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를 넘어 프랜차이즈 라이선스로 무게 이동…재무·위기 커뮤니케이션 강화
스피어, 코즘과의 경쟁 속 K-팝·e스포츠엔 새 매출 창조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외벽 '엑소스피어'는 초대형 LED 디스플레이로 도시 스카이라인에 이미지를 띄운다.
스피어 엔터테인먼트가 기업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총괄에 월가에서 재무·위기 커뮤니케이션을 다뤄온 카렌 로레아노-리카르드센을 앉혔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단일 자산으로 각인된 회사가 프랜차이즈 라이선스 사업으로 무게를 옮기는 지금, 대외 메시지의 1차 수신자가 관객에서 투자자와 해외 파트너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코즘이 도시마다 돔을 깔며 추격하는 몰입형 베뉴 경쟁의 승부처는 더 나은 화면이 아니라, 그 화면을 세계 곳곳에 세울 자본 조달력과 파트너십 장악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왜 월가 출신인가 — 라이선스로 옮겨가는 스피어

카렌 로레아노-리카르드센 스피어 글로벌 기업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총괄
라스베이거스 스피어는 개장 3년이 안 돼 미국에서 가장 높은 객단가를 뽑아내는 라이브 공간으로 올라섰다. 남은 과제는 두 번째, 세 번째 스피어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였고, 회사가 택한 답은 자기 자본을 태우지 않는 프랜차이즈였다.

첫 해외 거점 아부다비 스피어는 공사비 17억 달러를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가 전액 부담한다. 스피어는 설계·기술·지식재산에 대한 개시 수수료와 콘텐츠·브랜드·운영·자문 명목의 연간 수수료를 받는다. 시설은 야스섬에 2029년 말 완공 예정, 약 2만 석 규모다. 매출 구조로 보면 공연장 운영보다 라이선스 로열티에 가깝고, 자본지출 없이 수수료가 쌓이는 고마진 사업이다.
로레아노-리카르드센의 경력은 콘텐츠 마케팅이 아니라 금융 커뮤니케이션에 뿌리를 둔다.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9년간 모회사와 상장 계열사 BGC 그룹·뉴마크 그룹의 최고커뮤니케이션·마케팅책임자(CCMO)로 글로벌 조직을 세웠고, C레벨 자문·기업 평판·위기 대응·재무 커뮤니케이션·브랜드 전략을 관장했다. 그 전에는 크레디트스위스와 드레스드너 클라인보르트 바서슈타인, 힐앤드놀턴을 거쳤다. 상장사의 IR과 위기관리에 특화된 이력이다.
스피어가 그녀에게 원하는 능력은 재무 스토리다. 뉴욕증시 상장사(SPHR)인 스피어는 얼마 전까지 자회사발 부채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지역 스포츠 채널 MSG 네트웍스의 만기 도래 채무를 놓고 여러 차례 상환 유예를 반복하며 파산설까지 돌았고, 2025년 6월 8억 달러대 대출을 2억1000만 달러로 줄여 재조정하는 것으로 봉합했다. 이 채무는 모회사에 소구되지 않아 스피어 본체와는 절연돼 있다. 확장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고 파트너를 설득해야 하는 회사에 재무·위기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다행히 실적은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 2025 회계연도 매출 12억2000만 달러(전년 대비 8% 증가)에 이어 2026년 1분기 매출은 3억8640만 달러로 38% 늘었고, 스피어 부문만 보면 2억6600만 달러로 69% 뛰었다. 확장을 밀어붙이기에 나쁘지 않은 실적 배경이다.
뉴욕에 상주하는 그는 제니퍼 코스터(Jennifer Koester)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직속으로 배치됐다.
코스터 사장은 "스피어의 입지를 넓히고 차세대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전 세계 관객에게 선보이는 과정에서 우리 이야기를 설득력 있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카렌은 글로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역량과 균형 잡힌 판단력, 이목이 집중되는 환경에서 검증된 리더십을 두루 갖췄다. 회사의 비전과 혁신을 어떻게 전달할지 그려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레아노-리카르드센은 스피어를 "기술과 스토리텔링, 라이브 엔터테인먼트가 만나는 독보적인 회사"라고 표현하며 "크리에이터와 엔지니어, 기술 전문가, 사업 리더로 구성된 유능한 팀과 함께 회사의 지속적인 확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레지던시, 반복 수익의 콘텐츠 엔진
거점을 늘리는 만큼 무대를 채울 콘텐츠도 필요하다. 스피어의 해법은 한 아티스트를 일정 기간 붙박이로 세우는 레지던시를 여러 팀으로 돌리는 편성이다. 메탈리카의 '라이프 번스 패스터'는 2026년 10월부터 2027년 3월까지 24회로, 8회에서 시작해 수요를 확인하며 두 차례 늘렸다. 목·토 편성에 매회 세트리스트를 바꿔 같은 팬이 여러 번 사도록 설계했다. 한 팀을 24회로 늘리는 편성은 예매 수요를 회차로 잘게 쪼개 객단가와 총매출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캐나다 밴드 러시도 16~18회 레지던시를 협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도는데, 라디오 진행자 에디 트렁크와 영국 더 선발 보도일 뿐 양측 공식 확인은 없다. 업계에서는 스피어가 아티스트를 교체 투입해 5년치 상시 로스터를 짜려 한다고 본다.
프리미엄 가격을 지렛대로 삼는 만큼 마찰도 따라온다. 메탈리카 첫 판매 때는 높은 티켓값과 예매 대기 혼선으로 팬 반발이 나왔다. 브랜드 평판과 직결되는 이런 잡음을 관리하는 일이 위기·기업 커뮤니케이션에 방점을 둔 이번 인사의 실무 영역과 겹친다.
경쟁 구도 — 몰입형 벤의 두 모델
몰입형 베뉴(Venue) 시장은 스피어 혼자가 아니다.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20년 세운 코즘(Cosm)은 헤드셋 없이 다중 관객이 함께 보는 '셰어드 리얼리티(공유 현실)'를 앞세운다. 지름 약 87피트(약 27m)의 12K급 LED 돔에 스포츠를 실시간으로 얹는데, 자체 인력이 현장에서 4~5개 앵글을 8~10.5K로 잡고 방송 피드와 실시간 그래픽을 겹쳐 '경기장 좌석' 감각을 만든다. 연간 400회가 넘는 라이브 스포츠를 돌리며 NBA·UFC·대학 농구가 주력이다.

코즘이 돔에 실시간 중계하는 라이브 스포츠 — 프리미어리그 경기 장면.

데빈 풀먼 코즘 최고제품·기술책임자(CPTO), theCUBE·NYSE 와이어드 인터뷰

코즘 '셰어드 리얼리티' 파이프라인: 라이브 이벤트 → 8K 캡처 → 데이터 스트림 → LED 돔(공동 관람). 자료: theCUBE 리포트
코즘(Cosm)의 경쟁력은 수직 통합에서 나온다. 6년 전 세계 최대 플라네타륨 기업 에번스 앤드 서덜랜드(Evans & Sutherland)를 인수해 돔 디스플레이라는 하드웨어 자산을 손에 넣었고, 픽셀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와 현장 제작까지 외부에 맡기지 않고 내부에서 소화한다. 돔에 뿌리는 영상은 델 프리시전(Dell Precision) 워크스테이션 50여 대에 엔비디아(Nvidia) GPU를 물린 분산 렌더링이 처리한다. 베뉴는 스타디움과 맞붙은 스포츠 구역에 세워 하루 4~5개 프로그램으로 24시간 돌리며, 한 곳을 짓는 데 12~18개월이 걸린다.

코즘의 전략적 확장: 콘텐츠 파트너·기술 스택·라이브 스포츠가 셰어드 리얼리티로 모여 기존(LA·댈러스)·신규 거점을 거쳐 글로벌로. 자료: theCUBE 리포트
거점은 로스앤젤레스·댈러스가 가동 중이고 6월 애틀랜타, 9월 디트로이트, 이듬해 클리블랜드가 이어진다. 목표는 전 세계 100곳 이상이다. 콘텐츠는 리그·방송사와의 파트너십으로 채우고 있다. NBA와는 2030년 이후까지 장기 계약을 맺었고, 2026년 FIFA 월드컵은 폭스 스포츠·FIFA와 세 벤에서 40경기를 걸었다. 스포츠 밖으로는 워너브러더스와 '매트릭스' '해리 포터'를 돔용으로 옮긴 '체험형 시네마'까지 넓히고 있다.
같은 돔, 다른 승부수 — 스피어는 'IP'를, 코즘은 '도시'를 판다
헤드셋 없는 대형 몰입이라는 기술은 같지만, 스피어(Sphere)와 코즘(Cosm)의 사업 설계는 정반대다. 승부는 콘텐츠가 아니라 자본 조달력과 파트너십 장악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헤드셋을 쓰지 않고도 화면에 둘러싸이는 대형 몰입, 이를 구현하는 GPU 인프라, 그리고 '집이 아니라 넓은 베뉴에서 보게 만든다'는 컨셉. 스피어와 코즘이 공유하는 전제는 여기까지다. 두 회사가 이 전제를 돈으로 바꾸는 방식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스피어 — 랜드마크 하나에 IP를 얹어 라이선스한다
스피어는 소수의 랜드마크에 콘서트 레지던시와 오리지널 체험을 얹고, 이를 지식재산(IP)으로 라이선스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짜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단일 프로토타입에서 모델을 완성한 뒤, 건물은 현지 자본이 짓게 하고 스피어는 콘텐츠·소프트웨어·브랜드를 공급하는 '자산 경량(asset-light)' 구조다.
실제로 스피어는 2025년 아부다비 문화관광부와 상표·몰입형 콘텐츠·기술 사양을 아우르는 IP·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며 운영자에서 글로벌 라이선서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아부다비와 내셔널 하버(National Harbor)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자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약 5,000~6,000석 규모의 '미니 스피어(Mini-Sphere)' 콘셉트도 개발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이 계산에서 프로토타입이자 상시 광고판 역할을 한다
코즘 — 중형 돔을 도시마다 깔아 중계권을 재판매한다
코즘은 반대다. 87피트(약 26.5m) 지름의 12K LED 돔을 갖춘 중형 베뉴를 도시마다 출점해, 스포츠 중계권을 실시간 관람 상품을 판매한다. 이미 LA·댈러스·애틀랜타 3곳이 운영 중이고, 디트로이트(2026년 9월), 클리블랜드(2027년 초)가 대기 중이다. 회사가 내건 최종 목표는 미국과 해외를 아우르는 50~100개 베뉴 네트워크다.
코즘의 핵심 자산은 건물이 아니라 계약이다. 앞서 언급했듯, NBA와는 2030년대까지 이어지는 장기 파트너십을 맺어 향후 최소 5년간 라이브 경기를 자사 베뉴에서 제작·상영할 수 있고, NFL·MLB·NHL, 그리고 FOX 스포츠·ESPN·TNT 스포츠·NBC 스포츠 같은 방송사와의 계약을 겹겹이 쌓고 있다 . 2026년에는 FOX 스포츠·FIFA와 손잡고 월드컵 40경기를 '셰어드 리얼리티(shared reality)'로 상영했다
승부처가 콘텐츠에서 자본으로 옮겨간다
두 회사의 갈림길은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을 빌리는가'있다. 스피어는 콘텐츠와 브랜드를 소유하고 건물을 남에게 맡긴다. 코즘은 건물(과 그 관람 경험)을 소유하고 콘텐츠는 리그·방송사에서 빌린다. 전자는 라이선스 로열티로, 후자는 티켓 매출과 출점 규모로 돈을 번다.
그래서 두 모델 모두 다음 관문은 콘텐츠가 아니라 자본이다. 스피어는 현지 정부·개발자의 건설 자금을, 코즘은 도시 단위 출점을 뒷받침할 대규모 펀딩(2024년 2억 5,000만 달러 조달 후 추가 라운드 논의)을 필요로 한다. 리그·방송사와의 장기 계약과 도시 단위 출점이 쌓일수록, 경쟁의 무게중심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에서 '누가 더 많은 자본과 파트너십을 장악하는가'로 옮겨간다.
같은 기술을 쓰더라도, 스피어는 '희소한 랜드마크'를, 코즘은 '반복 가능한 네트워크'를 판다.
한쪽은 로열티 기반의 자산 경량 모델, 다른 쪽은 부동산과 중계권을 묶은 자산 집약 모델이다.
몰입 기술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차별화는 화면 안이 아니라 자본과 계약이라는 화면 밖에서 결정된다.
결국 헤드셋 없는 대형 몰입이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스피어와 코즘은 IP 라이선싱과 도시 출점이라는 서로 다른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더 나은 화면이 아니라, 그 화면을 세계 곳곳에 세울 자본 조달력과 파트너십 장악력이다.
결론 — K-콘텐츠의 다음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라 '자리'다
몰입형 베뉴 경쟁이 콘텐츠에서 자본과 파트너십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은, K-콘텐츠에게 기회이자 시험대다. 광고가 마른 국면에서 몰입형 베뉴는 방송·스트리밍과 별개인 새 매출 창(window)을 연다. 지상파 광고가 한때 2조 원대에서 6,936억 원으로 반토막 나고, 방송사업 매출이 3년 연속 줄며 지상파가 3년 연속 적자를 낸 지금 (연합뉴스, KDI), 이 창을 어떻게 여느냐가 방송사와 콘텐츠 사업자의 다음 성적표를 가른다.
어떤 K-콘텐츠가 어느 모델에 어울리나
같은 K-콘텐츠라도 스피어형(랜드마크·레지던시·IP 라이선스)과 코즘형(도시 네트워크·실시간 중계권 재판매) 중 어디에 태울지가 관건이다.
- K-팝 → 스피어형. 깊은 카탈로그와 높은 재관람율, 세계관·비주얼 중심 연출이 오리지널 몰입 체험과 맞는 앨범 단위 몰입 쇼나 레지던시, 콘서트 필름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부다비로 수출하는 '이머시브 투어'가 유력하다.
- e스포츠·K-스포츠 → 코즘형. LCK·KBO처럼 실시간성과 응원 문화가 핵심인 콘텐츠는 도시마다 깔린 돔의 '커뮤니티 관람'과 맞는다. 결승·플레이오프 동시 상영은 방송·스트리밍과 별개인 현장형 관람권을 만든다.
- K-드라마 → 결합형. 본편은 몰입형 상품이 아니지만, 인기 IP를 세계관 체험·명장면 몰입관으로 재가공하면 스피어형에 얹을 수 있다. K-스크린 투어맵('Watch It, Walk It') 같은 촬영지 데이터와 결합하면 돔 안의 몰입(보는 사람)을 돔 밖의 방문(오는 사람)으로 잇는다.
- K-예능·시상식·팬미팅 → 양쪽 모두. 대면 현장감이 핵심인 포맷은 코즘형 다도시 동시 상영(글로벌 라이브 뷰잉)과도, 스피어형 대형 이벤트와도 붙는다. 해외 교민 겨냥 시상식 실시간 몰입 상영이 진입 장벽 낮은 시작점이다.
- 웹툰·애니메이션·버추얼 아이돌 → 스피어형. 원본이 디지털이라 실사 촬영 제약이 없고, 실시간 렌더링·버추얼 프로덕션과 결합하면 제작 단가에서도 유리하다.
관건은 밸류체인의 어느 칸에 서느냐다. 중계권을 코즘형 베뉴에 단순 납품하면 수익은 라이선스 몫에 그친다. 방송사가 제작 역량과 IP를 앞세워 베뉴 운영·공동투자에 참여할 때, 편성표 밖에서 반복 매출을 만드는 경험 사업자로 올라선다. 아부다비가 17억 달러 시설 자본을, 스피어가 지식재산을 대는 구조는 한국의 콘텐츠·방송·자본·기술 주체가 역할을 나눠 결합할 참고선이다.
같은 몰입 기술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승부는 화면 안이 아니라 화면 밖. 즉 자본과 파트너십에서 갈린다.
K-콘텐츠는 무한히 복제되는 '스크린'을 넘어, 복제되지 않는 '자리(현장)'를 파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스피어가 커뮤니케이션 수장 자리에 월가 출신을 앉힌 것은, 이 싸움이 콘텐츠가 아니라 자본의 언어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다음 장의 질문은 하나다. 세계 몰입형 베뉴 지도 위에서, K-콘텐츠와 한국 방송사가 작품을 파는 '라이선서'로 남을 것인가, 무대를 짓고 소유하는 '지분 있는 파트너'로 올라설 것인가.
자료: 스피어 인사·확장·재무는 Deadline(2026.7.21) 및 회사 발표·공시, 코즘 관련 내용은 theCUBE·NYSE 와이어드 인터뷰와 코즘·NBA·FOX 스포츠 발표를 종합. 한국 방송 통계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2025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연합뉴스·KDI 인용). K-콘텐츠·방송사 관련 서술은 분석·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