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vs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인수전 격화
할리우드 역사상 최대 규모 M&A 전쟁… 미디어 산업 판도 바꿀 대격돌
데이비드 엘리슨, 공개매수 마감일 2월 20일로 연장하며 ‘끝까지 간다’ 선언
102년 역사의 명문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를 둘러싼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스트리밍 1위 넷플릭스와 통합 미디어 기업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1,000억 달러(약 147조원) 규모의 대형 거래를 놓고 맞붙으면서,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가 갈림길에 섰다.
목요일,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WBD에 대한 주당 30달러 전액 현금 공개매수 제안의 마감일을 2월 20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 파라마운트 CEO는 "기업가치 1,084억 달러로 넷플릭스 거래의 827억 달러보다 훨씬 우월하다"며 "WBD 주주들에게 더 나은 선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57억 달러 차이, 누가 승자 될까
이번 인수전은 제안 금액부터 극명하게 엇갈린다. 파라마운트는 주당 30달러 전액 현금을 제시하며 CNN, TNT, TBS 등 케이블 채널을 포함한 WBD 전체 인수를 추진 중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지난 1월 20일 주당 27.75달러로 기존 제안을 전액 현금으로 수정했다. 처음에는 현금과 주식 혼합이었으나, 파라마운트의 ‘전액 현금’ 장점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벌써 8차례나 만장일치로 거부했으며, 주주의 93% 이상이 넷플릭스 거래를 지지하고 있다. WBD는 성명을 통해 "파라마운트는 우리 이사회가 반복적으로 거부한 동일한 열등한 제안을 계속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넷플릭스는 보유 현금 200억 달러와 웰스파고, BNP파리바, HSBC 세 은행으로부터 확보한 422억 달러의 부채 조달로 총 830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추진한다. 파라마운트는 오라클(Oracle) 창업자이자 데이비드 엘리슨의 부친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이 404억 달러의 개인 보증을 제공하며 자금력을 과시했지만, WBD 이사회는 "자금 조달 보증이 불충분하다"며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다.
‘디스커버리 글로벌’ 가치 평가 논란
파라마운트가 집중 공격하는 지점은 WBD의 재무 투명성이다. 넷플릭스 거래가 성사되면 WBD는 CNN, TNT, TBS, HGTV, Food Network 등 케이블 채널과 Discovery+ 스트리밍 서비스를 '디스커버리 글로벌(Discovery Global)'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사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영화·TV 스튜디오와 HBO, HBO Max만 인수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 디스커버리 글로벌의 가치 평가다. WBD 이사회는 주당 2.41~3.77달러(인수 시나리오에서는 4.63~6.86달러)라고 주장하지만, 파라마운트는 "사실상 무가치하며 이론적으로 주당 0.50달러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심지어 WBD 자체 재무 자문사들도 할인된 현금흐름(DCF) 분석에서 주당 0.72달러까지 낮게 평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파라마운트는 "디스커버리 글로벌의 부채 배분이 최종적으로 주주들이 받을 금액을 직접 결정하는데도, WBD는 이 핵심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주주 승인을 요청하고 있다"며 투명성 부족을 비난했다. WBD는 디스커버리 글로벌에 2026년 6월 기준 170억 달러의 순부채를 배정할 계획이지만, 이 금액을 워너브라더스 사업부로 재배분하면 주주들의 실질 수령액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게 파라마운트의 지적이다.
이에 맞서 파라마운트는 이달 초 WBD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재무 세부사항 공개를 강제하려 했으나, WBD는 화요일 SEC에 제출한 문서에서 디스커버리 글로벌의 5개년 재무 전망을 스스로 공개하며 "법원 명령 없이도 투명하다"고 맞받아쳤다.
할리우드가 두려워하는 이유
이 거래가 업계에 던지는 파장은 크다. 《아바타(Avatar)》 시리즈의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 감독은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인수를 "재앙(disaster)"이라 표현했다. 미국 감독조합(DGA), 미국 작가조합(WGA), 극장 소유주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는 모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일자리 감소와 창작 다양성 저하다. 대형 플랫폼이 스튜디오를 흡수하면 중복 부서가 정리되고, 검증된 IP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극장 개봉 시스템의 붕괴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으로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공개 사이의 유예기간인 '홀드백(holdback)'을 축소하거나 무시해왔다. 워너브라더스의 블록버스터들이 극장을 건너뛰고 넷플릭스로 직행하면, 이미 위기에 처한 극장 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셋째, 시장 독과점 심화다.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 거래가 성사되면 글로벌 주문형 비디오 구독자의 43%를 차지하게 돼 소비자 요금 인상, 창작자 보상 감소, 극장 산업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넷플릭스가 압도적 1위이고 HBO Max가 유일한 경쟁자인 상황이라 반독점 이슈가 더욱 심각하다.
넷플릭스의 반론: “우리는 여전히 작은 플레이어”
이에 대해 그레그 피터스(Greg Peters) 넷플릭스 공동 CEO는 정면 반박했다. "워너브라더스와 합병해도 미국 TV 시청 점유율은 8%에서 9%로 소폭 상승할 뿐"이라며 "이는 유튜브(13%), 파라마운트와 WBD가 합병할 경우(14%)보다 훨씬 낮다"고 강조했다. 경쟁 상대를 전통 미디어가 아닌 유튜브로 설정하며 독과점 논란을 피해가려는 전략이다.
극장 개봉에 대해서도 입장을 바꿨다.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 공동 CEO는 직원 서한에서 "과거에는 극장 개봉이 넷플릭스의 사업 영역이 아니었지만,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극장 개봉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워너브라더스의 《해리 포터(Harry Potter)》, DC 유니버스(《배트맨(Batman)》, 《슈퍼맨(Superman)》),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같은 블록버스터 IP들을 극장에서도 계속 개봉하겠다는 뜻이다.
피터스 CEO는 "우리 거래는 우월한 주주 가치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소비자 친화적이고, 혁신·창작자·성장 친화적"이라며 "규제 승인을 위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했다.
규제 승인이 최대 변수
결국 최종 승자를 가를 열쇠는 규제 당국이 쥐고 있다. 넷플릭스와 WBD는 2025년 12월 4일 원계약 체결 후 12~18개월 내 거래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국 법무부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등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이미 반독점 심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정치적 변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래리 엘리슨, 데이비드 엘리슨 부자와 친분이 있다는 점이 파라마운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만약 거래가 무산되면 넷플릭스는 WBD에 58억 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파라마운트도 4월 WBD 특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을 설득해 넷플릭스 거래를 부결시켜야 하는데, 현재 93% 지지율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에 대한 영향
이 인수전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 인수전이 한창인 가운데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행사를 열고 올해 한국 콘텐츠 라인업을 대거 공개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변함없는 투자 의지를 강조했다.
33편 규모 2026년 라인업 공개
넷플릭스가 공개한 2026년 한국 콘텐츠는 시리즈 25편, 영화 4편, 예능 4편 등 총 33편에 달한다. 강동한(Don Kang)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부사장(VP)은 "지난 5년간 210편 이상의 한국 작품이 글로벌 톱 10에 올랐다"며 "K-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비영어 콘텐츠"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2023~2026년 4년간 약 3조원(25억 달러)을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2026년이 그 마지막 해다. 강동한 VP는 "한국에 대한 장기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며 "한국 창작자들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2025년 한 해 31편의 한국 작품을 선보인 데 이어 2026년에는 33편으로 늘리며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막대한 워너브라더스 인수 비용(830억 달러)이 투입되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 투자가 재조정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한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40%의 점유율, 매출 기준으로는 48%를 차지하는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의 프리미엄 IP까지 확보하면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같은 로컬 플랫폼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쿠팡플레이는 현재 한국에서 HBO 콘텐츠 독점 스트리밍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HBO를 인수하면 이 계약이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10월 CJ ENM과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가 체결한 K-콘텐츠 공동 제작 파트너십도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파트너십에는 HBO Max 내 티빙 브랜드관 론칭과 아시아태평양 17개국 진출 계획이 포함돼 있었지만, 넷플릭스 인수가 성사되면 전략이 바뀔 수 있다.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시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리서치는 이번 인수전을 "단순한 거래가 아닌 산업 재편(industry realignment)"이라고 정의했다. 《뉴욕타임스》는 "기술 기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해온 과정의 종착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미디어 업계는 대형 M&A를 통해 재편됐다. 2019년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했고,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가 합병해 WBD가 출범했으며, 2024년에는 파라마운트가 스카이댄스를 인수했다. 가입자 1억 명 이상을 확보한 소수 플랫폼만 살아남는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제 공은 4월 WBD 특별 주주총회로 넘어갔다. 주주들이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줄지, 아니면 파라마운트의 더 높은 현금 제안에 마음이 흔들릴지 지켜봐야 한다. 그 결과는 할리우드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워너브라더스라는 102년 전통의 명문 스튜디오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흡수되는 순간,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플랫폼의 시대'가 본격 개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