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AI·크리에이터 혁명에 새 노동협약으로 맞불
SAG-AFTRA, 6월 계약 만료 앞두고 조기 협상 돌입
AI 복제본 보상·스트리밍 로열티 확대·크리에이터 경제 대응 의제 한꺼번에 부상
할리우드 배우·작가 노조가 존재론적 위기에 내몰렸다. AI가 배우의 얼굴·목소리를 무제한 복제하고, 유튜브·틱톡의 독립 크리에이터들이 스튜디오 없이도 수억 명의 시청자를 흡수하면서, 전통 할리우드 노동 생태계가 두 방향에서 동시에 해체되고 있다.
올해 6월 만료되는 주요 단체협약을 앞두고 SAG-AFTRA가 이례적으로 수개월 일찍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이 위기감의 방증이다. 이번 협상의 결과는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AI 시대 창작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조기 협상 개시… 파업 없는 합의 기대
SAG-AFTRA와 AMPTP(영화·TV 제작자 연합) 간의 협상은 지난 2월 조용히 시작됐다. 계약 만료 시한인 6월 말보다 수개월 앞선 이례적 타이밍이다. 양측은 협상 기간 중 언론 공개를 차단하는 미디어 블랙아웃에 합의했으며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분위기가 2023년 148일 장기 파업의 재발을 막으려는 양측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IATSE(국제 무대 종사자 동맹 The 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는 이미 2024년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애니메이터, 무대 연출·조명·음향 기술자 등 제작 현장 인력의 AI 관련 권리 보호를 위한 스튜디오와의 합의를 별도 체결하며 선행 사례를 만들어뒀다.
SAG-AFTRA 2024 음반 계약 코드(Sound Recordings Code) 주요 내용
SAG-AFTRA가 공개한 2024년 음반 계약 요약본에 따르면, 음반 회사는 배우·가수의 디지털 복제본(AI 생성 포함) 활용 시 반드시 본인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며, 복제본 사용에 따른 별도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AI로 생성된 합성 퍼포먼스를 오리지널 아티스트의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출처: SAG-AFTRA 공식 문서
https://www.sagaftra.org/sites/default/files/2025-05/2025%20Commercials%20Contract%20MOA.pdf
■ AI, 이번엔 '위협'이 아닌 '현실'
조지타운 대학 스티븐 쉬프만 교수(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대표)는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SAG-AFTRA와 스튜디오의 분쟁은 늘 기술 변화와 콘텐츠 소비 방식 변화를 둘러싼 것이었다"며 "스트리밍 시대에도 배우들은 성과 기반 보상을 확보했다. 한 작품이 서비스 구독자의 20% 이상에게 시청될 경우 로열티를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AI 관련해서도 이미 일부 조항은 마련됐다. 스튜디오가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을 쓸 경우 연금·의료 기금에 추가 납부해야 하며, 광고 계약에서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합성 퍼포머를 투입하는 것은 금지됐다.
■ 이번 협상의 핵심 의제 3가지
- AI·합성 콘텐츠 규제 확대 :실제 배우 없이 생성된 콘텐츠 관련 규정 강화, AI 훈련 데이터로 쓰인 퍼포먼스에 대한 보상 신설이 핵심이다.
- 스트리밍 로열티 개편 :현행 '구독자 20% 이상 시청 시 로열티' 기준의 임계값을 낮추고 지급액을 올리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 전망이다.
- 계약 기간 연장 논쟁 스튜디오들은 안정적 제작 계획을 위해 3년 주기를 5년으로 늘리자고 요구 중이다. 노조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장기 계약이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더 큰 위협은 '조합 밖'에서 온다
노조를 더욱 복잡한 처지로 몰아넣는 것은 AI보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폭발적 성장이다. 유튜브·틱톡의 독립 크리에이터들은 SAG-AFTRA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도 전통 방송·영화를 위협하는 시청 점유율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쉬프만은 "개인 기여자들에게로 관심이 이동하면서 SAG-AFTRA의 역할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터랙티브 광고 협회(IAB)와 하버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 존 데이턴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 약 150만 명이 전업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에 미치는 영향
■ 할리우드 협상이 K-콘텐츠에 직접 파장 미치는 이유
할리우드의 AI·노동 협약은 단순히 미국 내부 문제가 아니다. 넷플릭스·디즈니+·애플TV+ 등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한국 드라마·영화를 대거 제작·유통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플랫폼에 적용되는 AI 관련 규정과 로열티 구조 변화는 한국 제작사와 배우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넷플릭스가 <K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게임1, 2>,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IP로 글로벌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출연 배우와 제작진에 대한 성과 연동 보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국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할리우드 협상에서 로열티 기준이 강화될 경우, 이는 한국 콘텐츠 계약 관행에 대한 재검토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 AI 합성·디지털 복제본 — 한국도 이미 현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AI 합성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일부 기획사와 제작사는 이미 고인이 된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을 광고·콘텐츠에 활용하거나, AI로 생성한 가상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아울러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aespa), 하이브의 AI 음악 도구 활용 등은 창작자 권리 보호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SAG-AFTRA 2024 음반 계약 코드가 도입한 ‘디지털 복제본 동의·보상 의무’ 조항은, 한국 표준 계약서 개편 논의에서 유력한 벤치마크 후보가 될 수 있다. 2024년 SAG-AFTRA Sound Recordings Code는 음반사들이 가수·아티스트의 디지털 복제(voice replica)를 사용할 때 “명확하고 눈에 띄는 동의”와 별도 보상 의무를 규정한 최초의 주요 계약 중 하나다.
한국 콘텐츠진흥원(KOCCA)과 문화체육관광부도 AI 창작물 관련 가이드라인과 제도 정비를 추진 중이나, 구체적인 보상·분배 체계는 아직 설계 단계에 가깝다.
문화체육관광부와 KOCCA는 2025년부터 AI 콘텐츠 지원 사업, AI 활용 가이드, 산업 육성 정책은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생성 AI가 활용된 창작물에 대한 표준 보상·배분 구조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상태는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정부 차원에서는 오히려 “AI 학습은 일단 폭넓게 허용하고, 사후에 보상·조정”을 하는 ‘선사용·후보상’ 모델이 논의되면서 저작권계 반발이 크다는 보도도 있다. 학계·정책 보고서에서도 “AI 창작물의 저작권·보상 구조가 여전히 불명확하며, 향후 입법·표준계약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 크리에이터 경제 — K-인플루언서가 증명하는 구조적 변화
할리우드 노조를 잠식하는 독립 크리에이터 경제의 부상은 한국에서 더욱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청률과 수익성이 2000년대 이후 구조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K-인플루언서와 MCN 사업자는 전통 방송사·기획사 바깥에서 독자적인 수익 모델과 유통망을 구축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배우·감독·작가 단체들은 스트리밍·플랫폼 중심의 수익 분배와 AI 활용 확대 속에서 협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며, 잔여수익과 공정 보상 체계 마련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 K-콘텐츠 해외 진출 전략에 미치는 영향
할리우드 협약 변화는 한국 콘텐츠의 대미 수출 전략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 내 방영·유통 시 SAG-AFTRA 협약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한국 제작사가 미국 배우·스태프와 협업하는 공동 제작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 반면 한국 배우가 미국 시장에서 디지털 복제본 관련 법적 보호를 받을 근거가 생기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 결론: 협약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임금 인상 싸움이 아니다. AI가 인간 창작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 플랫폼이 수익을 독식하는 구조, 그리고 조합의 경계 자체가 해체되는 흐름에 맞서, 할리우드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존립 이유와 협상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무대다.
SAG-AFTRA가 2024년 음반 계약에서 선제적으로 확보한 AI 복제본 보호 조항은 중요한 첫 걸음이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어떤 협약서도 빠르게 ‘과거 문서’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문제는 이제 개별 계약의 문구가 아니라, 이후 등장할 기술·플랫폼에 대해 어떻게 ‘지속적으로 재교섭할 권리와 거버넌스’를 설계하느냐에 가깝다.
이 질문은 태평양 건너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이미 파고들고 있다. 할리우드의 진짜 과제는, 그리고 한국의 과제도, 협상 테이블 위의 조항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 테이블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업데이트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데 있다.
[ 출처 및 참고자료 ]
① Axios 원문 기사 https://www.axios.com/media-trends-membership/2026/03/07/hollywood-union-contract-ai Kerry Flynn & Sara Fischer (2026.03.07)
② SAG-AFTRA 공식 문서 https://www.sagaftra.org/sites/default/files/sa_documents/2024%20SAG-AFTRA%20Sound%20Recordings%20Code%20Contract%20Summary.pdf 2024 Sound Recordings Code Contract Summary (PDF)
③ 번역·분석·편집: K-EnterTech 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