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파라마운트-워너 합병 급제동…14일 임시중지명령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 12개 주 반독점 소송에 거래 종결 금지…8월 3일 예비금지 심리가 합병 성패 가른다
미국 연방법원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WBD)의 합병을 일단 멈춰 세웠다.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오클랜드)은 20일(현지시간) 두 회사가 거래를 종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14일간의 임시중지명령(TRO)을 내렸다.
12개 주 법무장관이 이 합병으로 기본 케이블과 극장 배급 시장의 경쟁이 훼손된다며 낸 반독점 소송에서, 법원이 본안 판단에 앞서 거래를 묶어 둔 것이다. 반독점 사건에서 예비금지명령 단계는 합병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곤 한다. 금지명령이 나오지 않으면 거래가 그대로 종결돼 되돌리기 어렵고, 반대로 금지명령이 내려지면 본안 심리 전에 합병이 무산되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라셀리 마르티네스-올긴(Araceli Martínez-Olguín) 판사는 지난 7월 17일 금요일 양측 심문을 거쳐 14일짜리 명령을 내놨다. 파라마운트는 앞서 7월 22일 전에는 거래를 종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시중지명령은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최장 28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 법원은 예비금지명령 심리를 8월 3일로 잡았으며, 양측이 합의하면 이 일정은 미뤄질 수 있다.
판사는 “원고 주(州)들이 최소한 본안에 관한 심각한 의문이 남아 있음을 소명했고, 이는 예비금지명령을 내리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라마운트가 9월 말까지는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판사는 “두 회사는 법원이 이 사건을 판단하는 동안 서로 경쟁하는 별개의 정상 기업으로 계속 운영될 것”이라며 “형평의 균형과 반독점 집행에 대한 공공의 중대한 이익을 함께 고려하면, 저울은 금지명령을 요청하는 쪽으로 뚜렷이 기운다”고 했다.
파라마운트는 이번 합병이 넷플릭스(Netflix), 아마존(Amazon) 같은 지배적 사업자에 맞설 더 강한 스트리밍 경쟁자를 만든다고 주장해 왔다. 판사는 이 논리를 각주에서 물리쳤다. 한 시장(스트리밍)에서 생기는 효율이 다른 시장(극장·케이블)의 경쟁 훼손을 상쇄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법원은 관련 시장의 경쟁과 무관한 경제적 효율을 내세운 항변을 거듭 배척해 왔다는 것이다.
소송을 이끈 롭 본타(Rob Bonta)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등 12개 주는 이번 합병이 케이블 프로그래밍 상위 3개 사업자 중 둘, 영화 배급 상위 5개 사업자 중 둘을 한데 묶어 기본 케이블과 극장 시장의 경쟁을 해친다고 본다. 본타 장관은 명령을 “이 초대형 합병이 끝내 성사되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의 첫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소수가 시장을 크게 좌우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더 적은 기회와 더 나쁜 상품·서비스로 돌아온다”며 “법이 우리 편에 있고 계속 주장을 펴 나가겠다”고 했다.
파라마운트는 반박했다. 회사는 A24와 아마존 MGM(Amazon MGM) 등 신규 사업자들의 약진을 들어 극장 시장이 주정부 주장보다 훨씬 경쟁적이고 역동적이라고 했다.
케이블TV 시장은 쇠퇴하고 있어 법원이 주정부 측의 시장 집중도 추정치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파라마운트 측 변호인 제프리 케슬러(Jeffrey Kessler)는 지난 7월 17일 금요일 심문에서 예비금지명령 심리 전까지 최장 30일간 거래를 종결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회사 대변인은 “법원의 신속한 결정에 감사한다”며 “이번 명령은 법원이 반독점 쟁점을 검토하는 동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 법무장관들의 반독점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합병은 합법적이고 경쟁을 촉진한다”면서 거래를 계속 강하게 방어하겠다고 했다.
파라마운트는 증인을 직접 출석시키는 심리를 요구하며 9월 초까지 금지명령에 대한 결정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9월 30일까지 거래가 종결되지 않으면 이후 하루 수백만 달러, 분기로는 약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원)를 워너 주주들에게 물기 시작한다. 거래를 서둘러 매듭짓게 만드는 압박이다.
이번 거래는 파라마운트를 이끄는 테크업계 거물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이 넷플릭스를 제치고 인수 경쟁에서 이긴 결과다.
부채를 포함해 약 1,110억 달러(약 153조원), 지분 가치로는 810억 달러 규모로 미디어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두 대형 영화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맥스·파라마운트+, CBS와 CNN을 비롯한 방송망이 한 회사 아래 묶인다.
파라마운트는 그동안 규제 심사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이 거래를 승인했고, 호주와 중국 규제 당국도 합병을 승인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심사는 남아 있으며,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해외 규제 기관 가운데 독자적으로 거래를 막는 명령을 낸 곳은 아직 없다.
이번 소송은 주정부들이 합병 저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흐름과 맞물린다. 지난 4월에는 여러 주가 방송사 넥스타(Nexstar)의 테그나(Tegna) 인수를 막는 금지명령을 받아냈으나, 그 거래는 이미 종결된 뒤였다.
한국 시장에 주는 영향과 메시지
파라마운트-워너의 결합은 한국 콘텐츠 업계에 양면적이다. 글로벌 판권 시장에서 대형 구매자가 하나로 합쳐지면 K-콘텐츠를 사들이는 창구가 줄고 구매자 쪽 협상력이 커진다. 반대로 HBO맥스와 파라마운트+가 한 지붕 아래 묶이면 K-드라마·영화가 한 번에 올라탈 수 있는 단일 창구의 규모는 커진다. 합병이 지연되는 동안에는 넷플릭스가 압도적 단일 창구인 현 구도가 더 이어진다.
이번 합병의 명분은 넷플릭스·아마존에 맞설 스트리밍 경쟁자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런 경쟁자가 실제로 자리를 잡으면 K-콘텐츠 판매자에게는 판로가 다변화되고 조건을 다툴 여지가 생긴다. 다만 미국 주정부들의 반독점 제동과 규제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그 시점은 뒤로 밀린다.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은 제작사·플랫폼일수록 이 지연의 영향이 크다.
미국 유료방송 침투율이 절반까지 내려온 흐름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유료방송 성장도 정체에 들어섰고 시청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FAST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대형 사업자들이 케이블 쇠퇴를 전제로 합병과 전환에 속도를 내는 만큼, 국내 방송·콘텐츠 사업자에게도 선형 편성 이후의 유통 경로를 앞당겨 설계하라는 신호가 된다.
규제의 메시지도 있다. 미국에서 주정부가 미디어 대형 합병에 직접 제동을 걸고, 법원이 스트리밍의 효율 논리를 극장·케이블 시장의 경쟁 훼손과 분리해 판단한 대목은 티빙·웨이브 통합 논의처럼 국내에서 이어지는 미디어 결합과 이를 심사할 공정 당국에도 참고점이 된다.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거래도 다른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국 업계로서는 넷플릭스 한 곳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 구매자와 유통 창구를 넓히는 일이 더 급해졌다.
미국의 재편이 어떻게 끝나든 글로벌 대형 플랫폼의 수는 줄고 몸집은 커지는 방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직접 유통과 자체 채널로 협상 지렛대를 미리 확보한 사업자가 그 국면에서 유리한 자리에 선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Judge Temporarily Blocks Paramount-Warner Deal”, Joe Flint, 2026.7.20 https://www.wsj.com/business/media/judge-temporarily-blocks-paramount-warner-deal-a9c6af43
액시오스(Axios), “Federal judge pauses Paramount Skydance-WBD merger”, Sara Fischer, 2026.7.20 https://www.axios.com/2026/07/20/paramount-skydance-warner-merger-paused
뉴욕타임스(NYT), “Judge Temporarily Pauses Paramount-Warner Bros. Deal”, David McCabe, 2026.7.20 https://www.nytimes.com/2026/07/20/business/media/paramount-warner-bros-deal.html
버라이어티(Variety), “Judge Pauses Paramount-Warner Bros. Merger”, Gene Maddaus, 2026.7.20 https://variety.com/2026/film/news/judge-paramount-warner-bros-merger-tro-1236815048/
거래 규모·구조: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보도자료(2026.2.27), 로이터(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