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 최불암 별세… 수사반장·전원일기 40년 이끈 배우

29일 밤 영면, 향년 87세… 정부 금관문화훈장 추서,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11월 2일 발인

'국민 아버지' 최불암 별세… 수사반장·전원일기 40년 이끈 배우
한줄요약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10월 29일 밤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MBC '수사반장'(1971~1989)의 박영한 반장과 '전원일기'(1980~2002)의 김 회장으로 한국 TV 장수 드라마를 40년 이끌었고, KBS '한국인의 밥상'을 14년간 진행했다. 41년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르며 발인은 11월 2일이다. 정부는 30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고인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오후 10시 30분께 숨을 거뒀다.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ChildFund Korea)이 30일 별세 시각과 장례 절차를 알렸다. 고인은 2025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입원해 재활 치료를 이어 왔다.

정부는 30일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오후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문체부는 고인을 67년간 연극·드라마·영화·교양 프로그램을 오가며 "한결같이 국민 곁을 지켜 온 배우"로 평가하고,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성장기를 이끈 점을 추서 이유로 들었다고 연합뉴스가 30일 전했다. 앞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배우로는 2016년 백성희,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 2025년 이순재·김지미, 2026년 안성기 등이 있다.

고인은 MBC '수사반장(Chief Inspector)'에서 18년 동안 박영한 반장을, '전원일기(Country Diaries)'에서 22년 동안 양촌리 김 회장을 연기했다. 형사물과 농촌 가족극에서 한 인물을 각각 수십 년씩 맡았고, 두 작품을 합한 기간은 40년이다. '전원일기'는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기록돼 있다.

드라마를 마친 뒤에는 2011년부터 2025년 3월까지 KBS 1TV '한국인의 밥상(Korean Cuisine and Dining)'을 진행하며 전국의 향토 음식과 그 음식을 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1959년 연극 무대에 처음 선 뒤 67년 동안 연극·영화·드라마·교양 프로그램을 오갔다.

최불암이 2014년 6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헌시를 낭독하고 있다.
최불암이 2014년 6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헌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코리아넷(Korea.net)·전한, CC BY-SA 2.0

1959년 '햄릿'으로 첫 무대… 1967년 KBS 특채 6기로 방송 입문

1940년 6월 15일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서울 중앙고 연극반에서 무대를 처음 접했고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와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했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햄릿'으로 데뷔했고,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방송 활동은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혀 드라마 '수양대군'의 김종서 역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고인의 어머니 이명숙 씨가 운영한 주점 '은성(銀星)'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사반장' 880회… 2024년 프리퀄 '수사반장 1958'에 노년의 박 반장으로

1971년 3월 시작한 '수사반장'은 1989년 10월까지 880회 방송됐고, 최고 시청률은 70%에 이르렀다. 고인이 연기한 박영한 반장은 매회 사건을 해결하고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형사였다. 이 드라마의 테마곡은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Memories of Murder)'에서 송강호가 흥얼거리는 장면에도 쓰였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 포스터
MBC 드라마 '수사반장' 포스터. 박영한 반장 역의 최불암(왼쪽). 사진=MBC

박 반장을 중심으로 김상순·남성훈·조경환·노경주가 맡은 시경 수사과 형사들이 실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구성이었다. 수사 기법보다 범인과 피해자의 사정을 다루는 인간 드라마에 무게를 뒀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한 장면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한 장면. 1971년부터 18년 동안 880회 방송됐다. 사진=MBC

경찰 이미지를 높인 공로로 1972년 명예경찰에 처음 위촉됐고, 2024년에는 민간인으로는 처음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이 됐다. 같은 해 4월 MBC가 내놓은 프리퀄 '수사반장 1958(Chief Detective 1958)'에서는 이제훈(Lee Je-hoon)이 젊은 박영한을 맡았고, 고인은 첫 회와 마지막 회에 노년의 박 반장으로 출연했다. 1971년 시작한 작품이 53년 뒤 새 시리즈로 이어진 것이다.

'수사반장 1958' 포스터
2024년 MBC 프리퀄 '수사반장 1958' 포스터. 이제훈이 젊은 박영한을 맡았다. 사진=MBC

'전원일기' 22년 양촌리 김 회장… '국민 아버지' 별칭 굳어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전원일기'에서 고인은 김혜자와 부부로 호흡을 맞추며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가장을 연기했다. '국민 아버지'라는 별칭이 이 작품에서 굳었다. 한때 그를 주인공으로 한 '최불암 시리즈' 유머가 책으로 나올 만큼 유행했다.

'전원일기'의 최불암
'전원일기'의 최불암(가운데). MBC 다큐 '파하, 최불암입니다' 예고 화면. 사진=MBC

고인이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것도 '전원일기' 촬영장에서였다. 1981년 아역 배우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원일기'·'보통사람들' 출연진과 함께 결연 후원을 시작했다. 2023년 9월에는 '전원일기' 출연진이 다시 모인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 나와 1970년 결혼한 아내 김민자 씨를 두고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2008년의 최불암
2008년 11월 경기 고양 킨텍스 행사장의 최불암. 사진=아크로팬(Acrofan), CC BY-SA 3.0

'한국인의 밥상' 14년 700회… 2025년 최수종에게 진행 넘겨

고인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 '한국인의 밥상'을 맡았다. 10주년을 맞은 2021년 1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밥은 생명"이라며 가지 않은 지역은 없지만 북한 음식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한국인의 밥상'의 최불암
KBS 1TV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당시의 최불암. 사진=KBS

2025년 3월 진행 자리를 배우 최수종에게 넘겼다. 최수종은 700회 기자간담회에서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을세라 조심하면서 그 발자국을 뒤따라가겠다"고 노컷뉴스에 전했다.

1985년부터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 41년… 장례도 재단장으로

고인은 1985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위촉돼 41년 동안 국내외 아동 지원에 나섰다. 2015년 후원회장 30주년 기념식에서는 봉사를 '함께 비를 맞는 것'에 빗대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75세의 나이로 케냐 투르카나 지역을 찾아 아이들을 위한 물탱크 설치에 참여했다.

정치에도 한 차례 몸담았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전국구로 국회에 들어갔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979년 대종상 남우주연상('달려라 만석아'), 1980년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최후의 증인')을 받았고, 2014년 11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장례는 5일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른다. 장례위원장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맡았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양옥경 초록우산 대표이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유족 요청으로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빌딩 1층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

입관은 11월 1일 오후 2시 30분, 발인은 2일 오전 7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은 발인 뒤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거쳐, 생전 "죽으면 재단에 꼭 들러 달라"고 한 뜻에 따라 무교동 초록우산 본부를 들른 뒤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민자 씨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금관문화훈장 추서… 병상서 "퇴원하면 막걸리" 약속한 장관이 전달

MBC는 2026년 5월 5일과 12일 특집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를 방송했다. 재활 치료 중이던 고인은 1부 방송에 직접 출연하지 못했지만, 앞서 공개된 예고 영상에서 야윈 얼굴로 후배 배우 채시라에게 "아버지가 말이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방송을 앞두고는 "오랜 시간 저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게 광대의 마음"이라는 소감을 냈다.

'파하, 최불암입니다'
MBC 가정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 2026년 5월 5일·12일 방송. 사진=MBC

6월 11일 병실을 찾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는 "머잖아 퇴원하면 술 한잔하자"고 했다. 최 장관은 별세 소식에 "퇴원하면 막걸리 한잔하자 하셨는데…"라며 고인을 기렸고, 이날 빈소에서 직접 훈장을 전달했다고 서울신문이 30일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사회의 그늘을 살피던 고인의 뜻을 새기겠다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인을 "오랜 세월 서울의 얼굴"로 기억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SNS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최불암 이모부"라며 "수많은 국민 여러분께 따스한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적었다.

11월 2일 발인… 프리퀄·복원판으로 이어지는 67년의 기록

고인이 남긴 작품 가운데 일부는 이미 새 형태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수사반장'은 2024년 프리퀄로 다시 제작됐고, '전원일기' 출연진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회했다. 1980년 검열로 30분 넘게 잘린 채 개봉한 '최후의 증인'은 한국영상자료원이 2003년 154분 복원판을 공개했고 2017년 블루레이로 냈다. 지난 6월 병문안 때 모은영 한국영상자료원장이 고인에게 건넨 선물도 이 블루레이였다.

한국 TV 드라마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세계로 나가기 전, 같은 배우와 같은 인물을 수십 년 이어 가는 장수 드라마가 국내 시청자의 일상을 채우던 시기가 있었다. 고인의 박 반장과 김 회장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프리퀄과 재회 예능, 복원판 같은 방식으로 다음 세대 시청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은 11월 2일 여의도성당 장례미사로 대중에게 열린다.


참고 자료

별세 시각은 초록우산 발표(오후 10시 30분)를 따랐다. 일부 매체는 오후 10시께로 보도했다. 큰따옴표는 보도된 발언, 무따옴표는 보도 요약이다. 코리아넷·아크로팬 사진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조건에 따라 게재했고, 나머지 사진은 방송사(MBC·KBS) 제공 홍보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