일정 또한 이 문제를 더 첨예하게 만든다. LA는 예비선거 이후 본선까지 정책을 다듬을 시간이 있지만, 한국은 6월 3일 단 한 번의 선택으로 4년이 결정된다. 검증의 시간은 짧고, 실행의 책임은 즉각적이다. 동시에 이번 선거는 2027년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다. 지역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경제 의제로 자리 잡는다면, 이는 곧 국가 단위 정책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Ⅴ. 전망과 제언 — 엔터테크가 지역을 살린다
지역 기반 엔터테인먼트를 실제 산업으로 작동시키는 힘은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생산·소비와 연결하는 실행 시스템이다. 촬영 일수, 고용, 매출, 방문객 같은 지표가 쌓여야만,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가 구호가 아닌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의제가 된다. 숫자로 증명되는 순간, “왜 이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은 훨씬 단순해진다.
한국은 이런 의미에서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K-드라마와 예능, K-팝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는 계속 확대되고 있고, 실제로 팬들이 촬영지와 공연장을 찾으며 숙박·식음료·체험·굿즈 소비를 동반하는 흐름도 이미 여러 도시에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e스포츠까지 더해지면 그림은 더 분명해진다.
대형 e스포츠 대회와 게임 문화 이벤트는 공연 못지않게 젊은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체류형 소비와 온라인 확산 효과를 동시에 만든다. 부산의 경우 게임 전시·행사와 영화·영상 인프라가 함께 존재하고, 서울 역시 대형 공연장과 e스포츠 경기장이 맞물려 팬덤 기반 방문 수요를 흡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 흐름이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를 지역 단위에서 체계적으로 추적·분석하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떤 도시가 어떤 콘텐츠, 어떤 공연, 어떤 e스포츠 이벤트를 계기로 방문객·체류 시간·지출이 늘었는지 보여주는 데이터가 없다면, 지방선거에서 내놓는 콘텐츠·관광 공약은 “중요하다”는 선언을 넘어서기 어렵다.
엔터테크는 이 공백을 메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엔터테크는 거창한 새 간판의 이름이 아니라, 제작과 체험, 소비를 연결하는 방식과 공간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공연장·체육관·컨벤션센터를 단순 대관 시설로 두는 대신, K-팝 쇼케이스, 팬미팅, e스포츠 대회, 드라마·예능 공개행사, XR 체험 이벤트를 함께 소화할 수 있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 티켓 시스템, 온라인 생중계·VOD, 팬덤 데이터 분석, 현장 연계 커머스를 결합하면, 한 번의 공연이나 대회가 남기는 효과를 데이터로 기록하고 다음 기획으로 연결할 수 있다. 드라마 촬영지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촬영지 홍보를 넘어, 투어 동선, 체류 시간, 결제 패턴, 재방문율을 분석하면 어떤 형태의 체험과 상권 구성이 실제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핵심은 새로운 건물과 조직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연장·촬영지·행사장을 디지털로 “보이게” 만들고, 이를 지역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재설계하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6·3 이후 상당수 공약은 선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산업계와 지자체가 어디서부터 현실적으로 손을 대느냐다. 산업계는 촬영·공연·e스포츠·관광 데이터를 가능한 범위부터 모으고 공유하면서 의제의 기준선을 제시할 수 있고, 지자체는 인허가 절차 단축, 인센티브의 다년 설계, 데이터 수집·분석 체계 구축, 지역 공연장과 복합문화공간의 엔터테크 전환 지원처럼 비교적 빨리 착수할 수 있는 과제부터 실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 소유 공연장이나 체육관 한 곳을 ‘엔터테크 테스트베드’로 정해, 1~2년 동안 K-팝 쇼케이스, 로컬 음악 공연, e스포츠 리그, 드라마 팬 이벤트를 집중 유치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런 변화가 누적되면, 4년 뒤에는 어느 지역이 실제로 산업과 소비를 늘렸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제작은 한 번 떠나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동시에 팬과 관객도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도시를 선택한다. 지금 한국은 K-콘텐츠, K-팝, e스포츠를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가 계속 커지는 국면에 있다. 각 지역이 엔터테크를 도구로 삼아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공연·게임·관광 구조를 설계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다면, K-콘텐츠의 성장은 “어디선가 잘되고 있다”가 아니라 “우리 지역의 성장”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결국, 시설과 구호를 늘릴 것인지, 아니면 데이터와 실행을 기반으로 지역 공연장과 e스포츠 공간까지 포함한 “지역에서 만들고, 지역에서 경험하고, 지역으로 환류되는” 엔터테인먼트 구조를 실제로 만들 것인지를 가르는 선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