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전 장르가 꺾였다, 스포츠만 빼고

거의 모든 논픽션 장르가 2024→2025년 동반 하강하는데 스포츠만 우상향 — 라이브 동시 시청과 ‘선수=크리에이터’ 구조가 성장 동력

범죄, 여행, 음식·요리 등 주요 논픽션 장르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스포츠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만이 예외적으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자체가 아니라 선수의 일상과 배경, 서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이른바 ‘숄더(shoulder) 콘텐츠’가 중계의 보조물을 넘어 독립적인 콘텐츠 축으로 자리 잡은 영향이다.

시청 행태가 파편화된 환경에서도 스포츠는 여전히 대규모 동시 시청을 견인하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 기능하고 있으며, 여기에 선수 개인이 경기장 밖에서 팬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유인이 맞물리며 관련 콘텐츠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 결과 스포츠 IP는 경기 중계에 국한되지 않고 전후 맥락과 인물 서사를 포괄하는 확장형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여름 시즌은 스포츠 콘텐츠의 확장성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구간이다. 6월 중순 NBA 파이널과 스탠리컵(Stanley Cup) 플레이오프가 종료되자마자 월드컵 등 글로벌 이벤트가 연이어 이어지며 대형 스포츠 수요의 공백이 사실상 사라진다. 그러나 스포츠의 존재감은 단순한 경기 편성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계 전후를 둘러싼 선수의 서사와 일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 이른바 ‘숄더 콘텐츠’가 플랫폼 전반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중계와 결합된 핵심 소비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HBO 맥스(HBO Max)가 최근 내놓은 5부작 〈U.S. Against the World〉가 그 전형이다. 미국에서 축구를 잘 몰라 월드컵을 즐기기 어려운 시청자를 겨냥해, 미국 대표팀의 맥락과 인물을 경기 전에 먼저 깔아주는 입문서다.

이 기간의 변곡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건, 스포츠만 잘 나가서가 아니라 나머지 거의 모든 소재가 동시에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루미네이트(Luminate)가 집계한 2019~2025년 비픽션 장르별 편수를 펼쳐놓고 보면, 그래프의 방향은 한쪽만 가리킨다. 범죄, 음식·요리, 홈 메이크오버, 직장물 같은 주력 포맷은 2021~2022년을 피크로 찍은 뒤 줄곧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고, 2024년에서 2025년 사이에는 장르별 막대가 한꺼번에 꺾이는 모습이 뚜렷하다.

한때 테이블을 가장 두껍게 채웠던 음식·요리는 2022년 약 170편 수준에서 2025년 70편대까지, 절반을 훌쩍 넘는 낙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범죄물도 130편대 후반에서 80편대로 내려앉았고, 홈 메이크오버는 120편 안팎에서 40편대로 쪼그라들었다. 직장물 역시 90편대 후반에서 50편대 수준으로 줄며, 한때 OTT와 케이블의 ‘안전한 카드’로 불리던 포맷들이 동시에 체중 감량을 강요당하는 형국이다.

이 전반적인 하강 국면에서, 궤적을 정반대로 그리는 칸이 하나 있다. 스포츠다. 2019년 20편대에서 출발한 스포츠 관련 타이틀 수는 해마다 계단을 밟듯 늘어났고, 2024년에서 2025년 사이에도 60편대 중반에서 70편대 초반으로 오히려 한 칸 더 올라섰다. 모든 장르가 같은 해에 고개를 숙이는 사이, 그래프에서 유일하게 오른쪽 위를 향하는 선이 스포츠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플랫폼이 줄이는 것과 늘리는 것을 숫자로 나눠놓고 보면, “불황기에도 예외적으로 확장하는 비픽션 영역”이 어디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 2019~2025년 논픽션 장르별 연간 편수. 대부분 장르가 2024→2025년 하락한 가운데 스포츠만 늘었다.  (자료: 루미네이트 필름&TV / Luminate Film & TV)

성장과 침체를 가른 것은 결국 제작 환경의 정상화다. 2020~2022년 스트리밍 경쟁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 제작비가 낮고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언스크립티드는 라이브러리를 불리는 가장 손쉬운 옵션이었다. 그때 쏟아낸 물량이 2023년 이후 스트리머들의 비용 통제 기조와 만나면서 급격히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범죄·요리·여행처럼 언제든 더 찍어낼 수 있는 소재일수록 칼날은 더 깊게 들어갔다.

이 조정 국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축이 스포츠 숄더 콘텐츠다. 여전히 대규모 동시 시청을 만들어내는 라이브 경기라는 핵심 자산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콘텐츠는 TV 편성 한 번으로 소진되지 않는다. 선수의 소셜 비디오, 팟캐스트,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확장되며 별도의 오디언스와 수익원을 겹겹이 만든다. 한 편의 제작비를 한 번의 방송으로 회수하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접점을 통해 길게 우려내는 구조라는 점에서 다른 언스크립티드와 결이 다르다.

이 회복력의 원천을 두고 웨이브 스포츠+엔터테인먼트(Wave Sports + Entertainment) 최고콘텐츠책임자 맥 소버린(Mack Sovereign)은 〈In the Lab With Luminate〉 팟캐스트에서 “시청자 결집력”을 짚었다. 취향이 끝없이 파편화되는 미디어 환경에서도 스포츠는 여전히 큰 규모의 시청자를 한데 모으는 장르라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는 여전히 공동체적 사건이고, 경기에 깊이 빠진 사람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웨이브가 스포츠를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키운 배경도 여기에 있다. TV 중계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소셜 비디오와 팟캐스트까지 스테이지를 넓혔고, 농구 스타 폴 조지(Paul George)와 카멜로 앤서니(Carmelo Anthony), NHL의 매슈·브래디 트카척(Matthew·Brady Tkachuk) 형제를 전면에 세워 선수 IP를 전면화했다. 관건은 결국 인물과 콘텐츠의 궁합이다. 코트와 링크 위에서 아무리 빛나도 그 바깥에서까지 서사와 캐릭터를 유지하는 선수는 따로 있다. 소버린은 다만, 경기 밖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선수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전한다. 이미 흥행과 수익 모델이 검증됐고, 경기 밖에서 팬과 쌓는 친밀도의 가치가 드러나면서 이 영역을 향한 선수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설명이다.

같은 논리는 한국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계권 가치가 오르고, OTT들이 메인 화면에 스포츠를 전면 배치하는 흐름 속에서 경기 주변의 서사—선수의 일상, 라커룸, 시즌 다큐—는 더 이상 중계의 부속물이 아니다. 별도의 IP 층위로 분리돼 편성·유통·광고 판매 전략의 중심으로 올라오고 있다. 선수가 자신의 채널로 직접 팬을 모으는 시대에 숄더 콘텐츠는 권리 보유자와 선수 양쪽 모두에게 새로운 수익 표면을 만들어준다.

스포츠 IP의 가치는 종료 휘슬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경기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분리 가능한 수익원으로 독립하면서, 선수는 점점 자신의 오디언스를 직접 거느리는 크리에이터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스포츠 숄더 콘텐츠는 단순한 중계의 곁다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재규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