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워너, 공동 CEO 체제로… 창작·테크는 엘리슨, 운영·통합은 크라이즈

파라마운트가 WBD 인수 이후 공동 CEO 체제를 예고했다. 엘리슨은 전략·창작·기술을, 크라이즈는 운영·통합을 맡는다. HBO의 블로이스는 통합 스트리밍 총괄로 거론된다. 한국 업계에는 콘텐츠 구매 규모와 IP 보유, 공동제작 조건이 핵심 변수

파라마운트·워너, 공동 CEO 체제로… 창작·테크는 엘리슨, 운영·통합은 크라이즈

스트리밍 · 인수합병

파라마운트·워너 통합 앞두고 공동 CEO 체제… 엘리슨은 창작·기술, 크라이즈는 운영 맡는다

매텔 이끈 크라이즈 10월 5일 합류… HBO 블로이스, 통합 스트리밍 총괄 유력가입자 규모 넘어 콘텐츠 확보 경쟁으로… 한국 제작사에는 판권·IP 협상 새 변수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 종결을 앞두고 공동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전환한다. 데이비드 엘리슨 회장 겸 CEO가 전략과 창작, 기술을 맡고, 매텔을 이끌어 온 이논 크라이즈가 일상 경영과 두 회사의 통합을 책임지는 구도다. 파라마운트+와 HBO맥스를 합칠 스트리밍 사업은 HBO 경영진이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인사는 합병 이후 경영진의 역할을 나누는 동시에, 통합 스트리밍 서비스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HBO의 브랜드와 창작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넷플릭스·유튜브와 경쟁할 만큼 콘텐츠와 이용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가 새 경영진 앞에 놓였다. 한국 방송사와 제작사에는 글로벌 구매처가 줄어드는 부담과, 통합 서비스의 콘텐츠 수요를 확보할 기회가 함께 생기는 셈이다.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회장 겸 CEO. 사진=회사 제공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회장 겸 CEO. 사진=회사 제공

엘리슨은 전략·창작, 크라이즈는 운영·통합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9월 30일(현지시간) 이논 크라이즈 매텔 회장 겸 CEO를 WBD와의 합병 회사 공동 CEO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크라이즈는 10월 5일 합류할 예정이며, 공동 CEO 직책은 거래 종결 시점부터 효력을 갖는다. 2025년 8월 스카이댄스와 파라마운트의 합병 이후 단독으로 회사를 이끌어 온 엘리슨은 1100억 달러(약 149조2000억원) 규모의 WBD 인수 마무리를 앞두고 운영을 함께 맡을 경영자를 영입했다.

회사가 공개한 역할 분담에 따르면 엘리슨은 장기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인재·파트너십, 기술, 자본 배분을 맡는다. 크라이즈는 일상적인 사업 운영과 WBD 통합 작업을 책임진다. 합병 후 각 사업부는 두 CEO에게 공동으로 보고하며, 크라이즈는 이사회에도 합류한다.

엘리슨은 직원 메모에서 “WBD 거래가 끝나면 크라이즈 같은 역량의 경영자와 손잡을 계획이었다”며 “우리의 역량과 경험은 서로를 보완한다”고 밝혔다. 공동 CEO 직책은 “거래 종결 시점부터” 적용되며 “거래가 끝날 때까지 바뀌는 것은 없다”고도 설명했다.

크라이즈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검증된 빌더이자 운영자이며,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고 창작 사명을 깊이 아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다음 단계를 밟으면서 옆에 세우고 싶은 사람은 그 말고 없다”고 강조했다. 크라이즈는 보도자료에서 “엘리슨과 함께 프리미엄 콘텐츠와 상징적인 브랜드를 모은 차세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들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바비’ 만든 IP 경영자, 합병 실무 책임진다

이논 크라이즈 매텔 회장 겸 CEO. 합병 회사에서 운영과 통합을 맡을 예정이다. 사진=회사 제공
이논 크라이즈 매텔 회장 겸 CEO. 합병 회사에서 운영과 통합을 맡을 예정이다. 사진=회사 제공

크라이즈는 2018년부터 매텔을 이끌며 장난감 브랜드를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확장해 온 경영자다. 매텔의 대표 지식재산(IP)을 활용해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바비’는 2023년 전 세계에서 14억 달러(약 1조9000억원)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다만 올해 6월 개봉한 ‘마스터스 오브 더 유니버스’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가 중시해 온 것은 이미 팬층을 확보한 IP의 확장성이다. 크라이즈는 2024년 매텔의 엔터테인먼트 전략을 설명하면서 “핵심은 큰 브랜드, 시장을 움직이는 프랜차이즈, 팬층을 이미 가진 IP”라고 말했다. 매텔에 합류하기 전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채널을 묶어 광고와 사업을 지원하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 메이커 스튜디오와 독립 TV 제작사 엔데몰 그룹의 CEO를 지냈다.

매텔은 크라이즈가 10월 2일 물러나고, 콘데나스트 CEO를 지낸 로저 린치가 후임 회장 겸 CEO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매텔 이사 주디 올리언은 크라이즈가 “매텔을 장난감 제조사에서 IP 중심의 놀이·가족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매텔 주가는 최근 12개월 동안 24% 넘게 하락했고, 크라이즈의 퇴임 소식이 나온 날에도 4% 내렸다.

파라마운트에서는 지난 4월 제프 셸 전 사장의 퇴진 이후 최고위 운영 책임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엘리슨은 2025년 8월 파라마운트 인수를 마치면서 NBC유니버설 CEO 출신인 셸을 사장으로 선임했지만, 셸은 전문 도박사 로버트 치프리아니가 제기한 1억5000만 달러(약 2035억원) 규모의 소송에 휘말려 4월 8일 사장직과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소송에는 셸이 파라마운트 인수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공유했다는 주장이 담겼으며, 이후 양측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할리우드리포터는 크라이즈가 창작 분야 출신인 엘리슨 곁에서 운영을 맡게 된다고 전했다. 이번 인사는 공석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대규모 합병을 실행할 책임자를 공동 CEO로 세운 조치로 볼 수 있다.

홀랜드 떠난 스트리밍, HBO 중심 재편 가능성

케이시 블로이스 HBO 회장 겸 CEO(왼쪽)와 신디 홀랜드 전 파라마운트 스트리밍 대표. 사진=각사
케이시 블로이스 HBO 회장 겸 CEO(왼쪽)와 신디 홀랜드 전 파라마운트 스트리밍 대표. 사진=각사

크라이즈의 선임 발표 하루 전인 9월 29일에는 신디 홀랜드 파라마운트 스트리밍 부문 대표가 회사를 떠났다. 버라이어티는 합병 이후 파라마운트+와 HBO맥스를 포함한 스트리밍 사업 전체를 케이시 블로이스 HBO 회장 겸 CEO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다만 블로이스의 선임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홀랜드는 직원들에게 보낸 퇴임 메모에서 “데이비드가 비전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면서 내 역할과 합쳐질 사업의 미래를 논의했다”며 “오늘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밝혔다. 이어 “데이비드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HBO의 안정에 최적화하고 있고, 나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썼다. 메모에 블로이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엘리슨은 홀랜드에 대해 “신디는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영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HBO 중심의 재편 가능성은 엘리슨이 인수 합의 직후 내놓은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3월 2일 투자자 설명회에서 “HBO는 HBO로 남아야 한다. 그들은 훌륭한 브랜드를 만들었고 이 분야의 선두”라고 말했다. HBO를 “이 사업의 왕관 보석(crown jewel)”이라고 부르며 “가장 잘하는 일을 계속할 자원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도 밝혔다.

반면 소비자가 이용하는 서비스는 하나로 합칠 계획이다. 엘리슨은 같은 자리에서 “두 서비스를 합칠 계획이며, 현재 기준 직접 가입자는 2억 명을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HBO라는 콘텐츠 브랜드의 독립성을 유지하되, 파라마운트+와 HBO맥스의 서비스·기술 기반은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통합 서비스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홀랜드는 넷플릭스에서 18년간 근무했고, 이 가운데 9년 동안 오리지널 콘텐츠 부사장을 맡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더 크라운’, ‘퀸스 갬빗’ 등을 만든 팀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퇴임 메모에서 2025년 1월 엘리슨 팀에 합류하며 세운 목표로 WBD 인수 자문, 파라마운트+ 통합과 플루토TV 재건, 조직 구축을 꼽고 “12개월 남짓 만에 세 가지를 모두 이뤘다”고 밝혔다.

기술 통합은 이미 진행됐다. 파라마운트는 무료 채널형 스트리밍 서비스 플루토TV와 BET+, 파라마운트+를 하나의 기술 기반으로 옮겼다. 더넥스트웹은 6월 10일 이 작업을 HBO맥스 흡수를 위한 “리허설”이라고 표현했다.

블로이스의 역할과 페렛의 거취도 관심

블로이스는 2004년 HBO 독립제작 부문 디렉터로 입사한 뒤, 2016년 HBO 시리즈·심야·스페셜 부문 사장, 2020년 HBO·HBO맥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거쳐 2022년 회장 겸 CEO에 올랐다. HBO는 2018년 AT&T의 타임워너 인수,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을 겪었으며, 이번 거래가 완료되면 다시 모회사가 바뀐다.

블로이스의 HBO 계약은 2027년 만료될 예정이다. 지난 3월 23일에는 그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와 할리우드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데일리비스트는 페이지식스를 인용해 두 회사가 만남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만남 자체가 이직이나 거취에 관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 스트리밍의 운영 조직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는 WBD에서 스트리밍 사업 운영과 게임을 담당하는 JB 페렛이 블로이스와 함께 HBO, HBO맥스, 파라마운트+를 이끌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다른 부문장 인사 역시 공식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가입자 2억 명대 규모… 수익성도 개선

두 회사의 스트리밍 사업은 통합을 앞두고 가입자와 수익성을 함께 늘리고 있다. WBD는 5월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HBO맥스 가입자가 1억4000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으며, 연말 목표로 1억5000만 명을 제시했다.

8월 6일 발표한 WBD의 2분기 스트리밍 매출은 30억7900만 달러(약 4조1800억원)로, 환율 영향을 제외하면 10% 증가했다. 조정 EBITDA는 5억1200만 달러(약 6950억원)로 63% 늘었다. 광고 매출은 3억600만 달러였으며, 가입자의 약 40%가 광고형 요금제를 이용했다.

파라마운트+의 2분기 말 가입자는 8160만 명으로 전 분기보다 200만 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파라마운트 스트리밍 부문 매출은 24억7000만 달러(약 3조3500억원)로 9%, 조정 OIBDA는 3억6600만 달러(약 4970억원)로 44% 늘었다. 해지율은 서비스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으나, 회사는 3분기 파라마운트+ 가입자가 전 분기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발표된 매출과 조정 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WBD 스트리밍의 이익률은 약 17%, 파라마운트 스트리밍은 약 15%다. 다만 WBD는 조정 EBITDA, 파라마운트는 조정 OIBDA를 사용하므로 두 수치를 같은 회계 지표처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2026년 2분기 두 회사 스트리밍 부문 매출과 조정 이익. 자료=WBD·파라마운트 실적 발표

2026년 2분기 두 회사 스트리밍 부문 매출과 조정 이익. 자료=WBD·파라마운트 실적 발표

파라마운트+는 홀랜드 체제에서 신작과 후속 시즌 40편 이상의 제작을 승인했다. ‘랜드맨’은 서비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시리즈가 됐고, ‘더튼 랜치’는 오리지널 작품의 첫 공개 기록을 경신했다. 스포츠에서는 2025년 8월 TKO와 7년간 77억 달러(약 10조4500억원) 규모의 UFC 중계 계약을 맺었으며, ‘UFC 프리덤 250’은 파라마운트+ 독점 라이브 행사 가운데 최대 시청자를 모았다.

다만 두 서비스의 가입자를 더한 숫자가 통합 이후의 순가입자 규모를 뜻하지는 않는다. HBO맥스와 파라마운트+를 동시에 이용하는 가입자는 중복을 제거해야 하고, 인용한 가입자 수의 집계 시점도 서로 다르다. 통합 서비스의 실제 고객 기반은 중복 가입자와 요금제 전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HBO맥스·파라마운트+ 가입자와 엘리슨 CEO가 제시한 합산 규모. 집계 시점과 중복 가입 여부에 유의해야 한다. 자료=WBD·파라마운트, 뉴스캐스트스튜디오
HBO맥스·파라마운트+ 가입자와 엘리슨 CEO가 제시한 합산 규모. 집계 시점과 중복 가입 여부에 유의해야 한다. 자료=WBD·파라마운트, 뉴스캐스트스튜디오

남은 관문은 법원… 거래 지연 비용도 부담

파라마운트는 2월 27일 WBD를 주당 31달러(약 4만2000원) 현금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인수 과정에서는 적대적 인수 제안과 넷플릭스의 경쟁 입찰, 12개 주와 할리우드 작가들의 소송이 이어졌다. WBD 주주들은 4월 23일 거래를 승인했고, 미국 법무부는 6월 12일, EU 집행위원회는 7월 22일 인수를 승인했다.

파라마운트는 9월 21일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이끄는 12개 주와도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거래 종결 후 2년 동안 해마다 영화 30편, 이후 3년 동안은 해마다 32편을 극장에 개봉하고, 5년간 미국 내 TV·영화 제작비를 해마다 3억 달러(약 4070억원) 이상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CBS와 CNN에는 편집 독립 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의 아라셀리 마르티네스-올긴 판사는 9월 24일 심리에서 합의안에 대한 판단을 미뤘다. 코리 부커 상원의원과 ‘블록 더 머저’ 연대, 라틴계 시민단체 LULAC 등은 합의에 반대했다.

거래 지연은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포브스는 10월 1일까지 인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파라마운트가 WBD에 하루 700만 달러(약 95억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엘리슨은 당시 2주 안에 인수를 끝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종결 시점은 법원 판단 등에 달려 있다. 크라이즈의 공동 CEO 취임도 거래 종결을 전제로 한다.

파라마운트의 WBD 인수 경과. 자료=각사 발표, 악시오스·포브스·더랩 보도 종합
파라마운트의 WBD 인수 경과. 자료=각사 발표, 악시오스·포브스·더랩 보도 종합

그린필드 “두 스트리밍 서비스 모두 영양 부족 상태”

합병의 성패를 가를 과제는 회사 규모를 키운 뒤 시청자가 머물 이유를 얼마나 늘리느냐다. 라이트셰드 파트너스의 리치 그린필드 애널리스트는 9월 30일 공개된 비즈니스인사이더 피터 카프카 수석 특파원의 팟캐스트 ‘채널스’에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넷플릭스를 정조준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파라마운트 자체 사업에 투자해 성장하는 것보다 WBD를 인수하는 편이 넷플릭스의 규모에 더 빨리 접근하는 방법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린필드는 서비스 통합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서비스라면 정말 전부 하나인가. HBO 콘텐츠를 담으려고 요금을 올리는가. HBO 브랜드는 유지하는가”라는 것이다. 파라마운트+ 시청이 테일러 셰리던의 드라마와 ‘네모바지 스폰지밥’ 같은 어린이 콘텐츠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들어 “모두가 같은 것을 보면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라마운트+에는 다양성이 많지 않고 HBO맥스도 마찬가지”라며 “두 스트리밍 서비스 모두 영양 부족 상태”라고 진단했다. 대표 흥행작을 보유한 것과 다양한 이용자의 취향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통합 서비스가 콘텐츠 목록만 합치는 데 그쳐서는 이용 시간과 재방문을 충분히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린필드는 생성형 AI가 콘텐츠 공급 비용을 바꿀 가능성도 언급했다. 연구실에서는 1분짜리 영상을 거의 즉시 생성할 수 있으며, 대량 활용이 가능할 만큼 비용이 낮아지는 시점을 “12~18개월 안”으로 예상했다. 이는 그의 전망으로, 실제 제작 현장에서의 상용화 시점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외부 콘텐츠까지 수용하는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다. 그린필드는 “이기려면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어느 회사도 자체적으로 충분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시청 시간이라는 관점에서는 회당 3000만 달러(약 407억원)가 드는 셰리던 시리즈 30분과 크리에이터 영상 30분이 경쟁한다고도 설명했다.

크라이즈에게는 크리에이터 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가 이끈 메이커 스튜디오는 유튜브 채널을 묶어 광고와 브랜드 협업 사업을 벌였고, 크라이즈는 디즈니 매각 협상도 맡았다. 다만 이 경력을 곧바로 합병 회사의 사업 방침으로 볼 수는 없다. 통합 서비스가 크리에이터 영상이나 외부 제작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쿠팡플레이가 유통, CJ ENM이 제작·제휴 창구

한국 시장에서는 두 회사 모두 현지 사업자와의 제휴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해 왔다. HBO맥스는 2026년 1분기까지 영국·독일·이탈리아 출시를 통해 “모든 주요 목표 시장”에 진입했다고 설명했지만, 한국에는 직접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웨이브가 2021년부터 HBO 작품을 독점 공급하다 2023년 중반 계약을 종료했다. 이후 쿠팡플레이가 2025년 3월 21일부터 HBO와 HBO맥스 오리지널 60여 편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2022년 6월 티빙 내 브랜드관으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파라마운트의 매각 협상이 진행되던 2024년 6월 18일 브랜드관을 종료했다. 2025년 10월 29일부터는 쿠팡플레이의 부가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제작과 해외 유통에서는 CJ ENM이 두 회사와 모두 협력해 왔다. CJ ENM은 2021년 바이어컴CBS, 현재의 파라마운트와 투자·제작 협력 계약을 맺었고, ‘운수 오진 날’과 ‘우씨왕후’ 등의 공동제작 및 파라마운트+를 통한 27개국 유통을 추진했다.

WBD와는 2025년 10월 16일 다년간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HBO맥스 아시아태평양 17개 시장에 티빙 브랜드관을 열고, 한국 드라마에 공동 투자·제작하는 내용이다. WBD 측에서 이 제휴 발표에 나선 인물은 페렛이었다.

티빙 브랜드관에는 tvN뿐 아니라 MBC와 JTBC 작품도 포함됐다. 첫 공개작 ‘친애하는 X’는 별도 유통 플랫폼인 라쿠텐 비키에서 108개국 1위에 오른 것으로 보도됐다. 공개된 제휴의 형태는 공동제작과 브랜드관 공급이다. 다만 개별 작품의 IP 귀속이나 2차 사업권까지 공개된 것은 아니므로, 공동제작이라는 명칭만으로 국내 제작사의 권리 보유 범위를 단정할 수는 없다.

셰리던 드라마 한 회 제작비, 한국 드라마 한 시즌 규모

한국 콘텐츠가 통합 서비스의 공급 후보로 거론될 수 있는 이유는 제작비 대비 확보할 수 있는 분량에 있다. 그린필드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셰리던 시리즈의 회당 제작비 3000만 달러는 원화로 약 407억원이다. 다만 이 숫자를 미국 드라마 전체의 평균 제작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 드라마는 회당 평균 제작비가 20억원대로 제시된다. 이를 16부작으로 환산하면 한 작품에 약 320억~460억원이 들어, 셰리던 고예산 드라마 한 회에 드는 비용이 한국 드라마 한 시즌과 비슷한 규모가 된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겨레 7월 4일자 기고에서 미국 지상파·케이블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최소 500만 달러(약 68억원)라며, 한국에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총제작비도 미국에서는 한두 회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회당 제작비 비교와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 자료=비즈니스인사이더, 한겨레·김윤지 기고, 인베스트조선
회당 제작비 비교와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 자료=비즈니스인사이더, 한겨레·김윤지 기고, 인베스트조선

그린필드의 “영양 부족” 진단을 받아들인다면, 통합 서비스는 대표작 몇 편뿐 아니라 이용자의 다양한 취향을 채울 콘텐츠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한국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제작비 대비 편성 분량을 늘릴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다만 제작비가 낮다는 사실만으로 해외 구매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현지 시청 수요와 작품별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 콘텐츠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서랜도스는 2023년 한국 콘텐츠에 4년간 25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3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전 세계 가입자의 60% 이상이 한국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제작 물량은 줄고 있다. 인베스트조선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35편, 2023년 123편에서 2024년 100편 안팎으로 감소했다. 디즈니+ ‘북극성’ 700억원, ‘무빙’ 650억원,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500억원처럼 대작의 제작비는 높아지는 가운데 전체 제작 편수는 축소되는 상황이다. 같은 보도에서 제시한 일본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약 10억원으로, 한국보다 낮다.

한국 제작사의 협상 여건은 이 두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 구매처가 줄어드는 것은 불리하지만, 경쟁력 있는 작품의 공급이 줄면 개별 작품의 희소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구매자가 일본 등 다른 시장에서 더 저렴한 대체 콘텐츠를 찾는다면 한국 작품의 가격 경쟁력은 약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작 편수 자체보다, 플랫폼이 필요로 하는 작품을 어느 가격과 일정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다.

미국 제작비 증액 약속, 한국 콘텐츠 구매로 이어질까

파라마운트가 12개 주와 맺은 합의에는 미국 내 TV·영화 제작비를 5년간 해마다 3억 달러 이상 늘리는 조건이 들어 있다. 그러나 보도된 합의 내용에는 한국을 비롯한 해외 제작이나 해외 작품 구매 예산을 별도로 보장하는 조건은 없다. 미국 내 제작 투자를 늘리겠다는 약속이 곧 한국 콘텐츠 구매 확대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엘리슨은 3월 합병 시너지 목표로 60억 달러를 제시하면서 본사 관리비, HBO맥스와 파라마운트+의 기술 기반 통합, 클라우드 비용 등을 절감 대상으로 꼽았다. 그는 “HBO맥스와 파라마운트+를 합치면 기술 스택을 정리할 수 있고 절감 폭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설명에서 콘텐츠 예산 삭감을 절감 항목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해외 콘텐츠 구매는 통합 이후 경영진의 편성·예산 판단에 달린 영역으로 남는다. 콘텐츠 분량과 다양성을 빠르게 늘리려 한다면 완성작 구매나 공동제작을 확대할 수 있다. 반대로 통합 비용과 수익성 압박이 커지면 신규 구매를 늦추거나 계약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 한국 사업자 입장에서는 합병 시너지 목표보다 실제 구매 예산과 발주 계획을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판권을 살 것인가, IP까지 확보할 것인가

한국 제작사에 중요한 또 다른 변수는 계약 방식이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계약은 제작비를 부담하는 대신 IP를 확보하는 구조를 두고 국내 제작사의 2차 수익 배분 논란을 불렀다. 서랜도스는 2023년 관련 질문에 “창작자와 제작사에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제공한다”고 답했다.

크라이즈는 플랫폼이 아니라 IP 보유자의 입장에서 협상해 온 경영자다. 매텔은 ‘바비’ IP를 보유한 채 워너브러더스와 영화를 만들었고, ‘마스터스 오브 더 유니버스’는 아마존, ‘매치박스’는 애플과 협력했다. 그가 강조해 온 “큰 브랜드, 시장을 움직이는 프랜차이즈, 팬층을 이미 가진 IP”는 한 작품의 흥행뿐 아니라 후속작과 상품, 다른 매체로의 확장까지 염두에 둔 접근이다.

이 경력이 한국 제작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IP를 가진 제작사와 권리를 나누는 공동제작 모델에 대한 이해가 높을 수 있지만, 반대로 장기적으로 키울 만한 IP는 합병 회사가 직접 확보하려 할 수도 있다. 크라이즈가 어떤 입장에서 협상해 왔는지와, 앞으로 어떤 권리를 요구할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CJ ENM과 파라마운트, WBD 사이에는 이미 공동제작과 브랜드관 공급이라는 협력 틀이 있다. 국내 제작사와 방송사는 이를 활용하되 작품마다 방영권만 판매할지, 공동 투자와 권리 공유를 택할지, IP 양도까지 검토할지를 나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제작사·방송사 사이의 원천 IP와 2차 저작권 귀속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해외 공동제작 제안을 받아도 협상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국내 방송사, 공급 물량과 권리 구조 함께 준비해야

한국 방송·미디어 산업에 이번 통합은 판매처 변화 이상의 문제다. 콘텐츠 구매 조직이 합쳐지면 작품을 제안하는 창구와 편성 기준, 계약 조건도 달라질 수 있다. 국내 사업자는 개별 작품의 판매 가격뿐 아니라 시즌 단위 공급 물량, 제작 일정, 후속 시즌 가능성까지 묶어 제안할 준비가 필요하다.

유통 창구의 선택도 중요해진다. MBC와 JTBC 작품은 이미 CJ ENM의 티빙 브랜드관을 통해 HBO맥스 아시아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브랜드관이 통합 서비스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된다면 참여 방송사는 더 넓은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 동시에 직접 판매보다 CJ ENM을 통한 공급 비중이 커질 가능성도 있어, 지역별 독점 범위와 정산 조건, 직접 판매권을 따져야 한다. 구체적인 작품별 가격과 계약 구조는 공개되지 않은 만큼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쿠팡플레이의 해외 콘텐츠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HBO와 파라마운트+ 작품을 모두 공급하는 쿠팡플레이로서는 합병 회사가 한국에서 기존 판권 판매·제휴 방식을 유지할지, 직접 서비스에 나설지가 중요한 변수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의 6월 집계에서 티빙의 월간 이용자는 969만 명, 쿠팡플레이는 885만 명이었다. 쿠팡플레이는 유럽 축구 시즌 종료와 함께 이용자가 26만 명 줄었다. 스포츠 경기 일정에 따른 이용 변동을 고려하면, 해외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 역시 재방문과 이용 지속성을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합병 회사의 한국 전략과 기존 계약의 재협상 조건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방송 클립과 숏폼, 크리에이터 콘텐츠도 검토 대상이다. 국내 유튜브의 2026년 1~5월 월평균 사용 시간은 1136억 분으로, 넷플릭스의 56억1000만 분보다 20배 이상 많았다. 그린필드가 강조한 외부 콘텐츠 확대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다면, 완성된 드라마 외에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공급할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다만 이는 아직 발표된 사업이 아니라 가능한 시나리오다.

국내 방송사가 이 시장에 대응하려면 본편 방영권과 클립·숏폼의 해외 유통권을 구분해 파악해야 한다. 출연자·음악·자료화면 등의 권리도 짧은 영상으로 다시 유통할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존 계약에서 관련 권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별도 협상이나 계약 변경이 선행돼야 한다.

통합 서비스의 첫 편성이 한국 전략 가늠자

법원이 합의안을 승인하고 거래가 종결되면 크라이즈의 공동 CEO 직책이 효력을 갖는다. 블로이스의 역할과 페렛의 거취를 비롯한 스트리밍 조직 개편도 그 전후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보도된 인사 전망과 공식 확정 사항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차원에서는 이름과 요금제, 중복 가입자 처리, 플루토TV와의 관계, UFC를 비롯한 스포츠 중계의 제공 방식이 관심사다. 콘텐츠에서는 HBO의 독립성과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도 더 많은 이용자의 시청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프리미엄 작품을 만드는 능력과 다양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함께 요구받는 것이다.

한국 사업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통합 회사가 한국 작품의 방영권을 구매할지 IP까지 확보하려 할지, CJ ENM과의 브랜드관 제휴를 어느 지역까지 확대할지, 한국에서 기존 제휴를 유지할지 직접 진출할지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제작사와 방송사, 국내 플랫폼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합병만으로 한국 콘텐츠의 판로가 넓어진다고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모가 커진 서비스가 더 다양한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면, 경쟁력 있는 작품과 명확한 권리 구조를 갖춘 공급자에게는 협상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한국 콘텐츠에 배정할 예산과 첫 편성, 실제 계약 조건이 그 가능성을 판단할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