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12개 주, 1110억 달러 파라마운트-워너 합병 제소…“극장·케이블 경쟁 훼손”

캘리포니아 등 12개 주가 1110억 달러 파라마운트-워너 합병 저지 소송을 냈지만, 연방 법무부와 한국을 포함한 24개 관할권이 이미 승인한 거래여서 승산보다 ‘지연’과 정치적 메시지에 무게가 실린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2개 주가 파라마운트-워너브러더스 합병 저지 소송을 냈다. 자료=NBC4(NBC Los Angeles) 방송화면

미국 12개 주 법무장관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 인수(약 1110억 달러)를 막기 위해 7월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합병이 성사되면 4개 스튜디오가 미국 광범위 개봉(와이드 릴리스) 영화의 85% 이상을 쥐고, 기본 케이블 채널 라이선싱에서도 소수 사업자의 지배력이 커진다는 것이 소송의 근거다. 연방 법무부(DOJ)가 지난달 아무 조건 없이 승인한 거래를, 모두 민주당 소속인 주 법무장관들이 정면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소송의 근거: 극장·케이블 경쟁 훼손

소송을 이끈 롭 본타(Rob Bonta)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사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병이 경쟁을 없애고 가격을 끌어올리며 콘텐츠 질을 떨어뜨리고 해마다 만들어지는 영화·드라마 수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은 이 거래가 광범위 개봉과 흥행 상위작 극장 배급, 케이블 라이선싱 시장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약화시켜 잠재적 독점을 규율하는 클레이턴법(Clayton Act)을 위반한다고 적시했다. 캘리포니아와 함께 애리조나·콜로라도·코네티컷·매사추세츠·미네소타·네바다·뉴저지·뉴멕시코·뉴욕·오리건·워싱턴이 참여했다.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할리우드 사인 앞에서 소송을 발표하고 있다. 자료=NBC4(NBC Los Angeles) 방송화면

연합은 두 회사에 소송 결론이 날 때까지 합병을 종결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응하지 않으면 임시금지명령(TRO)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종결이 늦어지면 상당한 재무 부담이 따른다. 계약상 9월 30일까지 합병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워너브러더스 주주에게 분기당 약 6억5000만 달러, 하루 약 69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소장은 시장 집중도를 구체적 수치로 제시했다. 파라마운트가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면 4개 스튜디오가 미국 전체 광범위 개봉 영화의 85% 이상을 통제하게 되며, 이런 영화가 지난 4년간 극장 흥행 수입의 98%를 차지했다. 흥행 대작 배급 시장에서도 합병 후 파라마운트의 몫이 30%를 넘고, 4개 배급사가 90% 이상을 쥐게 된다.

극장에 미치는 영향도 쟁점이다. 소장은 배급사의 힘이 커지면 극장이 매출을 더 많이 떼어주고, 할인과 무료 입장권 제공에 더 강한 제약을 받게 된다고 봤다. 소수 배급사가 흥행 수입을 더 많이 가져가면 극장은 관람료를 올리고 대형 스크린·프리미엄 좌석·매점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장은 극장이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의 경쟁에 기대어 창의성과 품질을 끌어내고 유리한 조건을 확보해 왔다고 적었다.

케이블TV 시장에서도 두 회사는 기본 케이블 채널 라이선싱의 상위 3개 사업자에 속한다. 두 회사가 보유한 기본 케이블 채널은 50개가 넘고, 3월의 대학농구 토너먼트(March Madness)와 메이저리그(MLB) 중계권 같은 인기 편성을 갖고 있다. 이들이 결합하면 협상력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것이 주정부의 주장이다.

지지에 나선 극장·작가 단체

극장업계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는 이번 소송을 지지했다. 자료=Cinema United

극장·창작 업계 단체들은 소송을 반겼다. 극장업계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의 마이클 오리어리(Michael O’Leary) 회장 겸 CEO는 성명에서, 영화 스튜디오의 추가 통합이 할리우드를 넘어 지역 극장이 문화·경제의 축을 이루는 미 전역 소도시에까지 크고 오래가는 영향을 남긴다고 밝혔다. 미국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도 반대 대열에 섰다.

서부지부의 미셸 멀로니(Michele Mulroney) 위원장은 이번 합병을 최악의 합병안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고, 동부지부의 톰 폰태나(Tom Fontana) 위원장은 과도한 통합이 조합원의 일자리와 소득을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조합은 그동안 여러 주 법무장관실과 협의해 왔다고 밝혔다. 합병 반대 연합에서는 소송으로 흐름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연방 승인과 ‘트럼프 그림자’

이번 소송은 연방 정부가 합병을 승인한 상황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법무부는 지난 6월 이 거래가 스트리밍과 유선 방송(리니어 TV), 극장 개봉 영화의 제작·배급 시장에서 오히려 경쟁을 늘린다고 보고, 자산 매각이나 행위 시정 같은 조건 없이 승인했다.

조건 없는 승인을 두고, 미디어 제국을 세우려는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 파라마운트 CEO의 구상에 트럼프(Trump) 대통령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커졌다. 오라클(Oracle) 공동창업자인 그의 부친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트럼프와의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해 왔고, 합병이 성사되면 CNN이 이 가문의 통제 아래 들어온다. 본타 장관은 반독점 집행이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억만장자를 견제하는 장치라며 엘리슨 가문과 트럼프의 연결을 거듭 겨냥했다.

미 법무부는 지난 6월 “경쟁이나 소비자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다”며 반독점 조사를 종결했다. 자료=NBC4(NBC Los Angeles) 방송화면

파라마운트는 소송에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 측은 이번 소장이 확립된 반독점 법리를 왜곡하고 오늘날 미디어 시장의 경쟁 현실을 잘못 전제했다며, 사실과 법 양면에서 틀린 소송을 끝까지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합병 지연은 빅테크에만 이롭고, 기술 변화로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수만 개의 일자리를 잃은 엔터테인먼트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회사 주장이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의 결합이 자본력을 갖춘 창작 중심 기업을 만들어 넷플릭스(Netflix)처럼 업계를 지배해 온 사업자와 더 잘 경쟁하게 하며, 거래를 막는 것은 오히려 지배적 스트리밍·기술 기업을 경쟁에서 보호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파라마운트의 법무책임자 마칸 델라힘(Makan Delrahim)은 넷플릭스·아마존(Amazon)·구글(Google) 같은 “기술 독점”이 소비자와 창작자, 노동자를 위협한다는 논리를 반복해 왔다.

파라마운트의 반박: 24개국 승인·친노동 논리

파라마운트는 이미 24개 관할권의 규제 당국이 거래를 승인했거나 심사 대기 기간을 넘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쟁 당국 승인은 한국을 비롯해 호주·오스트리아·브라질·캐나다·중국·쿠웨이트·몬테네그로·뉴질랜드·북마케도니아·사우디아라비아·세르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우크라이나와 동남부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에서 나왔고, 외국인직접투자(FDI) 심사는 호주·독일·프랑스·스페인·슬로베니아·벨기에·체코·뉴질랜드·이탈리아·루마니아에서 통과됐다.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합병이 호주 극장 배급용 영화의 도매 공급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킬 가능성이 낮고, 합병 후에도 다른 스튜디오들이 경쟁 압력을 유지하며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가 특별히 가까운 경쟁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파라마운트는 미국 법무부도 조사를 종결하며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영국 경쟁 당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판단은 남아 있고, 지난 4월에는 파라마운트 가입자들이 경쟁 축소를 이유로 합병 저지 소송을 내기도 했다.

파라마운트는 이 거래가 창작 경제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한다는 논리도 폈다. 데이비드 엘리슨은 연간 최소 30편의 고품질 영화를 최소 45일의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두고 개봉하고, 제3자와의 콘텐츠 라이선싱도 이어가겠다고 밝혀 왔다.

회사는 본타 장관에게 보낸 5월 서한에서 넷플릭스·아마존·디즈니(Disney)가 압도적 구독형 스트리밍(SVOD) 사업자이며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만으로는 이들을 따라잡을 규모를 갖추기 어렵다고 주장했고, 규모를 키우려는 기업은 콘텐츠와 인재에 더 투자해야지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거래의 경제 논리라고 설명했다. 6월에는 팀스터스(Teamsters) 노조의 문제 제기에 대해, 제작 편수가 늘면 촬영·운송·캐스팅·케이터링 일감도 함께 늘어난다며 자사 전략이 노조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고 반박했다.

승산이냐, 정치적 메시지냐

소송의 승산을 두고는 회의적 시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부가 이미 자체 심사를 거쳐 제소하지 않기로 한 사안이어서, 주정부들은 연방 정부가 대형 미디어 합병 판단을 틀렸다고 법원을 설득해야 하는 처지다. 미국 매체 더랩(TheWrap)은 주정부가 크로거-앨버트슨스(Kroger-Albertsons) 합병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지만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고 짚었다. 본타 장관은 자신의 승소율이 80%를 넘는다며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할 때만 소송을 낸다고 반박했다.

소송의 정치적 성격을 지적하는 분석도 있다. 본타 장관은 소송을 소비자 보호와 경쟁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억만장자를 견제하고 대통령이 승자와 패자를 임의로 고르는 것을 막는 장치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 12개 주 법무장관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전제를 부인하며, 사실과 법에 근거해 소송을 낸다고 답했다. 그는 티켓마스터-라이브네이션(Ticketmaster-Live Nation)과 넥스타-테그나(Nexstar-Tegna) 합병 문제 제기가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들며 공화당 소속 법무장관의 참여도 환영한다고 했다.

스트리밍 시대의 경쟁 지형

규모의 논리 자체는 파라마운트만의 주장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디즈니·넷플릭스는 물론 구글(유튜브)과 아마존에 맞서려면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는 지난 수년간 미디어 업계의 통합을 이끌어 온 명분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수 감소에 초점을 맞춘 주정부의 논리가 2026년 시청 방식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소송 자체가 합병을 지연시켜 비용과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고, 9월 30일 기한을 넘기면 파라마운트가 감당해야 하는 위약 성격의 ‘티킹 피(ticking fee)’ 부담도 커진다. 올해 말 재선을 앞둔 법무장관이 여럿인 가운데, 이번 소송이 민주당 법무장관들이 트럼프 행정부보다 기업 통합에 강경한 태도를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시청 시간은 스트리밍으로 크게 기울었다. 닐슨(Nielsen)의 2026년 4월 ‘더 게이지(The Gauge)’ 집계에서 스트리밍은 전체 TV 시청의 47.6%로, 케이블(21.6%)과 지상파(19.9%)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스트리밍 안에서도 유튜브(YouTube)가 13.4%, 넷플릭스가 7.8%로 앞서고, 파라마운트(파라마운트+·플루토)는 2.1%,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디스커버리+·HBO맥스)는 1.5%에 그친다. 두 회사를 합쳐도 유튜브·넷플릭스와는 격차가 크다는 점이 파라마운트가 규모를 내세우는 근거이자, 스튜디오 수에 초점을 맞춘 소송 논리의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2026년 4월 미국 TV 시청에서 스트리밍이 47.6%를 차지했고, 파라마운트·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유튜브·넷플릭스에 비해 규모가 작다. 자료=Nielsen, The Gauge

파라마운트는 두 회사를 독립 스튜디오로 운영하겠다고도 약속했지만, 업계 일부는 연 30편 규모의 제작을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합병이 완료되면 결합 법인이 약 790억 달러의 부채를 떠안는 반면 연간 잉여현금흐름은 3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이 핵심 우려로 꼽힌다.

수년간 이어질 수 있는 이번 소송은 결론과 별개로 합병을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도 극장 배급과 케이블 라이선싱을 둘러싼 미국 미디어 산업 지형에 영향을 남길 전망이다. 더 근본적으로 이번 사안은 극장과 케이블을 축으로 짜인 반독점의 틀이 스트리밍 우위 시대에도 유효한지를 묻는다. 경쟁의 무게 중심이 레거시 스튜디오 사이가 아니라 유튜브·넷플릭스와 기술 플랫폼을 상대로 옮겨간 만큼, 규제와 산업 모두 스트리밍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쟁 구도를 다시 그려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 주는 메시지

한국 경쟁 당국은 이미 이 합병을 승인했다. 한국은 글로벌 승인 사슬의 한 축인 동시에, 합병이 마무리되면 K콘텐츠를 사고파는 상대가 더 큰 단일 사업자로 바뀌는 시장에 놓인다. 파라마운트가 내세운 명분이 ‘넷플릭스에 맞설 규모’라는 점도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최대 구매·유통 창구이고, 미국 스튜디오들이 몸집을 키워 대응할수록 K콘텐츠 공급자가 협상할 상대의 수는 줄고 조건은 달라진다.

연 30편·45일 극장 윈도 같은 산출·윈도 전략은 콘텐츠가 극장에서 스트리밍으로 흐르는 방식을 바꾸는 만큼, 국내 배급·제작사는 라이선싱 조건과 윈도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정부와 연방 정부가 엇갈리고 반독점이 정치적 지렛대로 쓰이는 이번 국면은 플랫폼·미디어 집중을 둘러싼 국내 규제 논의에도 참고가 된다.

출처

· The Hollywood Reporter, “Paramount Sued by States in Bid to Block $111 Billion Warner Bros. Merger” (Winston Cho, 2026.7.13)

https://www.hollywoodreporter.com/business/business-news/paramount-sued-warner-bros-merger-1236631313/

· TheWrap, “California’s Paramount Lawsuit Looks More Like Politics Than a Winning Legal Strategy” (A.J. Katz, 2026.7.13)

https://www.thewrap.com/industry-news/deals-ma/paramount-warner-bros-lawsuit-political-analysis/

· Paramount, a Skydance Corporation, 보도자료 (2026.7.13)

https://ir.paramount.com/news-releases/news-release-details/state-attorneys-general-challenge-proposed-merger-def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