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박스드, 23개국서 '비디오 스토어' 런칭… 2,400만 시네필 팬덤 데이터로 영화 유통 패러다임 뒤집는다

영화 소셜 플랫폼의 대전환 — "친구가 별점 준 영화, 리뷰 보고 바로 렌탈"… 구독료 없이, 연체료 없이, 오직 팬이 원하는 영화만

영화 발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전 세계 시네필(Cinephile)들의 성지로 불리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레터박스드(Letterboxd)가 단순한 영화 기록·리뷰 서비스를 넘어 직접 영화를 유통하는 사업자로 변신한다.

레터박스드는 12월 10일(수) 온라인 영화 렌탈 서비스 '비디오 스토어(Video Store)'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23개국에서 공식 런칭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칸 영화제에서 처음 예고했던 이 서비스가 마침내 베일을 벗는 것이다. 전 세계 2,4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이 플랫폼은 비디오 스토어를 "영화 발견(Film Discovery)이라는 플랫폼 핵심 미션의 다음 단계 진화"라고 정의했다.

이번 서비스의 핵심은 수백만 사용자들이 남긴 워치리스트(Watchlist), 별점, 리뷰, 시청 이력 등 방대한 팬덤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짜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큐레이션해 제공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으나 정식 배급되지 못한 인디영화, 오랫동안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사라져 있던 클래식 명작들을 발굴해 팬들과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가 애플 TV,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기존 TVOD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강점은 '소셜 발견(Social Discovery)' 기능이다. 친구가 어떤 영화를 시청하고 별점을 매겼다면, 그 리뷰를 확인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렌탈할 수 있다. 플랫폼을 이탈하지 않고 발견에서 시청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경험이다.

비디오 스토어는 구독 모델이 아니다. 월정액 없이 원하는 영화만 건당 결제하며, 연체료도 없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구독 피로(Subscription Fatigue)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는 셈이다.

매튜 뷰캐넌(Matthew Buchanan) 레터박스드 CEO 겸 공동창업자는 "우리 커뮤니티가 무엇을 원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며 "1980년대 액션 영화가 갑자기 트렌딩하거나, 2년 전 영화제 출품작이 여전히 워치리스트에 추가되는 현상을 우리는 놓치지 않는다. 비디오 스토어는 이러한 실제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런칭 라인업: 9개국 9편, 큐레이션의 정수

비디오 스토어는 런칭과 함께 2개의 큐레이션 컬렉션(Curated Shelves)을 통해 9개국에서 제작된 9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레터박스드 팀이 수백만 사용자의 워치리스트, 리뷰, 행동 신호를 분석해 "진정한 회원 수요에 기반하되, 커뮤니티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작품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선정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랜덤한 콘텐츠를 나열하는 것과 달리, 철저하게 팬덤 데이터에 기반한 큐레이션이다.

컬렉션 1: '언릴리즈드 젬스(Unreleased Gems)'

첫 번째 컬렉션 '언릴리즈드 젬스'는 해당 국가에서 아직 정식 개봉되지 않은 작품들로 구성된다.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으나 배급의 벽에 막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작품들이다. 이 컬렉션은 30일간 한정 렌탈로 제공되며, 희소성 있는 영화 경험을 원하는 팬들을 겨냥한다.

《It Ends》(2025, 미국) 알렉산더 울롬(Alexander Ullom)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 같은 시골길에 갇히는 이야기를 담았다. 2025년 SXSW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큰 화제를 모았으며, 판타지아 국제영화제(Fantas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최우수 데뷔작상, 애틀랜타 영화제(Atlanta Film Festival) 내러티브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Sore: A Wife From the Future》(2025, 인도네시아) 얀디 라우렌스(Yandy Laurens) 감독의 독창적인 타임루프 SF 로맨스. 남편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여성의 이야기다. 2025년 인도네시아 영화제(Indonesian Film Festival)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인도네시아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Kennedy》(2023, 인도) 인도 영화계의 거장 아누라그 카샤프(Anurag Kashyap) 감독의 네오누아르 스릴러. 죽은 것으로 알려진 불면증에 시달리는 전직 경찰이 뭄바이의 어두운 거리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2023년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전 세계 20개 이상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나, 이후 어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볼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이번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 런칭을 통해 마침내 글로벌 관객과 만나게 된다.

《The Mysterious Gaze of the Flamingo》(2025, 칠레) 디에고 세스페데스(Diego Céspedes) 감독의 장편 데뷔작. 11세 소녀가 미신적 공포에 빠진 마을에서 퀴어 커뮤니티를 보호하려는 이야기를 담았다. 2025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칠레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컬렉션 2: '로스트 앤 파운드(Lost & Found)'

두 번째 컬렉션 '로스트 앤 파운드'는 레터박스드 커뮤니티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언더독(Underseen Underdogs)" 작품들을 재조명한다. 잊혀진 클래식 명작부터 팬데믹으로 극장 개봉 기회를 놓친 작품까지, 다시 발견될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다.

《Tiger on the Beat / 노호비파》(1988, 홍콩) 주윤발(Chow Yun-Fat) 주연, 무술영화의 전설 유가량(Lau Kar-Leung) 감독의 1988년작 액션 코미디. 홍콩 영화 황금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이 신규 4K 복원판으로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에서 디지털 독점 공개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4K 복원판을 처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Kisapmata》(1981, 필리핀) 필리핀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마이크 데 레온(Mike de Leon) 감독의 작품. 억압적인 아버지의 질식할 듯한 통제 아래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1981년 메트로 마닐라 영화제(Metro Manila Film Festival)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10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칸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마르코스 정권 시절 검열에 맞섰던 고(故) 감독의 타협 없는 비전을 기리며, 신규 4K 복원판이 디지털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It Must Be Heaven》(2019, 팔레스타인/프랑스) 팔레스타인의 거장 엘리아 술레이만(Elia Suleiman) 감독의 코미디. 2019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Special Mention)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FIPRESCI Prize)을 동시 수상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개봉이 1년 이상 지연되어 광범위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관객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술레이만 감독 특유의 시각적 풍자와 관찰 코미디 스타일로 이주와 소속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Poison》(1991, 미국) 훗날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뉴 퀴어 시네마(New Queer Cinema) 운동의 기념비적 작품. 1991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심사위원 대상(Grand Jury Prize)을 수상했으나, 미국국립예술기금(NEA)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수 정치인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컬처 워(Culture Wars)'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헤인즈를 독립영화계의 두려움 없는 목소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Before We Vanish / 산책하는 침략자》(2017, 일본) 일본 공포·스릴러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Kiyoshi Kurosawa) 감독의 외계인 침공 SF. 일본의 컬트 연극을 원작으로 하며, 2017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구로사와 감독 특유의 독특한 장르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가격 정책 및 이용 방식: 구독 없이, 연체료 없이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월정액 구독 모델이 아닌 TVOD(Transactional Video on Demand, 건당 유료 다운로드/스트리밍) 방식을 채택했다. 구독료 부담 없이 보고 싶은 영화만 선택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연체료도 없다.

가격과 이용 가능 여부는 국가와 작품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많은 작품들이 해당 지역에서 레터박스드 독점으로 제공된다. 미국 기준 런칭 작품들의 렌탈 가격은 $3.99에서 $19.99 사이다. 가격은 각 국가의 TVOD 시장 기준과 작품의 이용 가능성,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책정된다.

다른 디지털 비디오 렌탈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재생을 시작하면 48시간 이내에 시청을 완료해야 한다. '언릴리즈드 젬스' 컬렉션의 경우 30일간 한정 렌탈로 운영되어 희소성을 부여한다.

시청은 다양한 기기에서 가능하다. iOS 및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는 물론, 커넥티드 TV 기기로는 애플 TV(Apple TV), 안드로이드 TV(Android TV), 구글 크롬캐스트(Google Chromecast), 애플 에어플레이(Apple AirPlay)를 지원한다. 추가 스마트 TV 앱도 향후 출시될 예정이다.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 팬덤이 유통을 결정하는 새로운 모델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의 가장 핵심적인 차별점은 수백만 사용자들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방식이다. 기존의 스트리밍 플랫폼이 자체 알고리즘이나 라이선싱 비용 효율성에 따라 콘텐츠를 배치하는 것과 달리, 레터박스드는 "사용자들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직접 확인하고 이에 대응한다.

플랫폼은 회원들의 워치리스트 추가 현황, 리뷰 작성 패턴, 별점 데이터, 검색 행동 등을 종합 분석해 "실제 수요가 있으나 볼 수 없는 영화"를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배급사, 영화감독, 세일즈 에이전트와 협력해 해당 작품들을 서비스에 올린다.

뷰캐넌 CEO는 "우리와 우리 커뮤니티가 함께 만들어온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우리는 그들의 리드를 따르며, 이것이 레터박스드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비디오 스토어를 통해 배급사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잊혀진 명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거나, 영화감독이 우리 플랫폼에서 구축해온 팬층에 직접 다가갈 수 있게 된다"며 "이것이 우리가 업계에 보내는 메시지다: 이 관심을 활용해 영화를 가장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자"고 덧붙였다.

레터박스드는 런칭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추가할 예정이며, 2025년 말 이전에 새로운 작품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비스 지역: 23개국 런칭, 한국은 제외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가 런칭하는 23개국은 다음과 같다:

북미: 미국, 캐나다
유럽: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스위스, 그리스, 키프로스
오세아니아: 호주, 뉴질랜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런칭에 포함되지 않았다. 향후 서비스 확장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레터박스드 연혁: 시네필 커뮤니티에서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레터박스드는 2011년 뉴질랜드 기업가 매튜 뷰캐넌과 칼 폰 란도우(Karl von Randow)가 공동 설립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사용자들이 본 영화를 기록하고, 별점과 리뷰를 남기며, 다른 사용자들과 영화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과 함께 영화 팬덤 문화가 확산되면서 레터박스드는 전 세계 시네필들의 필수 앱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MZ세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레터박스드 별점"은 영화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되었으며, 플랫폼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 실제 흥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어났다.

2023년, 두 창업자는 캐나다 투자회사 타이니(Tiny)에 60%의 지배 지분을 약 5,000만 달러(약 650억 원)에 매각했다. 인수 이후 레터박스드는 플랫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장르, 스튜디오, '여성 감독' 같은 테마별로 영화 컬렉션을 발견할 수 있는 '피처드 리스트(Featured Lists)' 기능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검색 기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해 약어(Acronym) 인식과 오타 자동 수정까지 지원하게 되었다.

이번 비디오 스토어 런칭은 레터박스드가 단순한 영화 기록·커뮤니티 플랫폼에서 콘텐츠 유통 사업자로 진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점: 팬덤 데이터가 콘텐츠 유통을 결정하는 시대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의 런칭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1. 팬덤 플랫폼의 유통 사업 진출

레터박스드의 행보는 팬덤 데이터를 보유한 플랫폼이 직접 콘텐츠 유통에 나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수백만 사용자의 워치리스트, 리뷰, 행동 데이터는 "무엇이 보고 싶은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시그널이다. 이를 기반으로 큐레이션된 유통 서비스는 기존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 기반 추천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

이는 음악(Bandcamp), 게임(Steam), 팟캐스트(Patreon) 등 다른 콘텐츠 영역에서 이미 증명된 "커뮤니티 기반 유통" 모델의 영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유사한 모델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등 니치(Niche) 콘텐츠 영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2. '소셜 발견'이 만드는 새로운 시청 경험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의 차별화된 강점은 '소셜 발견(Social Discovery)' 기능이다. 친구가 별점을 매긴 영화를 발견하면, 그 리뷰를 읽고 바로 렌탈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애플 TV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기존 TVOD 플랫폼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이는 영화 시청이 개인적 소비 행위에서 '소셜 액티비티'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뭘 볼까?" 하는 고민 앞에서 알고리즘 추천보다 친구의 리뷰가 더 강력한 동기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3. 인디영화 유통의 새로운 창구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으나 정식 배급되지 못한 작품들에게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기존에는 메이저 배급사나 스트리밍 플랫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관객과 만날 방법이 제한적이었으나, 이제 팬덤 수요만 있다면 유통 경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Kennedy》처럼 칸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2년 넘게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작품이 레터박스드를 통해 글로벌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은 상징적이다. 이는 독립영화 감독과 제작자들에게 "영화제 상영 → 팬덤 형성 → 레터박스드 유통"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한다.

4. 클래식 영화의 디지털 복원·재발견

'로스트 앤 파운드' 컬렉션에서 볼 수 있듯이, 레터박스드는 잊혀진 클래식 영화의 디지털 복원 및 재발견에도 기여할 수 있다. 《Tiger on the Beat》의 4K 복원판 디지털 독점 공개, 《Kisapmata》의 4K 복원판 디지털 프리미어 등은 영화 유산 보존과 접근성 확대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배급사 입장에서도 창고에 잠들어 있는 과거 작품들을 레터박스드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Win-Win) 모델이 될 수 있다.

5.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영화 버전

넓은 의미에서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영화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유튜브, 틱톡 등에서 개인 크리에이터가 플랫폼을 통해 직접 팬과 연결되고 수익을 창출하듯이, 독립영화 감독도 레터박스드를 통해 자신의 팬층에 직접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뷰캐넌 CEO가 언급한 "영화감독이 플랫폼에서 구축한 팬층에 직접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제작 → 배급 → 상영"의 영화 산업 밸류체인에 "팬덤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는 변화를 예고한다.

한국에 주는 메시지: 놓치면 안 되는 세 가지 기회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의 런칭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지

첫째,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글로벌 유통 창구가 열린다

레터박스드에서 한국 영화, 특히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작들도 상당한 워치리스트 수와 리뷰를 확보하고 있다.

향후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가 아시아로 서비스를 확장할 경우,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도 글로벌 팬층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영화제 수상 후 배급사를 찾지 못해 관객을 만나지 못했던 작품들이 "영화제 상영 → 레터박스드 팬덤 형성 → 글로벌 유통"이라는 경로를 통해 세계 시네필들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영화진흥공사, 독립영화협회 등은 레터박스드와의 협력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타진할 필요가 있다. 런칭 23개국에 한국이 빠진 지금이야말로, 아시아 확장 시 한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네트워킹을 시작할 적기다.

둘째, 한국판 '팬덤 기반 유통 플랫폼'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레터박스드의 모델은 한국의 영화 커뮤니티 플랫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왓챠피디아, 키노라이츠, 씨네21 등 국내 영화 평점·리뷰 플랫폼들은 이미 상당한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영화 추천'에만 활용되고, 유통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터박스드처럼 축적된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유통 서비스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 대형 OTT와 차별화된 틈새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 독립영화, 클래식 한국영화, 영화제 출품작 등 대형 OTT가 외면하는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팬덤 기반 유통 플랫폼'은 한국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셋째, K-클래식 영화의 4K 복원 및 글로벌 유통 전략이 필요하다

레터박스드 비디오 스토어가 《Tiger on the Beat》(1988), 《Kisapmata》(1981) 같은 아시아 클래식 영화의 4K 복원판을 디지털 프리미어로 공개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전략이다.

한국에도 《하녀》(1960), 《오발탄》(1961), 《바보들의 행진》(1975) 등 영화사적으로 중요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클래식 명작들이 있다. 이 작품들의 4K 복원 및 레터박스드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유통은 한국 영화 유산의 세계적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KOFA)과 민간 배급사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K-클래식 영화의 글로벌 디지털 유통 전략을 수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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