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카이브 AI, 제작 지원에서 방송 진행 도구로

KBS,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KAIROS)’로 34년치 음악 프로그램 아카이브를 자연어로 검색해 19년 전 듀엣 무대를 방송 중 불러내. 검색 화면과 질의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제작 지원 도구가 프로그램 진행 일부로 쓰여. 방송사 아카이브가 검색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되는 국내 첫 실전 사례이자, 아카이브 사업화 논의 출발점

KBS 아카이브 AI, 제작 지원에서 방송 진행 도구로

카이로스, 34년치 음악 프로그램·출연진 2880명 색인… ‘더 시즌즈’서 성시경의 자연어 지시에 2007년 듀엣 소환, 제작 효율과 구작 재유통이 도입 이유

KBS 2TV ‘더 시즌즈-성시경의 고막남친’ 8월 28일 방송에서 진행자 성시경(Sung Si-kyung)이 KBS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KAIROS)’에 직접 검색을 지시했다.

듀엣 게스트로 나온 박정현(Lena Park)에게 카이로스를 소개한 뒤 “카이로스, 박정현 성시경 듀엣 찾아봐 봐”라고 말했고, 2007년 10월 19일 ‘윤도현의 러브레터’ 268회에서 두 사람이 부른 〈Somethin’ Stupid〉 무대가 화면에 떴다.

성시경은 카이로스를 “KBS에 있는 자료를 다 모아놓은 KBS의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소환된 무대를 두고 “어떻게 누나, 20년 전이야?”라는 물음이 나왔고 “19년 전이에요”라는 정정이 이어졌다. 의자가 높아 거인처럼 보였다는 당시 기억이 뒤따랐다.

사실 단순한 유튜브 '키워드 검색'으로는 찾기 힘든 장면이다.

‘더 시즌즈-성시경의 고막남친’ 8월 28일 방송에 노출된 카이로스 질의 화면. 사진=KBS 2TV 유튜브 캡처

질의는 자연어, 결과는 클립 구간… 화면엔 회차·날짜·타임코드

방송에 노출된 질의창 안내 문구는 “장면을 묘사하면 클립을 찾아오고, 질문하면 근거 클립과 함께 답합니다”였다. 검색 결과 목록의 머리글은 “KAIROS가 찾은 박정현 × 성시경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입니다”로 표시됐다.

결과에는 2007년 10월 19일 ‘윤도현의 러브레터’ 268회 〈Somethin’ Stupid〉와 2011년 11월 1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121회 〈우리 참 좋았는데〉, 〈Quando Quando Quando〉 무대가 함께 올라왔다. 각 카드에는 방송 날짜와 회차, 곡명, 프로그램명이 붙었고 25:50~25:59, 21:01~21:18 같은 클립 구간 타임코드가 표시됐다. 반환 단위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면이라는 점이 기존 아카이브 검색과 갈리는 지점이다.

카이로스가 반환한 검색 결과. 방송 날짜·회차·곡명·프로그램명과 클립 구간 타임코드가 함께 붙는다. 사진=KBS 2TV 유튜브 캡처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34년치… 출연진 2880명 통합 DB

카이로스는 KBS AI혁신단과 미디어기술연구부, ‘더 시즌즈’ 제작진이 공동 개발했다.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유희열의 스케치북’, ‘더 시즌즈’까지 34년간 쌓인 KBS 음악 프로그램 아카이브가 기반이다.

AI가 영상에서 뽑아낸 얼굴과 표정, 의상, 대사, 노래 가사, 특정 장면 정보를 프로그램명·방송일·회차 같은 기존 방송 메타데이터와 결합해 출연자 중심의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했다. 현재까지 출연진 2880명의 데이터를 학습했고, 출연 이력과 무대, 노래, 주요 장면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제공한다(일간스포츠 7월 30일자).

검색에는 생성 AI 기반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이 적용됐다. 자료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기획·분석 질의까지 받으며, 결과에서 장면을 고르면 해당 방송 영상이 곧바로 재생된다. 기존 방송사 아카이브 검색이 사람이 입력한 제목·출연자·태그 같은 텍스트 메타데이터를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달리, 카이로스가 방송에서 처리한 질의는 화면 안의 인물과 장면을 대상으로 삼았다.

검색 결과로 재생된 2007년 10월 19일 ‘윤도현의 러브레터’ 268회 듀엣 무대. 사진=KBS 2TV 유튜브 캡처
검색 시연(1분8~148초)

첫 실전 7월 28일 박진영 녹화… “국내 방송 최초 실시간 멀티모달 검색”

카이로스를 제작 현장에 적용한 첫 사례는 7월 28일 ‘더 시즌즈’ 녹화다. 게스트 박진영(J.Y. Park)의 30여 년 활동 자료를 실시간 검색해 1995년 ‘가요톱텐’, 1997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무대를 대화 흐름에 맞춰 띄웠다. KBS는 국내 방송 제작 현장에 멀티모달 AI 검색 기술을 실시간 적용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일간스포츠 7월 30일자). 이 녹화분은 7월 31일 방송됐다.

당시 녹화에서는 박진영이 ‘가요톱텐’에서 입은 의상을 찾아 달라는 질문에 30년 전 방송 화면이 즉시 검색됐고, 시대별 외모 변화나 특정 표정을 찾아 달라는 요청에도 관련 장면이 제시됐다(스포츠경향 7월 30일자). ‘더 시즌즈’ 제작진은 제작 과정의 효율성과 콘텐츠 완성도를 함께 높일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더 정교한 AI 제작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 방송 제작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일간스포츠 7월 30일자).

두 방송의 성격은 다르다. 7월 31일 방송이 제작진이 준비한 자료를 AI가 찾아 붙인 시연이었다면, 8월 28일 방송에서는 진행자가 검색어를 부르고 결과 화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제작 지원 도구가 프로그램 구성 요소로 올라온 셈이다.

7월 1일 사내 공개, 8월 초 ‘AI 프로덕션’ 개소… 보안 클라우드는 국내 기업과 구축

KBS는 7월 1일 카이로스를 사내에 공개하며 직원 ‘1인 1AI’ 체계를 알렸다. 박장범 KBS 사장은 카이로스를 두고 2025년 AI 방송 원년 선언 이후 KBS의 AI 전환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해 온 전사적 업무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미디어오늘 7월 2일자, 방송기술저널). 카이로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기회의 시간, 결정적 순간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왔다.

취재·제작용 맞춤형 업무 챗봇이 보도자료 분석, 취재 쟁점 정리, 팩트체크 지원, 인터뷰 구성안과 예상 질문 생성을 맡는다. 부서별 AI 담당자인 ‘AI 챔프’가 현장에 필요한 챗봇을 직접 만들 수 있게 설계했고, 내부 자료 유출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용 AI 솔루션 사업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과 협력해 독립된 보안 클라우드를 구축했다(세계일보·스포츠경향 7월 1일자, 방송과기술 8월호).

아카이브 검색 기능은 ‘더 시즌즈’를 맡은 KBS 이창수 PD가 아이디어를 내면서 만들어졌다. 창고에 쌓인 자료를 실제 제작과 창작에 끌어와 정보의 가치를 높이자는 제안이었고, AI혁신단과 미디어기술연구부가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KBS가 2025년 3월 창립 52주년에 AI 방송 원년을 선언하며 내건 목표도 AI로 프로그램 창의성과 조직 효율성을 높여 수신료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것이었다(방송과기술). 34년치 아카이브를 다시 꺼내 쓰는 작업은 그 선언을 제작 현장에서 검증하는 자리에 가깝다.

서영우 AI방송혁신단장은 카이로스의 확산 방식을 부서별 ‘AI 챔프’ 체계로 설명해 왔다. AI 챔프들이 각 부서에 들어가 AI 기술을 활용하고 필요한 도구를 제안하며 그 결과를 공유하면서 전사적으로 확산시키고, 혁신단은 어느 부서에 어떤 AI 기술이 필요한지 현장의 요구를 듣고 적정 인원을 배치해 조율·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한국언론인협회 미디어뉴스 2025년 10월 20일자). 서 단장은 카이로스를 공동 개발한 미디어기술연구부장을 지냈다.

카이로스 아카이브 검색 기능을 제안한 KBS 이창수 PD(왼쪽)와 서영우 AI방송혁신단장. 사진=케이엔터테크허브

8월 초에는 생성 AI 기반 제작 지원 조직 ‘AI 프로덕션’이 문을 열었다.

온라인에서는 카이로스가 업무를 지원하고 오프라인에서는 AI 프로덕션이 영상 제작과 기술 지원을 맡는 구조다. 아나운서 10여 명이 음성 합성 기술 개발과 사용에 동의했고, 보도시사본부는 기자 음성을 학습해 리포트 원고를 읽는 TTS 리포트를 ‘뉴스 12’에 시범 도입했다(이데일리·스포츠경향 8월 4일자).

KBS는 앞서 AI 자막 동기화 기술을 2023년 본사 뉴스, 2026년 영문 뉴스에 적용했고 6월부터 전국 18개 지역국 뉴스 VOD로 확대했다(방송과기술 8월호). 다음 적용 대상은 11월 28일 방영 예정인 대하드라마 ‘문무’다. 매소성·기벌포 전투 같은 대규모 전쟁 장면의 군중 표현을 AI로 보강하고, 화재나 위험 액션 장면은 사전 시각화에 AI를 쓴다(마리끌레르 코리아 8월 보도).

카이로스 앞엔 버티고… 2019년부터 ‘뮤직뱅크’ 멤버별 직캠 자동 제작

KBS의 AI 제작 기술은 촬영과 편집 쪽에서 먼저 쌓였다. AI 기반 멀티뷰 제작 시스템 ‘버티고(VVERTIGO)’는 8K 원본 한 벌을 AI 트래킹과 고속 렌더링으로 리프레이밍해 멤버별 세로 직캠을 만들어낸다. 멤버 한 명당 카메라 한 대를 붙이던 방식을 대체한 구조다. 2019년 여름 ‘뮤직뱅크’에 적용된 뒤 KBS Kpop 유튜브에 올라오는 출연 가수 직캠이 이 시스템으로 제작됐고, ‘신상출시 편스토랑’과 ‘누가누가 잘하나’ 같은 관찰 포맷의 멤버별 리액션 영상으로도 범위가 넓어졌다(방송과기술).

뮤직뱅크’ 출연 가수의 멤버별 세로 직캠. 8K 원본 한 벌에서 버티고가 멤버별 화면을 만들어낸다. 사진=케이엔터테크허브

버티고는 2024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다. CES 2025에서는 ‘버티고’와 ‘버티고 비전’을 공개했다. 버티고 비전은 촬영 영상을 180도 시야로 확장하고 8K·16K까지 끌어올리는 기술로, 스마트폰과 메타(Meta)·애플(Apple)의 몰입형 기기 환경에 맞출 수 있고 코즘(Cosm)이나 스피어(Sphere) 같은 대형 공간 디스플레이로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KBS의 설명이다(이데일리 1월 5일자).

CES 2026에서는 ‘버티고 PTZ’를 전면에 세웠다. 출연자의 얼굴과 숙련된 촬영감독의 촬영 패턴을 학습해 PTZ(Pan-Tilt-Zoom) 카메라를 실시간 제어하는 방식이다. 기존 자동추적의 한계를 보완해 여러 명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안정적인 화면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KBS의 설명이고, 부스에서는 예능 ‘이웃집 남편들’ 제작에 적용한 자동 프레이밍을 시연했다.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공동관에서 진행됐다(이데일리 1월 5일자). 2월에는 이 기술을 제작 현장에 옮긴 ‘AI TV 스튜디오’가 가동에 들어갔다.

서영우 AI방송혁신단장은 CES 2026 현장에서 “KBS는 콘텐츠 사업자를 넘어서 AI 미디어 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며 “K-콘텐츠의 글로벌 표준을 이끄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KBS 뉴스 1월 10일자). 촬영과 편집에서 시작한 축이 자료 검색으로 넓어진 자리에 카이로스가 있다.

박장범 KBS 사장. 카이로스와 AI 프로덕션을 AI 기반 제작 환경의 양대 축으로 제시했다. 사진=KBS

박 사장 “AI 혁신 통해 흑자 전환 가능”… 제작 효율화가 도입 명분

지상파 광고 시장 축소와 수신료 재원 여건 변화가 이어지면서 제작 효율화가 AI 도입의 명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이와 관련 박장범 KBS 사장은 7월 14일 2026년 3분기 계열사 협력 회의에서 자체 개발한 AI 모델 카이로스를 방송 제작과 경영 전반에 활용하라고 주문하며 “AI 혁신을 통해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인사이트 7월 15일자).

아카이브 검색은 이 명분과 맞물리는 영역이다. 자료 조사 인력과 시간이 직접 줄고, 이미 보유한 자산을 쓰기 때문에 추가 촬영이나 판권 구매가 필요 없다. 34년치 음악 프로그램은 KBS가 배타적으로 보유한 자산이어서 외부 사업자가 같은 결과를 재현하기 어렵다.

해외는 모델·플랫폼 기업이 선점… 트웰브랩스, 7월 1일 1억 달러 유치

영상 아카이브의 장면 단위 검색은 해외에서 모델 기업 중심으로 상용화됐다. 트웰브랩스(TwelveLabs)는 임베딩 모델 마렌고(Marengo)와 영상 언어 모델 페가수스(Pegasus)를 축으로 오디오, 화면 속 텍스트, 움직임을 한 번에 처리해 장면 경계와 개체, 시간 구간을 구조화된 데이터로 만든다.

4월 20일 NAB 쇼 2026에서 페가수스 1.5를 공개하며 초기 테스트에서 구글 제미나이 2.5 프로(Gemini 2.5 Pro) 대비 분할 품질 지표를 30% 앞섰고 이미 주요 방송 네트워크에서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PRWeb 4월 20일자). 7월 1일에는 NEA와 네이버벤처스(NAVER Ventures) 공동 주도로 시리즈 B 1억 달러(약 1390억원)를 유치했다.

도입은 스포츠와 뉴스 아카이브에서 먼저 나왔다. NFL미디어(NFL Media)의 브래드 보임(Brad Boim) 미디어 관리·후반작업 시니어 디렉터는 경기 안의 정확한 순간에 접근하는 일이 사업의 핵심이며 멀티모달 AI가 판을 바꾸는 기술이라고 트웰브랩스 웹사이트에 실린 코멘트에서 말했다.

BBC는 R&D 조직이 자체 데이터로 오픈소스 LLM을 파인튜닝해 왔고 아카이브 검색과 전사, 추천을 효율화 대상으로 제시했다(포춘 2024년 4월 24일자). 2025년 IBC 액셀러레이터 수상 프로젝트는 라이브 제작을 실시간 지원하는 AI 에이전트였다(피드 매거진 2월 26일자).

SBS는 협업 모델로, KBS는 자체 포털로… 국내 두 경로

국내에서도 접근이 갈렸다.

SBS는 트웰브랩스의 멀티모달 모델을 자사 장면 검색 기술과 결합해 사내 아카이브와 개인 업로드 영상까지 장면 단위로 검색하는 체계를 구축했다(트웰브랩스 사례 연구). KBS는 자체 포털과 보안 클라우드를 직접 구축하는 쪽을 택했다. 외부 모델을 쓰면 도입이 빠르고 성능 개선을 벤더가 가져가지만 제작 자료가 외부로 나간다. 자체 구축은 반대다.

카이로스가 방송 화면에 노출된 것도 이 선택과 연결된다. 화면에 뜬 것은 검색 결과만이 아니라 KBS 로고가 붙은 제품 인터페이스였다. 사내 도구가 시청자에게 보이는 브랜드 자산으로 쓰였다.

수익모델 전망… 아카이브 SaaS·구작 재유통·메타데이터 라이선스

사내 제작진용 도구로 시작한 카이로스는 국내외 방송사·제작사·스트리밍 서비스에 제공하는 구독형 또는 사용량 기반 서비스로 확장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료 검색과 장면 분석, 편집 준비 시간 단축은 아카이브를 가진 사업자 대부분이 공유하는 문제이고, 트웰브랩스가 모델·인프라 공급에서 애플리케이션 계층으로 넘어온 것도 같은 수요를 겨냥한 움직임이다.

방송사가 직접 만든 도구는 이 경쟁에서 다른 강점을 갖는다.

검색 결과가 편집기와 아카이브 대장, 편성표로 이어지는 실제 업무 흐름을 전제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확장 순서는 지역국과 계열사에서 사례를 만들고, 이후 한국 콘텐츠를 다루는 해외 채널과 K팝 기획사, 음악 전문 제작사로 넓히는 쪽이 현실적이다. 요금 구조는 좌석 단위 구독보다 색인 시간과 질의량에 연동한 방식이 방송사 회계 관행에 맞다.

구작 재유통은 더 직접적이다.

장면 단위 색인이 되면 하이라이트와 클립을 뽑는 단가가 내려가고, 복원·리마스터링한 구작 무대를 국내외 FAST와 스트리밍 서비스에 다시 태울 수 있다. 아티스트별 무대 모음, 연도별 편성, 계절·테마별 큐레이션 채널처럼 기존에는 편집 인건비 때문에 접기 쉬웠던 기획이 질의 몇 줄로 구성된다.

34년치 음악 프로그램은 국내 대중음악사의 무대 기록이 사실상 한 곳에 쌓인 자료여서, 해외 한류 채널과 항공·호텔 기내 채널처럼 판권 단가가 낮고 물량이 필요한 창구에도 맞다. 광고·라이선스 수익과 함께 공공 콘텐츠 아카이브의 거래 체계 논의와도 맞물린다.

색인 데이터 자체도 자산이다.

출연자 2880명의 얼굴·표정·의상·가사 메타데이터는 권리자 정산 연계,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검색 API 제공 같은 형태로 쓸 수 있다. 영상 원본을 넘기지 않고 색인 계층만 제공하는 구조여서 대외 사업 가운데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의상과 무대 연출 정보는 패션·뷰티 브랜드의 레퍼런스 검색으로, 가사와 곡목 데이터는 음원 사업자의 추천·플레이리스트 편성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다만 권리자 정산 기준과 개인정보 거버넌스가 선행 과제다. ‘AI 프로덕션’ 조직을 축으로 다른 방송사·제작사의 제작을 지원하거나 공동제작에 참여하는 방식도 가능한 경로다.

KBS 세로 영상 AI 직캠 버티고
KBS 세로 영상 AI 직캠 버티고

팬덤을 직접 상대하는 상품도 후보에 든다.

아티스트별 30년 타임라인은 그 자체로 소비 단위다. 데뷔부터 최근까지 무대를 모은 기념 패키지, 아카이브 기반 다큐멘터리, 무대 영상 프린트와 포토북, 실황 음원 컴필레이션, 팬이 직접 검색해 보는 유료 열람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구작 무대 소비는 이미 유튜브에서 확인된 수요이고, 그 트래픽을 자사 창구로 받는 경로를 만드는 일이다. 34년치 무대를 시대별로 재편집한 미디어아트 전시나 AI 검색을 관람객이 직접 써보는 체험형 부스는 해외 코리아센터와 K-컬처 행사에 얹기 좋은 포맷이며, 인바운드 관광 사업과 지역국 자산을 묶으면 지자체·관광 예산과 접점이 생긴다.

데이터를 통계로 파는 방식도 있다.

34년치 음악 방송 기록은 국내 대중음악의 편성 변화와 출연 구조를 수치로 말할 수 있는 자료에 가깝다. 장르·편성·출연 빈도 추이를 담은 산업 리포트, 학술·연구용 데이터 접근권, 다른 방송사와 제작사를 상대로 한 아카이브 색인 컨설팅이 이어질 수 있다.

제약도 분명한 편이다. 카이로스의 1차 가치는 수익이 아니라 제작 효율과 아카이브 접근성이며, 공영방송이 보유한 자료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는 권리자 정산과 AI 신뢰성 기준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 수신료로 제작한 자료를 유료화하는 문제도 별도 설명이 필요한 영역이다. 매출로 넘어가는 속도는 기술보다 이 합의의 속도에 달렸다.

색인 범위는 음악 프로그램에 한정… 결과 목록엔 중복 클립도

공개된 색인 범위는 음악 프로그램 아카이브와 출연진 2880명이다. 드라마, 시사교양, 뉴스, 스포츠로 확장하면 처리할 영상 시간과 인물 수가 늘고 색인 비용도 커진다.

드라마는 회당 등장인물과 장면 수가 음악 프로그램과 다르고, 뉴스는 아카이브 자체가 별도 체계로 관리된다. 음악 프로그램은 무대 단위로 시작과 끝이 뚜렷하고 곡명과 출연자가 메타데이터로 남아 있어 색인 난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대사와 상황이 이어지는 드라마나 현장 화면이 뒤섞인 뉴스는 장면 경계를 잡는 일부터 조건이 다르다. 수익 관점에서는 확장 순서를 매출 기대치로 정할 수 있다. 팬덤 수요가 확인된 음악·예능이 먼저고, 해외 판권 수요가 큰 드라마가 다음이다.

검색 정확도도 실전 변수다. 방송에 노출된 결과 목록에는 2007년 10월 19일 ‘윤도현의 러브레터’ 268회 클립이 서로 다른 구간으로 두 번 올라와 있었고, 한 카드의 구간 표기는 끝 시각이 시작 시각보다 앞서 있었다. 사내 검색에서는 담당자가 걸러낼 수 있는 오차지만, 클립을 상품으로 내보내는 단계에서는 구간 정확도가 곧 품질 보증 항목이 된다. 자동 편성이나 API 공급처럼 사람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오차가 그대로 결과물로 나간다. 생방송이나 뉴스처럼 오류 허용 폭이 좁은 영역에 적용할 때는 결과 검증 절차가 별도로 필요하다.

34년 아카이브엔 계약 세대가 여러 번… 색인 이용 조항 없는 계약이 대부분

색인 작업의 실제 난도는 영상 처리량보다 계약이다. 1992년 이후 34년치 아카이브라면 출연 계약과 외주 계약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있고, 그 대부분에는 영상의 AI 학습이나 색인 이용에 관한 조항이 없다. 방송 당시 합의된 이용 범위는 본방송과 재방송, 길게 봐도 VOD 수준이었다. 소속사가 바뀌었거나 활동을 그만둔 출연자, 이미 사라진 외주 제작사가 섞여 있어 권리자를 찾는 일부터 작업이 된다.

얼굴과 표정, 의상 단위로 뽑아낸 색인 데이터는 출연자의 초상과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사내 제작 지원에 머무는 동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클립을 외부로 유통하거나 검색 결과를 상품으로 파는 순간 이용 범위 정의가 앞선 조건이 된다. 표정과 외모 변화를 검색하는 기능은 편의와 민감성이 같은 데이터에 붙어 있는 사례다.

KBS가 아나운서와 기자의 음성 합성을 개인 동의 기반으로 진행한 방식은 이 문제를 다루는 절차 하나를 먼저 만들어 둔 사례다. 아카이브 색인에서도 사내 이용과 대외 서비스를 구분한 동의·정산 기준을 어느 시점에 세우느냐가 확장 속도를 결정한다. 순서를 뒤집어 보면 협상 카드이기도 하다. 수익 배분 기준을 먼저 제시하는 쪽이 소속사와 아티스트로부터 자료 제공과 협업을 끌어오기 쉽다.

클립 추출 단가가 편성 단가를 좌우… 검색은 FAST·숏폼 유통으로 이어진다

장면 단위 색인이 끝나면 하이라이트와 클립을 뽑는 작업은 사람 시간에서 질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FAST 채널 편성과 숏폼 공급의 단가를 결정해 온 구간이 이 지점이다. K-콘텐츠의 해외 유통에서 병목이었던 것도 원본 부족이 아니라 원본을 재사용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비용이었다.

같은 조건은 방송사 밖에도 적용된다. 제작사와 MCN, 스포츠 구단, 공연 기획사처럼 자체 영상이 쌓인 조직은 팬덤 영상 아카이브를 같은 방식으로 수익화할 수 있고, 계약 구조가 방송사보다 단순해 착수도 빠르다. 엔터테인먼트 테크 기업의 협업 지점도 여기서 넓어진다. 기술 사업자의 진입 지점은 모델 성능보다 위쪽, 방송 워크플로에 붙는 인터페이스와 메타데이터 정합, 권리 정보 관리 쪽이다.

기준과 규제 논의는 그다음 과제로 남는다. AI가 시청자에게 보이는 자리로 올라오면 표기와 고지 기준이 뒤따라야 한다. 8월 28일 방송이 남긴 장면은 검색 결과가 아니라 검색 과정 자체가 화면에 나갔다는 점이다. 기준을 먼저 만든 쪽이 다음 적용 범위와 매출 경로를 넓힐 여지도 함께 쥔다.

출처

· 김지혜, ‘박진영 30년 음악 인생 한눈에… 더시즌즈, AI로 과거 무대 실시간 소환’, 일간스포츠, 2026년 7월 30일

· ‘박진영이 가요톱텐서 무슨 옷 입었는지도 알아’, 스포츠경향, 2026년 7월 30일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607302158003)

· ‘더 시즌즈, KBS AI 첫 공개’, bnt뉴스, 2026년 7월 30일 (https://www.bntnews.co.kr/article/view/bnt202607300055)

· ‘KBS, 독자적 AI 업무 플랫폼 카이로스’, 미디어오늘(Media Today), 2026년 7월 2일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5539)

· ‘KBS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 도입’, 방송기술저널, 2026년 7월 (http://journal.kobeta.com)

· ‘KBS, 자체 AI 포털 도입… 직원 1인 1 AI 시대 열다’, 세계일보, 2026년 7월 1일

· ‘KBS, 자체 AI 포털 카이로스 도입’, 스포츠경향, 2026년 7월 1일

· ‘KBS, AI 프로덕션 개소… AI 제작 전문 허브 구축’, 이데일리, 2026년 8월 4일

· ‘KBS, AI Production 개소 AI 기반 방송 제작 본격화’, 스포츠경향·MyloveKBS, 2026년 8월 4일

· ‘박장범 KBS 사장, AI 혁신 통한 경영 개선 주문’, 인사이트, 2026년 7월 15일

· ‘KOBETA News 8월’, 방송과기술, 2026년 8월

· ‘KBS, AI 방송 원년 선언. 방송제작에 AI 활용 높여’, 방송과기술, 2025년 3월

· ‘KBS, 방송제작 등의 AI 전환 위해… 본부·센터·총국별로 AI 챔프 40~80명 양성’, 한국언론인협회 미디어뉴스, 2025년 10월 20일

· ‘이제 대하드라마도 AI 시대? 문무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사극 전쟁’, 마리끌레르 코리아, 2026년 8월

· ‘TwelveLabs Unveils the Next Era of Video Intelligence at NAB Show 2026’, PRWeb, 2026년 4월 20일

· ‘TwelveLabs Raises $100M to Build Video Superintelligence’, TwelveLabs, 2026년 7월 1일

· ‘SBS Case Study: AI for Video Archive and Scene Search’, TwelveLabs

· Molly Flatt, ‘Move over, Black Mirror; the BBC is showing AI can be a force for good in media’, 포춘(Fortune), 2024년 4월 24일

· ‘IBC Accelerator Kickstart Day at BBC sets stage for AI-driven media innovation’, 피드 매거진(Feed), 2026년 2월 26일

· KBS 2TV ‘더 시즌즈-성시경의 고막남친’ 2026년 8월 28일 방송 및 KBS 공식 유튜브 클립 (https://www.youtube.com/watch?v=Gb_uobc9r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