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디즈니의 전략 '냉정과 열정'..오픈AI와 손잡다


OpenAI에 1조 원 베팅하고 구글엔 소송전… 디즈니+, ‘AI 놀이터’로 진화
슈퍼팬 시대 겨냥한 협력과 견제의 투 트랙 전략..판을 뒤집고 싶은 디즈니

구독자 정체에 빠진 스트리밍 전쟁, '슈퍼팬'을 잡아라—디즈니가 선택한 AI 승부수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12월 11일(현지시간), 디즈니는 OpenAI에 10억 달러(약 1조 4천억 원)를 투자하며 자사 캐릭터 200여 종의 IP를 OpenAI의 영상 생성 AI ‘소라(Sora)’에 3년간 독점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미키마우스, 엘사, 아이언맨, 다스베이더가 AI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같은 날, 디즈니는 구글에 “AI로 생성된 모든 디즈니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삭제하라”고 공식 통보했다. 정식 계약을 맺은 기업에는 문호를 열되, 무단으로 자사 IP를 학습에 이용한 기업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으로 맞서는 ‘협력과 견제의 투 트랙 전략’을 본격화한 셈이다.

스트리밍 전쟁의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넷플릭스 등 주요 플랫폼 구독자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업계의 화두는 '기존 구독자 충성도와 지출 극대화' 강화 이동했다. 이른바 '슈퍼팬' 전략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시청하는 수동적 구독자가 아니라, 브랜드에 깊이 몰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열성 팬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 됐다.

이 지점에서 디즈니 플러스는 비상이다. 시청 시간 기준 디즈니 플러스의 참여도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하락 원인으로 디즈니+ 오리지널 제작 편수 축소와 프랜차이즈 정비 전략을 꼽고 있다. 어벤저스, 스타워즈 등 대형 팬덤을 가진 프랜차이즈 콘텐츠들의 제작이 지연되거나 미뤄지면서 슈퍼팬의 열정이 빠르게 식고 있다.

luminate

그런데 어떻게 시청자를 슈퍼팬으로 만들 것인가. 디즈니의 대답은 명쾌했다. AI다.

"AI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운명의 주도권을 잡겠다"

밥 아이거(Bob Iger) 디즈니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거래를 "정말 숨 막히는 성장에 참여할 기회"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기술 제휴가 아니라, AI 시대에 디즈니가 어떤 위치에 서겠다는 전략적 선언이다.

디즈니가 AI 기업에 IP를 라이선싱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번 투자로 소라와 챗GPT 이미지(ChatGPT Images)는 2026년 초부터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짧은 영상과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가 몇 마디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몇 초 만에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200개 캐릭터,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제외됐나

디즈니가 공개한 라이선싱 범위는 상당히 넓다.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의 "마스크를 쓴 캐릭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크리처 캐릭터"가 포함되며, 의상, 소품, 탈것, 상징적인 배경까지 활용할 수 있다.

포함된 캐릭터(일부):

  • 디즈니 클래식: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아리엘, 벨, 야수, 신데렐라
  • 픽사: 베이맥스, 심바, 무파사, 엔칸토·겨울왕국·인사이드 아웃·모아나·몬스터 주식회사·토이스토리·업·주토피아 캐릭터들
  • 마블: 블랙팬서, 캡틴 아메리카, 데드풀, 그루트, 아이언맨, 로키, 토르, 타노스
  •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한 솔로, 루크 스카이워커, 레아 공주, 만달로리안, 스톰트루퍼, 요다

제외된 것:

  • 배우의 초상권과 목소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버전의 아이언맨, 이디나 멘젤의 엘사 목소리 등은 불가)
  • OpenAI의 AI 모델 학습에 디즈니 IP 사용 (라이선싱은 생성 결과물에만 적용)
  • 소라 계정과 디즈니+ 계정의 연동

특히 "AI 모델 학습에는 디즈니 IP를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눈에 띈다. 3년 후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AI가 디즈니 스타일을 '기억'하고 유사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디즈니+가 AI 놀이터가 된다…슈퍼팬 전략

스트리밍 전쟁의 게임이 바뀌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맥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까지—주요 플랫폼들의 구독자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업계의 화두는 '신규 구독자 확보'에서 '기존 구독자의 충성도와 지출 극대화'로 이동했다. 이른바 '슈퍼팬' 전략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시청하는 수동적 구독자가 아니라, 브랜드에 깊이 몰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열성 팬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서 디즈니의 ‘슈퍼팬 전략’도 본격화된다. 디즈니+는 OpenAI와의 협력을 통해 소라로 생성된 AI 콘텐츠 일부를 스트리밍 플랫폼 내에서 큐레이션 형태로 제공한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팬 커뮤니티 안에서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해 스트리밍을 ‘참여형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려는 구상이다.

아이거 CEO는 이미 지난 실적 발표에서 “AI는 디즈니+ 사용자에게 몰입형·참여형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틱톡 세대의 슈퍼팬들이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해 자신의 짧은 영상을 제작하고 팬덤 문화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번 거래의 또 다른 축은 디즈니+(Disney Plus)와의 통합이다. 디즈니+ 이용자들은 소라로 생성된 디즈니 캐릭터 영상 중 큐레이션된 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게 된다. 또 OpenAI와 디즈니는 "디즈니+ 구독자를 위한 새로운 경험"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아이거 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이미 힌트를 준 바 있다. "AI는 디즈니+ 사용자에게 훨씬 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사용자가 만든 숏폼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해서요." 전통적인 '시청' 중심의 스트리밍에서 '참여와 창작'이 결합된 인터랙티브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틱톡 세대가 디즈니 캐릭터로 직접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새로운 팬덤 문화가 열릴 수 있다.

한편미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 시간을 여전히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디즈니+의 존재감은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 뤼미네이트(Luminate)의 스트리밍 뷰어십 자료에 따르면, 디즈니+는 미국 내 오리지널 시청 시간 점유율이 2022년 9%에서 2025년(YTD 기준) 3%까지 떨어지며 주요 유료 플랫폼 중 가장 큰 하락세를 기록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의 시청 시간 자체도 2022년 443억 분에서 2025년 202억 분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하락 원인으로 디즈니+ 오리지널 제작 편수 축소와 프랜차이즈 정비 전략을 꼽는다. 2022년 40편이 넘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가 공개됐지만, 2025년 들어서는 연간 공개 편수가 크게 줄면서 시청자의 플랫폼 체류 시간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훌루는 성인 타깃 오리지널을 꾸준히 공급하며 시청 시간과 점유율 모두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 손으로 악수하고, 다른 손으로 칼을 뽑다

디즈니의 양면 전략은 같은 날 구글에 보낸 서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디즈니는 "구글의 AI 플랫폼이 '대규모'로 디즈니 IP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유튜브와 유튜브 쇼츠에서 관련 콘텐츠를 모두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디즈니는 이미 메타와 Character.AI에도 유사한 법적 경고장을 보냈다. 더 나아가 NBCUniversal,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공동으로 AI 기업 미드저니(Midjourney)와 미니맥스(Minimax)를 저작권 침해로 제소한 상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식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대가를 지불하는 파트너에게는 IP 금고의 문을 열어주되, 무단으로 콘텐츠를 학습에 활용하는 기업에게는 법정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OpenAI에게도 의미 있는 거래

OpenAI 입장에서도 이번 거래는 중요한 이정표다. 생성 AI의 저작권 침해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IP 보유 기업과 공식 라이선싱 계약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된다.

샘 올트먼 OpenAI CEO는 이번 계약에 대해 "디즈니는 스토리텔링의 글로벌 표준"이라며 "이번 합의는 AI 기업과 창작 리더들이 어떻게 책임감 있게 협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OpenAI의 소라는 지난 9월 출시된 이후 할리우드에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소라2의 옵트아웃(opt-out) 모델, 즉 IP 소유자가 먼저 나서서 자기 작품의 제외를 요청해야 하는 방식이 논란을 빚었다. 지난달에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회원으로 있는 일본 콘텐츠해외유통촉진기구(CODA)가 OpenAI에 "소라2 학습에 우리 콘텐츠 사용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즈니와의 공식 파트너십은 OpenAI가 "우리는 합법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아이거의 마지막 큰 베팅

이번 계약의 일환으로 디즈니는 OpenAI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추가 지분 매입을 위한 워런트도 확보한다. 양사는 이 투자가 최종 계약 협상, 이사회 승인, 통상적인 거래 종결 조건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5,000억 달러로 평가받는 OpenAI 입장에서 디즈니의 10억 달러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이번 OpenAI 계약은 정말 놀라운 성장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밥 아이거 CEO에게 이번 투자는 퇴임을 앞둔 시점의 중요한 포석이다. 그는 CEO 재임 초기에 픽사(2006년),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등 IP 중심의 대형 인수로 디즈니의 콘텐츠 제국을 구축했다. 이제 그는 기술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

지난해 에픽게임즈에 15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이번 OpenAI 투자까지. 아이거는 "마지막" 재임 기간 동안 디즈니를 AI 시대에 맞게 재포지셔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디즈니의 10억 달러는 현재 5,000억 달러로 평가받는 OpenAI에게는 작은 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추가 지분 매입 워런트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장기적 파트너십의 성격이 분명하다.

디즈니–OpenAI 제휴, K-콘텐츠 기업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디즈니와 OpenAI의 파트너십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판도를 흔드는 사건이 분명하다.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시대 IP(지적재산권) 전략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콘텐츠 기업들에게도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는 AI 시대의 IP 활용 전략이다.
디즈니는 자체 콘텐츠를 정식 라이선싱 형태로 OpenAI에 제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열었다. 반면 무단 학습에 대해선 “AI 모델 학습 금지” 조항을 넣어 IP 보호를 확실히 했다. K-콘텐츠 역시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등 글로벌 IP를 AI 플랫폼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보호할 것인지 구체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는 협상력 확보다.
디즈니는 IP를 제공하는 대가로 OpenAI로부터 지분 투자와 워런트를 확보하며, 단순한 공급자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대등한 파트너십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셋째는 라이선싱 범위와 계약 구조의 설계다.
디즈니의 사례처럼, 계약 조건에 AI 모델 학습 금지나 사용 기간 제한을 명시하는 등 IP의 미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IP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디즈니의 이번 행보는 ‘협력과 견제 사이의 정교한 균형’을 보여준다.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3년 한정 라이선스, 배우 초상권 제외, AI 학습 금지 조항까지—모든 것이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아이거 CEO가 “AI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 산업에 중대한 순간”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동력을 재편하는 현시점에서, K-콘텐츠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무조건적인 수용도 아니다. 자신의 IP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AI 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전략적 감각이다.  디즈니가 던진 이 화두에 대해,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어떤 해답을 내놓을 것인가.

AI 스타트업 밸류에이션, 뜨거운 열기 속 냉정한 조정

한편, 디즈니–OpenAI와 같은 대형 거래와 함께 AI 스타트업 시장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투자 업계의 핵심 지표인 ‘멀티플(Multiple)’—기업가치를 매출의 몇 배로 평가하는 수치—은 업계의 온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The information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현재 OpenAI와 Anthropic 등 대형 AI 모델 개발사의 평균 멀티플은 약 36배 수준이다. 이는 올해 2월의 51배에서 약 30% 하락한 수치로, 시장이 점차 현실적인 평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장 소프트웨어 기업 평균 멀티플은 8배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유명 창업자가 주도하는 초기 AI 스타트업은 여전히 100배 이상의 멀티플로 투자받으며, AI 투자 생태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냉정한 조정 속에서도 AI 시장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기술 혁신의 방향이 콘텐츠 산업의 가치 사슬을 다시 재편하는 지금, 투자자와 콘텐츠 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과열보다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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