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콘텐츠 글로벌 컨퍼런스」…美 알타몬테스프링스, K-콘텐츠·컬처 기업의 미국 관문 자처
유진ENT 후원, K엔터테크허브·플로리다 한미 상공회의소 공동 주최…AI 리빙랩 AGīL과 100만 관객 야외 베뉴 ‘크레인스 루스트’를 함께 내밀다
미국 지방정부가 한국 콘텐츠·문화 기업을 끌어들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보조금과 부지를 앞세우던 유치 경쟁은 ‘콘텐츠를 올릴 무대’와 ‘AI로 만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낯선 전선으로 옮겨갔다.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유진ENT 후원으로 미국 플로리다 알타몬테스프링스(altamonte springs)에서 열린 「2026 K-콘텐츠 글로벌 컨퍼런스(2026 K-Content Global Conference) in Orlando」가 그 사례다. 인구 4만5000여 명의 이 소도시는 한국 대표단을 브로슈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말하는 AI ‘디지털 아바타’ 영상 한 편으로 맞았다.
이 변화의 밑그림에는 미국 시장의 구조 변동이 위치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인프라·기술 투자가 역대 최대로 늘어난 반면, ‘바이 아메리카(Build America, Buy America)’로 대표되는 자국산 조달 규제가 외국 기업의 진입 문턱을 높였다. 규제 대응과 조달 접근, 실제 기술을 시험할 실증 환경을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지역이 곧 관문이 되는 구조다.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를 실제 기업 진출과 지역 산업으로 옮기려는 이번 컨퍼런스도 그 지형 위에 섰다. 케이엔터테크허브(K-EnterTech Hub)와 플로리다 한미 상공회의소가 공동 주최했고 유진ENT가 후원했다.
브로슈어 대신 ‘한국어 AI 아바타’
컨퍼런스에서 대표단이 받은 약 4분 길이의 영상 ‘Edge at the Speed of Life(삶의 속도에서 작동하는 첨단)—한국 파트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진행됐다. 화면 속 발표자는 ‘카타리스트(Catalyst)’라는 이름의 AI 디지털 아바타로, 자막에 ‘알타몬테 스프링스 디지털 아바타’로 소개된다. 영상은 도시를 푸른 디지털 트윈 화면과 도심 호수(크레인스 루스트) 전경으로 비춘 뒤, 도시의 지원 체계를 비즈니스 지원·시장 인식·미국 구매 자문 세 갈래로 설명한다. ‘Build America, Buy America’ 인증 마크가 알타몬테 글로벌 이노베이션 랩(AGīL·아질) 로고와 나란히 등장하고, 끝부분에서는 미국 구매 자문, 외국 무역 구역(FTZ) 접근, 지방정부 테스트베드, 비즈니스 대응 인력 개발을 도시의 강점으로 요약한다.
도시가 외국 파트너에게 건네는 첫 인사를 사람이 아닌 AI가 대신한 것은, 알타몬테스프링스가 AI를 행정의 뒷단에서 대외 소통의 앞단으로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프랭크 마츠(Frank Martz) 시 행정책임자(City Manager)는 방문 뒤 보낸 서한에서 이 영상을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책임 있고 의미 있는 AI 활용”으로 소개하고, 새 기술을 다루는 일은 정부의 책무이되 그 활용은 책임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적었다.
왜 ‘거점 도시’가 관문이 되나
알타몬테스프링스의 승부수는 규제와 조달, 실증을 하나로 묶은 ‘원스톱’ 구조다. 도시는 TSG 어드바이저스와 함께 ‘센터 오브 엑설런스(Center of Excellence)’를 세워 바이 아메리카 규제 대응과 연방 조달, 인증, 인력 양성을 한곳에서 지원한다.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규제·조달의 벽을 도시가 대신 넘어 주겠다는 제안이다.
이 모델이 힘을 얻는 배경은 연방 예산의 방향이다. 대규모 인프라·기술 예산이 풀리는 국면에서 자국산 조달 규제가 강해질수록, 그 규제를 통과할 경로를 미리 깔아 둔 지역의 몸값이 오른다. K-콘텐츠·K-테크 기업으로선 서부와 동부 대도시의 높은 비용 대신, 규제 대응과 실증을 함께 얻는 중견 도시가 현실적 대안이 된다.
AI 리빙랩과 100만 관객 베뉴, 한 도시의 두 얼굴
알타몬테스프링스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AI 기반 건축심의를 도입한 도시이자 2013년부터 무차입(부채 제로) 재정을 유지해 왔다. 마츠 책임자에 따르면 도시는 자율주행·커넥티드 차량과 수자원·에너지 분야에서 오랜 실증 경험을 쌓았고, 최근 일본 도쿄에서 국제 물 혁신상을 받았다.
도시는 현재 아홉 개의 디지털 트윈을 구축 중이며 경찰·인사·지리정보(GIS)·자산관리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도시가 운영하는 AGīL은 세미놀 카운티의 지방정부와 자유무역지대를 갖춘 올랜도 샌퍼드 국제공항을 아우르는 40여 공공·민간 파트너의 실증 플랫폼으로, 공공 공간에서 신기술을 승인·시험해 기업이 대규모로 배치할 수 있게 한다.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AI 보디캠, 정책 근거까지 제시하는 직원용 챗봇, 자율주행 셔틀, 연 5억 갤런 이상을 재처리하는 수자원 사업, AI 도로 점검도 한 도시 안에서 돌아간다.
동시에 이 도시는 콘텐츠를 실제 무대에 올릴 공간을 갖췄다. 도심의 크레인스 루스트 파크(Cranes Roost Park)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중부 플로리다의 대표 야외 베뉴로, 37에이커 호수를 낀 900석 규모의 에디 로즈 원형극장과 호수 위 플로팅 무대, 분수쇼를 갖췄다. 독립기념일 행사 ‘레드 핫 앤드 붐’과 콘서트 시리즈 ‘리듬 앳 더 루스트’ 같은 대형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 기술을 시험할 리빙랩과 콘텐츠를 상연할 베뉴를 한 도시가 함께 쥐고 있다는 점이 K-콘텐츠 기업에는 드문 조합이다.
‘콘텐츠가 도시 성장을 이끄는 법’ 좌담
컨퍼런스는 ‘콘텐츠가 도시 성장을 이끄는 법(How Content Drives Urban Growth)’ 좌담으로 이어졌다. 20여 년간 방송 현장을 취재하고 미국에서 한·미 미디어 네트워크를 만들어 온 한정훈 대표가 진행을 맡아 마츠 책임자와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대표는 “2012년 유튜브의 강남스타일을 계기로 K-콘텐츠가 세계로 나아갔고,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생충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으로 이어졌다”면서 “전통적 K-콘텐츠 제작에서 벗어나 5년 전부터는 현지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는 ‘로컬 포 글로벌(local for global)’ 단계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그는 “서부와 뉴욕을 넘어 지역사회와 협력해야 미국에서 매출을 내고 사업을 넓힐 수 있다”며 이 시기를 K-콘텐츠의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콘텐츠와 지역사회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공진화(共進化)’가 이날 좌담을 관통했다.
마츠 책임자는 이에 “중부 플로리다와 우리 도시는 매우 다양하며, 우리는 국제 콘텐츠가 공유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며 “서로를 더 알수록 더 잘 어울릴 수 있고,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콘텐츠가 세계를 더 가깝게 만든다”고 답했다. 행사를 통역·진행한 카이로스의 제시카 김(Jessica Kim) 대표는 케이엔터테크허브의 미디어 활동을 계기로 알타몬테스프링스가 한국 포털 네이버의 검색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도시가 원하는 기업
마츠 책임자는 도시가 찾는 기업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교통·라이다·기능성 레이더,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스템, 바이오 폐기물을 활용하는 에너지 기업, 그리고 교통·에너지·모빌리티·유틸리티 등 공공 공간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인공지능 기업이다. 그는 알타몬테스프링스에서 기술을 직접 써 본 최종 사용자로서 그 성능을 미국 시장에 알리는 ‘제3자 검증(third-party validation)’을 제공하겠다고 했고, 한미상공회의소와 협력한 첫 정부가 된 것을 두고 “한국은 우리 지역사회를 더 낫게 만들 지적 자산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마츠 책임자는 도시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외국 기업을 위한 진입 플랫폼이 작동하려면 공항과 부동산 개발사, 지역 경제개발 기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시에서는 로셸 크로스키(Rochelle Croskey) 부시행정관, 다이애나 로페즈(Diana Lopez) 전략기획본부장, 레니 바든(Lenny Barden) 모빌리티 총괄, 대니얼 핼핀(Daniel Halpin) 전략프로그램 매니저, 켄들 가우(Kendall Gow) 인사본부장이, 파트너로는 처칠전략그룹의 스콧 스터질(Scott Sturgill) 설립자가 자리를 함께했다.
실증 자산도 이름을 걸고 제시됐다. 스티븐 퍼셀(Stephen Fussell) 부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는 올랜도 샌퍼드 국제공항이 연간 약 300만 명의 여객을 처리하며 600만 명까지 수용할 여력과 500에이커 규모의 미개발 부지, 광동체(와이드보디)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를 갖췄다고 소개했다. 올랜도경제파트너십의 제시카 윌슨(Jessica Wilson) 경제개발본부장은 “이 지역 고용의 80%는 엔터테인먼트·관광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나온다”며 ‘디즈니의 도시’라는 통념을 반박했다. 회의를 연 건물을 소유한 에머슨인터내셔널의 케네스 코크(Kenneth Koch) 임대본부장은 공항 인근에 맞춤형(빌드 투 슈트) 오피스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방문을 주선한 헌터 김(Hunter Kim) 플로리다 한미상공회의소(Florida Korean American Chamber of Commerce) 회장은 이번 컨퍼런스를 한국과 중부 플로리다 사이에 그동안 비어 있던 연결 고리를 잇는 자리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4월 플로리다 대표단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플로리다 투자 가능성을 넓혀 왔다며 대표단의 미국 진출을 지역 여러 시·카운티와 함께 돕겠다고 밝혔다. 유진ENT의 모그룹인 유진그룹은 레미콘 등 건자재를 주력으로 60여 개 계열사를 둔 기업집단으로, 해외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대표단의 유진ENT 김현우(Kim Hyun-woo) 이사는 “유진은 디즈니와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디즈니가 만든 환경을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이번이 유진 글로벌 네트워크의 첫 미국 물리적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AI와 미디어’, 공진화의 물음
한국어로 말하는 도시의 AI 아바타는 미디어 기업이 똑같이 마주한 물음, 생성 AI를 어디까지 어떻게 책임 있게 쓸 것인가를 지방정부 쪽에서 먼저 꺼낸 사례다.
이번 컨퍼런스는 K-콘텐츠·K-컬처 기업의 미국 진출 경로를, 규제 대응과 실증, 그리고 콘텐츠를 올릴 무대까지 한데 묶은 ‘거점 도시’ 모델로 제시했다. 양측은 이번 만남을 협력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