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 손에 들어온 워너… 엘리슨이 풀어야 할 3개의 '임원 전쟁'
HBO·CNN·워너TV·케이블 27개가 한 지붕 아래로… 같은 자리가 둘씩 겹치는 순간, 누군가는 떠난다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의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를 1110억 달러에 사들이는 절차를 마무리하면, 할리우드는 수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경영진 재편을 보게 된다. HBO와 HBO맥스(HBO Max), CNN, 워너브러더스TV(Warner Bros. Television), 그리고 27개에 달하는 선형(linear) 케이블 채널이 한꺼번에 파라마운트 진영으로 넘어오면서, 스트리밍·스튜디오·케이블 각 영역에서 같은 기능을 맡은 임원이 둘씩 겹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충돌의 뿌리에는 스트리밍 경쟁의 비용 구조가 있다. 넷플릭스(Netflix)와 겨루려면 막대한 콘텐츠 투자와 가입자 규모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고, 그 규모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길이 인수합병이다. 대가는 부채다. 파라마운트가 이번 인수로 떠안는 빚은 790억 달러에 이르고, 월가는 이 때문에 거래 자체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엘리슨은 이미 60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공언했는데, 가장 빠른 절감법은 중복 사업부와 그 수장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다. 미국 미디어 전문매체 디 앵클러(The Ankler)가 에이전트·매니저·경영진·창작자 등 업계 관계자 10명을 취재해 정리한 '세 갈래 인사 전쟁'은 그 절감 압력이 어디서 터질지를 가리킨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3분기 거래 종결을 목표로 잡고 있다. 다만 규제 변수가 남아 있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롭 본타(Rob Bonta)를 비롯한 주(州) 법무장관들이 반독점 소송 가능성을 거론하며 저항하고 있고, 엘리슨은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와의 친분을 배경으로 최근 법무부(DOJ)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승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수가 끝나면 파라마운트는 TV 스튜디오 3곳, 영화 스튜디오 2곳, 스트리밍 서비스 2개를 동시에 보유하는 거대한 중복 조직을 떠안는다.
스트리밍: 블로이스 대 홀랜드
첫 전선은 스트리밍이다. 한쪽에는 HBO와 HBO맥스를 이끄는 케이시 블로이스(Casey Bloys), 다른 한쪽에는 넷플릭스 출신으로 파라마운트의 D2C(소비자 직접 판매) 부문을 맡은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가 있다. 엘리슨은 스카이댄스의 파라마운트 인수가 공식 종결되기도 전에 홀랜드를 영입했고, 홀랜드는 넷플릭스와 제작사 시스터(Sister)에서 함께 일했던 제인 와이즈먼(Jane Wiseman) 오리지널 총괄, 에프레인 미론(Efrain Miron) 콘텐츠 전략·D2C 라이선싱 책임자를 끌어들여 팀을 짰다.
문제는 HBO가 WBD의 핵심 자산이라는 점이다. 프리미엄 콘텐츠 브랜드를 통째로 사들이면서 그 브랜드를 이끄는 인력을 내보내는 선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디 앵클러에 따르면 블로이스는 홀랜드 밑으로 들어가 보고하는 구도를 원하지 않으며, 통합된 HBO맥스와 파라마운트플러스(Paramount+)를 함께 총괄하고 싶어 한다. 한 임원은 두 사람을 두고 “소피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가능한 절충안으로 거론되는 모델이 디즈니(Disney) 안에서 FX를 이끄는 존 랜드그래프(John Landgraf)식 구조다. 랜드그래프는 케이블 채널을 사실상 훌루(Hulu)의 콘텐츠 공급원으로 키우면서도 제작 현장에 남아 있는 길을 택했다. 블로이스 역시 엘리슨에게 직접 보고하는 라인과 더 많은 예산·자원을 확보해 HBO의 프리미엄 오리지널에 집중하고, 그 콘텐츠를 통합 스트리밍에 공급하는 그림이다. 엘리슨은 3월 월가 애널리스트 통화에서 “HBO는 HBO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플랫폼 전체의 운영과 편성 권한은 홀랜드가 쥐게 되고, 그가 신생 조직의 중심 구매자가 된다.
블로이스가 대중적 편성보다 정통 프리미엄에 무게를 둬 온 점은 이 구도에 힘을 싣는다. 디 앵클러는 그가 2024년 4월 실사판 '스쿠비 두(Scooby-Doo)' 시리즈 제작을 포기한 사례를 들었는데, 이 작품은 디즈니와의 입찰 경쟁 끝에 넷플릭스로 갔다.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맞서려면 가족 예능과 시트콤, 리얼리티가 필요한데 블로이스에겐 그런 대중 히트작이 없다는 취지로 회의적 시선을 전했다. 반면 홀랜드는 입사 후 CBS 중심의 남성 타깃 편성을 보완하는 여성 서사 드라마를 잇따라 그린라이트했고, 이용자 경험과 백엔드 기술 개선에 깊이 관여해 왔다. 한 임원은 홀랜드가 넷플릭스를 함께 키운 '테크 진영' 출신이라 지금 방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며, 창작자형인 블로이스보다 기술 관료적 절차를 다루는 데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예상 결과: 둘 다 생존 — 홀랜드가 플랫폼을, 블로이스는 더 많은 자원을 받아 프리미엄 영역을 지키는 그림.
스튜디오: 던지 대 스탭 대 투넬
두 번째 전선은 콘텐츠 공급의 심장인 스튜디오다. 엘리슨은 인수 후 파라마운트 텔레비전 스튜디오(Paramount Television Studios)를 부활시켜 매트 투넬(Matt Thunell)의 스카이댄스 텔레비전(Skydance Television) 아래로 합쳤다. 여기에 약 60편을 제작하며 CBS 방송망에 작품을 대는 데이비드 스탭(David Stapf)의 CBS 스튜디오(CBS Studios), 그리고 채닝 던지(Channing Dungey)가 이끄는 워너브러더스TV 그룹(Warner Bros. Television Group)이 더해지면서 '워너마운트(WarnerMount)'는 세 개의 대형 공급원을 갖게 된다. “승인이 떨어지는 순간 시계가 돌아간다.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길은 TV 스튜디오를 합치는 것”이라는 한 제작자의 진단이 분위기를 요약한다.
투넬의 영역에는 테일러 셰리든(Taylor Sheridan)이 만든 '매디슨(The Madison)', '털사 킹(Tulsa King)', '랜드맨(Landman)' 등 파라마운트의 핵심 IP가 포함돼 있다. 다만 셰리든이 2029년 NBC유니버설(NBCUniversal)로 옮긴다고 발표하면서 이 자산의 무게는 다소 줄었다.
그럼에도 투넬은 2022년 스카이댄스 합류 후 빠르게 부상한 인물이다. 그 이전에는 넷플릭스에서 홀랜드 밑의 오리지널 시리즈 담당 부사장으로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에 깊이 관여했다. 최근 더퍼 형제(Duffer brothers)가 두둑한 전속 계약으로 파라마운트에 합류한 점도 더해, 그는 'TV 스튜디오 3곳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던지의 워너TV는 HBO맥스('더 피트(The Pitt)')부터 애플(Apple)의 '테드 래소(Ted Lasso)', 넷플릭스의 '러닝 포인트(Running Point)', ABC의 '애벗 초등학교(Abbott Elementary)', 폭스(Fox)와 훌루에 이르기까지 업계 전반에 작품을 공급한다. 던지 역시 한때 넷플릭스에서 홀랜드의 영입으로 드라마 부문을 맡아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 같은 톱 쇼러너와 일했다. 엘리슨은 부채 부담을 고려해 워너가 외부 공급사로 계속 남아 핵심 매출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해 왔고, 세 스튜디오 모두 당분간은 현 체제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디즈니가 여러 스튜디오를 '20세기 텔레비전(20th Television)'으로 통합한 전례가 향후 비용 절감의 방향으로 거론된다.
세 사람을 가르는 변수는 나이와 비용이다. 업계 최장수 스튜디오 수장인 스탭은 계약 만료 시점에 은퇴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그렇게 되면 CBS 스튜디오는 투넬의 파라마운트TV로 흡수될 수 있다. 한 임원은 “엘리슨이 워너를 1~2년 별도로 두다가 합칠 것이고, 그때면 던지의 계약도 끝나 모든 게 투넬 아래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넬은 42세, 스탭은 70세에 가깝고, 던지는 60세를 바라본다. 경제적으로도 투넬이 가장 저렴하다.
예상 결과: 시간이 지나면 투넬.
선형 채널: 치크스 대 던지, 아니면 매각
세 번째 전선은 27개에 달하는 케이블 채널의 운명이다. 조지 치크스(George Cheeks)는 현재 파라마운트의 TV 미디어 부문 의장으로 MTV·코미디센트럴(Comedy Central)·BET·니켈로디언(Nickelodeon) 등을 관할한다. WBD 거래가 끝나면 TNT·TBS·디스커버리(Discovery)가 여기에 더해진다. 던지는 2024년 12월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의 측근 캐슬린 핀치(Kathleen Finch)가 떠난 뒤 WBD의 선형 자산을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쇠퇴하는 케이블 브랜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큰 그림은 아직 내보이지 않았다.
엘리슨 등장 이전 자슬라브의 구상은 케이블을 별도 회사로 분사하는 것이었다. NBC유니버설이 브라보(Bravo)를 제외한 케이블 브랜드를 묶어 '버선트(Versant)'로 떼어낸 방식이다. 그러나 엘리슨과 앤디 고든(Andy Gordon) 최고운영책임자는 3월 통화에서 현시점에 케이블 자산을 매각하거나 분사할 계획이 없으며, 상당수 채널의 브랜드는 스트리밍·디지털 환경에서 되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운영 주체로는 치크스를 사장(과거 제프 셸(Jeff Shell)이 맡았던 자리)으로 승진시키고, ABC 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지낸 던지에게 케이블 채널 전반을 맡기는 안이 거론된다. 한 에이전트는 “치크스는 유능한 사업가형 임원이고, 던지 같은 창작 자원을 적자 사업에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던지가 특정 나이에 회사를 떠나길 원하는 만큼, 쇠퇴 관리라는 달갑지 않은 역할을 맡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다수 취재원이 케이블 채널이 버선트나 바이런 앨런(Byron Allen) 측으로 넘어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버선트는 헐값 인수를 노리는 쪽이라, 헐값에 파느니 손실을 떠안고 자산 상각(write-off) 처리하는 편이 낫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에이전트의 냉소처럼 “할리우드에서 이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는 분위기다.
예상 결과: 판단 보류.
한국에 미치는 영향
이번 재편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구매자 수의 감소'다. 스튜디오 3곳이 장기적으로 1곳으로 수렴하고 두 개의 스트리밍이 하나의 대형 플랫폼으로 합쳐지면, K-콘텐츠를 사들이거나 공동제작할 의사결정 창구가 그만큼 줄어든다. 살 수 있는 곳이 넷플릭스·디즈니에 더해 '워너마운트' 한 곳으로 단순화될수록, 판매자인 한국 제작사·배급사의 협상 레버리지는 약해지고 가격·권리 조건은 매수자 우위로 기울 수 있다.
다만 인사 구도는 한국에 우호적인 신호도 담고 있다. 새 조직의 핵심으로 떠오른 홀랜드와 투넬은 모두 넷플릭스 출신으로, 글로벌·비영어권 콘텐츠를 적극 편성해 본 경험이 있다. 홀랜드가 플랫폼 전체의 편성 권한을 쥐고 대중적·글로벌 지향 편성을 강화한다면, 한국 드라마·예능이 들어갈 자리는 프리미엄에 집중하는 HBO 쪽보다 이 '대중 플랫폼' 쪽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790억 달러의 부채와 60억 달러 절감 압력은 양날의 칼이다. 비싼 오리지널 제작을 줄이고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라이선싱하는 쪽으로 기운다면, 완성도 높은 K-콘텐츠 카탈로그 판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엘리슨이 27개 케이블 채널을 스트리밍·디지털 환경에 맞게 되살리겠다고 밝힌 만큼, 이들 브랜드가 FAST(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채널 형태로 재편될 경우 저비용·대량 편성 수요가 생긴다. K-콘텐츠와 FAST 채널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협력 모델을 선제적으로 설계해 둘 여지가 있다.
관전 포인트는 시점이다. 거래가 3분기에 종결되고 규제 문턱을 넘으면, 통합 조직의 콘텐츠 구매 정책이 정리되기까지 1~2년의 과도기가 따른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 과도기 동안 누가 어떤 권한을 갖는지, 특히 홀랜드 라인과 투넬 라인을 추적하며, 단일화되는 구매 창구에 맞춘 패키징·파트너십 전략을 미리 다듬어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