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AI 화풍 도용’ 정조준…초당적 ‘크리에이터법’ 발의, 어도비가 전면에

등록 저작물 넘어 작가 ‘스타일’에 연방 보호권 신설…“영감은 허용, 사칭은 차단”

패러디·팬아트·AI 연구는 제외…어도비 “창작경제 1.2조 달러, 美 GDP의 4.2%”

미국 의회가 생성 인공지능(AI)이 화가의 고유한 작풍을 무단으로 베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행위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발의했다.

텍스트 한 줄(프롬프트)만으로 특정 작가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모방한 이미지를 비용 없이, 수초 만에, 동의나 보상 없이 대량으로 찍어내 시장에 쏟아낼 수 있게 된 현실이 발의 배경이다. 특히, 등록된 개별 저작물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만, 작가가 수년에 걸쳐 다져온 ‘스타일(Style)’ 자체는 어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공백을 이번 법안이 정조준했다.

이른바 ‘크리에이터법(CREATOR Act·Creative Rights for Artists’ Technique and Originality Are Reserved Act)’은 시각 예술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무단 모방당했을 때 법적으로 대응할 길을 연다.

미디어 전문매체 악시오스(Axios)에 따르면, 발의에는 베스 밴 다인(Beth Van Duyne, 공화·텍사스), 이베트 클라크(Yvette D. Clarke, 민주·뉴욕), 버지스 오언스(Burgess Owens, 공화·유타), 밸러리 푸시(Valerie P. Foushee, 민주·노스캐롤라이나) 등 양당 하원의원이 참여했다. 이미지·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Adobe)가 법안 지지의 전면에 섰다.

‘무엇을 만들었나’는 보호해도, ‘어떻게 그리나’는 보호 못 했다

시그니처 스타일은 오랜 연습과 헌신의 산물이다. 작가는 기법, 색과 톤의 감각, 감정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역량, 나아가 창작적 의사결정 과정을 다듬어 나간다. 그렇게 쌓인 역량이 누구와도 구별되는 고유한 스타일로 굳어지며, 많은 창작자에게 이는 시장에서의 정체성이자 생계의 핵심이 된다.

작가들은 늘 서로에게서 배우고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어도비(Adobe)는 그러나 AI가 전통적 영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규모와 속도로 모방을 자동화한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저작권은 ‘만든 것’을 보호할 뿐 창작자의 시각적 정체성이나 스타일은 보호하지 않으며, 목소리와 외형을 다룬 기존 법·신규 법안은 있어도 시각 예술가 특유의 미감을 겨냥한 틀은 없었다는 것이다.

사례: 일러스트레이터 파비올라 라라(Fabiola Lara)

어도비(Adobe)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파비올라 라라(Fabiola Lara)의 사례를 들었다. 한 AI 플랫폼이 자사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모방한 AI 생성 이미지를 들고, 사전 동의 없이 그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손쉽게 생성된 이 이미지들이 작가의 예술적 정체성과 생계를 직접 위협한다고 어도비는 진단했다.

영감은 하나의 일이지만, 이것은 사칭이었다.  — 루이스 펜틀랜드(Louise Pentland) 어도비 최고법률책임자(CLO)

다른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받는 것’은 예술의 일부지만,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복제해서 그 사람의 이름·평판·시장 자리잡기를 빼앗는 건 “사칭”이자 부당한 행위다라는 의미다.

법안이 하는 일 ― 그리고 하지 않는 일

법안은 시각 예술가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의도적·상업적 AI 사칭으로부터 보호하는 연방 권리를 신설한다. 창작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사칭 행위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어도비(Adobe)는 법안이 범위를 정교하게 좁힌 점을 강조했다. 표적은 상업적 이익을 노려 고의로 AI를 동원해 작가의 정체성을 위조하는 ‘악의적 행위자’다. 예술적 영향, 패러디, 팬 창작물, 광범위한 AI 연구·개발은 규제 대상에서 빠진다. 식별 가능한 작가에 대한 의도적·상업적 사칭에만 초점을 맞춰, 혁신을 막지 않으면서 창작자를 보호하는 균형을 노렸다는 설명이다.

플랫폼엔 ‘세이프 하버(safe harbor)’…통지·삭제 준수가 조건

법안은 AI 플랫폼에 대한 책임 조항과 함께 면책(세이프 하버, safe harbor) 조항을 담았다. 플랫폼이 법이 정한 통지·삭제(notice and take-down) 요건을 지키면, 이용자가 저지른 침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한다. 침해를 주도한 악의적 행위자를 겨냥하되, 요건을 준수한 플랫폼은 보호하는 구조다. 밴 다인(Van Duyne) 의원실은 기술 플랫폼들과 사전 접촉했으며, 주마다 제각각인 규제보다 통일된 연방 기준을 따르는 편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업계가 대체로 우호적이라고 전했다.

‘등록 의무’는 빠져…판단 기준 둘러싼 견해차

다만 법안은 보호의 틀만 제시할 뿐, 창작자가 자신의 스타일이나 외형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분쟁 때 참조할 등록 인프라가 없다는 의미다. 클라크(Clarke) 의원은 단속을 플랫폼에 떠넘기지 않으려면 청구의 진위를 평가할 독립 중재 기구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법안에는 그 구체적 형태가 담기지 않았다.

반면 밴 다인(Van Duyne) 의원은 음악가가 곡을 저작권청에 등록하듯 외형을 등록할 필요는 없다며, 평범한 사람이 봐도 모방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보통의 관찰자 기준(ordinary observer test)’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어도비가 미는 이유: 콘텐츠 진위 이니셔티브(Content Authenticity Initiative)

어도비(Adobe)는 수년간 ‘창작자 우선’ AI 정책을 주장해 왔다. AI를 작업 과정에 활용한 창작자도 저작권 보호를 확보할 명확한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디지털 콘텐츠의 출처와 귀속을 투명하게 밝히기 위한 콘텐츠 진위 이니셔티브(Content Authenticity Initiative)를 공동 창립했다.

이 연합은 6000곳 이상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어도비는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어떻게 쓰이길 원하는지 표시할 수 있는 ‘콘텐츠 크리덴셜(Content Credentials)’ 같은 실질적 수단의 필요성도 함께 내세웠다.

판돈은 보이는 것보다 크다: 1.2조 달러

어도비(Adobe)는 이번 사안이 창작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매년 1조2000억 달러, GDP의 약 4.2%에 해당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AI 사칭이 작가·디자이너·사진가·일러스트레이터의 생계를 잠식하면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과 이에 의존하는 브랜드·플랫폼이 함께 손해를 본다는 논리다.

앞선 입법들과의 차이…그리고 전망

AI 사칭·딥페이크·데이터 보호 관련 법안은 여럿 나왔지만 시각 예술가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목소리·얼굴·외형·실연을 무단 AI 복제로부터 보호하는 노 페이크스법(NO FAKES Act)조차 시각적 스타일은 명시하지 않는다. 로 카나(Ro Khanna, 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은 올해 초 ‘창작자 권리장전(Creator Bill of Rights)’ 결의안을 냈지만 이는 법률이 아니다.

밴 다인(Van Duyne)·클라크(Clarke) 의원은 지난해 초당적 ‘의회 창작자 코커스(Congressional Creators Caucus)’를 출범시켰고, 크리에이터법(CREATOR Act)은 그 흐름에서 나온 첫 주요 입법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입법 동력이다. 현재 미 의회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지만, 밴 다인(Van Duyne) 의원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50개 주 전역에 퍼져 있다는 점이 초당적 지지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어도비(Adobe)도 의회가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결론: 스타일 보호는 K-콘텐츠와 엔터테크의 차세대 과제다

  1. 스타일은 K-콘텐츠의 핵심 자산이다
    웹툰·일러스트·캐릭터 디자인, K-팝·댄스·안무·퍼포먼스 등에서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은 곧 IP이자 브랜드이며, 곧바로 수익 모델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생성 AI가 특정 작가와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학습·재현하는 단계에 이른 지금, 스타일 보호 문제는 개별 분쟁이 아니라 K-콘텐츠 전체의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전략 이슈가 되었다.
  2. ‘영감 vs 사칭’ 구분과 출처 표시는 국내 정책·플랫폼 설계의 기준선이 된다
    미국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타인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는 것은 예술적 관행으로 인정하되, 특정 작가·댄서·아이돌의 이름과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워 사실상 대체재를 만드는 행위는 사칭·혼동 유발로 보는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에 콘텐츠 크레덴셜(Content Credentials)과 같은 출처·제작 과정 표기 기술을 도입하면, “이 콘텐츠가 실제 사람의 창작인지, AI가 누구의 스타일을 흉내 낸 것인지”를 구분하는 인프라를 국내에서도 마련할 수 있다.
  3. 입법은 ‘스타일 저작권’ 신설보다, 사칭·부정경쟁·퍼블리시티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스타일 자체를 독립된 저작권 객체로 인정하는 것은 국제 조화·집행 가능성 측면에서 난도가 높다. 현실적인 1단계는, 특정 작가·아티스트의 명성과 식별력을 이용해 AI로 유사 결과물을 만들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퍼블리시티권·성명표시권 침해 등에 포섭하거나, 이에 준하는 특칙과 가이드라인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팬덤 기반 2차 창작과, 상업적 대체·사칭 행위를 규범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4. 엔터테크·플랫폼은 AI 가이드라인과 계약 구조로 선제적인 ‘민간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K-팝·웹툰·게임 IP를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은, 입법을 기다리기보다 자체적인 룰셋을 먼저 구축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차원에서는 스타일·이름을 직접 호출하는 프롬프트 제한, 공식 라이선스된 스타일 프리셋 제공, AI/실사 구분 라벨링·메타데이터 부여 등을 도입하고, 계약 차원에서는 크리에이터와의 계약서에 AI 학습 허용 범위, 스타일·퍼포먼스 데이터의 2차 활용과 수익 배분, 향후 법·제도 변화 시 재협상 조항 등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향후 해외에서 CREATOR Act류 논의가 구체화될 때, 한국 사업자가 “준비된 파트너”로 협상력을 확보하는 토대가 된다.
  5. K-콘텐츠의 글로벌 전략은 ‘콘텐츠 수출’을 넘어 ‘스타일 시대의 거버넌스 수출’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K-콘텐츠·엔터테크의 메시지는, 더 이상 “좋은 콘텐츠를 수출한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의 스타일과 퍼포먼스를 존중하는 AI 활용 원칙, 플랫폼 정책, 계약 구조, 출처 표기·투명성 표준까지 포함한 “스타일 시대의 IP 거버넌스 패키지”를 함께 수출하는 것이 차세대 경쟁력이 된다. K-팝과 K-웹툰,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엔터테크 솔루션은, 생성형 AI 시대에 “어떻게 창작자 권리와 팬덤 문화를 동시에 지킬 것인가”에 대한 모범 사례이자 레퍼런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자료: Axios, “Bipartisan members introduce new bill to protect creators from AI style theft”(Sara Fischer) / Adobe Blog, “The CREATOR Act is the protection artists need in the age of AI”(Louise Pentland, 202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