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워너브라더스 830억달러 ‘초대형 빅딜’…K-콘텐츠 글로벌 전략, 중대 분기점 맞는다

스트리밍 시대 최대 규모 M&A…K-콘텐츠 글로벌 유통 전략에도 파급효과 불가피

  1. 넷플릭스–WBD 830억달러 합병은 스트리밍 권력 지형을 재편하며, K-콘텐츠 글로벌 전략에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중대 분기점​
  2. 초대형 미디어 통합은 창작 노동자 협상력 약화와 표현 다양성 축소, 정치권력의 미디어 길들이기 위험을 키워 한국 산업에도 구조적 리스크를 전가​
  3. K-콘텐츠 산업은 FAST·광고형 모델, 지역별 공동 제작, 다중 윈도우 유통을 통한 플랫폼 다변화와 IP·제작 허브 전략을 강화해 수익원과 표현 생태계 동시 방어해야

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의 스튜디오·스트리밍 자산을 결합하는 830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합병이 발표되면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이번 M&A는 스트리밍 시대 권력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빅뱅이자, K-콘텐츠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가 동시에 되는 중대 분기점이다. 이번 거래로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와 HBO·HBO Max까지 흡수한 초대형 콘텐츠 블록으로 부상하며, 한국 제작사·플랫폼과의 협상 구도, 글로벌 유통 전략, IP 비즈니스 구조 전반에 걸친 재설계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공동 CEO는 금요일 투자자 콜에서 "이번 거래는 소비자, 혁신, 근로자, 크리에이터, 성장 모두에게 이로운 거래"라고 강조했다.

반면 배우 제인 폰다는 앵클러(Ankler) 기고문을 통해 "이 규모의 통합은 표현의 자유 위에 세워진 산업과 이를 움직이는 창작 종사자들, 그리고 독립적인 미디어 생태계에 의존하는 소비자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I choose to stand up. I hope you will join me.

폰다는 먼저 WBD 인수전에 뛰어든 후보가 누구냐보다, 이 수준의 초대형 거래 자체가 초래할 구조적 위험에 주목한다. 소수의 메가 플랫폼이 스튜디오·채널·스트리밍을 한데 쥐게 되면, 배우·작가·감독·스태프 등 현장의 창작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자리와 협상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길드와 노조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경제적 타격보다 더 우려되는 점으로 ‘정치권력과 규제기관이 인수·합병 심사를 매개로 미디어를 길들이는 구조’를 꼽았다. 최근 방송사와 플랫폼을 둘러싼 합병 심사 과정에서 특정 프로그램 편집이나 진행자를 문제 삼는 조사, 비판적 진행자 교체, 다양성·포용 프로그램 축소 등이 잇따랐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를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이 언론·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압박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비판했다.​

폰다는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일자리는 줄고, 팔 수 있는 작품의 창구는 줄고, 새로운 목소리와 실험적 스토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며 “소비자 역시 더 적은 뉴스와 더 단조로운 이야기만 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대 통합이 경쟁·다양성·위험 감수 문화를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서사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는 과거 ‘레드 스케어’ 시기 블랙리스트에 맞서 예술인들이 결성한 ‘수정헌법 1조 위원회(Committee for the First Amendment)’ 사례를 상기시키며, 오늘날에도 연대와 집단 행동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폰다는 “지금 침묵한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업계도, 민주주의도 남지 않을 수 있다”며, 모든 엔터테인먼트 종사자와 시민이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경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했다.​ 수정헌법 1조 위원회의 결성을 이끈 이는 제인 폰다의 아버지인 헨리 폰다(Henry Honda)다.

규제 심사 장기화, 2027년 이후 최종 결론 전망

물론 합병 승인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무부와 각 주 검찰총장들이 수개월간 반독점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며,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재판과 항소 과정까지 더해져 최종 결론이 2027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 규제당국의 병행 조사도 진행될 전망이다.

핵심 쟁점은 시장 점유율 산정 방식이다. 규제당국은 넷플릭스와 HBO맥스의 스트리밍 구독자 수 합산을 근거로 과점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전체 TV 시청 시간 기준으로는 자사가 유튜브보다 작고, 이미 HBO맥스와 75%의 구독자 중복률을 보이고 있어 실질적 시장 지배력 확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반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미국 전체 TV 시청 점유율에서 유튜브가 12.6%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넷플릭스는 8.3%에 그치고 있다.

다만 AVOD광고 시장 점유율 확대는 문제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광고 포함 상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HBO MAX가 합쳐진다면 현재 1위인 훌루(Hulu)의 광고 매출 30억 달러(2025년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시장 광고 점유율 확대의 우려로 HBO MAX의 매각이나 통합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동시에, 유튜브·디즈니 등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도 미국 TV 시청 비중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어, 넷플릭스-WBD 통합은 ‘초대형 대 초대형’ 구도로 스트리밍 경쟁을 더 격화시킬 전망이다.

극장 개봉은 유지, 상영 기간 단축 가능성

합병 후 사업 운영 방향에 대해 사란도스 CEO는 워너브라더스 픽처스 영화의 극장 개봉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다고 보는 장기 독점 상영 기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덧붙여, 전통적인 극장 상영 창구(theatrical window)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극장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극장 상영 기간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HBO맥스를 별도 서비스로 유지하되, HBO 콘텐츠를 넷플릭스에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더 다양한 가격과 콘텐츠 선택권을 제공하는 번들 상품 출시가 검토되고 있다.

테크 부문 통합으로 연 20~30억 달러 시너지 창출

양사는 합병 완료 후 3년 차까지 연간 20억~30억 달러의 시너지 효과를 예상하며, 비용 절감의 대부분은 기술 부문 통합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창작 인력 감축보다는 중복 기술 인프라 정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WBD와의 협상에서 탈락한 파라마운트는 WBD 주주들에게 직접 인수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콘텐츠 산업에 미치는 영향: 기회와 위기의 양면

이번 합병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 복합적인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큼, 이번 합병으로 인한 플랫폼 재편은 K-콘텐츠의 해외 진출 전략 전반에 재검토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협상력 약화와 제작비 압박 우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콘텐츠 수급 협상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Netflix)는 이미 한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유료 구독자 기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징어게임, 지옥, 더글로리 등 글로벌 흥행작을 연이어 배출하면서 한국 제작사들과의 협상에서 강력한 지위를 확보해왔다. 여기 HBO맥스의 콘텐츠 라이브러리와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의 제작 역량까지 더해지면, 넷플릭스의 협상력은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 2025년 3월 21일부터 쿠팡플레이가 HBO 및 HBO Max 오리지널을 국내 독점으로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해 서비스 중이다.

이는 한국 제작사들의 수익 배분 조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간에도 넷플릭스의 일괄 매입(buyout) 방식에 대한 국내 제작사들의 불만이 제기되어 왔는데, 합병 후에는 플랫폼 선택지가 더욱 줄어들면서 제작사들의 협상 여지가 축소될 수 있다. 특히 중소 제작사들의 경우 대형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 더 큰 압박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 심화

합병으로 탄생하는 초대형 플랫폼(넷플릭스와 워너미디어)은 자체 제작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의 제작 인프라와 IP 라이브러리를 확보한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중심의 블록버스터 콘텐츠 제작에 더욱 집중할 경우, 상대적으로 K-콘텐츠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넷플릭스 라이브러리 내 K콘텐츠 비중은 5~6%정도다. 다른 플랫폼에 비해서는 높지만 아직은 절대적인 숫자는 아니다.

다만 이는 양면적이다. 넷플릭스가 그간 한국 콘텐츠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감안하면, K-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합병을 통해 확보한 글로벌 유통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콘텐츠의 도달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압박 가중

이번 합병은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들에게 더 큰 생존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 등 국내 플랫폼들은 이미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콘텐츠 투자와 구독자 확보 양면에서 고전하고 있다. 합병으로 넷플릭스의 콘텐츠 라이브러리가 대폭 확장되면, 국내 플랫폼들의 차별화 전략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내 스트리밍 업계에서도 합종연횡 논의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완료 단계로 글로벌 플랫폼의 대형화 추세가 국내 업계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플랫폼들이 K-콘텐츠 독점 확보와 로컬 시장 특화 전략을 통해 차별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IP 확보 경쟁과 웹툰·웹소설 시장 영향

넷플릭스는 그간 한국 웹툰과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지옥(연상호 작가 웹툰 원작), 스위트홈(김칸비·황영찬 웹툰 원작) 등이 대표적이다. 합병 후 콘텐츠 제작 역량이 강화되면 한국 IP에 대한 선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이는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IP 보유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형 플랫폼의 콘텐츠 수요 증가는 IP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동시에 IP 확보를 위한 선계약 조건이 플랫폼에 유리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제작 인력 시장과 K-스튜디오 전략 재편

할리우드에서 기술 부문 통합을 통한 비용 절감이 예고된 가운데, 한국 제작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넷플릭스가 한국 제작 인력과 스튜디오 인프라를 활용한 아시아 콘텐츠 허브 전략을 유지할 경우, 국내 제작 생태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제작 표준화 압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합병 법인이 전 세계적으로 일관된 제작 프로세스와 품질 기준을 적용할 경우, 한국 특유의 제작 방식이나 창의적 실험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큰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콘텐츠 제작 기지다.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해외 제작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집계된 미국 TV 시리즈 해외 촬영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편수 기준으로 영국·인도·호주 등을 제치고 상위권을 굳히며 글로벌 프로덕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TV의 해외 촬영 편수는 캐나다가 가장 많고 그 뒤를 한국이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다. 같은 기간 영국·인도·호주·스페인·프랑스·일본·폴란드·브라질·이탈리아·멕시코 등도 미국 작품을 유치하고 있으나, 한국의 성장 속도가 두드러진다. 특히 2024~2025년 구간에서는 한국을 선택하는 제작이 더욱 가파르게 늘어나며 아시아 거점 중 최상위 위상을 확보했다.

정책적 대응 필요성 부각

그러나 이번 합병은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과점화 추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정부와 업계의 정책적 대응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확대에 대응한 국내 콘텐츠 산업 보호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플랫폼과 제작사 간 공정 거래 환경 조성, K-콘텐츠의 다각화된 글로벌 유통 채널 확보,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 등이 주요 정책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또한 저작권 보호와 수익 배분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전망: 스트리밍 전쟁의 새 국면

이번 합병은 2019년 디즈니의 폭스 엔터테인먼트 자산 인수(713억 달러), 2022년 디스커버리-워너브라더스 합병(430억 달러)에 이은 스트리밍 시대 최대 규모의 미디어 재편이다.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콘텐츠 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단기적으로 합병 심사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지속되겠지만, 장기적으로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다변화, IP 경쟁력 강화, 제작 역량 고도화 등 다층적인 전략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전쟁의 새로운 국면에서 한국 콘텐츠 산업이 어떤 포지셔닝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플랫폼 다변화는 중장기 전략 중 핵심이다. 글로벌 FAST 채널, 지역별 공동 제작, 다중 윈도우 전략 등을 생존전략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웨이브·삼성 TV 플러스·LG 채널스 등 이미 FAST·광고형 모델을 확장하고 있고, CJ ENM·뉴아이디 같은 사업자는 북미 상위 FAST·AVOD 플랫폼 다수에 K-드라마 채널과 라이브러리를 공급하며 유통망을 다각화하고 있다.​

넷플릭스–WBD 빅딜 이후에는, CJ ENM–WBD·CJ ENM–넷플릭스처럼 여러 글로벌 플레이어와 동시에 공동 제작·출자 구조를 짜고, 완성된 작품을 글로벌·로컬 플랫폼에 순차적으로 풀어내는 다중 윈도우 전략이 K-콘텐츠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만 한 번의 독점 딜에 IP를 묶어두지 않고 극장·유료TV·SVOD·FAST/AVOD·2차 라이선싱 등으로 수명을 늘리며, 제작 리스크는 분산하고 장기·복수의 수익원을 확보하는 ‘IP 파이낸스 구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한국 플랫폼·스튜디오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