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도산기념관, 기념 시설 아닌 한미 공동 교육기관으로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뿌리가 미국 리버사이드의 초기 한인 공동체 파차파 캠프에 있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 미주도산기념관 건립을 주제로 한 첫 국회 정책세미나 9월 7일 열려, 기념관을 도산 안창호를 기리는 시설이 아니라 한미 공동 교육기관으로 설계하자는 안이 공개. 부지는 10에이커, 개관 목표는 2029년

미주도산기념관, 기념 시설 아닌 한미 공동 교육기관으로

국회 첫 미주도산기념관 정책세미나… 10에이커 부지에 2029년 개관 목표...재외동포청·국가보훈부·교육부 연계 지원 과제로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뿌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Riverside)의 초기 한인 공동체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에 있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이곳에 짓는 미주도산기념관을 도산 안창호(Ahn Chang-ho)를 기리는 기념 시설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함께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설계하자는 안도 함께 나왔다.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Dosan Ahn Chang Ho Memorial Foundation of the Americas)와 김준혁(Kim Jun-hyuk)·배현진(Bae Hyun-jin) 의원실은 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미주도산기념관 건립의 의미와 글로벌 한민족 미래교육 전략」 정책세미나를 열었다.

리버사이드에 추진되는 기념관을 주제로 국회에서 정책세미나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세미나는 미주 한인사회 인사들로 구성된 기념사업회의 요청으로 마련됐고,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과 국내외 학계·교육계 전문가, 재외동포 단체, 미국 현지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는 더케이블라썸 대표인  문소리 아나운서가 맡았다.

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미주도산기념관 건립 정책세미나. 왼쪽부터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곽도원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회장, 소병선 수석부회장, 김준혁 의원실 관계자. 사진=한정훈 기자

참석자들은 기념관이 역사 보존 공간을 넘어 미주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을 세우고 한미 공공외교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재외동포청(Overseas Koreans Agency)과 국가보훈부(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교육부(Ministry of Education)의 연계 지원과 국회 차원의 지속적 지원체계 구축이 정책과제로 제시됐다.

"1911년 리버사이드에서 21개 조항 헌장 통과"

첫 발제를 맡은 장태한(Edward T. Chang) UC리버사이드(UC Riverside) 교수는 파차파 캠프를 "도산공화국"으로 부른다. 근거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자치 제도다.

1905년 파차파 캠프에서 49인이 모여 창립한 공립협회(共立協會)는 대의원 제도를 도입하고 오후 9시 소등과 복장 규정, 공동 경찰 제도 같은 규범을 시행했다. 1906년에는 한인장로선교회가 세워져 영어 교육과 한국어 학교를 함께 운영했다. 이 조직은 신민회(1906)와 대한인국민회(1909), 흥사단(1913)으로 이어졌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진행 경과. 자료=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발제자료

1911년 11월 파차파 캠프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가 열렸다. 9개 지방회 대표가 모여 열흘간 안건을 심의한 끝에 12월 4일 21개 조항의 헌장을 통과시켰고, 중앙총회를 신설하며 해외 한인을 대표하는 무형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나라가 국권을 잃은 이듬해에 대의원 제도와 사법 제도를 함께 도입해 삼권분립을 운영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학계 통설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가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거쳐 들어왔다고 본다. 장 교수는 대동단결선언 문건이 도산의 유품에서 나왔고 서명자 14인 가운데 박용만이 파차파 캠프 활동과 이어진다는 점을 들어 다른 계보를 제시했다. 발제자료의 결론은 "민주공화제는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서 먼저 실험되고 제도화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의 뿌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이다.

대한인국민회가 1918년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선포한 사실도 소개됐다. 미국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1920년보다 2년 앞선다. 첫 가입 여성은 한인이 아니라 유카탄 농장 노동으로 끌려간 한인과 결혼한 멕시코 여성이었다.

사회를 보는 문소리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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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오렌지 농장의 한인촌… 수확철엔 300명

파차파 캠프는 도산이 1904년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를 모아 만든 거주지다.

일본인이 쥐고 있던 농장 일자리를 뚫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직접 세워 한인을 알선했고, 노동자들에게는 "오렌지 하나를 딸 때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주소는 1532 파차파 애비뉴로, 장 교수가 1908년 뉴욕생명 화재보험 지도에 적힌 'Korean Settlement' 표기를 찾아내 위치를 특정했다.

파차파 캠프의 거주 인원 추이. 자료=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발제자료

거주 인원은 1905년 70명에서 1907년 150명으로 늘었고 오렌지 수확철에는 300명까지 모였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이후 차이나타운 인구의 99%가 독신 남성이었던 것과 달리 파차파 캠프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함께 살았고 결혼식과 생일잔치, 토론회가 열렸다. 신한민보는 1910년 기사에서 이곳을 "미국에서 한인들이 제일 먼저 창설한 한인의 동리"로 적었다.

부지는 1950년대에 철거돼 지금은 주차장과 주유소가 들어서 있다. 리버사이드시는 2017년 3월 이 자리를 문화 관심지 제1호(Point of Cultural Interest #1)로 지정했고,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이듬해 8월 상하 양원 만장일치로 도산의 탄신일인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채택했다. 2021년에는 멜론재단(Mellon Foundation)이 85만 달러(약 12억원)를 지원해 UC리버사이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가 파차파 캠프 전시를 열었고, 전시는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DC, 뉴저지, 뉴욕, 시카고를 돌아 리버사이드로 돌아왔다.

기념관을 교육기관으로… 10에이커에 2029년 개관 목표

곽도원(데이빗 곽, David Kwak)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회장이 내놓은 설계안은 기념관에 여섯 기능을 담는다. 미주 독립운동 연구기관, 이민사 박물관, 한미 디지털 아카이브, 차세대 교육·리더십 센터,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 허브, 한미 공공외교 플랫폼이다.

곽도원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회장이 기념관 설계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정훈 기자

근거로 든 것은 다른 이민 집단의 기념관이 이미 거둔 성과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에는 1993년 개관 이후 약 5000만 명이 다녀갔고 그 가운데 학령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1100만 명을 넘는다.

국립아프리카계미국인역사문화박물관은 3~12학년 프로그램에서 다각적 관점 취하기와 비판적 사고를 교육 목표로 삼고, 로스앤젤레스의 일본계미국인국립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 수용소 경험을 시민권 교육으로 연결한다. 곽 회장은 한국계 미국인 사회에 이에 대응하는 상설 기관이 아직 없다며 "미주 한인의 책임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건립은 세 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리버사이드 기념관, 2단계는 오렌지카운티 문화공간, 3단계는 한국과 미국 50개 주 학생을 받는 연수 과정이다.

부지는 캘리포니아 시트러스 주립역사공원(California Citrus State Historic Park) 인근 약 10에이커로, 전시관과 다목적홀, 숙박시설, 이민체험관을 짓고 2029년 문을 여는 것이 목표다. 리버사이드시가 후보지 세 곳을 제시했고 기념사업회가 2~3년 검토 끝에 한 곳을 정했다.

곽 회장은 세미나 뒤 "도산기념관은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교육과 민주주의, 공동체와 리더십의 정신을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전달하고, 한미 양국의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교육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9월 7일자).

동상 25년에 50만 명… 재원은 아직 민간 몫

기념사업회는 1999년 출범해 2001년 8월 11일 리버사이드 시청 앞 페디스트리언 몰에 도산 동상을 세웠다. 정장 차림의 전신상에 오렌지를 수확하고 교회에서 기도하며 한국어 학교에서 공부하는 장면을 새긴 청동 부조를 붙였고, 2016년 보수를 거쳤다. 같은 공간에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기념물이 서 있다. 25년 동안 이 동상을 찾은 사람은 약 50만 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시청 앞 페디스트리언 몰에 선 도산 안창호 동상. 2001년 8월 11일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가 세웠다. 사진=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리버사이드시의회는 2023년 4월 11일 한국계 미국인 문화유산센터(Korean American Cultural Heritage Center) 개발 양해각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같은 해 5월 15일 정식 서명했다. 부지와 인허가는 미국 지방정부가 처리했지만 건립비와 운영비는 민간 몫으로 남아 있다.

이사진은 70여 명이고 이번 세미나 예산도 기념사업회가 전액 부담했다. 재원은 캘리포니아 주정부 예산 신청과 한국 정부 예산, 미국 진출 글로벌 기업, 미주 한인과 국내 국민의 모금을 함께 모으는 구조로 잡혀 있다.

곽도원 회장이 8월 11일 열린 도산 안창호 동상 건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정훈 기자

"흥사단 본부 매입이 선례"… 국회 지원 논의

한국 정부 예산이 미주 독립운동 유적에 들어간 선례는 이미 있다. 배현진 의원은 2021년 국정감사에서 중국계 건설사의 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LA 흥사단 옛 본부의 보존을 촉구하고 'LA 흥사단 건물 미국 사적지 지정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2022년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매입 예산을 확보했고, 2023년 국가보훈처가 건물을 최종 매입했다. 이 건물은 1930년대 건축 양식으로 복원돼 2027년 2월 문을 열고, 미주 지역 독립운동 사적지 159곳을 관리하는 거점으로 쓰인다.

배현진 의원이 2023년 미국 리버사이드 도산 안창호 동상 제막 22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실

배 의원은 인사말에서 "미주 도산기념관 건립 사업을 통해 도산 선생이 미주에 남긴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고,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축사에서 "한인 3, 4세대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미주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학계와 국회도 함께 힘을 모으길 바란다"고 했다(데일리안 9월 7일자).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김준혁 의원. 사진=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실 제공

국회의 역할을 다룬 발제는 김준혁 의원실이 맡았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대학교수로 일했고 그 전에는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직 공무원으로 9년을 근무했다. 발제문은 "박물관과 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치"라며 접근성이 좋은 곳에 적정 규모의 공간을 먼저 만들어 성과를 낸 뒤 규모를 키우는 단계적 방식을 제안했다.

"1세대와 2세대가 기념 공간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후 차세대가 모금과 협력에 참여해 보다 큰 규모의 도산기념관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도산 선생의 정신을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축사에 나선 안민석 경기도교육감도 예산 확보와 학생 접근성을 짚으며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소병선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수석부회장은 첫 발제를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묻는 역사적 질문으로, 두 번째 발제를 "그 역사를 가지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미래적 질문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파차파 캠프의 민주주의 실험과 1919년 상해임시정부 민주공화제 사이의 인적·조직적·사상적 연결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일을 다음 연구 과제로 지목했다.

Seminar attendees are posing for a group photograph. 
Credit by The K Blossom

도산 안창호는

1920년경 흥사단 시절의 도산 안창호. 사진=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발제자료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1895년 서울 구세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97년 독립협회에 들어가 평양지회를 조직했으며 이듬해 서울 만민공동회를 함께 열었다. 1899년 고향에 세운 점진학교가 그가 만든 첫 근대 교육기관이다. 1902년 10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13년을 미국에서 보냈고, 1905년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기관지 공립신보를 냈다.

1907년 귀국해 이갑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으며 1909년 청년학우회 창립에 참여했다. 1910년 국권을 잃은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립했고, 1914년부터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을 맡았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는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고 기관지 독립신문을 냈다.

1930년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결성에 참여했고,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체포돼 4년형을 받았다가 1935년 2년 6개월 만에 가출옥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돼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병원에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가 남긴 강령은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충의·용감이다.

행사 개요

행사명  ·  미주도산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회 정책세미나

주제  ·  미주도산기념관 건립의 의미와 글로벌 한민족 미래교육 전략

일시·장소  ·  2026년 9월 7일(월) 오전 10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공동주최  ·  김준혁 국회의원실, 배현진 국회의원실,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발제  ·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곽도원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회장, 김준혁 국회의원실

종합토론  ·  소병선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수석부회장

기념관 계획  ·  리버사이드 시트러스 주립역사공원 인근 약 10에이커, 전시관·다목적홀·숙박시설·이민체험관, 2029년 개관 목표

출처

—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국회 정책세미나 자료집 및 현장 녹취, 2026년 9월 7일

— 연합뉴스, 2026년 9월 7일 — yna.co.kr / 데일리안, 2026년 9월 7일 — dailian.co.kr

—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공식 사이트 — 부지 10에이커, 2019년 건립 선언·2023년 MOU·2029년 개관 목표, 이사 70여 명 — dosanusa.com

— 서울신문, "'LA 흥사단 옛 본부 건물' 내년 새단장", 2025년 7월 21일 — 2027년 2월 개방, 미주 독립운동 사적지 159곳 관리 거점 — seoul.co.kr

— 세계한민족문화대전, '리버사이드 도산 안창호 동상' — 2001년 8월 11일 건립, 2016년 보수 — okpedia.kr

— City of Riverside, 한국계 미국인 문화유산센터 MOU 승인 보도자료, 2023년 4월 12일 — riversideca.gov/press

— Edward T. Chang, 『Pachappa Camp: The First Koreatown in the United Stat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21 — escholarship.org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창호' — 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