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몰입형 공간에서 두 번째 스크린을 연다 — 도렌스 돔이 보여준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의 무대 전환
- 애리조나 도렌스 돔, 과학관의 경계를 넘어 테크놀로지와 예술이 만나는 실험장으로
- 몰입형 LED 돔이 만든 ‘경험 인프라’, 스트리밍 이후 시대의 진짜 경쟁력
- K‑콘텐츠, 공간 속으로 확장되는 글로벌 스토리텔링의 새 무대
애리조나 피닉스—전통 영화관도, 천문관의 플래니터리움도 아닌 새로운 세대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공간 전체가 스크린이 되고, 관객은 더 이상 객석에 앉아 있지 않는다. 몰입형 극장(Immersive Theatre), 즉 ‘공간이 서사가 되는 엔터테인먼트’가 현실이 된 것이다.
애리조나 사이언스 센터(Arizona Science Center)의 도렌스 돔(Dorrance Dome)은 이 변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 곳은 과학 교육용 돔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예술·문화·엔터테인먼트가 융합된 다목적 미디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9,000여 개의 LED 패널과 8K급 해상도 기술이 맞물려, 이곳은 더 이상 실험적 플랫폼이 아니라 미래형 미디어 인프라에 가깝다.
최근 열린 ‘K‑Pop Demon Hunters: Immersive Experience’는 이런 기술적 진화 위에서 K‑콘텐츠가 얼마나 세계적 감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Art360 시리즈의 일환으로 구성된 이번 프로젝트는 360도 영상과 공간 음향, 돔 전체를 활용한 몰입형 연출로 관객의 감각을 완전히 장악했다. 관람이 곧 체험이 되고, 스토리텔링이 공간 속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규모만 보면 라스베이거스의 대표 몰입형 공간인 스피어(Sphere)보다 작다. 하지만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translate:도렌스 돔]은 기술·콘텐츠·공공 공간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포스트‑스크린 시대의 실험장’이자, K‑콘텐츠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인프라 속으로 진입하는 교차점이다. 스트리밍 이후의 시대, 진짜 경쟁력은 이제 ‘공간 경험’ 그 자체가 되고 있다.
도렌스 돔은 캠벨 수프(Campbell Soup Company) 지분으로 부를 축적한 도렌스 가문(Dorrance family)의 이름을 딴 공간으로, 이 가문은 재단을 통해 애리조나 교육·과학·예술 인프라에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과학관은 도렌스 패밀리·기업 재단·기술 파트너(Cosm)와의 파트너십 구조를 바탕으로, 공공 시설이 민간 자본 및 몰입형 테크 기업과 함께 차세대 미디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 예산에 의존하던 전통 과학관 모델에서 벗어나, 자선 산업·브랜드 협업·티켓 수익을 결합한 혼합 수익 구조를 실험하는 사례다. 특히, 다른 도시 과학관·문화시설이 벤치마킹할 만한 지배구조 포맷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몰입형 극장, 테크가 이끄는 새로운 물결
몰입형 극장(Immersive Theatre)은 단순히 시각적 실험이 아니라, 기술 인프라의 진보가 만들어낸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테크 포맷이다.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LED 곡면 설계, 멀티 프로젝션 블렌딩, 실시간 렌더링 엔진 등 핵심 기술의 발전이 플래니터리움의 범위를 뛰어넘고 있다. 이제 세계 곳곳의 돔과 전시장, 공연장은 하나의 거대한 ‘공간형 콘텐츠 네트워크’로 재편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글로벌 허브들은 다음과 같다.
- -라스베이거스 스피어(Sphere) – 건축 전체를 LED 디스플레이로 감싼 아이코닉 구조물로, 몰입형 공연의 세계적 기준을 제시한 시설.
- COSM Theatre (LA·댈러스) – 실시간 콘텐츠 파이프라인과 초고해상도 LED 돔을 결합해, 스포츠·예술·영화·콘서트를 포괄하는 하이브리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도쿄·베를린·뉴욕의 디지털 플래니터리움 – 교육 중심에서 애니메이션, 음악, 예술 등 멀티 장르 콘텐츠를 흡수하며 ‘도심형 몰입 공간’으로 진화.
- Lighthouse Immersive, ARTECHOUSE, Frameless London – 예술 전시와 프로젝션 맵핑을 결합해, 몰입형 비주얼 아트의 새로운 관람 문화를 만들어낸 사례.
이 글로벌 확산의 흐름 속에서 도렌스 돔(Dorrance Dome)은 중형 규모의 대표적 쇼케이스로 자리 잡았다. 플래니터리움에서 출발했지만, 과학관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예술·공연·브랜드 이벤트까지 담아내는 확장형 모델이다.
도렌스 돔(Dorrance Dome): 몰입형 경험의 새로운 지평, 과학관을 넘어 문화 허브로
도렌스 돔은 ‘플래니터리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과학관이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인프라로 탈바꿈하고 있다. 천문 체험을 넘어 과학, 예술, 문화가 융합되는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기능하면서, 21세기형 과학관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다.
도렌스 돔은 직경 18m 규모에 9,026개의 LED 패널을 탑재한 CX System 기반 풀 LED 돔으로, 미국 남서부에서 가장 진화한 몰입형 LED 돔 시설로 꼽힌다. 기존 프로젝션 방식보다 약 100배에 달하는 밝기와 개선된 명암비·색 재현을 구현해, 우주 다큐멘터리는 물론 예술, 음악, 브랜드 이벤트까지 소화하는 다목적 몰입형 미디어 캔버스로 재설계됐다.
낮에는 천문·과학 교육 프로그램, 밤과 주말에는 라이브 프레젠테이션, 콘서트, 요가, 커뮤니티 이벤트 등을 운영하면서, 공공 과학관이 티켓·멤버십을 넘어 이벤트·대관·스폰서십까지 다양한 수익원을 실험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과학관·뮤지엄이 ‘교육 중심 플랫폼’에서 위치 기반 몰입형 엔터테인먼트(LBE) 허브로 이동하는 글로벌 흐름과 맞물린다.
CX System이 만든 ‘경험 인프라’
Cosm의 CX System은 도렌스 돔을 단순 상영관이 아니라 실시간 렌더링·라이브 피드·멀티소스 콘텐츠를 운용할 수 있는 제작·운영 플랫폼으로 확장시킨다. 8K+ LED 풀돔과 전용 소프트웨어, 콘텐츠 에코시스템이 결합하면서, 우주 시각화, 과학 시뮬레이션, 라이브 토크, 예술 공연, 브랜디드 콘텐츠까지 하나의 인프라 위에서 회전 가능한 구조를 구현한다. 이 플랫폼은 Cosm의 프리미엄 미디어 프로그램과 연결돼 Black Hole: First Picture, Orbital, Inside Pop Art 등 검증된 몰입형 풀돔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동시에, 센터 자체 기획 프로그램과 믹스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편성’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향후 다른 과학관·상업 돔으로 포맷을 수출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도렌스 돔의 현재 운영은 네 가지 핵심 프로그램을 축으로 짜여 있다.
먼저 애리조나의 밤하늘과 지역 천문 유산을 다루는 라이브 천문 투어 형식의 ‘Astronomy Tour: Arizona’, 이벤트 호라이즌 텔레스코프 프로젝트를 풀돔 영상으로 풀어낸 우주 다큐멘터리 ‘Black Hole: First Picture’, 우주 탄생부터 지구 궤도까지의 여정을 시네마틱하게 구성한 애니메이션 스타일 돔 영화 ‘Orbital’, 팝아트 미학을 360도 시각 경험으로 확장한 몰입형 예술 콘텐츠 ‘Inside Pop Art’가 그 축을 이룬다.
여기에 시즌별로 Astronomy Night, After-hour Shows, Art360 같은 기획 프로그램을 더해, 과학·예술·웰니스·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돔 공간 안에서 묶어 내는 ‘패키지 편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구성은 Sphere나 초대형 미디어아트 베뉴처럼 규모 경쟁을 하기보다, 중형급 지역 몰입형 허브로서 차별화된 포지션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전통 상영관·공연장과의 경쟁 구도
스피어 같은 초대형 LED 베뉴가 ‘아이코닉 건축+슈퍼스타 공연’에 초점을 맞춘다면, 도렌스 돔은 200석 안팎의 친밀한 규모에서 교육·문화·엔터테인먼트를 회전시키는 고효율 모델에 가깝다. LED 풀돔 환경은 낮 시간 상영, 가족·교육 관람, 지역 커뮤니티 이벤트까지 포괄해 전통 영화관·플래니터리움·소극장, 심지어 일부 콘서트홀과도 관객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새로운 ‘경험 공간’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몰입형 돔의 확산은 스트리밍 이후 시대에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업그레이드 방향을 보여준다. 도시별로 하나의 ‘몰입형 허브’를 갖추려는 경쟁을 촉발하는 중이다. 도렌스 돔은 그 중에서도 공공 과학관 버전의 레퍼런스 모델로, 교육·문화·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의 실험장으로 의미를 가진다.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시장: 수치가 말하는 성장세
이 같은 ‘공간 경쟁’은 글로벌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성장 곡선과도 맞물린다.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2024년 약 1,143.7억 달러(114.37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 4,421.1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며, 2025~2030년 연평균 성장률(CAGR)은 26.3%로 제시된다.
지역별로 보면 2024년 기준 북미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아시아·태평양이 2025~2030년 동안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몰입형 콘텐츠와 전용 시설에 대한 투자와 정책 지원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이미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공연 및 상영 공간을 포함하는 ‘몰입형 극장(Immersive Theatre)’ 부문은 2024년 약 206.6억 달러에서 2030년 약 823.9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26.9%에 이른다.
이는 몰입형 공간이 단지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향후 수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K-콘텐츠,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성장의 핵심 동력
특히 한국 콘텐츠는 색감, 서사, 무대 구성, 음악적 표현력이 모두 강해, 시각·청각을 전면에 활용하는 몰입형 공간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강렬한 색채와 촘촘한 스토리, 퍼포먼스 중심의 연출, 에너지가 살아있는 음악이 결합되면서, 관객이 ‘보는 것’을 넘어 ‘공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을 만들기 용이한 IP라는 평가를 받는다.
K-팝의 퍼포먼스 구조와 한국 애니메이션·액션 판타지의 비주얼 스타일은 특히 돔 기반 인터랙티브 환경에서 재해석하기 좋은 요소들이다. 멀티 스크린 편집, 실시간 이펙트, 360도 카메라 워크와 결합할 경우, 기존 콘서트 실황이나 애니메이션 클립이 전혀 다른 형태의 ‘공간형 경험’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K‑Pop Demon Hunters’ 이벤트는 이런 가능성을 실제 관객 앞에서 검증한 사례로, K‑콘텐츠가 몰입형 돔을 새로운 무대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콘텐츠는 몰입형 공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트리밍 화면을 넘어 돔과 스피어 같은 실제 공간으로 IP가 확장되면서, 도시를 따라 이동하는 ‘공간 순회형 콘텐츠’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축이 형성되는 것이다. 단순 상영을 넘어서 한정 상영, 투어링 쇼, 로컬 컬래버레이션 이벤트 등으로 포맷을 변주할 수 있어, K-콘텐츠에는 또 하나의 글로벌 유통 채널이 추가되고 있다.
과학관·문화시설의 수익화에도 K-콘텐츠는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한국 IP가 들어오면 방문객이 늘어날 뿐 아니라, 공간 대여, IP 공동 기획, 굿즈·패키지 판매 등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낸다. K-콘텐츠가 편성되는 순간, 해당 돔은 지역 기반 과학관을 넘어 사실상 ‘글로벌 문화 허브’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음악·영화·게임·웹툰 등으로 이어지는 K-콘텐츠의 세계적 확장세와 맞물려, 몰입형 극장은 한국 IP가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는 핵심 거점이자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의 전략 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 공간 자체가 서사가 된다
스피어(Sphere) 같은 초대형 베뉴에서 도렌스 돔(Dorrance Dome) 같은 중규모 디지털 돔, 그리고 도심 곳곳의 프로젝션 기반 아트 스페이스에 이르기까지
몰입형 공간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형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이제 몰입형 극장은 과학 전시관의 부속 설비나 일회성 공연장이 아니라, 테크놀로지·공간·콘텐츠가 교차하는 문화산업의 중심 무대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 환경 속에서 관객은 더 이상 ‘스크린 앞 관람자’가 아니다. 빛과 사운드가 뒤섞인 공간 안에서 관객은 이야기의 한가운데, 즉 경험의 중심에 서게 되고, 내러티브는 시간 축을 따라 흐르는 선형 구조에서 공간과 참여를 축으로 한 새로운 형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K-콘텐츠가 이런 공간형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하는 흐름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음악·영화·게임·웹툰 IP가 입체적인 글로벌 생태계로 확장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향후 어떤 포맷이 표준이 될지, 어느 도시의 어떤 돔과 어떤 IP가 판을 주도할지는 아직 열려 있다.
다만 한 가지 흐름만은 분명하다. 관객이 단순히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 빈자리는 ‘공간 전체를 체험하는 경험’이 대신 채울 것이다.
이는 경험 경제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기도 하다. 결국 이 새로 열린 공간을 누가, 어떤 이야기로 먼저 채우느냐에 따라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 엔터테인먼트의 다음 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