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네이트(Luminate) ‘Hollywood Exodus 2026’…촬영지·예산·세제 네 개 지표가 가리키는 美 TV 산업의 구조 변화
한때 세계 영화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던 LA 제작 생태계에 구조적 균열이 뚜렷해지고 있다.
콘텐츠 시장조사기관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촬영된 미국 드라마(scripted live-action TV series)는 2019년 1분기 42편에서 2026년 1분기 15편으로 7년 새 64% 줄었다. 같은 기간 회당 100만~300만 달러 구간 드라마 비중은 미국 신작 전체의 52%에서 34%로, ‘회당 500만 달러 미만’ 합계는 82%에서 63%로 축소됐다.
문제는 이 중·저예산 구간이 LA 제작 생태계의 ‘주식(主食)’이었다는 점이다. 시즌 길이가 길고, 해외 로케이션 의존도가 낮으며, 같은 도시에서 회차를 반복하는 회전형 제작 덕분에 스튜디오·인력·서비스 업체의 연간 수주를 받쳐 주던 일감이었기 때문이다. 루미네이트가 ‘Hollywood Exodus 2026’ 보고서에서 제시한 네 개 지표를 종합하면, LA의 위기는 단순한 촬영지 이탈이 아니라 이러한 중·저예산 드라마의 기반 붕괴와 대형 프랜차이즈 중심 예산 쏠림이 맞물린 구조 변화로 읽힌다.
LA 콘텐츠 생태계의 주력 자산이 바로 이 중예산 구간이었기에, ‘제작 수축’과 ‘예산 양극화’가 동시에 작동한 이 시기 LA의 손실 폭은 미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캘리포니아주(California)가 지난해 단행한 영화·TV 세액공제(film & TV tax credit) 확대 개편이 이 흐름을 어디까지 되돌릴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① 촬영지 — LA 42편→15편, 뉴욕은 5편→11편
루미네이트가 분기별로 추적한 데이터에 따르면 LA의 위축 폭은 미국 톱6 제작 거점 가운데 가장 가팔랐다. 2019년 1분기 LA는 톱6 합계 73편 중 42편으로 57.5%를 차지했지만, 2026년 1분기에는 50편 중 15편, 비중으로는 30%까지 떨어졌다. 보고서 본문에 인용된 ‘40% → 25% 미만’ 수치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전체 드라마 기준이며, 실사 작품(live-action)만을 떼어 보면 LA의 점유율 하락 폭은 이보다 더 크다.
다른 거점들의 흐름은 제각각이다. 뉴욕(New York)은 같은 기간 5편에서 11편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애틀랜타(Atlanta)는 8편에서 9편으로 사실상 보합세를 유지했다. 캐나다 밴쿠버(Vancouver)는 10편에서 4편으로 큰 폭 감소했는데, 한때 핵심 클라이언트였던 미국 CW네트워크(The CW)가 오리지널 드라마 라인업을 대거 축소한 영향이 결정적이다. 영국·아일랜드(UK & Ireland)는 3편에서 6편으로, 캐나다 토론토(Toronto)는 5편에서 5편으로 집계됐다.
데이터를 종합하면, LA가 잃은 일감이 ‘다른 도시나 해외로 고르게 이전됐다’는 단순한 이동 구도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부는 뉴욕·영국 등 다른 거점으로 옮겨갔지만, 상당 부분은 기획 단계에서 아예 생산이 중단된 작품으로부터 발생한 손실로, 편수 감소와 고용 축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② 예산 양극화 — ‘회당 500만 달러 미만’ 82%→63%
회당 제작비 분포는 같은 기간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2019년 미국 드라마 신작의 52%가 회당 100만~300만 달러 구간이었고, 300만~500만 달러 구간이 30%, 500만~1,000만 달러 구간이 12%였다. 이보다 높은 세 구간(1,000만~1,500만, 1,500만~2,000만, 2,000만 달러 이상)을 모두 합쳐도 한 자릿수에 그쳤다.
2025년에는 100만~300만 달러 구간이 34%로 줄었고, 300만~500만 달러 구간은 29%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500만~1,000만 달러 구간이 27%로 두 배 이상 커졌다. 회당 100만 달러 미만 초저예산 작품군은 그래프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회당 500만 달러 미만’ 비중은 2019년 약 82%에서 2025년 약 63%로 내려앉았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라, 중·저예산 구간 전체가 비워지면서 포트폴리오가 양 극단으로 쏠리고 있다는 데 있다. 회당 2,000만 달러 이상 대형 프랜차이즈·장르물이 늘어난 만큼, 중간 가격대에서 다양한 장르·포맷을 시험하던 실험적·범용형 드라마가 줄어들고, 제작·고용 측면에서는 소수 초대작과 다수 단발성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영화 시장에서 블록버스터가 중·저예산 영화를 밀어냈던 패턴이 TV에서도 재현되면서, 산업 전반의 리스크 분산 능력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것이 루미네이트의 진단이다.

③ ‘중예산’이 LA의 주식(主食)이었다
이들 지표를 종합하면 LA가 유독 크게 타격을 받은 이유가 드러난다. 회당 100만~500만 달러 구간 드라마는 시즌이 비교적 길고, 제작 거점이 자주 바뀌지 않으며, 같은 도시의 스튜디오와 인프라를 중심으로 회차를 꾸준히 쌓아가는 ‘회전형’ 제작이 가능하다. LA는 바로 이 구간에서 세트·인력·서비스 업체가 연중 내내 돌아가는 안정적 일감을 오랫동안 공급해 왔다.
문제는 예산 구조가 대형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 중예산 슬레이트가 가장 먼저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회당 예산이 커진 만큼 해외 및 타 도시 촬영 비중이 늘고 시즌 사이 공백도 길어지자, 그 사이를 메워 주던 중·저예산 작품군이 줄어들면서 보수가 높은 스튜디오 일거리가 LA 밖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절대 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이중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대체 카드로 거론되는 ‘버티컬 드라마(vertical drama)’ 등 모바일 단편 포맷은 회당 길이·단가·고용 안정성 어느 측면에서도 스튜디오 기반 중예산 드라마를 대체하기 어렵다.
스트리밍 시리즈의 시즌 단축까지 겹치면서, 겉으로 보기에 ‘한 편’으로 집계되는 시리즈라도 실제 촬영 일수와 고용 규모는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상태다. 작품 편수 통계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이런 고용 위축이, LA를 비롯한 전통 제작 거점의 체감 경기를 더 차갑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④ 캘리포니아 세제 배분 — ‘이전 드라마’에 15% 별도 책정
위기를 직감한 캘리포니아주는 할리우드 제작 생태계 회복을 위해 영화·TV 세액공제 제도를 전면 손질했다. 연간 세제 배분 구조만 봐도 정책 우선순위가 뚜렷하다. 기타 드라마(파일럿 포함)에 40%, 장편 영화(feature films)에 35%를 배정했고, 다른 주·국가에서 캘리포니아로 복귀하는 ‘이전(relocating) 드라마’에는 별도 몫으로 15%를 책정했다.
1,000만 달러 초과 독립영화와 1,000만 달러 이하 독립영화에도 각각 5%씩을 배분해 독립 부문도 끌어안는 구조를 택했다. 특히 ‘이전 드라마(Relocating)’에만 15%를 따로 떼어 둔 설계가 눈에 띈다. 신규 프로젝트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기존 드라마를 LA로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을 노리고 세제 항목을 분리해 박아 둔 것이다.

지난 2025년 개편의 주요 내용은 예산 총량 증액이지만, 실제 산업 파급력을 좌우하는 것은 세부 조정이다. 우선 기본 환급률(base tax credit)을 35%로 인상해, 종전 20~25% 수준에서 한꺼번에 10%포인트 이상 끌어올렸다. 여기에 타 지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전하는 드라마에는 5% 보너스 환급을 추가 적용한다.
적격 지출 한도도 상향했다. 비독립 프로젝트는 1억 2,000만 달러, 독립영화는 2,000만 달러까지 인정해 사실상 중·대형 프로젝트 유치를 전제로 한 캡 구조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 장르 역시 확대해 애니메이션 시리즈, 30분물, 대규모 경쟁 예능(large-scale competition shows) 등을 새로 편입시키면서 포맷 전반을 끌어안는 형태로 설계했다.
그럼에도 업계 평가가 일제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는 여전히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비용만을 겨냥한 단독 세제가 부재하다. 시각효과(VFX)를 비롯한 후반작업이 캐나다·미국 타 주·해외 허브로 이동하는 흐름을 제도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사업체 루미네이트는 이번 인센티브 강화만으로 LA 제작 기반을 완전히 되살리기는 어렵고, 실제 효과도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⑥ 한국 시사점
한국 콘텐츠 업계 역시 대작 중심 구조와 제작 일자리의 해외 이동이라는 이중 압력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K-콘텐츠가 스트리밍 서비스·극장·글로벌 방송사로 무대를 넓힌 것은 분명하지만, 회당 제작비가 급등한 톱티어 K-드라마와 보수·회차가 모두 줄어든 미들·로어 라인업 사이의 격차는 LA에서 관측된 양극화와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상위 몇 편의 초대작이 편성·투자·마케팅 자원을 흡수하는 동안, 중소 규모 프로젝트와 제작 인력의 안전판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사례에서 한국이 참고할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신규 제작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이전 작품’에 별도 예산을 배정해 리쇼어링을 독립된 정책 변수로 분리한 설계다. 이는 서울·수도권에서 빠져나간 제작을 특정 광역권으로 다시 끌어오는 국내형 리쇼어링 정책에도 그대로 응용할 수 있다.
둘째, 애니메이션·30분 포맷·대규모 경쟁 예능 등 신규 장르를 지원 대상으로 편입해, 장편 드라마 중심 인센티브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줄이려 한 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케이블·디지털 플랫폼 전반에 걸쳐 포맷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국내 사업자들에게도 유효한 시사점이다.
다만 인센티브가 일자리 구조를 대신 설계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세제 지원은 들어오는 작품의 수익성과 재무 구조를 개선할 뿐, 제작 인력의 고용 안정성·회전률 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LA의 드라마 편수가 7년 사이 42편에서 15편으로 줄어든 사례는, 작품 가격대와 편성 구조가 바뀐 자리에서 세제 변수만으로는 메우기 어려운 공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한국이 진짜로 가져와야 할 논의는 “세제율 몇 퍼센트”가 아니라, 어떤 가격대의 드라마를 어느 도시·스튜디오 클러스터에서 어떤 회차 구조로 회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산업 차원의 합의다. 다시 말해, 세액공제는 설계의 마지막 단계에 놓이는 보완도구일 뿐, 장르·가격대·지역별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대한 ‘판 짜기’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
원자료: Luminate Intelligence ‘Hollywood Exodus 2026’ Special Repo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