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가 본진이 됐다… 스트리밍, 숏폼·마이크로드라마를 ‘수익 포맷’으로

넷플릭스·디즈니·폭스·NBC유니버설, 앱 안에 세로 영상 심고 오리지널 발주… 발견·유통·수익의 무게중심이 짧은 화면으로 이동한다

세로 영상은 더 이상 스트리밍의 외부 위협이 아니다. 넷플릭스(Netflix)·디즈니(Disney)·폭스 엔터테인먼트(Fox Entertainment)·NBC유니버설(NBCUniversal)이 숏폼과 마이크로드라마를 자사 앱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포맷 자체가 스트리밍 전략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동력은 둘이다. 하나는 시청 시간의 이동으로, 젊은 층의 하루가 틱톡(TikTok)·유튜브(YouTube)·릴스(Reels) 같은 세로 피드 위에서 흐르며 영상 소비의 출발점이 홈 화면 추천에서 무한 스크롤로 옮겨갔다. 다른 하나는 ‘발견의 위기’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가입자를 다음 작품으로 이어 붙이는 일이 제작 못지않은 과제가 됐고, 짧은 세로 클립이 그 연결고리로 떠올랐다. 여기에 1~2분 에피소드를 수십 편씩 쌓아 결제와 광고를 붙이는 마이크로드라마의 단가 구조가 더해지며, 숏폼은 마케팅 수단을 넘어 독립 수익 포맷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왜 지금, 세로인가

무게중심이 세로로 옮겨가는 1차 배경은 시청 시간의 이동이다. 모바일에서 자란 시청층은 ‘무엇을 볼지’ 정한 뒤 켜는 대신, 피드를 넘기다 걸리는 영상에 멈춘다. 시청의 출발점이 편성표나 홈 화면 추천이 아니라 무한 스크롤로 옮겨가면서, 영상 사업의 첫 접점을 세로 피드가 가져갔다.

2차 배경은 발견의 위기다. 작품이 넘쳐날수록 가입자를 다음 콘텐츠로 이어 붙이는 일이 곧 시청 시간과 해지율을 가른다. 카탈로그가 깊어질수록 ‘무엇을 보여줄까’가 경쟁의 변수가 됐고, 짧은 세로 클립은 이 빈틈을 메우는 발견 표면으로 떠올랐다. 디즈니가 자사 세로 허브 버츠(Verts)에 워치리스트 저장과 즉시 재생을 붙인 것도, 발견에서 시청까지의 거리를 한 번의 탭으로 줄이려는 설계다.

3차 배경은 단가 구조다. 마이크로드라마는 1~2분 에피소드를 50~100여 편씩 쌓아 클리프행어로 다음 회차를 부른다. 전용 앱들이 회차 단위 과금과 광고로 키워 온 이 포맷은 제작비 대비 회전이 빠르고, 시청 세션을 잘게 쪼개 광고 단위를 늘리기에 유리하다. 숏폼이 단순 티저를 넘어 별도 매출 포맷으로 다뤄지는 이유다.

경쟁자에서 ‘포맷’으로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한때 숏폼을 시청 시간을 빼앗는 경쟁자로만 봤지만, 지금은 같은 포맷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액시오스(Axios) 인터뷰에서 미국 컨설팅사 액티베이트(Activate)의 마이클 울프(Michael Wolf) 최고경영자(CEO)는 소셜 플랫폼도 스트리밍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틱톡이든 스냅이든 메타든 유튜브든 그들도 스트리밍 서비스다. 숏폼이지만 차이는 없다. 사람들이 보고 있다.”  — 마이클 울프(Michael Wolf) 액티베이트 CEO, 액시오스

측정 방식의 변화도 같은 맥락을 가리킨다. 컴스코어(Comscore)의 타라 가치(Tara Gotch) 상업부문 부사장은 선형 TV나 스트리밍 데이터만 들여다보면 시청 성장의 전체 그림을 놓친다고 지적했다. 간판 프로그램이 전통 TV에서는 시청률이 빠지는 동시에 디지털 유통 경로에서는 시청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한 작품의 진짜 힘은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통합 도달에서 드러난다는 의미다.

“한 걸음 물러나 모든 플랫폼의 중복 제거 도달을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 타라 가치(Tara Gotch) 컴스코어 부사장, 액시오스

앱 안으로 들어온 세로 영상… 디즈니 ‘버츠’의 설계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자사 앱 안에 세로 영상 경험을 직접 구축하고 있다. 디즈니+ 익스플로어(Explore) 자료에 따르면, 디즈니는 지난해 ESPN 앱에서 시작한 버츠를 올해 디즈니+로 확장했다. 영화와 시리즈의 인상적인 장면을 짧은 세로 클립으로 넘겨 보며 다음에 볼 작품을 고르는 ‘스트리밍 전 맛보기(try-before-you-stream)’ 기능이다. 모바일 전용으로 설계됐고, 앱 하단 내비게이션 바의 ‘버츠’ 아이콘으로 진입한다. 출퇴근 지하철이나 잠들기 전처럼 짧은 자투리 시간에 무엇을 볼지 탐색하도록 동선을 짰다.

단순 티저에 머무르지 않고 곧장 행동으로 잇는다는 점이 설계의 핵심이다. 클립을 보다 끌리면 전체 영화·에피소드를 바로 재생하거나, 워치리스트(Watchlist)에 담아 나중에 보거나, 지인에게 작품을 공유할 수 있다. 번들 가입자에게는 디즈니+ 안의 훌루(Hulu on Disney+) 콘텐츠까지 노출된다. 주토피아 2(Zootopia 2), 데어데블: 본 어게인(Daredevil: Born Again),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Percy Jackson and the Olympians) 같은 신작·인기작이 클립으로 돌아간다. 작품 발견(discovery)을 외부 소셜이 아닌 자사 앱 안에서 끝내려는 시도다.

넷플릭스도 같은 방향이다. 모바일 앱에 ‘클립스(Clips)’ 피드를 도입했고, 넷플릭스는 이를 두고 끝없는 스크롤 없이 다음에 무엇을 보거나 즐길지 결정하도록 돕는 맞춤형 하이라이트라고 설명했다(버라이어티 보도). 기술 인프라도 세로 전환을 뒷받침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라이브와 주문형 영상을 세로 포맷으로 변환하는 도구를 내놨고, 폭스 스포츠(Fox Sports)와 NBC유니버설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제작 단계가 아니라 유통 단계에서 기존 자산을 세로로 재가공하는 경로가 열린 셈이다.

‘세로 오리지널’ 발주, 스트리밍 본진으로

기존 라이브러리를 잘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모바일 시청을 겨냥한 오리지널 숏폼 발주가 본격화됐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텔레비사유니비전(TelevisaUnivision)의 비스 마이크로스(ViX MicrOs)는 지난해 출시 이후 누적 10억 뷰를 넘겼다. 광고영업 책임자 존 코잭(John Kozack)은 최다 시청작 ‘El Regreso de la Heredera Fugitiva’가 1억6000만 뷰 이상을 기록했고 시청량이 분기 대비 48% 늘었다고 밝혔다. 검증된 수요가 대형 사업자의 발주를 끌어내는 구도다.

중심에는 ‘마이크로드라마(microdrama)’가 있다. 1~2분짜리 세로 에피소드 수십 편(보통 50~100여 편)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연속극 형식으로, 리얼쇼트(ReelShort) 같은 전용 앱이 키워 온 포맷이다. 피콕(Peacock) 블로그에 따르면 NBC유니버설은 올여름 이를 두 갈래로 들인다. 먼저 브라보(Bravo) 인물을 내세운 비대본(unscripted) 오리지널 ‘Campus Confidential: Miami’와 ‘Salon Confessionals with Madison LeCroy’를 선보인다. 피콕은 보도자료에서 이를 두고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주요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플랫폼이 발표한, 빠르게 성장하는 이 포맷의 첫 공식 오리지널이다.”  — 피콕 보도자료

대본형 라인업도 함께 들어온다. 리얼쇼트가 제작한 작품으로, 호텔 체인 상속녀가 청소부로 위장하는 81부작 로맨스 ‘Do Not Disturb: Lady Boss in Disguise’, 운명의 연인과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60부작 판타지 ‘Fated to My Forbidden Alpha’, 하룻밤 인연으로 임신한 대학생을 그린 65부작 청소년물(YA) ‘Straight A Pregnancy’ 등 멜로·로맨스·판타지·YA 장르가 망라된다. 시청자는 피콕 앱에서 휴대폰을 세로로 든 채 전용 레일(rail)에서 작품을 고른다. 마이크로드라마 배우 서배나 코피(Savannah Coffee)는 미국 NBC ‘투데이(TODAY)’ 인터뷰에서 포맷의 흡인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포맷은 소셜 미디어와 너무 비슷해서, 우리는 팬들과 훨씬 더 친밀해진다.”  — 서배나 코피(Savannah Coffee), NBC ‘투데이’

폭스의 베팅… 다르 만·할리워터 생태계

포맷에 가장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곳은 폭스 엔터테인먼트다. 버라이어티(Variety, 1월 26일·토드 스팽글러) 보도에 따르면 폭스는 유튜브 대형 크리에이터 다르 만(Dhar Mann)이 세운 다르 만 스튜디오(Dhar Mann Studios)와 다년 계약을 맺고 ‘서사 중심’ 세로 시리즈 40편을 발주했다. 작품은 폭스가 지난해 지분을 투자한 마이크로드라마 플랫폼 할리워터(Holywater)를 위해 제작되며, 할리워터의 마이 드라마(My Drama) 앱에서 독점 공개된 뒤 폭스 엔터테인먼트 글로벌이 전 세계 유통을 맡는다.

다르 만 스튜디오는 2018년 설립 이후 유튜브 등에서 1억6300만 명 이상의 팔로워와 누적 200억 뷰를 쌓았고,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12만5000제곱피트 규모의 3개 스테이지 제작 시설을 운영한다. 만은 이번 협업에서도 콘텐츠 소유권과 창작 자율성을 유지한다. 롭 웨이드(Rob Wade) 폭스 엔터테인먼트 CEO는 계약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다르 만의 스토리텔링 역량과 열성 팬층이 그를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로 만들었다.”  — 롭 웨이드(Rob Wade) 폭스 엔터테인먼트 CEO, 버라이어티

베팅은 한 건의 계약에 그치지 않는다. 폭스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는 할리워터를 위해 별도로 오리지널 마이크로드라마·세로 시리즈 200편을 제작 중이고,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인재·크리에이터와의 협업도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기반을 둔 할리워터는 최근 2200만 달러 규모의 최대 투자를 유치했다. 보그단 네스빗(Bogdan Nesvit)·아나톨리 카샤노프(Anatolii Kasianov) 할리워터 공동 CEO는 이번 협업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글로벌 크리에이터와 정상급 인재를 세로 스토리텔링으로 끌어들이는 더 큰 전략의 첫걸음이다.”  — 보그단 네스빗·아나톨리 카샤노프 할리워터 공동 CEO, 버라이어티

전용 앱이 만든 포맷을, 레거시 미디어가 자본과 지식재산(IP), 글로벌 유통망으로 빨아들이는 구도다. 제작·플랫폼·유통을 한 묶음으로 쥐려는 수직 통합 전략이 세로 영역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한눈에 보는 ‘세로 베팅’

사업자·플랫폼

움직임

핵심 수치

ViX MicrOs(텔레비사유니비전)

오리지널 마이크로 콘텐츠

누적 10억 뷰·분기 48%↑, 최다작 1.6억 뷰

Peacock(NBC유니버설)

브라보 비대본 + 리얼쇼트 대본형

올여름 출시, 주요 스트리밍 첫 공식 오리지널

Fox Entertainment

다르 만 40편 + 자체 200편 제작

할리워터 지분 투자·글로벌 유통 관할

Dhar Mann Studios

세로 서사 시리즈 제작

팔로워 1.63억·누적 200억 뷰

Holywater(My Drama)

세로 전용 플랫폼

2200만 달러 투자 유치

Disney+ Verts·Netflix Clips

앱 내 세로 발견 피드

모바일 전용·워치리스트 연동

자료: 액시오스·버라이어티·피콕·디즈니+ 종합

양방향 수렴… 플랫폼은 ‘TV’로 간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소셜 플랫폼도 전통 엔터테인먼트 포맷과 디바이스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튜브는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글로벌 중계권을 확보했고, 틱톡과 스냅챗(Snapchat)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자체 시상식을 열었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은 릴스 전용 TV 앱을 출시했다.

인재와 작품 차원의 교차도 진행 중이다. 배우 이사 레이(Issa Rae)가 설립한 후래 미디어(Hoorae Media)는 틱톡과 독점 마이크로 시리즈를 만들고, 다르 만은 폭스와 마이크로드라마를 협업한다. 넷플릭스는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와 손잡고 ‘The Breakfast Club’, ‘My Favorite Murder’ 같은 비디오 팟캐스트를 유통하며 크리에이터 포맷으로 영역을 넓혔다. 프리미엄과 크리에이터, 양쪽이 서로의 문법을 흡수하고 있다.

쟁점: 잠식이냐 깔때기냐

핵심 질문은 세로가 본편 시청을 잠식하느냐, 아니면 본편으로 끌어들이는 깔때기 역할을 하느냐다. 지금까지의 신호는 깔때기 쪽을 가리킨다. 영화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와 틱톡이 공동으로 내놓은 조사에서는 앱 내 화제성이 높아질수록 극장 박스오피스 성적도 함께 오르는 흐름이 확인됐다(액시오스). 디즈니가 버츠 클립에서 곧장 워치리스트·재생으로 연결한 동선도 같은 가정 위에 서 있다.

다만 변수가 남는다. 피드 안에서 붙잡은 주의가 본편 시청이나 결제로 이어지지 않으면, 세로는 시간 점유에 그칠 수 있다. 프리미엄 스트리밍이 늑대인간 로맨스 마이크로드라마와 같은 화면에 놓일 때 브랜드 정체성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과제다. ‘1뷰’의 정의도 흔들린다. 2분짜리 마이크로드라마 1회 시청과 50분짜리 본편 1편 시청을 같은 단위로 셀 수 없는 만큼, 통합 도달이라는 지표 자체가 새로운 측정 표준을 요구한다.

전망과 국내 과제

TV가 틱톡을 닮고 틱톡이 TV를 닮아가면서, 프리미엄과 크리에이터를 가르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포맷이나 길이, 화면 방향이 아니라 ‘어디서 발견되고 얼마나 도달하느냐’가 콘텐츠 경쟁력의 새로운 잣대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발견은 두 갈래로 굴러간다. 디즈니 버츠처럼 발견을 자사 앱에 내재화하는 길과, 틱톡·릴스를 외부 발견 엔진으로 활용하는 길이 동시에 진행된다.

국내 사업자에게도 함의가 적지 않다. 1~2분 세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끊어 가는 마이크로드라마는 회차형 연재와 웹툰·웹소설 서사에 강한 한국 콘텐츠와 결이 맞는다. IP 공급원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구조적 강점을 쥐고 있는 셈이다. 관건은 세 가지 층위다. 첫째, 세로 오리지널을 자체 제작할 역량과 단가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둘째, 토종 OTT·FAST 채널 안에 발견 동선을 심어 가입자를 본편과 광고로 잇는 설계다. 셋째, 할리워터 사례처럼 포맷을 글로벌로 실어 나르는 유통 레이어에서 한국이 공급자에 머물지, 플랫폼을 직접 쥘지를 가르는 선택이다.

콘텐츠·기술·유통이 따로 움직이면 세로 전환의 과실은 플랫폼을 쥔 쪽으로 흘러간다. 한국 미디어가 제작 경쟁력에 더해 발견 표면과 글로벌 유통 창구를 함께 설계할 때, 짧은 화면으로 옮겨가는 무게중심을 기회로 돌릴 수 있다.

출처

· Axios, “Streamers go vertical with short-form video” (Kerry Flynn)

· Axios, “Hollywood wants to be TikTok. TikTok wants to be TV” (Kerry Flynn, 2026.4.18)

· Disney+ Explore, “Verts On Disney+: A New Way To Discover What To Watch Next” (2026.4.1)

· Peacock, “Microdramas Are Coming to Peacock This Summer” (peacocktv.com/blog)

· Variety, “Fox Entertainment Inks Deal With Dhar Mann Studios…” (Todd Spangler, 2026.1.26)

· NBC ‘TODAY’ (Savannah Coffee 인터뷰, 20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