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스포츠 채널의 종말, ‘구단 TV’ 시대 열린다
MEDIA INDUSTRY ANALYSIS
RSN의 종말, MLB의 새로운 시대 '리그가 직접 TV가 되다'
미국 지역 스포츠 네트워크(RSN) 붕괴와 MLB 직접 스트리밍(DTC) 시대의 개막
2026년 2월, 미국 스포츠 방송 역사에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한때 29개 프로 스포츠 팀의 지역 중계를 담당하며 미국 스포츠 미디어의 근간이었던 팬듀얼 스포츠 네트워크(FanDuel Sports Network)가 운영을 중단한 것이다. 모회사인 메인 스트리트 스포츠 그룹(Main Street Sports Group)이 매각에 실패하고 추가 자금 확보에도 실패하면서, 2025년 초 파산 보호에서 벗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청산의 위기에 몰렸다. MLB 소속 9개 팀은 이미 이 네트워크와의 계약을 전면 해지했고, NBA·NHL 팀들도 2026년 4월 정규 시즌 종료와 함께 차례로 이탈할 예정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네트워크의 몰락이 아니다. 수십 년간 미국 스포츠 산업의 재정적 기둥이었던 지역 스포츠 네트워크(RSN, Regional Sports Network)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MLB는 리그 차원의 직접 미디어 운영이라는 전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1. RSN이란 무엇인가: 미국 스포츠 방송의 근간
RSN은 리저널 스포츠 네트워크(Regional Sports Network)의 약자로, 특정 지역의 프로 스포츠 팀 경기를 독점적으로 중계하는 케이블 TV 채널을 말한다. 미국 프로 스포츠의 고유한 시스템인 RSN은 MLB, NBA, NHL 등 주요 리그 팀들의 홈 경기를 해당 지역 팬들에게 전달하는 핵심 채널 역할을 수행해왔다. 뉴욕 양키스의 YES 네트워크(YES Network), 보스턴의 NESN, 뉴욕 메트로 지역의 MSG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RSN의 비즈니스 모델은 구조적으로 케이블 TV 생태계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었다. 케이블 사업자들은 시청자들에게 채널 번들 패키지를 판매하면서, RSN을 프리미엄 패키지에 포함시켰다. 핵심은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가입자들도 번들에 포함된 RSN 채널료를 간접적으로 지불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번들 보조금(bundle subsidy)' 구조였다. 한 업계 분석가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플로리다의 할머니가 한 번도 보지 않는 스포츠 채널에 매달 8달러를 지불하고 있었고, 그 돈으로 마이애미 말린스(Miami Marlins)가 유격수의 연봉을 지급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RSN은 팀 전체 수익의 20~30%를 차지하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다. YES 네트워크는 2023년에만 1억 4,300만 달러(약 1,9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RSN 계약은 팀 운영의 재정적 기반이자 선수 영입을 위한 페이롤(payroll)의 핵심 원천이었다.
▼ RSN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구조
2. RSN 붕괴의 연대기: 90억 달러의 '원죄'에서 청산까지
RSN 붕괴의 기원을 추적하면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즈니(Disney)가 21세기 폭스(21st Century Fox)를 인수하면서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폭스가 보유하던 22개 지역 스포츠 네트워크를 매각해야 했고, 방송 그룹 싱클레어(Sinclair Broadcast Group)가 이를 인수했다.
문제는 인수 가격이었다. 싱클레어는 이 거래에 약 90억 달러(약 12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갑옷을 입고 영국 해협을 수영하려는 것"에 비유했다. 케이블 가입자가 영원히 비싼 번들 요금을 지불할 것이라는, 2015년쯤 이미 만료된 세계관에 기반한 베팅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기울기 시작한 RSN 모델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케이블 TV 가입자 수는 일부 시장에서 40%까지 감소했고, 호황기에 체결된 중계권 계약은 현실과 점점 괴리됐다. 싱클레어의 RSN 사업부인 다이아몬드 스포츠 그룹(Diamond Sports Group)은 2023년 3월 마침내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그 후 약 20개월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2025년 초 메인 스트리트 스포츠 그룹(Main Street Sports Group)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출발했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새 회사는 스포츠 베팅 기업 팬듀얼(FanDuel)과 이름 사용 계약을 맺어 '팬듀얼 스포츠 네트워크(FanDuel Sports Network)'로 리브랜딩하고, 아마존(Amazon)과 상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생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코드커팅(cord-cutting)의 가속화는 멈추지 않았고, 케이블 가입자 감소로 인한 수익 악화는 계속됐다. 결국 2025년 12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St. Louis Cardinals)에 대한 중계권료 지급이 지연되면서 연쇄 이탈이 시작됐다.
▼ RSN 붕괴 연대기
3. MLB의 대응: 리그가 직접 방송사가 되다
RSN 모델이 무너지는 와중에 MLB는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2023년, MLB는 리그 산하에 'MLB 로컬 미디어(MLB Local Media)' 부서를 신설했다. 이 부서의 역할은 RSN 계약이 소멸한 팀들의 지역 중계를 리그 차원에서 직접 제작하고, 케이블·위성 사업자와 유통 계약을 협상하며, DTC(Direct-to-Consumer)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2026 시즌을 앞두고 MLB 로컬 미디어의 역할은 급격히 확대됐다. 팬듀얼 스포츠 네트워크에서 이탈한 6개 팀(밀워키 브루어스, 마이애미 말린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신시내티 레즈, 탬파베이 레이스)이 합류하면서, 기존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San Diego Padres), 클리블랜드 가디언스(Cleveland Guardians),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 미네소타 트윈스(Minnesota Twins),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Arizona Diamondbacks), 콜로라도 로키스(Colorado Rockies), 워싱턴 내셔널스(Washington Nationals) 등에 이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Los Angeles Angels)까지 포함되었다. 2026 시즌 기준으로 MLB 30개 팀 중 최소 15개 팀 이상의 중계를 MLB가 직접 관리하게 된 것이다.
MLB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Rob Manfred)는 "RSN 계약이 소멸할 때마다 리그가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의 장기적 비전은 더욱 야심적이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2028년 전국 중계권 계약 만료 시점까지 지역 중계권과 전국 중계권을 하나로 묶어 협상함으로써 리그 전체의 미디어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4. 'Club.TV'의 탄생: 팀별 DTC 스트리밍의 시대
MLB 로컬 미디어의 핵심 상품은 각 팀 이름을 딴 'Club.TV' 스트리밍 서비스다. Brewers.TV, Rays.TV, Cardinals.TV, Marlins.TV, Twins.TV, Padres.TV 등 팀명을 그대로 브랜드로 사용하는 이 서비스는 해당 팀의 홈 TV 영역(home television territory) 내 팬들에게 블랙아웃 없이 모든 지역 경기를 라이브 및 온디맨드로 제공한다. 이는 전통 RSN 시대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블랙아웃 규정을 정면으로 해결한 것이다.

[2026 시즌 MLB 팀별 DTC 스트리밍 서비스 현황. ^는 MLB 로컬 미디어 제작, *는 RSN 파트너십 유지 팀]
2026 시즌 기준 21개 팀이 이미 인마켓(in-market) DTC 스트리밍 구독을 제공하고 있다. MLB 부커미셔너 노아 가든(Noah Garden)은 "팬들이 블랙아웃 해소를 원하고 있으며, MLB의 인마켓 스트리밍 옵션이 팬들과의 마찰을 제거한다"고 밝혔다. Club.TV 서비스의 가격 체계는 간결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설계되었다.
▼ MLB 스트리밍 서비스 가격 체계 (2026 시즌)

[Rays.TV 가격 페이지: 팀별 $99.99/시즌, 번들 $199.99/시즌, MLB.TV 단독 $149.99/시즌 (New for 2026)]
5. ESPN, MLB.TV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다
2026 시즌부터 MLB의 미디어 구조에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ESPN이 MLB.TV의 독점 유통 파트너가 된 것이다. 2025년 11월 발표된 이 계약은 2026~2028년 3개 시즌 동안 적용되며, 총 규모는 약 5억 5,000만 달러(약 7,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ESPN은 MLB.TV의 독점 권리 보유자로서 매 시즌 수천 경기의 아웃오브마켓(타지역) 중계를 ESPN 앱을 통해 제공한다. 신규 가입자는 ESPN을 통해 구매해야 하며, MLB.TV 구매 시 ESPN 언리미티드(ESPN Unlimited) 1개월 무료 체험이 포함된다.
둘째, ESPN은 MLB 로컬 미디어가 관리하는 팀들의 인마켓 스트리밍 권리도 획득했다. 즉, 지역 팬이 자기 팀의 경기를 ESPN 앱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2026 시즌에는 여전히 MLB 앱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셋째, ESPN은 연간 30경기의 전국 독점 정규시즌 중계와 150경기 이상의 아웃오브마켓 '오늘의 경기(game of the day)' 스케줄을 ESPN 언리미티드 가입자에게 제공한다.

이 구조는 MLB 커미셔너 맨프레드의 장기적 구상과 맞닿아 있다. 지역 중계권과 전국 중계권을 점진적으로 통합하여 리그의 미디어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ESPN의 지미 피타로(Jimmy Pitaro) 회장은 이 계약을 "팬 중심의 다면적 계약"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ESPN 앱이 야구 시청의 중심 허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 RSN을 유지하는 팀들: 자체 미디어 자산의 힘
모든 팀이 MLB 로컬 미디어로 이관된 것은 아니다. 자체 RSN을 소유하거나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팀들은 여전히 독자적인 미디어 전략을 운영하고 있다. 2026 시즌 기준으로 6개 팀이 기존 RSN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Athletics.TV), 볼티모어 오리올스(MASN+), 로스앤젤레스 다저스(SNLA+), 뉴욕 메츠(SNY),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lies.TV),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Giants.TV)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뉴욕 양키스의 YES 네트워크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NESN처럼 팀이 직접 소유하거나 지분을 보유한 네트워크들은 RSN 위기에서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외부 RSN 사업자의 재정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미디어 자산의 가치를 직접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네트워크도 코드커팅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MSG 네트워크(뉴욕 닉스, 뉴욕 레인저스 등 중계)는 8억 2,900만 달러(약 1조 1,000억 원)의 부채 리파이낸싱에 고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대형 자체 RSN들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 2026 시즌 MLB 팀 미디어 유통 분류
7. RSN 붕괴의 파장: 선수 연봉에서 팬 경험까지
수익 급감과 연봉 긴축의 연쇄 효과
RSN 붕괴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팀 수익에 대한 것이다. MLB는 2026년 RSN 계약을 잃은 팀들이 새로운 방송 계약에서 기존 RSN 중계권료의 약 50%에 불과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팀 수익의 20~30%를 차지하던 고정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선수 영입 자금의 직접적 감소를 의미한다.
이 영향은 이미 2025~26 오프시즌에 가시화되고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아메리칸 리그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자인 타리크 스쿠벌(Tarik Skubal)의 중재 요구액 3,200만 달러에 1,900만 달러로 맞섰다. 신시내티 레즈, 캔자스시티 로열스, 탬파베이 레이스 등 RSN을 잃은 팀들의 오프시즌 지출은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MLB 선수노조(MLBPA)와의 협약에 따라 사치세(luxury tax) 초과분 일부가 미디어 수익 손실 팀에 지원되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엔 부족하다.
팬 경험의 양면: 접근성 확대와 비용 복잡성
팬의 관점에서 보면 RSN 붕괴는 양면적이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Club.TV를 통해 블랙아웃 없는 직접 스트리밍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케이블 TV에 가입하지 않으면 해당 지역 팀의 경기를 합법적으로 시청할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이제 시즌 $99.99만 지불하면 모바일, 태블릿, 커넥티드 TV 등 원하는 디바이스에서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다.
반면, 시청 경로의 파편화(fragmentation)는 새로운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경기는 전국 중계권에 의해 ESPN, FOX, TBS, NBC/피콕, 넷플릭스, 애플TV+ 등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독점 방영되며, Club.TV나 MLB.TV로는 시청할 수 없다. 한 팀의 모든 경기를 빠짐없이 보려면 복수의 스트리밍 구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팬들의 비용 부담 우려가 커지고 있다.
8. 결론: RSN의 종말이 알려주는 스포츠 미디어의 미래
RSN의 붕괴는 스포츠 방송 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 이 변화를 함축적으로 요약한다. "RSN 모델은 죽었다. 미래는 리그가 통제하는 디지털 퍼스트 시대다."
첫째, 리그의 미디어 자산 내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MLB는 이미 30개 팀 중 절반 이상의 지역 중계를 직접 관리하며, 2028년 전국 중계권 재협상 시점까지 지역·전국 권리를 통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NBA와 NHL도 유사한 경로를 탐색 중이다.
둘째, DTC 스트리밍이 팬 접근성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블랙아웃 해소, 디바이스 자유, 합리적 가격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팬 경험을 혁신하고 있다. 다만 이 모델이 기존 RSN 수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MLB 자체 보고에 따르면 현재 DTC 수익은 기존 RSN 계약의 약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셋째, ESPN의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 한때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Sunday Night Baseball)' 중계의 대명사였던 ESPN은 이제 MLB.TV의 유통 플랫폼이자 다수 팀의 인마켓 스트리밍 파트너로 변모했다. 이는 전통적 TV 네트워크가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하는 방식의 한 사례다.
마지막으로, 이 변화는 K-콘텐츠와 한국 스포츠 산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RSN 붕괴가 보여주는 핵심 교훈은 번들 보조금에 의존하는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은 코드커팅 시대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 리그들도 케이블 TV 의존도를 줄이고 DTC 스트리밍, FAST 채널 등 다양한 유통 경로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KBO, K리그 등이 글로벌 팬덤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MLB.TV와 같은 리그 차원의 통합 스트리밍 플랫폼 구축이 중요한 참고 모델이 될 것이다.
▼ RSN 붕괴가 알려주는 핵심 시사점
출처 및 참고 자료
• ESPN, "Six teams leave regional sports network Main Street to join MLB" (2026.2)
• MLB.com, "A complete guide to watching MLB.TV in 2026" (2026.2)
• ESPN Press Room, "ESPN, MLB reach innovative new agreement" (2025.11)
• Sports Video Group, "A Changing Landscape: MLB Local Media" (2026.2)
• Cord Cutters News, "FanDuel Sports Network shutting down" (2026.2)
• Sports Media Watch, "SMW FAQ: How MLB TV viewing is changing in 2026" (2026.2)
• Boardroom, "The RSN Collapse Is Quietly Reshaping the MLB Offseason" (2026.1)
• Wikipedia, "Regional sports network" (2026.2)
• Awful Announcing, "FanDuel RSNs on the verge of collapse" (2026.2)
• UB Law Sports Forum, "The Life and Death of Regional Sports Networks" (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