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Actor)가 AI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존재에서, AI를 자신의 커리어 확장 도구로 활용하는 주체로 전환된다. 미국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드라마예술대학이 4월 16일(현지시간) AI시대 배우와 연기를 연구하는 배우 혁신 연구소(Institute For Actor-Driven Innovation, USC-IAI)'를 공식 출범시키며 할리우드 연기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결정은 생성 AI 확산 이후 합성 미디어(synthetic media)가 실연(performance)을 대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2023년 WGA·SAG-AFTRA 파업이 입증했듯 배우 노동권과 초상권(likeness rights) 보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나왔다.
명문 예술교육기관이 더 이상 'AI 공포(fear-based response)'에 머물지 않고, 직접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Adobe 공식 스폰서… 랩·씽크탱크부터 단계적 가동
에밀리 록스워시(Emily Roxworthy) USC 드라마예술대학 학장은 더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배우들은 (AI라는) 변화의 잘못된 쪽(wrong end)에 서 있었다. 우리는 이를 바꾸고자 한다"고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소는 초기 단계에서 학생들에게 AI의 기초 원리를 이해시키는 데 집중한다. Adobe가 공식 스폰서로 참여해 이달 말 첫 교육 이벤트를 진행하며, 이후 랩(lab) 공간과 학생 씽크탱크(student think tank)를 구축해 장비와 가이던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록스워시 학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솔직히 매우 야심찬 시도(admittedly a really ambitious undertaking)"라고 표현했다.
"올리비에와의 신 연기"부터 'AI 에이전트'까지
록스워시 학장이 제시한 활용 시나리오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로런스 올리비에 같은 전설적 배우와의 가상 신(scene) 연기 ▲제작사 설립 가이드 ▲정상급 배우(A-lister)의 코칭 노트 ▲아직 에이전시 계약이 없는 학생을 위한 사실상의 'AI 에이전트(agent)' 역할 등이다.
특히 마지막 시나리오가 주목된다. AI가 캐스팅 브레이크다운(breakdown, 배역 공고)을 자동으로 스캔해 학생에게 맞는 기회를 제시하는 모델로, 기존 에이전시 산업에 보완적 도전을 시사한다. 배우의 초상권 통제(likeness control) 교육은 USC 로스쿨과의 공동 강의 형태로 운영된다.
운영 책임자 Tomm Polos… "배우 역량은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
연구소의 일상 운영은 USC '크리에이터 아츠(creator arts)' 학과장 톰 폴로스(Tomm Polos)가 맡는다. 인플루언서 경제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학자이자 LA 다저스의 하이프맨(hype man)으로도 활동 중인 인물이다. 폴로스는 성명에서 "배우는 언제나 불확실성·모호성, 그리고 인간 경험의 전 영역을 항해해온 마스터 네비게이터(master navigator)였다. AI가 점점 더 사회를 규정하는 시대에 이러한 역량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가장 핵심적인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NYU Tisch–Runway, Netflix·Amazon… 학계·플랫폼 동시 다발 진입
AI를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뉴욕대 티시예술대(NYU Tisch School of the Arts)는 비디오 생성 AI 기업 Runway AI와 협약을 맺고, 자사 학생들에게 Runway 도구를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플랫폼 차원의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Netflix와 Amazon은 이미 자사 협업 필름메이커들에게 AI 도구를 개방한 상태다. 미국 동·서부 양대 예술대학이 잇따라 AI 통합에 나서면서, 미국 엔터테크(EnterTech) 교육 생태계가 본격적인 'AI 네이티브 세대' 양성 국면에 진입한 모양새다.
산업적 함의… '거부'에서 '주도'로의 프레임 전환
이번 USC의 행보는 AI가 창작 영역에서 가지는 이중적 성격을 재차 부각시킨다. 배우·작가 등 현장 아티스트는 노동권·창작권 측면에서 AI에 비판적이지만, 창작 조직의 리더들은(이미지 관리 차원이든 신념이든)점점 더 적극적으로 AI를 수용하는 추세다.
록스워시 학장은 "지금 AI에 대해 공포 기반의 반응이 많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서도 "우리는 'AI를 채택하라'고 설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예술 학생들과 다른 아티스트들이 사려 깊게, 자신들의 조건(on their own terms)으로 AI 및 신기술과 맞물릴 수 있는 창의적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USC-IAI 출범은 한국 콘텐츠·아카데미 업계에도 시사점이 크다.
K-팝·K-드라마 출연자의 초상권·딥페이크(deepfake) 이슈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한국 주요 예술 교육기관 역시 'AI 시대 배우·창작자 교육 모델 재정립'이라는 과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부'에서 '리터러시(literacy)와 주도'로의 프레임 전환은 이제 한·미 양국 공통의 산업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