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 수출에서 생태계 조성으로…AI 시대 넥스트 한류 프레임 제안”
- “한·싱 AI·콘텐츠 기업 공진화, 동남아·미국까지 잇는 다자 협력 모델 구상”
- “CES·SXSW·BIFF·에든버러, ‘엔터테크’ 글로벌 테스트베드로 삼는 로드맵 제시”
AI 시대 K-콘텐츠의 다음 도약은 더 이상 '한국 혼자' 만들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대통령직속 국가AI위원회 위원·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는 21일 서울 종로구 KOCCA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IMDA Korea Learning Trip 2026’ 개막 워크숍에서, 한류의 지속가능성은 ▲아시아 파트너와의 공진화(Co-evolution)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이 결합된 엔터테크(EnterTech) 혁신 ▲정부의 시장 중심 지원이라는 세 축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AI 시대에는 이러한 구조를 한국 단독이 아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과 공동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구조’다. K-콘텐츠가 지난 20여 년간 단일 아이돌과 드라마의 흥행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네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작동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①한국적 특수성과 글로벌 보편성의 결합, ②창작자와 혁신가의 역량, ③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④소셜미디어 기반 팬덤이 그것이다.
여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이어져 온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support without interfering)’는 문화정책 원칙이 더해지며 시장 중심의 혁신을 뒷받침해 왔다.
고 교수는 이러한 구조가 AI 시대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국 단독이 아닌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엔터테크 생태계를 공동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rea itself is Content"…수출 141.7억 달러, 매출 157조 원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특강 서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곡 ‘Aliens’ 가사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을 인용하며 K-콘텐츠가 도달한 현재 지점을 상징적으로 짚었다. 한국의 역사와 정서, 언어가 영어 가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이것이 글로벌 팬덤에 의해 소비되는 현상 자체가 한류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제 한류는 특정 장르의 해외 진출을 넘어, 국가 자체가 콘텐츠화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수치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콘텐츠산업조사’(2026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157조 4,021억 원, 수출액은 141억 7,543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매출 5.2%, 수출 10.2%로, 특히 수출 증가 속도가 두드러졌다. 고 교수는 “한국 경제는 전통적으로 상품 수출 중심 구조였으나, 한류 확산을 계기로 서비스 수출 경쟁력이 빠르게 강화되며 경제 성장에 구조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수요 확대에 따라 콘텐츠 공급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기반 구독형 OTT(SVOD) 플랫폼의 로컬 오리지널 제작 편수에서 한국은 2022년 약 38편, 2023년 46편, 2024년 60편으로 꾸준히 증가하며 주요 국가 가운데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 일본, 스페인 등과 비교해도 증가 속도 자체가 현격히 빠르다. 이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에 대해 자본 투자와 지식재산권(IP) 확보를 지속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적 위상 역시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고 교수는 “BBC는 한국이 에미상,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토니상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4대상을 모두 석권한 ‘EGOT’ 국가로 평가했다”며 “이는 장르 단위의 성공을 넘어 국가 단위 브랜드 경쟁력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EBS 뉴스의 표현처럼 이제는 ‘한국 그 자체가 콘텐츠’인 시대”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소비자 인식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해외 30개 지역 K-콘텐츠 경험자 2만6,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 1위는 K-팝(17.5%)이었으며, 이어 한국 음식(12.1%), 드라마(9.5%), 뷰티·화장품(6.2%), 영화(5.9%)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콘텐츠와 식품·뷰티·패션 등 이른바 ‘K-브랜드’가 결합된 복합적 국가 이미지가 글로벌 시장에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와 식품 기업 농심의 협업, 패션 매거진 ELLE의 ‘How K-Beauty Took Over The World’ 시리즈 등은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K-콘텐츠는 이제 개별 장르를 넘어 산업과 브랜드, 국가 이미지를 통합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류 20년 궤적…"정부가 시장 혁신을 뒷받침했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한류가 왜 이렇게 커졌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류 20여 년의 궤적을 구조적으로 짚었다.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중국 수출을 시작으로, 2001년 가수 보아의 일본 진출, 2003년 「겨울연가」, 2005년 「대장금」, 2012년 싸이 「강남스타일」, 2013년 「별에서 온 그대」, 2016년 「태양의 후예」, 2019년 BTS의 글로벌 스타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2021년 「미나리」 수상까지—한류는 ‘중국 → 일본 → 동남아 → 남미 → 전 세계’로 확산되는 뚜렷한 지리적 궤적을 그려 왔다.
그는 “이 궤적은 개별 콘텐츠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한류 확산을 가능하게 한 정책적 기반을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에서 찾았다.
김대중 정부(1998~2003)에서는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을 통해 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공식 규정했고, 2001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전신 조직이 출범했다. 2004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는 국내 대중문화 산업을 외부 경쟁에 노출시켜 체력을 키운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노무현 정부(2003~2008)는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정책을 토대로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초예술과 대중문화 산업의 균형 발전을 추구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계기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1998~2003)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으로 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공식 규정
2001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전신 조직 출범
1998년 일본 문화 개방—내수 시장을 경쟁에 노출시켜 체력을 길렀다는 점이 핵심
노무현 정부(2003~2008)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정책 위에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 육성
기초예술과 대중문화 산업의 균형 발전 정책
2007년 한미 FTA를 통한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화 기반 확보
고 교수는 “한국 정부의 콘텐츠 산업 성공 공식은 ‘지원은 하되 창작 현장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있었다”며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정부는 시장 혁신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학자 이장우 교수의 ‘K-pop Innovation 모멘텀’ 프레임을 인용해 K-콘텐츠 성공의 네 기둥으로 ▲한국적 특수성과 글로벌 보편성 ▲창작자·혁신가 네트워크 ▲IT 기술·인프라 활용 ▲소셜미디어와 팬덤을 제시했다.
그는 “이 네 축이 동시에 작동했기 때문에 한류는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정책, 창작, 기술, 팬덤이 맞물리는 구조를 유지·업그레이드할 때 AI 시대에도 한류의 성장 모멘텀을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만 이어질 수는 없다"…한류 부정 인식과 #SEAbling
한류의 성공 서사 뒤편에서는 구조적 경고등도 함께 켜지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은 2021년 30.7%에서 2025년 37.5%까지 상승했다.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48.2%에서 20.4%로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류 외연이 확대될수록 피로감과 반작용도 동시에 증폭되고 있다는 신호다.
고 교수가 이날 제시한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동남아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 중인 ‘한국 제품 사지 말자’ 연대 불매 움직임, 이른바 ‘#SEAbling(Southeast Asian siblings)’ 해시태그다.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 동남아 네티즌들이 K-제품과 K-엔터 산업에 대한 불만을 국경을 넘어 공유하며,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느슨한 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양상이다.
고 교수는 이 현상을 “동남아가 더 이상 일방적인 ‘수용 시장’이 아니라, 자국 콘텐츠 산업과 소비 주권을 주장하는 대등한 파트너이자 규범 행위자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수출 중심 일방향 모델만으로는 다음 10년을 버티기 어렵다”며 “공동 기획·공동 제작·공동 IP 소유 등 구조 자체의 재설계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콘텐츠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이며, 지금 기술의 이름은 AI”라고 규정한 고 교수는 “K-콘텐츠의 다음 무대는 AI를 어떻게 내재화하고, 파트너 국가와 어떤 규칙을 함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AI 도입이 아니라, 제작·유통·팬덤 분석·저작권 관리 전 과정에 AI를 심는 동시에, 아시아 파트너와 공진화하는 거버넌스를 수립해야 한류의 ‘좋은 시절’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 '엔터테크(EnterTech)'
고 교수는 이어 본인이 지난해 출간한 저서 『넥스트 한류(Next Hallyu)』의 핵심 개념인 '엔터테크'를 소개했다.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결합"으로 정의되는 이 개념은, AI 시대 콘텐츠 혁신이 기존의 장르·플랫폼 문법을 벗어나 기술 기반 재설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프레임이다.
글로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IntellicoWorks 분석(2026.3)에 따르면 미디어·엔터 영역에서 AI 적용은 ▲콘텐츠 개인화 ▲게임 디자인·각색 ▲AI 생성 음악 ▲3D 아바타·VFX ▲딥페이크 대응 ▲자동화 저널리즘 ▲비주얼 이펙트 고도화 ▲프로액티브 게임 어시스턴스 등 최소 8개 영역에서 동시 진행형이다. Codewave가 선정한 2026 Top 10 AI 적용 산업에서도 미디어·엔터, 미디어·컴플라이언스, 교육, 리테일·이커머스가 전면에 올랐다.
한국 내 사례도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다. 2025년 KSPO 돔에서 3일간 열린 'Dash: Quantum Leap in Seoul' 투어는 실물 아이돌 공연과 동일한 티켓 파워를 증명했다. 뒤이어 MBC 출신 크리에이터 조합에서 나온 블래스트 등 버추얼 IP들이 잇따르고 있다. "K-콘텐츠는 이제 실사-애니-AI 생성의 경계 자체를 허무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고 교수의 평가다.
정책적 뒷받침도 빠르게 정비 중이다. 대통령직속 국가AI위원회가 2026년 확정한 'AI Action Plans'의 비전은 "Leap to Global AI Top 3 Powerhouse(G3)"다. 네 가지 원칙(인간 중심 포용 AI, 민관 원팀, AI 네이티브 관점, 균형 발전) 아래 12개 액션 플랜이 구성됐는데, 이 중 9번 'Our Culture Enjoyed by the World—AI-Based Cultural Powerhouse' 항목이 K-콘텐츠와 AI의 공식 결합 지점이다. 고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AI 기반 창작 생태계 활성화 ▲AI 전환을 통한 K-콘텐츠 산업의 지속 성장 ▲K-콘텐츠와 K-AI의 동시 세계 진출이라는 세 방향을 공식화했다.
'공진화(Co-evolution)'…다음 한류를 푸는 열쇠
그렇다면 엔터테크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전략은 무엇인가.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가 이날 특강 전체를 관통해 반복한 답은 바로 '공진화(Co-evolution)'였다. 생물학 개념에서 차용된 이 용어는 서로 다른 종(種)이 상호작용하며 함께 진화한다는 뜻으로, 고 교수는 이를 한국 콘텐츠·AI 산업이 아시아·미국 파트너와 맺어야 할 관계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했다. 단순히 콘텐츠를 일방향으로 수출하는 구조가 아니라, 파트너 국가의 플랫폼·인재·정책과 함께 성장하는 개방형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 사례는 이미 2026년 상반기 여러 무대에서 실증되고 있다.
① CES 2026 — 'Next K-Wave EnterTech Forum'
1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열린 'Next K-Wave EnterTech Forum'은 공진화 전략이 국제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제시된 출발점이었다. 이 포럼에서 K엔터테크허브가 주최를 맡고, 고삼석 교수와 미국 싱클레어 방송그룹(Sinclair Broadcast Group) 기술부문 대표 델 파크스(Del Parks) 등이 주요 연사로 나서 한·미 엔터테크 얼라이언스 구상을 공유했다. 고 교수는 기조연설 ‘공진화(Co-evolution): 넥스트 K-웨이브 이니셔티브’를 통해 OTT·AI 플랫폼·콘텐츠 제작자·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생태계를 제안하며, K-콘텐츠가 수출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 동반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 SBS × Sinclair 전략적 파트너십
같은 CES 2026 기간 체결된 SBS–Sinclair 양해각서(MOU)는 K-콘텐츠가 미국 지상파 네트워크를 통해 상시 편성되는 첫 구조적 채널을 여는 계약으로 평가된다. ATSC 3.0 기반의 미국 차세대 방송 인프라에 한국 프로그램을 직접 올리는 이 모델은, 완제품을 넘기는 단순 프로그램 판매가 아니라 ‘미국 방송 생태계 내부 입주’에 가까운 장기 협력 구조라는 점에서 공진화 전략의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③ 한·말레이시아·미국 3각 협력
2026년 1월 말, 고 교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투자통상산업부(MITI) 차관을 만나 “한국과 말레이시아 기업이 함께 미국 네바다주에 진출하자”는 한·말레이시아·미국 3각 공조 구상을 제안했다. 그는 이것을 “상대국 시장 진출을 넘어, 제3국을 공동 개척하는 공진화 모델의 확장판”으로 규정했다. 콘텐츠·AI·플랫폼 기업이 세 나라 규제 환경과 투자, 인재 풀을 연계해 공통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구조로, 한·미 양자 구도를 넘어 아시아 파트너와 함께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다자 협력 프레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④ "왜 공진화인가" 칼럼
고 교수는 지디넷코리아 2026년 2월 23일자 칼럼 ‘[고삼석 칼럼] 왜 ‘공진화’인가…콘텐츠 수출 넘어 생태계 조성으로’에서 공진화 전략의 이론적 배경을 정리했다. 그는 이 글에서 “K-컬처, K-브랜드, K-테크를 동시에 묶어 문화·산업·기술이 상호 연결과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 공진화 전략”이라며,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신흥 지역과의 공동 제작, 인재 양성, 플랫폼 구축, 팬덤 형성, 콘텐츠×AI 실험 등을 통해 상호 성장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 교수는 “콘텐츠와 AI 선진국인 한국이 분열과 경쟁을 넘어 협력과 공진화의 모델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며, ‘콘텐츠 수출’에서 ‘생태계 조성’으로의 전환이 넥스트 한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IMDA에 공식 제안…'한·싱 엔터테크 얼라이언스'
이날 특강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에서 나왔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싱가포르 인포콤미디어개발청(IMDA)와 현지 방송·플랫폼·프로덕션 등 15개 미디어 기업에서 온 약 30명의 대표단을 향해 ‘한·싱가포르 엔터테크 얼라이언스(Korea–Singapore EnterTech Alliance)’ 출범을 공식 제안했다. 양국 정상 회담 장면을 배경으로 한 슬라이드 위에서 그는 이 얼라이언스를 구성할 네 가지 핵심 협력 의제를 제시했다.
첫째, 한국과 싱가포르의 콘텐츠·AI 기업 간 실질적 협업 확대다. 단순 공동 마케팅이 아닌, 기획·개발·제작·유통 전 단계에 걸친 합작 프로젝트와 기술 교류를 상설화하자는 구상이다.
둘째, 생성형 AI·실시간 인터랙티브 기술 등을 활용한 신유형 콘텐츠의 공동 개발이다. OTT·지상파·디지털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크로스 포맷 실험을 양국이 함께 추진하자는 제안이다.
셋째, 다국적 팬덤을 대상으로 하는 버추얼 아이돌 IP의 공동 제작이다. 한국의 캐릭터·스토리텔링 역량과 싱가포르의 글로벌 금융·플랫폼 네트워크를 결합해, 아시아 공동 IP를 키우자는 방향이다.
넷째, 커넥티드카·자율주행차 환경을 전제로 한 이머시브 모빌리티 경험(IME) 공동 설계다. 이동 수단을 ‘움직이는 스크린·플랫폼’으로 보고, 엔터테인먼트·내비게이션·커머스를 아우르는 차세대 미디어 서비스를 함께 개발하는 내용이다.
고 교수는 이 네 축을 하나의 상설 협력 틀로 묶는 개념이 바로 ‘한·싱 엔터테크 얼라이언스’라며, “한류는 이제 아시아와 ‘함께’ 만드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문장으로 제안의 성격을 압축했다. 그는 특히 최근 한·싱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싱 AI 동맹, 3억 달러 규모 글로벌 모펀드, AI 공동 연구·인재 교류 등 양국 협력 구상이 엔터테크 얼라이언스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메시지는 지난해 싱가포르 AICON 2025에서 발표한 ‘넥스트 한류 이니셔티브’와도 연결되며, 한류 전략의 중심축을 ‘완성품 수출’에서 ‘생태계·동맹 구축’으로 전환하자는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행사 모더레이터를 맡은 한정훈 K-EnterTech Hub 대표는 “고 교수님의 프레임은 ‘한국 콘텐츠가 왜 글로벌에서 통하는가’라는 설명을 넘어서 있다”며 “한국·일본·싱가포르·동남아가 어떻게 하나의 엔터테크 생태계로 연결돼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세션은 앞으로 추진될 한·싱 IMDA–SBS 공동 제작 MOU와 한–싱 AI 얼라이언스 논의의 방향성을 정리하는 데 가장 적합한 오프닝 무대였다”고 덧붙이며, 이번 제안이 정책·산업·플랫폼을 아우르는 ‘넥스트 한류’ 협력 구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진화가 펼쳐질 무대…CES·SXSW·BIFF·에든버러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공진화 전략이 실제로 작동할 글로벌 무대로 네 개의 대표 이벤트를 꼽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텍사스 오스틴 SXSW, 부산국제영화제(BIFF),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기술 전시회, 크리에이터·인디 마켓, 아시아 최대 영화제,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 축제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플랫폼이 엔터테크 생태계의 입체적 진입로로 기능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술·콘텐츠·공연·도시 브랜딩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서 공진화의 속도가 가장 빨라진다”며, 이 네 무대를 ‘넥스트 한류’의 전략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K엔터테크허브가 추진 중인 실제 로드맵과도 맞닿아 있다.
4월 18~2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NAB Show 2026 기간에는 K-Channel 82(K82)·BAST 얼라이언스 관련 후속 미팅이 진행되고, 9월 14일 볼티모어·워싱턴DC 파일럿 런칭을 목표로 미국 최초 전국 단위 지상파 K-콘텐츠 채널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SBS·KBS·YTN 등 한국 방송사와 싱클레어 방송그룹의 ATSC 3.0 인프라, CAST.ERA의 기술 운영이 결합되는 모델로, 스트리밍 중심 일방향 유통에서 벗어나 지상파·FAST·모바일·AI를 묶는 공진화 플랫폼을 지향한다. 고 교수가 싱가포르 대표단에 제시한 ‘공진화’가 이론이 아니라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간 구조라는 점이 재확인된 셈이다.
맺음…"AI와 문화로 움직이는 나라"
고 교수는 특강을 “A Nation Powered by AI & Culture”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1990년대 말 제정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지난 20년 한류의 구조적 기반을 놓았다면, 2026년 국가AI위원회의 G3 비전과 9번 액션플랜(AI-Based Cultural Powerhouse)은 향후 20년을 설계하는 새로운 설계도라는 의미다. 그는 “콘텐츠 정책과 AI 전략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AI로 구동되는 문화 강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비전 아래에서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특강의 메시지는 세 층위로 압축된다.
첫째, 지난 20년 K-콘텐츠 성장은 우연한 히트작의 연속이 아니라 정책·기술·창작·팬덤이라는 네 축이 맞물린 구조의 결과였다.
둘째, 다음 20년은 AI를 내재화한 엔터테크 모델로 산업 구조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류 부정 인식의 확산과 동남아발 #SEAbling 연대 불매 움직임은 이미 그 경고등을 켠 상태다.
셋째, 이 재설계는 한국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며,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 파트너와의 공진화(Co-evolution)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고 교수는 “분열과 경쟁을 넘어 협력과 공진화의 모델을 아시아가 세계에 제시할 수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그 출발선에 함께 서자”고 말하며, IMDA Korea Learning Trip 2026 특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