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CC “방송 면허는 권리 아닌 공적 신탁”…공익성 의무 앞세워 지상파 압박
공고 ‘DA 26-530’으로 공익성 의무 환기…ABC, 조기 면허갱신 명령에 “위헌적 보복” 반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상파 방송 면허를 사업자의 ‘소유물’이 아닌, 일정 기간 위탁받아 운영하는 공적 신탁(public trust)으로 규정하는 원칙을 다시 규제의 전면에 내세웠다.

FCC는 5월 28일 공고(Public Notice·DA 26-530)를 통해 “어떠한 방송 사업자도 공공 주파수를 사용할 고유한 권리를 갖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어 공익적 책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는 사업자의 면허는 회수될 수 있으며, 해당 주파수는 공익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다른 사업자에게 재배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디즈니가 소유한 ABC는 FCC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FCC가 자사 직영 방송국(O&O stations)의 면허를 조기 갱신 대상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ABC는 “헌법에 반하는 보복적 조치이자 부당한 압박”이라며 공개적으로 맞섰다. 이번 사안은 규제기관과 주요 방송 사업자 간의 긴장 관계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처럼 약 100년에 걸쳐 유지되어 온 ‘공익성(public interest)’ 원칙이 다시 규제의 핵심 수단으로 부각된 배경에는 방송 주파수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주파수는 물리적으로 희소한 자원으로, 동일 지역 내에서는 제한된 수의 채널만 운영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정부는 특정 사업자에게 주파수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다른 사업자들을 배제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상파 방송 면허는 사유 재산이 아니라, 공공 자원을 일정 기간 관리·운영할 수 있도록 위임받은 권한에 가깝다는 점이 제도적 전제로 작동해 왔다. FCC는 이러한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방송사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면허 유지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조치는 디지털 플랫폼과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전통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라는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대형 미디어 기업과 규제기관 간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둘러싼 갈등이 향후 정책 및 산업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무상 사용’ 구조… 공익 의무의 근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 같은 비대칭 구조를 규제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공고는 동일 주파수 대역이 경매에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가치를 창출하는 반면, 지상파 방송 사업자는 이를 사실상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방송사는 그 대가로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적 운영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터넷이나 케이블 등 다른 유통 기술이 특정 지역 수요를 충족해야 할 FCC 차원의 직접적 의무를 지지 않는 것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공고는 또 의회가 면허 사업자에게 지역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편성 의무를 부과해 왔음을 강조했다. 특히 해당 편성은 “전국 네트워크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면허가 부여된 지역 주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FCC는 과거 청취자 조사(ascertainment)나 주연주소(main studio) 규칙 등 일부 형식적 규제를 폐지하며 부담을 완화했지만, 공익 수탁자로서의 지위 자체는 약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행 규제 의무 역시 유지되고 있다. 방송사는 온라인 공공열람파일(public inspection file)에 이슈·프로그램 목록을 작성·보관해야 하며, 뉴스 왜곡 금지와 선거 후보자에 대한 동등 기회 제공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음란·저속·신성모독 콘텐츠 및 방송 사기(hoax)에 대한 금지 규정도 계속 적용된다.
FCC는 방송사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다양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재 조치뿐 아니라 조건부 또는 단기 면허 갱신, 조기 면허 갱신 신청 명령, 청문 절차 회부 등이 포함된다. 공고는 “위원회는 방송사가 공익성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거나, 이를 이행할 다른 사업자에게 방송 면허라는 특권을 넘기도록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원칙 재강조는 ABC와의 충돌 국면 속에서 제기됐다. FCC는 지난 4월 ABC에 대해 면허 만료를 수년 앞두고 조기 갱신 신청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ABC 측은 50년 이상 이러한 조치를 요구한 전례가 없으며, 네트워크 직영 방송국 전체를 일괄 대상으로 삼은 사례도 없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ABC는 5월 28일 갱신 신청서를 제출하면서도 “강압 아래 제출하는 것”이라고 명시했고, 해당 명령의 시점이 “보복 목적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이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ABC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의 발언을 문제 삼아 해고를 요구한 직후 내려진 것으로, 규제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브렌던 카(Brendan Carr) FCC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지미 키멀 사안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ABC가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정책 관련 조사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하며, 회사 측 제출 자료가 “불성실하고 미흡하며 부적절했다”고 통보한 뒤 조기 면허 갱신 신청을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카 위원장은 “FCC는 사실과 법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ABC는 수천 건에 달하는 요청 문서를 모두 제출했으며, 해당 명령 이전까지 협조 부족에 대한 어떠한 통보도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DEI 조사’ vs ‘보복성 조치’ 공방
양측의 입장은 규제 집행의 정당성을 둘러싼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FCC는 행정 절차상 정당한 조사 대응 미흡을 문제 삼고 있는 반면, ABC는 사후적 사유를 내세운 보복성 조치라는 입장이다. 특히 조기 갱신이라는 이례적 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규제 권한의 행사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번 사안은 ABC가 보유한 뉴욕,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주요 시장의 8개 직영 방송국(O&O stations)에 집중돼 있다. ABC는 이와 별도로 약 240개 제휴 방송국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ABC는 조기 갱신 신청서 제출과 관련해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았다며 60일 연장을 요청했으나, FCC가 별도 설명 없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면허 회수 자체는 법적·절차적 장벽이 높아 실제로 실행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경우 절차는 현 행정부 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반면 청문 절차는 상대적으로 조기에 개시될 수 있는 변수로 지목 된다. 이 경우 카 위원장이 주도하는 청문 무대에서 방송 내용의 편향성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ABC는 기존 방송 권한을 유지하게 된다.
3인 체제 FCC… 이념 대립도 표면화
현재 FCC는 공화당 소속의 카 위원장과 올리비아 트러스티(Olivia Trusty), 민주당 소속 애나 고메즈(Anna Gomez) 위원 등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FCC는 법적으로 최대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정당 간 균형을 위해 동일 정당 소속 위원이 3명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재는 상원 인준 지연과 정치적 교착 상태로 인해 2석이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주요 정책 결정이 소수 인원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위원 간 이념 차이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보수 성향 단체 미국권리센터(Center for American Rights)의 대니얼 수어(Daniel Suhr) 대표는 이번 공고를 두고 “FCC가 더 이상 노골적 편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하며 “법을 준수할 의사가 없다면 면허를 반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단체는 CBS, NBC, ABC 소유 방송국과 지미 키멀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FCC 민원을 제기해 왔다.
반면 고메즈 위원은 “‘공익’이 특정 행정부의 이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방송사는 위협에 굴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규제 해석을 둘러싼 위원회 내부의 시각 차이도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이번 사안은 디즈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기존 갈등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디즈니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제기한 소송을 그의 두 번째 취임 이전 1500만 달러에 합의하며 마무리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방송 면허의 공공성 원칙, 규제 권한의 범위,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전통 방송 규제 체계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확장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한국 미디어 산업에의 시사점
이번 FCC 공고는 미국 내 규제 공방을 넘어, 한국 미디어 산업의 제도 설계와 사업 전략 전반에 복합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방송과 스트리밍 서비스 간 규제 비대칭을 둘러싼 논의가 글로벌 차원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정책 환경과의 연결성이 주목된다.
첫째, 방송과 스트리밍 서비스 간 규제 체계의 재정립 문제다. FCC는 주파수라는 희소 자원을 사용하는 방송에 대해 공익 의무를 전제로 한 규제 정당성을 재확인하면서, 스트리밍·케이블 등에는 동일한 수준의 지역사회 봉사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구조를 분명히 했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추진 중인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 논의와 맞닿아 있다. 해당 입법은 기존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원화된 규제 체계를 통합해, 방송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나의 틀 안에서 규율하려는 시도다. 특히 글로벌 OTT 사업자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내 사업자와의 규제 형평성을 확보하고 최소한의 공적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정책적 목적이 깔려 있다.
다만 핵심 쟁점은 매체 간 ‘동일 규제’가 아니라 ‘차등 규제’의 설계에 있다. 지상파·종편 등 전통 방송은 주파수나 허가라는 희소한 공공 자원을 기반으로 면허를 부여받는 구조인 만큼, 지역성(localism), 공정성, 공익성 의무가 강하게 부과돼 왔다. 반면 스트리밍 서비스는 인터넷 기반의 개방형 플랫폼으로, 진입 장벽이 낮고 이용자 선택에 의해 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수준의 사전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병존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일정 수준의 공적 책무(예컨대 콘텐츠 책임성, 이용자 보호, 국내 제작 투자 유도 등)를 부과하되, 방송과 동일한 편성 규제나 지역 의무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FCC 사례는 이러한 논의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한다. 즉, 주파수 기반 사업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공 자원 사용-공익 의무’라는 전통적 규제 논리를 유지하면서도, 스트리밍 등 비면허 플랫폼에는 동일한 수준의 지역사회 봉사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이원적 구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규제 일원화를 추진하더라도, 다른 논리가 없다면 매체의 기술적·경제적 속성과 공공 자원 의존도를 반영한 차등 설계가 여전히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한국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논의 역시 ‘플랫폼 간 공정 경쟁’과 ‘공적 책임 부과’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과도한 규제 일원화는 산업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반면, 규제 공백은 기존 방송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미국 사례는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공공 자원 기반 규제의 범위를 어디까지 유지하고 디지털 플랫폼에는 어떤 최소 규범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둘째, K-콘텐츠의 미국 지상파 진출 전략은 단순 유통을 넘어 ‘면허 기반 규제 환경’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전제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한국 콘텐츠가 미국 지상파를 통해 송출되는 경우, 이는 OTT나 FAST와 달리 현지 면허 사업자의 공적 책임 체계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즉 동일 콘텐츠라 하더라도 어떤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느냐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와 운영 방식이 달라지는 구조다.
지상파의 경우 면허 사업자는 지역성(localism) 원칙에 따라 해당 시장의 시청자 수요와 공익적 이슈를 반영한 편성을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슈·프로그램 목록 작성 및 공개, 뉴스 왜곡 금지, 선거 관련 공정성 의무 등은 형식적 요건을 넘어 실제 편성 판단과 콘텐츠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특정 시간대에 편성되는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공공 이슈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설명 가능성이 요구되며, 이는 외부 콘텐츠 도입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반면 스트리밍 서비스나 FAST 플랫폼은 이러한 지역 기반 공익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콘텐츠는 글로벌 또는 전국 단위로 소비되며, 지역 단위 편성 책임이나 공공성 심사 부담이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동일한 K-콘텐츠라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빠른 확장성과 유연한 편성이 가능하지만, 지상파에서는 지역 적합성(local relevance)과 규제 준수 여부가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사업 전략 측면에서도 분명한 구분을 요구한다. 지상파 기반 진출은 단순 판권 판매나 슬롯 확보를 넘어, 현지 방송사의 공익 의무 이행 구조에 부합하는 형태로 콘텐츠를 재구성하거나 패키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컴플라이언스 대응 체계(예컨대 편성 사유 기록, 이슈 대응 기준, 내부 검토 프로세스)를 사전에 설계하지 않을 경우, 예상치 못한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특정 지역을 겨냥한 채널 론칭이나 블록 편성 모델은 이러한 규제 요건과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워싱턴DC, LA 등 특정 DMA(Designated Market Area)를 타깃으로 하는 전략은 해당 지역의 공공 이슈, 시청자 구성, 정치·사회적 민감도를 반영해야 하며, 이는 단순 콘텐츠 경쟁력을 넘어 규제 적합성까지 포함한 복합적 설계를 요구한다. K-콘텐츠의 미국 지상파 진출은 스트리밍 중심 확장과는 다른 차원의 전략 영역이다. ‘콘텐츠 경쟁력’과 ‘규제 적합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 구조를 갖는다. 이번 FCC 사례는 이러한 차별적 환경을 재확인시키며, 향후 한국 사업자들이 플랫폼별 진출 전략을 보다 정교하게 구분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셋째, 규제 권한의 정치화 리스크다. FCC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콘텐츠의 편향성 여부가 면허 갱신이나 청문 절차와 결합될 경우, 규제는 단순한 감독 수단을 넘어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 압박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조기 갱신 명령, 청문 회부 등 절차적 수단은 면허 회수라는 최종 결과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 진행 과정 자체만으로도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한다.
규제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광고 시장, 투자 유치, 파트너십 협상 등 사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차 리스크가 곧 재무 리스크로 전이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미 한국은 정권에 따라 규제의 수위와 판단이 달라지는 사례는 흔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 시장에 지속으로 투자하는 기업은 드물다.
더 나아가 이러한 규제 권한이 정치적 환경과 결합될 경우, 콘텐츠의 공정성·균형성 판단이 정책 집행의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증폭시키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법적 기준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리스크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규제기관의 공식 승인을 신뢰하고 투자한 사업자가, 사후적으로 절차적 하자나 정치적 환경 변화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이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 진행된 사업이 규제기관 내부의 의사결정 방식이나 법원의 사후 판단에 따라 무효화될 경우,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금 회수와 경영권 행사의 법적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개별 사례를 넘어, 방송 면허와 같이 규제 의존도가 높은 영역에서 민간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는 제도적 리스크의 본질을 드러낸다.
특히 규제 승인 당시의 기준과 사후 법적 판단 사이의 간극이 사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구조는, 규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의 중요성을 재확인시킨다. 규제기관을 신뢰하고 장기 투자를 집행한 기업이, 행정·사법 절차의 사후 번복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게 된다면, 이는 시장 전체의 투자 신뢰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논의 과정에서 유사한 쟁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 규제 체계가 도입될 경우, 어떤 기관이 어떤 기준으로 콘텐츠 책임성을 판단하고 제재할 것인지, 그리고 그 권한 행사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부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규제 결정의 법적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사업자가 규제기관의 공식 승인을 신뢰하고 투자한 뒤 사후적으로 번복될 경우 구제 수단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도 중요한 제도적 과제로 남는다.
결국 이번 사안은 전통 방송 규제의 핵심 축인 '공공 자원-공익 의무' 원칙이 여전히 유효한 정책 도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집행 방식이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에서는 규제의 대상과 방식이 확대·다변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규제 형평성과 산업 경쟁력, 콘텐츠 자율성 간의 균형은 더욱 정교한 정책 설계를 요구하게 된다.
한국 역시 입법 논의와 산업 전략 수립 과정에서 이러한 복합적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규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업자는 합법적 절차를 신뢰할 수 없게 되고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의 정밀도와 절차적 투명성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자료: FCC Public Notice DA 26-530(2026.5.28), The New York Times, Policyband D.C. Me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