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2위 극장 체인, 파라마운트-워너 합병 반대해온 시네마 유나이티드와 정반대 입장
– 3년간 연 30편 극장 개봉·45일 극장 독점·90일 스트리밍 금지 서면 약정… 위약금 실효성은 논란
세계 최대 극장 체인인 AMC 엔터테인먼트(AMC Entertainment)와 시네월드 그룹(Cineworld Group) 산하 리걸 시네마(Regal Cinemas)가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WBD) 인수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고 블룸버그(Bloomberg)가 전했다. 합병이 극장 사업에 해롭다고 밝혀온 극장 협회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와 정면으로 갈라선 것이다.

두 체인을 움직인 것은 계약서다. 블룸버그는 지난 8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가 합병이 성사되면 연 30편을 극장에 걸겠다는 약정에 서명하기로 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개봉작은 와이드 릴리즈이며 최소 45일간 극장에 독점 상영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극장이 스튜디오에서 받아낼 수 있는 것은 특정 작품의 흥행이 아니라 개봉 편수와 독점 상영 기간이다. 팬데믹 이후 스튜디오들이 슬레이트를 줄이고 홀드백을 단축하면서 두 항목은 협상 대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것을 3년짜리 서면 약정으로 되돌리는 조건이 나오자 대형 체인 두 곳이 협회 노선에서 이탈했다.
두 체인이 받아낸 조건
블룸버그와 더랩(TheWrap)에 따르면 파라마운트가 제시한 조건은 합병 완료 후 3년간 연 30편 이상 극장 개봉, 개봉 후 최소 45일간 극장 독점, 최소 90일간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 금지다. 이행하지 못하면 금전적 페널티가 따라붙지만, 블룸버그는 위약금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더랩은 영국 체인 뷰 시네마(Vue Cinemas)도 같은 제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리걸의 에두아르도 아쿠냐(Eduardo Acuña) CEO는 지난주 성명에서 연 30편 이상 극장 개봉, TVOD 45일·SVOD 90일 홀드백 최소 3년, 연간 300억 달러 콘텐츠 투자를 조건으로 열거하며 “데이비드가 이 약속을 진심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슨 CEO가 주 법무장관들을 상대로 동의명령(consent decree) 체결까지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AMC의 애덤 애런(Adam Aron) CEO도 버라이어티(Variety)에 기고문을 싣고 합병을 지지했다. 파라마운트는 30편 약정을 문서로 남기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협회는 왜 남았나
시네마 유나이티드는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클 오리어리(Michael O’Leary) 회장은 소송 제기 당시 스튜디오 추가 통합의 여파가 할리우드를 넘어 지역 극장이 자리한 미국 각지의 상권으로 번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협회는 대형 체인과 중소 극장 사업자를 함께 대표한다. 연 30편 와이드 릴리즈 보장은 전국 단위 스크린을 가진 체인에 먼저 도달하는 조건이다. 개봉작 수급과 분배 조건에서 협상력이 약한 소규모 극장에는 같은 약정이 같은 무게로 작동하지 않는다.
위약금은 실제로 청구될 수 있나
블룸버그는 위약금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함께 전했다. 극장 체인이 자신들의 최대 파트너 가운데 하나를 상대로 거액의 위약금을 물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롭 본타(Rob Bonta)도 같은 지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유형의 조치를 행태적 시정조치로 부르며 강제하기 어렵다고 했고, CNN 인터뷰에서 합의 조건으로 구조적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계약서와 동의명령은 성격상 행태적 조치에 속한다.
본타 장관이 이끄는 12개 주는 지난달 13일 클레이턴법(Clayton Act)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냈다. 소장은 합병 법인이 미국 와이드 릴리즈 극장 배급 시장의 27%, ‘흥행 상위 기대작’ 시장의 30%, 기본 케이블 채널 공급 시장의 27%(일부 집계 34%)를 쥐게 된다고 적시했다. 주들은 워너브러더스가 2023년과 2024년 내건 개봉 편수 목표를 채우지 못한 전례를 들어 30편 약속이 실현 가능성도 낮다고 주장했다. 소장의 또 다른 축인 기본 케이블 채널 시장 문제는 30편 약정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디즈니-폭스가 남긴 전례
엘리슨 CEO는 몇 달째 같은 약속을 되풀이해 왔지만 업계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블룸버그는 그 배경으로 디즈니(Disney)의 21세기폭스(21st Century Fox) 인수를 들었다. 당시 디즈니는 인수가 영화 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개봉 편수를 줄였다.
독립 스튜디오 시절 20세기폭스(20th Century Fox)는 2014년 한 해 17편을 극장에 걸었다. 인수 이후 디즈니는 폭스 라벨의 연간 슬레이트를 10편 안팎으로 재편했고, 밥 아이거(Bob Iger) CEO는 2019년 실적 발표에서 폭스의 제작 편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확인했다. 구두 약속 대신 서면 약정이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베팅하는 이유
블룸버그는 두 체인의 선택을 장기 베팅으로 설명했다. 애런과 아쿠냐 CEO가 이 거래는 결국 성사되고 소송은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 규제당국은 이 합병을 승인해 왔고, 영국도 최근 승인 대열에 합류했다.
성사될 거래라면 빨리 끝나는 편이 낫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재판은 2027년 3월에야 시작되고, 9월 30일까지 거래가 종결되지 않으면 파라마운트는 WBD 주주에게 주당 분기 25센트의 ‘티킹 피(ticking fee)’를 지급해야 한다. 분기당 약 6억 5000만 달러, 하루 700만 달러 수준이다. 인수 자금으로 약 500억 달러를 차입할 계획이며, 합병 법인의 부채는 8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콘텐츠 공급자와 극장 양쪽의 체력이 함께 떨어진다.
블룸버그는 합병이 마무리된 뒤 극장 체인들이 억만장자 미디어 거물인 엘리슨 CEO에게 적이 아니라 우군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고 짚었다.
극장이 기대는 숫자, 그리고 편수의 한계
올해 북미 박스오피스는 8월 초 기준 약 6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다. 2019년 같은 시점과 비교하면 11% 낮지만, 연간 100억 달러 돌파 전망이 나온다. 2019년 이후 처음이다.
회복을 만든 것은 편수가 아니라 소수 대작이다. 소니(Sony)·마블(Marvel)의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Spider-Man: Brand New Day)’는 북미 개봉 주말 3억 6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데 이어 개봉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10억 달러를 넘었다.
블룸버그는 이 작품이 미국 단일 시장에서만 10억 달러를 넘어서는 첫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고, 최근 할리우드 작품으로는 드물게 중국에서도 큰 성적을 냈다고 전했다. 앞서 유니버설(Universal)의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The Super Mario Galaxy Movie)’, 라이온스게이트(Lionsgate)의 ‘마이클(Michael)’, 디즈니·픽사(Disney·Pixar)의 ‘토이 스토리 5(Toy Story 5)’가 10억 달러 선을 넘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개봉일 관객의 49%,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감독 ‘오디세이(The Odyssey)’ 개봉일 관객의 30%가 14~29세였다.
편수 보장이 곧 매출 보장은 아니라는 사례는 파라마운트(Paramount) 자신이다. 2025년 8편이던 극장 슬레이트를 올해 15편으로 늘리면서 회사는 월가에 “개봉 편수가 늘어나는 대신 편당 평균 박스오피스가 낮아져 전년 대비 극장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안내했고, 2분기 극장 매출은 45% 감소한 1억 3800만 달러에 그쳤다. 분기 최대 개봉작은 6월 5일 개봉한 ‘무서운 영화(Scary Movie)’로 북미 1억 800만 달러, 전 세계 2억 3100만 달러였다.
엘리슨 CEO는 지난주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기고에서 특정 작품의 흥행은 보증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G.I. 조: 리탤리에이션(G.I. Joe: Retaliation)’은 기대에 부합했고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은 기대를 넘었으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Terminator: Dark Fate)’는 미치지 못했다고 적은 뒤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작업, 그리고 더 많은 작업”이라고 했다.
한국 사업자에 주는 메시지
미국에서 45일·90일 홀드백은 법은 아니다. 스튜디오와 극장 체인 사이의 사적 계약에 위약금을 붙이는 방식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한국에서 몇 해째 이어진 홀드백 논의는 기금·법제화 쪽에 무게가 실려 왔다. 배급사와 극장, 배급사와 OTT 사이의 다년 계약에 이행 담보를 넣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계약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이번 사례에 함께 드러났다. 위약금 조항이 있어도 최대 거래처를 상대로 실제로 청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국내에서 홀드백 약정을 설계할 때 위반 시 제재를 배급사와 극장의 양자 관계에만 맡기지 말고, 제3의 확인 절차나 공적 공시를 함께 두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형 체인과 중소 극장의 이해가 갈린 대목도 국내에 그대로 적용된다. 편수·창구 보장은 전국 스크린을 가진 사업자에게 먼저 도달한다. 국내 멀티플렉스 3사와 지역 단관·예술영화관을 같은 협상 테이블에 놓을 때 이 비대칭을 전제로 조건을 나눠 설계해야 한다.
행태적 시정조치의 수명이 짧다는 점도 국내 심사에 그대로 걸린다. 공정거래위원회(Korea Fair Trade Commission)는 2025년 6월 티빙(TVING)과 웨이브(Wavve)의 임원 겸임 방식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2026년 말까지 현행 요금제를 유지하라는 행태적 조치를 부과했다. 본타 장관이 미국에서 거부하고 있는 것이 이 유형의 조치다.
파라마운트-워너가 결합하면 K콘텐츠 판권을 사는 미국 측 창구가 하나 줄고, 기본 케이블 채널 공급 시장에서 협상력은 매수자 쪽으로 더 기운다. 디즈니-폭스 이후 폭스 라벨의 연간 편수가 줄어든 전례는 합병 이후 워너 계열 라벨의 발주 규모를 예측하는 참고점이 된다. 라이선스 단가와 계약 기간, 지역별 권리 분할 조건을 재점검할 시점이다.
출처
· 블룸버그(Bloomberg) 엔터테인먼트 뉴스레터, 2026년 8월 10일자 — AMC·리걸의 합병 지지 배경, 30편 서면 약정, 위약금 실효성, 디즈니-폭스 비교, 영국 승인 및 재판 일정.
· Todd Spangler, “David Ellison Is Promising Theater Owners Contractual Guarantees for Paramount-Warner Bros. 30-Film Annual Slate”, Variety, 2026.8.9. https://variety.com/2026/film/news/david-ellison-theater-owners-guarantee-30-movies-paramount-warner-bros-merger-1236830791/
· “Paramount to sign contract with theatre chains guaranteeing 30 films/year”, Bloomberg 보도 인용, Business Standard, 2026.8.9. https://www.business-standard.com/world-news/paramount-to-sign-contract-with-theatre-chains-guaranteeing-30-films-year-126080900774_1.html
· “Paramount Offers to Put David Ellison’s Annual 30-Film Theatrical Promise in Writing”, TheWrap, 2026.8. https://www.thewrap.com/industry-news/deals-ma/paramount-theatrical-pledge-in-writing-theaters/
· “Regal Cinemas CEO Champions Paramount-WBD Merger”, Deadline, 2026.8.5. https://deadline.com/2026/08/regal-cinemas-ceo-paramount-warner-bros-merger-1237027050/
· “Regal Cinemas CEO Backs Paramount-Warner Bros. Merger”, The Hollywood Reporter, 2026.8.5. https://www.hollywoodreporter.com/business/business-news/regal-cinemas-ceo-paramount-warner-bros-1236665588/
· “States Sue to Block Paramount-Warner Bros. Merger, Defying DOJ”, Variety, 2026.7.13. https://variety.com/2026/film/news/paramount-warner-bros-merger-states-lawsuit-1236806824/
· “12 States File Antitrust Lawsuit to Block Paramount-Warner Bros. Discovery Merger”, IndieWire, 2026.7.13. https://www.indiewire.com/news/breaking-news/states-antitrust-lawsuit-block-paramount-warner-bros-merger-1235204936/
· “Paramount-Warner Bros. Deal Challenged by California, States”, Bloomberg Law, 2026.7. https://news.bloomberglaw.com/antitrust/paramount-warner-bros-deal-challenged-by-california-states
· “Paramount-Warner Bros Merger: What’s Next in States’ Antitrust Lawsuit”, Variety, 2026.7. https://variety.com/2026/tv/news/paramount-warner-bros-whats-next-state-antitrust-lawsuit-1236819518/
· “Paramount Skydance (PSKY) earnings Q2 2026”, CNBC, 2026.8.4. https://www.cnbc.com/2026/08/04/paramount-skydance-psky-earnings-q2-2026.html
· “The Box Office Comeback Finally Happened”, The Hollywood Reporter, 2026.8.4. https://www.hollywoodreporter.com/movies/movie-news/box-office-2026-spider-man-odyssey-1236663643/
· “‘Spider-Man’ joins list of 2026 billion-dollar movies”, CNBC, 2026.8.5. https://www.cnbc.com/2026/08/05/hollywood-2026-billion-dollar-movies.html
· “Disney is halving the number of films that Fox makes”, Film Stories, 2019.5. (밥 아이거 CEO 실적 발표 발언) https://filmstories.co.uk/news/disney-is-halving-the-number-of-films-that-fox-makes/
· “4 Years Under Disney: What Is 20th Century Studios Now?”, IndieWire·Yahoo Entertainment, 2023.9. (2014년 폭스 17편 개봉 기록) https://www.yahoo.com/entertainment/4-years-under-disney-20th-130000215.html
· 공정거래위원회, “티빙-웨이브 간 임원겸임 방식의 기업결합에 대한 시정조치 부과”, 2025.6.10. 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26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