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 넷플릭스 인사
벨라 바자리아 퇴진·피터 라이스 26일 취임… 디즈니 시절 연 300편·4000시간 관리한 경영자, 1000명 감원 다음 날 선임

넷플릭스(Netflix)가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바꿨다. 넷플릭스는 15일(현지시간) 피터 라이스(Peter Rice) 전 월트디즈니텔레비전(Walt Disney Television) 회장을 26일자로 CCO에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합류해 2023년부터 콘텐츠를 총괄한 벨라 바자리아(Bela Bajaria)는 곧바로 회사를 떠난다. 라이스는 전 지역의 각본·비각본 시리즈와 영화, 라이브 이벤트를 맡는다.
교체의 근거는 시청 지표다.
넷플릭스의 상반기 시청 보고서에서 1~6월 시청 시간은 970억 시간으로 1년 전보다 2% 늘었다. 닐슨(Nielsen) 미디어 디스트리뷰터 게이지(Media Distributor Gauge)에서 넷플릭스의 미국 TV 화면 점유율은 2025년 7월 8.8%에서 올해 7월 7.8%로 내려갔고, 같은 기간 유튜브(YouTube)는 13.4%에서 14.2%로 올랐다. 에미상(Emmy Awards) 수상은 지난해 30개에서 올해 16개로 줄었다. 주가는 1년 사이 40% 가까이 빠졌다.

인사는 감원 발표 바로 다음 날 나왔다.
넷플릭스는 14일 전 세계 인력의 약 6%인 1000명가량을 줄인다고 밝혔다. 2022년 이후 최대 규모다. 2025년 말 넷플릭스 정규직은 약 1만6000명이었다. 바자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번 주 초 테드 서랜도스(Ted Sarandos) 공동 최고경영자(CEO)에게서 퇴진 통보를 받았고, 회사는 다음 주에 발표할 계획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그러나 15일 오후 할리우드 전문 미디어 퍽(Puck)이 먼저 보도하면서 일정이 당겨졌고, 버라이어티(Variety)는 바자리아가 팀 대부분에 직접 알리기 전에 소식이 퍼졌다고 보도했다.
바자리아의 후임은 영화와 방송을 모두 운영해 본 경영자다.
라이스는 폭스 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21세기폭스(21st Century Fox) 사장을 거쳐 디즈니에서 지상파·케이블·스트리밍·제작 스튜디오를 함께 맡았다. 서랜도스는 그를 "업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규모 운영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폭스·디즈니서 조직 13곳·연 300편 관리… 슈퍼볼·NBA 결승 중계 맡아
그동안 라이스는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다. ABC, 폭스 방송(FOX Broadcasting), 폭스 스포츠(Fox Sports), ABC 뉴스(ABC News), ABC 스튜디오, 디즈니 채널(Disney Channel), 프리폼(Freeform), FX 네트웍스(FX Networks), 훌루(Hulu),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오닉스 컬렉티브(Onyx Collective), 디즈니 텔레비전, 20세기폭스 텔레비전(Twentieth Century Fox Television)등에서 해마다 300편 넘는 프로그램, 4000시간 분량을 만들었다.
'심슨 가족(The Simpsons)'과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 '더 베어(The Bear)', '쇼군(Shōgun)'이 이 시기에 나왔고, 슈퍼볼과 NBA 결승, FIFA 월드컵 결승 중계와 ABC 뉴스도 그의 몫이었다. 디즈니는 2021년 146개, 2022년 147개의 프라임타임 에미상 후보를 냈다.

라이스의 영화 이력은 그보다 길다.
1989년 영국 노팅엄대학교(University of Nottingham)를 졸업하고 폭스 영화 부문에 들어간 그는 20세기폭스(Twentieth Century Fox) 제작 담당 부사장으로 배즈 루어먼(Baz Luhrmann) 감독과 '물랑 루즈(Moulin Rouge)',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을,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과 '비치(The Beach)'를 만들었다. 첫 '엑스맨(X-Men)'에서는 제작을 감독하는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였다.
폭스 서치라이트 사장 시절에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와 '주노(Juno)', '리틀 미스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사이드웨이(Sideways)'를 냈다. 이후 21세기폭스 사장 겸 폭스 네트웍스 그룹(Fox Networks Group) CEO에 올랐고, 훌루 이사회에서 폭스를 대표했으며, A&E 네트웍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파트너스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디즈니가 2019년 21세기폭스의 엔터테인먼트 자산 대부분을 사들이면서 라이스는 디즈니 일반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가 됐다. 3년 뒤인 2022년 6월 밥 채펙(Bob Chapek) 당시 CEO가 그를 해임했고, 자리는 데이나 월든(Dana Walden)에게 넘어갔다.
이후 그는 제작자로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와 '워페어(Warfare)', '28년 후(28 Years Later)'를 만들고 A24와 제작 계약을 맺었다. 지난주 소니 픽처스(Sony Pictures)가 개봉한 '더 소셜 레커닝(The Social Reckoning)'은 흥행이 부진했다. 2025년 7월부터는 2028 LA 올림픽·패럴림픽의 개·폐회식과 콘텐츠 책임자를 맡아 왔다.
런던 남부에서 자란 그는 폭스에서만 30년 가까이 일했다.
업계는 그를 상냥하고 품위 있는 인물로 평하지만 속을 읽기 어렵다는 말도 듣는다. 회의에서는 질문을 던져 답을 끌어내는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즐기고 어색한 침묵을 피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사실 바자리의 후임으로 라이스의 이름은 몇 주 전부터 다시 돌았다. 스카이댄스(Skydance)의 요논 크라이즈(Ynon Kreiz) 공동 CEO와 점심을 한 일이 계기였는데, 크라이즈가 맡던 마텔(Mattel) 이사 자리를 넘기려는 자리였다는 설명도 버라이어티에 실렸다.
넷플릭스 쪽에서도 후임을 찾은 흔적이 보였다. 넷플리스의 CEO 서랜도스는 올해 초 HBO의 케이시 블로이스(Casey Bloys) CCO와 점심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는데, 이달 블룸버그 행사에서는 그 만남이 지나치게 알려졌을 뿐이라며 의미를 낮췄다.
서랜도스 직원 메일 "편성을 다음 단계로"… 미국 시리즈 강화 예고
서랜도스가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는 최고 콘텐츠 책임자 교체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그는 바자리아의 공을 치하하면서도 "편성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기회"를 봤다고 썼고, 그 대상으로 미국을 짚었다. 메일을 입수한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가 끝난 뒤 넷플릭스가 그만한 세계적 흥행작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보도자료에서 서랜도스는 라이스의 사업 감각과 창작자 관계, TV·영화 경험을 높이 샀다. 바자리아에 대해서는 비각본 프로그램을 크게 늘리고 라이브 이벤트와 스포츠를 시작했으며 세계 수준의 영화·시리즈 편성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라이스는 "넷플릭스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바자리아가 만든 글로벌 팀 위에서 일을 이어 가겠다고도 했다.
시장은 이번 교체를 일단 방향 전환으로 받아들였다. 웨드부시(Wedbush) 증권의 알리시아 리스(Alicia Reese)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번 인사를 "일보 전진이자 최소한 새로운 방향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퍽의 매슈 벨로니(Matthew Belloni)는 라이스가 폭스-디즈니 통합 때 수천 명의 직원을 새 조직으로 옮긴 경험에 무게를 뒀다. 넷플릭스가 컴캐스트(Comcast)에서 떨어져 나올 NBC유니버설(NBCUniversal) 같은 스튜디오를 다시 노린다면 그 경험이 쓰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선 '희생양' 지적… 요금 인상 말고는 남은 매출 수단 부족
그러나 이번 인사에 대한 할리우드의 반응은 엇갈렸다. 버라이어티는 업계 관계자 10여 명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그들이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희생양(scapegoat)"이라고 서술했다. 1000명을 내보낼 정도라면 콘텐츠보다 사업 모델에 탈이 난 것이라는 반론, 매출을 늘릴 수단이 요금 인상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책임을 왜 CCO가 지느냐며 최고재무책임자(CFO)와 CEO를 가리키는 목소리다.
실제 넷플릭스의 이용 요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 넷플릭스는 3월 미국에서 광고형 스탠다드를 월 8.99달러(약 1만2100원), 스탠다드를 19.99달러(약 2만6800원), 프리미엄을 26.99달러(약 3만6200원)로 올렸다. 14개월 만의 인상이었다.
한국에서도 광고형 스탠다드가 2025년 5월 월 5500원(약 4.1달러)에서 7000원(약 5.2달러)이 됐고 올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랜도스와 그레그 피터스(Greg Peters) 공동 CEO가 자리를 지키는 구도에서 20일 3분기 실적 발표 전에 물러날 사람은 바자리아뿐이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서랜도스 자신도 9월 블룸버그 스크린타임 행사에서 "전반적으로 원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예산 200억 달러 맡은 10년… 해외 사무소 20여 곳·WWE·NFL 계약
바자리아는 유니버설 텔레비전(Universal Television) 사장을 지낸 뒤 2016년 넷플릭스에 들어와 비각본 부문을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그때 나온 '퀴어 아이(Queer Eye)'와 '네일드 잇!(Nailed It!)'은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같은 각본물만큼 리얼리티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바자리아는 2019년 해외 시리즈를 맡아 유럽·인도·아시아·중남미 현지어 오리지널을 이끌었고, 2020년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가 물러나면서 글로벌 TV 총괄이 됐다. 서랜도스가 이때 영어권과 해외 콘텐츠를 바자리아 아래로 합치면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큰 독립 콘텐츠 직책이 생겼다.
2023년 1월 피터스가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의 뒤를 이어 공동 CEO에 오를 때 CCO로 승진해 시리즈와 영화, 라이브·스포츠, 비디오 팟캐스트까지 맡았다. 그녀가 관리한 연간 콘텐츠 예산은 약 200억 달러(약 26조8000억원)로 추산된다.
바자리아가 최고 콘텐츠 책임자로 재임하는 기간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를 열었다. 해외 사무소 20곳 가까이를 새로 열었고, 바자리아는 광고형 요금제 가입자를 끌어들인 WWE·NFL 라이선스 계약에 초기부터 관여했다. '오징어 게임(Squid Game)', '웬즈데이(Wednesday)', '브리저튼(Bridgerton)'이 이 시기에 나왔다.
라이브에 집중했던 시기도 이때다. 넷플릭스는 시즌마다 NFL 경기를 편성했고 2027 FIFA 여자 월드컵과 올해 메이저리그 홈런 더비 중계권도 확보했다. 라이브 편성은 광고 매출로 이어져, 넷플릭스는 7월 실적 발표에서 2026년 광고 매출 목표를 2025년의 두 배인 30억 달러(약 4조원)로 유지했다.
WME 공동 회장 리처드 와이츠(Richard Weitz)는 버라이어티에 바자리아가 신규 창작자 영입과 라이브 공연·스포츠, 글로벌 확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에미상 2021년 44개에서 올해 16개로… 애플TV+ 28개·HBO맥스 19개
투자 대비 효과도 좋았다. 넷플릭스는 2021년 에미상 44개로 한 해 최다 수상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후 26개(2022년), 22개(2023년), 24개(2024년), 30개(2025년)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프라임타임과 크리에이티브 아츠를 합쳐 16개에 그쳤다. 올해 가장 많은 상을 가져간 곳은 애플TV+(Apple TV+) 28개, HBO맥스(HBO Max) 19개였다. 버라이어티는 이 부진이 "서랜도스와 바자리아의 신뢰 관계를 흔들었을 수 있다"고 봤다. '히즈 앤 허스(His & Hers)'와 '브리저튼' 시즌4가 올해 가장 많이 본 작품에 들었지만, '기묘한 이야기'급 문화적 흥행작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상반기 시청 증가율 2%… 두 번째 시즌 시청 30~70% 감소
특히, 시즌2의 부진은 바자리아에게는 뼈아팠다.
신작의 힘이 다음 시즌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시청 둔화의 원인이다. 블룸버그(Bloomberg) 집계에서 신규 각본 시리즈의 두 번째 시즌 시청은 첫 시즌보다 30~70% 적었고, 가입자 1인당 하루 시청 시간은 2025년 7% 줄어 1시간 33분이 됐다. 웰스파고(Wells Fargo) 증권은 오리지널 상위 100편의 1인당 하루 시청 시간이 올해 상반기 3% 줄었다고 추산했다. 비영어 작품은 상반기 전체 시청의 3분의 1을 넘었다.
이런 점을 감안, 넷플릭스는 2027년 1분기부터 시청 보고서를 반기에서 연 1회로 줄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회사는 "주요 재무 지표인 매출과 영업이익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3분기 매출 전망 128억6000만 달러… 7월 하루 주가 11.8% 하락
넷플릭스의 2분기 매출은 125억6000만 달러(약 16조8500억원)로 13% 늘었고 순이익은 34억 달러(약 4조5600억원)였다. 주가를 끌어내린 것은 전망치였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제시한 3분기 매출 128억6000만 달러(약 17조2500억원)는 시장 예상치 130억 달러에 못 미쳤다. 연간 전망도 510억~514억 달러(약 68조4000억~68조9300억원)로 좁아졌다. 실적 발표 다음 날인 7월 17일 주가는 장중 11.8% 내려 2022년 4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3분기 실적은 20일 나온다.
워너 인수전 철수… 스카이댄스는 연 300억 달러 콘텐츠 투자 약속
할리우드의 구조 변화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2025년 12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의 영화·TV 스튜디오와 HBO맥스를 720억 달러(약 96조6000억원)에 사기로 합의했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가 주당 31달러를 들고 나오자 넷플릭스는 2026년 2월 맞대응을 접었다. 대신 파라마운트가 대신 낸 위약금 28억 달러(약 3조7600억원)를 받았다.
스카이댄스는 지난주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전체를 1110억 달러(약 148조8500억원)에 흡수했다. 지분가치로는 810억 달러(약 108조6200억원)다. 합병 회사를 이끄는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 CEO는 콘텐츠에 해마다 최소 300억 달러(약 40조2300억원)를 쓰겠다고 했다. 넷플릭스 주가는 워너를 쫓는 동안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시대 절대 강자지만, 워너-파라마운트 연합군의 맹력을 추격을 피할수 없을 전망이다.
더퍼 형제 파라마운트행·핀처 갱신 포기… 극장 개봉 원한 창작자 이탈
이런 가운데 주요 창작자들도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를 만든 매트·로스 더퍼 형제는 대형 극장 영화를 만드는 조건으로 2026년 4월부터 파라마운트와 4년 전속 계약을 시작했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는 2027년 끝나는 전속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그가 개발하던 '오징어 게임' 미국판 시리즈를 접었다.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은 워너브러더스 레이블 클락워크(Clockwork)로, '기묘한 이야기' 제작자 숀 레비(Shawn Levy)는 디즈니로 옮겼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넷플릭스는 극장 개봉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할리우드를 달래기 위한 조치다. '라 볼라 네그라(La Bola Negra)'에는 45일 극장 창구를 줬고, 핀처의 '클리프 부스의 또 다른 모험(The Further Mis-Adventures of Cliff Booth)'은 11월 25일 아이맥스(IMAX)에서 먼저 상영한 뒤 12월 23일 넷플릭스에 올린다.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나니아: 마법사의 조카'는 2027년 2월 극장에 먼저 걸린다.
이번에 라이스를 최고 콘텐츠 책임자로 모신 이유도 할리우드의 창작 집단과의 관계를 크게 의식했다는 평가다.

감원, 콘텐츠 조직 임원까지… 지니 하우·댄 린 거취가 라이스의 첫 숙제
그동안 넷플릭스가 감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감원은 콘텐츠 조직 안쪽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TV 부문에서는 10년 차 오리지널 시리즈 디렉터 캐롤리나 가르시아(Carolina Garcia)와 편성 책임자 앤디 쿠비츠(Andy Kubitz)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영화 부문에서는 같은 주 더그 벨그라드(Doug Belgrad) 부사장이 나갔다. 비각본 캐스팅·개발 임원들도 명단에 들었다. 버라이어티는 라이스가 사기가 떨어진 팀을 넘겨받는다고 썼다. 미국·캐나다 각본 시리즈 책임자 지니 하우(Jinny Howe)와 댄 린(Dan Lin) 영화 부문 대표 같은 바자리아 측 간부들의 거취가 다음 관심사이고, 린의 교체 여부는 라이스가 정한다.
한국 투자 약속 3조3000억원 올해 만료… BTS 광화문 생중계도 바자리아 체제 작품
넷플릭스의 서랜도스는 2023년 4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국빈 방미 때 4년간 한국 콘텐츠에 3조3000억원(약 25억 달러)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약속의 마지막 해가 올해다.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부사장(VP)은 지난 1월 21일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코리아'에서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며 "리스크는 넷플릭스가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한국 작품 210편이 글로벌 톱10에 올랐다는 수치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워너 인수가 한국 투자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한국 발 라이브 콘텐츠나 이벤트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바자리아 시절, 완성된 포맷이기 때문이다. 바자리가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시절, 넷플릭스는 3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을 약 190개국에 생중계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전 세계로 내보낸 첫 라이브 이벤트였고, 연출은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맡았던 해미시 해밀턴(Hamish Hamilton)이 했다. 넷플릭스 자료를 인용한 아웃룩인디아 보도에서 이 생중계 시청자는 약 1840만 명, 1위에 오른 나라는 24개국이었다.
한국 작품은 바자리아의 전성시대와 함께 글로벌을 호령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시청수(views) 1억3000만으로 영화 부문 4위였고, 한국 시리즈 '참교육(Teach You a Lesson)'은 4800만 시청수로 TV 부문 10위 안에 들었다.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모바일인덱스 집계로 2월 1526만 명이었다. 2위 쿠팡플레이(약 832만 명)의 두 배에 가깝고, 3월에는 1591만 명으로 늘었다. 조선일보는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지난해 한국 매출은 1조 542억 원을 기록하며 진출 이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글로벌 리더십 교체에 따라 한국 조직도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다.
한국 콘텐츠팀이 속한 글로벌 콘텐츠 조직은 26일부터 라이스에게 보고한다. 바자리아는 현지어 오리지널 부사장으로 시작해 비영어 시리즈를 세계 흥행작으로 키운 경영자였고, 라이스의 경력은 미국 영화사와 미국 방송 네트워크에서 쌓였다.
서랜도스가 직원들에게 메일에서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편성으로 미국을 짚었다. 전문가들은 미국 시리즈에 예산이 더 실리면 지역별 배분도 다시 짜여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영어 작품이 전체 시청의 3분의 1을 넘는 구조에서 2027년 이후 한국 투자 규모와 계약 방식, 한국발 대형 라이브를 이어 갈지가 새 체제의 결정 사항이 됐다.

광고 줄어든 한국 방송사, 판권을 사는 쪽의 결정권자가 바뀐다
한국 방송사에게 넷플릭스는 이제 경쟁자보다 판권을 사 가는 큰 고객에 가깝다.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이야기하면서 넷플릭스를 빼놓기 어려워진 이유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SBS다. SBS는 2024년 12월 넷플릭스와 6년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고, 2025년 1월부터 신작 드라마·예능·교양 프로그램과 과거 방송작(구작) 라이브러리를 넷플릭스에 공급하고 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 계약을 "모든 면에서 전례가 없는 역대급 계약"이라고 평가했고, DB금융투자는 계약 규모를 6년간 약 3000억원(약 2억2400만 달러)으로 추산했다. 유건식 전 KBS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넷플릭스로서도 지상파 콘텐츠의 판권을 사는 편이 "투입하는 비용 대비 수익성이 좋다"고 뉴시스에 설명했다.
반대 방향의 거래도 나왔다. MBC는 2024년 12월 디즈니+ 오리지널 '무빙'을 지상파로 편성했고, 글로벌 OTT와 국내 지상파의 첫 협업 사례로 소개됐다. 방송사와 스트리밍 사이에서 콘텐츠가 양쪽으로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출발점은 광고 감소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광고 매출 감소가 있다. 지상파는 광고주를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8월 낸 방송광고 구매가이드는 지상파 TV가 매달 4473만 명에게 닿고, 광고 1000회 노출당 비용(CPM)이 2927원으로 유튜브·넷플릭스보다 싸다는 점을 앞세웠다. 광고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진 방송사에게 스트리밍 서비스에 판권을 파는 일은 이제 핵심 수입원이 됐다.
판권을 사는 쪽의 결정권자도 바뀐다. 라이스의 이력은 한국 방송사가 가진 자산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는 디즈니에서 지상파 ABC와 ABC 뉴스를 포함한 TV 사업을 총괄했고, 폭스와 디즈니를 거치며 슈퍼볼·NBA 결승·FIFA 월드컵 결승 같은 대형 스포츠 중계를 맡았다. 실시간 편성, 뉴스, 스포츠·공연 중계는 넷플릭스가 라이브 서비스를 넓히면서 필요로 하는 역량이다. BTS 광화문 공연 같은 대형 현장 중계를 해낼 인력과 장비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가진 곳도 지상파 방송사다.
협상력은 주간 편성과 라이브러리에서 나온다
요금 인상이 주된 매출 수단이 되면 가입자 이탈을 막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해지를 늦추는 데는 매주 새 회차가 나오는 시리즈와 실시간 편성이 효과적이다. 한국 방송사의 주간 드라마와 예능이 넷플릭스와의 협상에서 값어치를 갖는 이유다.
팬층이 두터운 라이브러리 작품도 협상 카드가 된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브리저튼' 시즌4가 공개되자 이전 시즌들의 시청량이 2025년 하반기보다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신작이 약할 때 시청 시간을 받쳐 주는 것은 결국 쌓아 둔 작품들이다.
반대로 작용할 수 있는 변수도 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오징어 게임' 미국판처럼 한국 IP를 영어권 리메이크로 키우는 기획은 새 CCO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시 검토될 수 있다. 원작 판권을 가진 한국 회사로서는 리메이크 우선협상권과 수익 배분 조건을 미리 따져 둬야 할 시점이다.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을 늘리는 흐름은 한국 영화계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투자·배급사는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넷플릭스로 넘기는 창구 분할이나, 처음부터 함께 투자하는 공동 투자 방식을 제안해 볼 수 있다.
결론: 성장 둔화에 콘텐츠 사령탑부터 바꿨다
넷플릭스가 이번 주 내놓은 답은 1000명 감원과 콘텐츠 수장 교체다. 올해 상반기 시청 시간은 전년보다 2% 늘어나는 데 그쳤고, 미국 TV 시청 점유율은 지난해 12월 9%에서 7월 7.8%로 내려왔다. 에미상 수상은 10년 만에 가장 적었고, 주가는 최근 1년 동안 40% 가까이 떨어졌다.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자 회사는 콘텐츠 조직의 책임자부터 바꿨다.
다만 인사로 풀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업계 일각의 지적처럼 매출을 늘릴 수단이 요금 인상에 몰려 있다는 구조적 한계다. 새 CCO가 콘텐츠를 바꿔도 이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라이스가 받아 든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서랜도스가 직원 메일에서 짚은 미국·캐나다 시장의 화제작을 늘리는 일이다. 둘째는 극장 개봉을 원해 넷플릭스를 떠난 창작자들을 다시 데려오는 일이다. 셋째는 넷플릭스가 다른 스튜디오를 인수할 경우 두 조직을 합치는 일이다.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에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에 졌지만, 업계에서는 NBC유니버설 같은 다음 인수 후보가 거론된다. 세 과제 모두 라이스가 폭스와 디즈니에서 이미 해 본 일이다. 폭스를 디즈니에 통합하는 작업을 맡은 사람도 그였다.
한국에 남는 질문
한국 업계가 따져볼 것은 넷플릭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느냐다. 넷플릭스가 약속한 4년간 3조3000억원 투자는 올해로 끝나고, 후속 계획은 미국 시장을 우선하는 새 CCO 아래에서 다시 짜인다.
한국 제작사는 계약 방식이 바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대는 오리지널 대신 공동 투자나 판권 구매(라이선스) 비중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IP를 누가 갖는지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한국 방송사에게는 판권뿐 아니라 실시간 편성, 스포츠·공연 중계를 만드는 제작 역량이 새로운 협상 카드가 된다.
전망: 20일 실적 발표와 26일 취임, 첫 인사가 신호
넷플릭스는 20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서랜도스와 그렉 피터스 공동 CEO는 이 자리에서 새 콘텐츠 체제의 방향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연간 광고 매출 30억 달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시청이 다시 늘어나는지 확인하려 한다. 요금 인상 말고 무엇으로 매출을 늘릴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질 전망이다.
넷플릭스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넷플릭스는 작품별 시청 시간 보고서를 2027년부터 반년에 한 번이 아니라 1년에 한 번만 내기로 했다. 그러면 닐슨 '더 게이지' 같은 외부 시청 집계가 넷플릭스 성과를 판단하는 주된 근거가 된다.
26일 취임하는 라이스의 첫 결정은 영화 부문과 미국 시리즈 부문 책임자 인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 자리에 누가 앉느냐를 보면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과 고급 각본 시리즈 쪽으로 무게를 옮기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콘텐츠팀의 보고 라인과 2027년 한국 예산은 그다음 순서다. 넷플릭스가 다른 스튜디오를 인수하면, 한국 콘텐츠는 그 스튜디오의 방대한 라이브러리와 같은 예산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