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 AI·숏폼 시대에도 장편이 이긴다 선언
로쿠, AI·숏폼 시대에도 장편이 이긴다 선언
4분기 사상 최대 실적 발표 직후 — AI로 장편 소비 확대·SMB 광고 6,000억 달러 개방 전망
로쿠(Roku)가 “AI 시대에도 TV는 결국 장편이 이긴다”고 정면 선언했다.
2025년 4분기 플랫폼 수익·조정 EBITDA·순이익 ‘3관왕’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직후, CEO 앤서니 우드는 생성 AI가 숏폼 홍수로 스트리밍을 잠식할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AI가 장편 콘텐츠 비용을 낮춰 시청 시간을 폭발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또 AI가 TV 광고를 대기업 전유물이 아닌 6,000억 달러 규모 SMB 시장까지 개방하는 ‘CTV 광고 혁명’을 촉발할 것이라며, 로쿠가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수익화할 플랫폼이라고 자신했다.

1. 로쿠, 광고로 2025년 4분기 사상 최대 실적
로쿠가 2026년 2월 13일 발표한 2025년 4분기 실적은 월가 예상을 전방위로 상회했다. 플랫폼 수익, 조정 EBITDA, 순이익 세 지표 모두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고치를 동시에 경신했다. 스트리밍 디바이스 제조사로 출발한 로쿠가 광고·구독 중심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업자로 탈바꿈했음을 수치로 입증한 성적표다.
■ 2025년 핵심 재무 지표
자료: Roku 4Q25 실적 발표 (2026.02.13) / K-EnterTech Hub
가장 주목할 변화는 수익 구조의 질적 전환이다. 4분기 플랫폼 총마진 52.8%는 소프트웨어 기업 수준의 수익성을 의미한다. 하드웨어(디바이스) 부문이 전년 대비 3% 성장에 그친 반면, 플랫폼 수익은 18% 성장하며 전체를 이끌었다. 디바이스는 더 이상 성장 엔진이 아니다.
로쿠는 2024년 2025년 말까지 조정 EBITDA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는데, 이를 예정보다 1년 앞서 달성했다. 이 여유 자금은 플랫폼 수익화 투자 가속화에 재투입됐고, 4분기 역대 최고 실적이 그 결과다.
구독 측면에서도 2025년 4분기는 창사 이래 최대 프리미엄 구독 순증(net adds)을 기록했다. HBO Max 추가, 가상 MVPD 프렌들리TV(Frndly TV) 인수, 연말 프로모션 효과가 맞물렸다. 로쿠 경험(Roku Experience)이 전체 플랫폼 구독 가입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는 점은, 플랫폼 자체가 얼마나 강력한 구독 전환 허브인지를 보여준다.
2025년 말 기준 9,000만 스트리밍 가구를 보유한 로쿠는 올해 1억 가구 돌파를 목표로 한다. 추가 Tier 1 구독 파트너 유치, 서드파티 번들 스트리밍 출시, 그리고 월 3달러 무광고 서비스 '하우디(Howdy)'의 타 플랫폼 확장이 2026년 성장 드라이버로 예고됐다.
2. "AI는 숏폼이 아닌 장편의 편"
역대 최대 실적 발표 당일, 4분기 어닝콜에서 애널리스트들의 관심은 재무 수치보다 AI와 숏폼이라는 두 변수에 쏠렸다. 생성 AI가 동영상 제작의 진입 장벽을 허물면, 숏폼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소비자 시간이 틱톡·유튜브 쇼츠로 더 빠르게 이동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넷플릭스가 최근 숏폼·UGC(사용자 생성 콘텐츠) 도입 의향을 시사하며 업계 긴장감을 높인 상황이었다.
앤서니 우드의 답변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는 업계의 지배적 우려를 정면 반박했다.
"장편 콘텐츠 비용이 낮아지면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참여도를 수익화한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AI로 인한 장편 비용 하락은 우리 플랫폼에 큰 기회다."
— 앤서니 우드 CEO, 4Q25 어닝콜 (2026.02.13)
공급 측 비용 절감이 수요 측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는 경제 논리다. 더 많은 장편 콘텐츠가 더 낮은 비용으로 시장에 쏟아지면, 더 다양한 취향의 시청자들이 TV 화면 앞에 더 오래 머문다. 로쿠는 그 '머무름'을 광고와 구독으로 수익화하는 구조다. 숏폼 확산이 오히려 로쿠에게 기회라는 역설이다.
"TV를 켤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찾는 것은 장편 콘텐츠"라는 그의 발언은 로쿠의 플랫폼 철학을 압축한다. 더 많은 장편 콘텐츠가 공급될수록 플랫폼 가치는 올라가고, 로쿠는 그 수혜를 직접 받는 구조다.

■ AI가 스트리밍에 미치는 충격 — 우려 vs 로쿠의 시각
자료: 4Q25 어닝콜·CES 2026 발언 종합 / K-EnterTech Hub
3. 숏폼은 보완재로 한정 — 로쿠가 선택한 차별화
숏폼에 대한 로쿠의 입장은 거부도 추종도 아니다. '맥락 있는 보완'이다. 로쿠 미디어 사장 찰리 콜리어(Charlie Collier)는 어닝콜에서 "숏폼은 로쿠가 잘 이해하는 특정 시청자 그룹을 대상으로 맥락에 맞게 도입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당장 가장 유력한 도입 영역은 스포츠 존(Sports Zone)이다. 리그 파트너십을 통해 경기 하이라이트·해설·통계 클립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로쿠는 시청자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싶어하는지 파악하는 데 탁월하다. 맥락에 맞게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콜리어는 강조했다.
광고주 브랜드 안전성(Brand Safety) 문제에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프리미엄 콘텐츠가 예측 가능한 미래에 로쿠가 하는 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것"이라며, 숏폼 확장이 프리미엄 광고주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이루어질 것임을 못 박았다.
■ 숏폼 전략 포지셔닝: 로쿠 vs 경쟁사
자료: 각사 발표 자료 종합 / K-EnterTech Hub
4. AI가 여는 6,000억 달러의 문 — SMB 광고 혁명
어닝콜에서 우드가 AI의 영향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광고였다.
"AI는 광고 측면에서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TV 광고는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다. 수백만 달러의 영상 제작비, 에이전시 수수료, 높은 최소 집행 단위가 중소기업(SMB)의 TV 광고 진입을 막아왔다. AI는 이 구조를 허물고 있다.
"AI 덕분에 TV 플랫폼에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광고주 세그먼트가 열리고 있다. 광고 제작이 쉬워질수록 더 많은 광고주가 TV 플랫폼에 광고할 수 있게 된다." — 앤서니 우드 CEO, 4Q25 어닝콜
로쿠의 공략 수단은 'Roku Ads Manager'다. AI 기반 셀프서브 플랫폼으로, 타겟 설정부터 영상 광고 제작·집행까지 SMB가 직접 처리할 수 있다. 타겟 시장 규모는 약 6,000억 달러. 이 시장의 CTV 유입이 본격화될 때, 로쿠는 인프라 선점 우위를 갖고 있다.
광고 인프라 강화도 병행됐다. 2025년 FreeWheel 스트리밍 허브와의 CTV 광고 재고 연동, DSP 파트너십 심화, 측정·퍼포먼스 광고 역량 강화가 대형 광고주용 공급 인프라를 두텁게 했다. 대형 광고주(공급)와 SMB(신규 수요)가 동시에 강화되는 이중 성장 구조다.
■ 로쿠 AI 실제 적용 현황
자료: 4Q25 어닝콜·로쿠 주주서한 종합 / K-EnterTech Hub
5. CES 2026에서 예고된 방향의 실체
사실 이번 어닝콜에서 나온 AI 발언들은 한 달 전과 괴를 같이 한다. 2026년 1월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열린 버라이어티 엔터테인먼트 서밋에서 우드는 스트리밍 업계의 장기 방향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시각을 밝혔다. 당시 발언들이 이번 4분기 어닝콜에서 구체적 사업 전략으로 이어진 셈이다.
가장 화제가 됐던 발언은 이것이다. "향후 3년 안에 100% AI로만 제작된 첫 번째 히트 영화가 탄생할 것이다." 이는 기술 예찬이 아닌, 콘텐츠 비용 구조 변화에 대한 사업적 시나리오다.
"사람들이 AI가 콘텐츠 제작 비용을 얼마나 극적으로 낮출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여전히 창의적 원동력이다. 하지만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많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것이다." — 앤서니 우드 CEO, CES 2026 (2026.01.07)
또한 우드는 CES에서 AI 활용을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첫째, 내부 운영 효율화로 경쟁사 대비 비용 구조 우위를 확보하는 것. 둘째, 추천·광고 등 제품 전반에 생성형 AI를 내재화하는 것. 셋째, 콘텐츠 제작 비용 절감이 만들어낼 소비 확대의 수혜를 취하는 것이다.
"AI가 투자 버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그 변화에서 어떻게 이득을 취할 것인지에 집중한다." — 이것이 CES에서 드러난 우드의 AI 전략의 본질이며, 이번 어닝콜은 그 전략의 구체적 실행 방향을 확인해준 자리였다.
6. 한국 콘텐츠·광고·미디어테크 업계를 위한 시사점
로쿠의 실적과 전략 발표는 미국 CTV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와 경고를 동시에 보낸다. AI와 숏폼이 스트리밍 생태계를 재편하는 지금, 포지셔닝의 타이밍이 향후 3~5년의 성패를 가른다.
자료: K-EnterTech Hub 분석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쿠가 Content Rows, Sports, Live TV 등 핵심 UI에서 파트너 콘텐츠 노출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지금, FAST 채널을 런칭하는 것은 경쟁이 포화된 이후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플랫폼이 파트너를 키우려는 의지가 있을 때 진입하는 것과, 진입 장벽이 높아진 뒤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게임이다.
AI 제작 도구 내재화 역시 더 이상 중장기 과제가 아니다. 우드가 예측하는 제작 비용 절감이 현실화될 때, AI 워크플로를 갖춘 제작사와 그렇지 않은 제작사 간의 생산성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K콘텐츠의 글로벌 수요가 이미 검증된 지금, AI를 내재화한 제작사는 그 수요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충족할 수 있다.
SMB 광고 시장 개방은 한국 중견 브랜드와 스타트업에게 사실상 처음 열리는 미국 TV 광고 창구다. Roku Ads Manager를 통해 K-뷰티, K-푸드, K-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들이 소규모 예산으로도 9,000만 가구에 도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론: 역대 최대 실적, 그리고 더 큰 베팅
로쿠는 2025년 4분기 플랫폼 수익·조정 EBITDA·순이익 ‘트리플 역대 최대’와 9,000만 스트리밍 가구라는 숫자를 등에 업고, AI 시대 스트리밍 산업에서의 베팅 방향을 분명히 했다. AI는 숏폼을 키워 TV를 잠식하는 위협이 아니라, 장편 제작비를 떨어뜨려 TV 앞 ‘머무는 시간’을 키우는 동력이며, 기존 TV 광고를 대체하는 파괴자가 아니라 6,000억 달러 규모 SMB 광고 수요를 CTV로 끌어들이는 촉매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설이 맞는 한, 참여도(engagement)를 수익의 중심축으로 삼는 로쿠의 플랫폼 모델은 AI 시대에 오히려 구조적 레버리지를 갖게 된다.
물론 리스크도 분명하다. 숏폼이 TV 시청 자체를 대체할 만큼 강력해질 경우, 장편 중심 전략은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로쿠는 역대 최대 분기 실적과 사상 최대 프리미엄 구독 순증을 동시에 기록하며, 지금까지의 선택이 최소한 현재까지는 시장에서 유효한 전략이었음을 입증했다.
한국 콘텐츠·광고·미디어테크 업계 입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AI와 숏폼이 TV를 죽일 것인가”가 아니라 “로쿠가 만들어가는 이 AI·CTV 생태계의 어디에, 얼마나 빨리 올라탈 것인가”에 가깝다. 9,000만 가구를 향한 문이 지금처럼 넓게 열려 있는 시기는 길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FAST, 번들, SMB 광고, AI 제작 워크플로 등 각 기업의 역할을 선명하게 정의할 타이밍이라는 점에서, 로쿠의 ‘장편·AI 베팅’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행동을 재촉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