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포스터 "할리우드의 미래는 AI를 지배하는 창작자의 것"
조디 포스터 아스펜 세션 진단.."F1은 AI가 만든 영화 아닌가"
"할리우드의 미래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AI를 지배하는 창작자의 것"
할리우드의 미래가 100년을 지배해 온 스튜디오 시스템이 아니라, AI를 통제하는 창작자와 플랫폼 밖의 독립 크리에이터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할리우드 내부에서 나왔다.
스트리밍이 전통 스튜디오 체제를 해체하고 파업과 제작 이탈로 로스앤젤레스의 제작 기반이 흔들리는 사이, AI는 사전시각화(프리비즈)와 군중 장면 배우 복제 등 제작 공정에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관객 조사에서도 각본과 배우의 디지털 복제 등 창작 핵심 영역의 생성AI 활용에 대한 거부감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확인된다.
오스카 2회 수상 배우이자 감독인 조디 포스터(Jodie Foster)와 마이클 린튼(Michael Lynton) 전 소니픽처스 CEO는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Aspen Ideas Festival)의 '누가 할리우드의 미래를 소유하는가(Who Owns the Future of Hollywood)' 세션에서 이런 전망을 내놨다. 포스터는 이 자리에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애플의 대작 'F1'을 두고 "AI가 만든 것 아니냐"고 말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영화 'F1'. 지난해 글로벌 박스오피스 6억 3,4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했다. (사진: 세션 영상 캡처)
"구조도, 대사도 컴퓨터가 쓴 것 같았다"
포스터는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 감독, 브래드 피트·댐슨 이드리스 주연의 'F1'을 언급하며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전제한 뒤, "F1을 보면서 'AI가 만든 영화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근거로 든 것은 영화의 구조와 대사다. 영화의 구조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전형적 구조 그대로였고, 배우들의 대사 역시 컴퓨터가 해당 장면에 맞는 최적의 문장을 계산해 쓴 것처럼 들렸다는 설명이다. 세션에서는 페이스 스와핑(얼굴 교체)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공식화된 콘텐츠 영역에서는 AI가 작가와 배우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F1'이 거론됐다.
'F1'은 지난해 글로벌 박스오피스에서 6억 3,4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했다. 작품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후보에도 올랐다. 애플 측은 포스터의 발언에 대한 언론의 논평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고 미국 연예매체 더랩(TheWrap)은 전했다.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세션에서 발언하는 조디 포스터. (사진: 세션 영상 캡처)
포스터의 AI 사용 기준…"AI를 지배하는 한 문제없다"
포스터의 발언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F1'에 대한 의혹 제기 자체보다, 그가 반복적으로 사용한 '지배(dominate)'라는 단어다. 그는 "창작자들이 바라는 것은 영화감독이 AI를 지배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AI를 지속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면, 우리를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창작자가 도구를 통제하는지 아니면 도구에 종속되는지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포스터 본인도 AI 사용 경험을 공개했다. 2025년 레베카 즐로토프스키(Rebecca Zlotowski) 감독의 프랑스 영화 'A Private Life'에서 감독이 AI에 정보를 입력해 꿈 장면의 이미지를 생성했다는 것이다. 포스터는 그 결과물이 아름답고 기묘하며 감정적인 이미지였다고 소개하면서, 창작자가 AI를 지배할 수 있다면 인간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례로 들었다.
다만 그는 잉마르 베리만이나 히치콕의 영화처럼 시(詩)에 가까운 작품은 컴퓨터가 복제할 수 없지만, 공식화된 일상적 제작물, 특히 TV 콘텐츠의 상당 부분은 AI가 감당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세션에서는 AI가 제작 현장에 들어온 실태도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군중 장면에서 소수의 보조 출연자를 AI로 2배, 3배, 4배로 복제하는 방식이 이미 쓰이고 있고, 제작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인 만큼 비용 절감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사전시각화(pre-vis) 단계에서는 세트에 발을 들이지 않고도 인물과 얼굴이 포함된 장면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이에 대응해 노조는 배우의 초상이 AI로 여러 번 사용되면 그만큼 여러 번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보상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터도 "내 배우를 20번 사용할 수 있지만, 20번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규칙을 노조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객은 어디까지 받아들이나…'창작 핵심'과 '기술 공정'의 경계
포스터가 그은 경계, 즉 시에 가까운 창작은 인간의 것이고 공식화된 제작은 AI가 감당할 수 있다는 구분은 관객 조사 데이터와도 겹친다.
미국 조사업체 루미네이트(Luminate)가 2025년 11~12월 미국 영화·TV 시청자 1,494명(13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U.S. Entertainment 365' 조사(Wave 16)에 따르면, 생성AI 활용에 대한 수용도는 영역에 따라 정반대로 갈린다.
각본(순 -18%포인트), 생존 배우의 디지털 복제(-29%p), 사망 배우의 디지털 복제(-23%p), 실존하지 않는 완전 합성 배우(-26%p) 등 창작과 배우의 정체성에 직결되는 영역에서는 불편하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반면 기술·후반 공정에서는 수용이 우세했다. 배우를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고품질 시각효과(+10%p), 화면 동작에 맞춘 음향효과(+11%p),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일러스트(+7%p), AI 음성을 활용한 외국어 콘텐츠 더빙(+2%p)에서는 편하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세대 차이도 뚜렷하다. 베이비부머는 완전 합성 배우 -46%p, 생존 배우 복제 -43%p 등 거의 전 영역에서 부정적인 반면, 밀레니얼은 시각효과 +21%p, 음향효과 +17%p로 가장 수용적이었다. 관객이 받아들이는 AI는 '보이지 않는 공정의 AI'이고, 거부하는 AI는 '창작의 얼굴을 대체하는 AI'라는 구도다.
100년 스튜디오 체제의 세 번째 해체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세션에서 발언하는 마이클 린튼 전 소니픽처스 CEO. (사진: 세션 영상 캡처)
함께 무대에 오른 린튼 전 소니픽처스 CEO는 할리우드가 기술 변화에 따라 세 차례 재편됐다고 정리했다. 1920년대 뉴저지의 배급업자들이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특허 소송을 피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영화를 공장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후 196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관객이 극장을 떠나자 스튜디오들은 유럽 뉴웨이브에서 영감을 얻어 젊은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권한을 넘겼다. '대부' 같은 작품을 낳은 1970년대 영화의 황금기다. 이 시대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죠스'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렸고, 스튜디오는 다시 창작 통제권을 회수해 대작 중심 체제로 돌아섰다.
세 번째 해체가 스트리밍이다. 린튼에 따르면 DVD 수익에 의존하던 스튜디오들이 스트리밍을 관망하는 사이, DVD 유통업체였던 넷플릭스는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와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같은 감독들에게 창작 자율권을 보장하며 작품을 끌어모았다.
스튜디오들은 스트리밍의 잠재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사 영화를 넷플릭스에 라이선스로 넘겼고, 이것이 산업 전체가 뒤집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100년간 유지된 6대 스튜디오 체제는 몇 년 사이 인수합병으로 3~4개 메이저로 재편됐다. 그 과정에서 스튜디오들은 마블류의 대형 IP 프랜차이즈에 집중했고, 한때 산업의 기반이었던 1,000만~6,000만 달러 규모의 중간 예산 영화, 즉 호러·로맨틱 코미디·스릴러가 제작 목록에서 사라졌다. 린튼은 메인스트림 영화 산업이 설계상 "폭넓은 문화적 관련성에서 스스로 걸어 나갔다"고 진단했다.
LA 제작 위기와 소프트파워의 상실
할리우드 스트리밍 위기의 구조: 프랜차이즈 집중과 중간 예산 공백, 넷플릭스의 부상, 코로나19·파업이라는 외부 충격이 제작 이탈과 문화적 영향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자료: 세션 내용 정리)
세션은 로스앤젤레스의 제작 위기도 다뤘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비면서 극장 사업자들이 은행 대출로 연명했고, 9개월간 이어진 파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스튜디오들은 파업을 인력과 계약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았고, 그 결과 특정 장르의 제작이 중단되고 다수의 탤런트 계약이 갱신되지 않으면서 업계의 절반이 잘려나갔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제작진과 프로덕션은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유럽, 캐나다, 미국 동부로 떠났다. 엔터테인먼트가 미국의 1위 수출품임에도 로스앤젤레스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국 영화 산업을 인센티브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소프트파워 상실도 언급됐다. 중국과 러시아 배급을 위해 스파이더맨 장면에서 성조기 같은 미국 상징을 제거해야 했던 사례, 전 세계 영화 제작의 절반 이상이 이제 로컬 제작이며 관객이 점점 자국어 콘텐츠를 선택하고 있다는 흐름이 근거로 제시됐다. 반면 프랑스는 블록버스터에 세금을 부과해 자국 영화 산업 기금으로 돌리는 보호주의적 접근으로 산업을 지켜냈다는 대비도 나왔다.
유튜버의 역습…"버블 안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세션이 제시한 희망의 근거는 독립 창작자다. 유튜버들이 만든 공포영화 'Obsession', 'Dark Rooms', 'Iron Lung'이 성공 사례로 거론됐는데, 제작자 중 한 명은 19세다. 'Obsession'은 CGI를 거의 쓰지 않고 코로나19를 겪은 20~30대의 외로움과 관계에 대한 공포를 다뤄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대규모 CGI 예산 없이도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증거다. 과거에는 에이전시와 스튜디오를 거쳐야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지만, 이제 창작자는 '버블 안에 들어갈' 필요 없이 콘텐츠를 직접 올리면 산업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포스터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아니라 진정성(authenticity)이 승리할 것이며, 예술가들은 공동체적 진실을 우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값비싼 블록버스터 대신 작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입소문으로 밀어 올리는 새로운 관람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관찰도 덧붙였다.
K-콘텐츠 산업에 주는 시사점
이번 세션의 논의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제작 주도권의 분산은 K-콘텐츠에 기회다. 전 세계 제작의 절반 이상이 로컬로 이동하고 관객이 자국어 콘텐츠를 선택하는 흐름은, 할리우드 게이트키핑 밖에서 성장해 온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유튜브 기반 독립 창작자의 부상 역시 플랫폼을 우회한 직접 유통이라는 점에서 한국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이다.
둘째, AI 통제 역량이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 포스터의 '지배' 프레임을 뒤집으면, AI를 지배하지 못하는 창작자와 제작사는 AI에 지배당한다는 뜻이 된다. 군중 복제와 프리비즈가 이미 표준 공정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K-콘텐츠의 경쟁력은 AI를 배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통제하며 활용하는 능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노조 협약을 통해 사용량 기반 보상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표준계약서와 저작권 제도에서 AI 활용 고지와 보상 조항을 서둘러 설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AI 활용 전략은 관객 수용의 경계를 따라 설계돼야 한다. 루미네이트 조사에서 확인되듯 시각효과·음향·더빙 등 기술 공정의 생성AI는 관객이 받아들이지만, 각본과 배우 복제는 거부한다. 특히 AI 음성 더빙에 대한 수용(젊은 세대 +8~10%p)은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하는 K-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에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영역이다.
셋째, 제작지 인센티브 경쟁의 시대다. 로스앤젤레스의 제작 이탈은 인센티브를 설계한 지역이 글로벌 제작 물량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럽과 캐나다, 미국 동부가 할리우드 물량을 가져가는 구도는,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로케이션 인센티브와 제작 인프라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K-콘텐츠 제작 기반의 향방이 갈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참고
출처: Aspen Ideas Festival, "Who Owns the Future of Hollywood?" 세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Qh7xe8sGX8
참고: TheWrap, "Jodie Foster Is Convinced 'F1' Was Made With AI" (2026.7.2, Alyssa Ray), https://www.thewrap.com/creative-content/movies/jodie-foster-f1-ai-comment/
데이터: Luminate, U.S. Entertainment 365 Wave 16 (2025.11~12, 미국 영화·TV 시청자 13세 이상 1,494명)https://luminatedat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